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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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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2021. 8. 28.

침실에 있던 TV 가 죽었다. 5-6년 전, 내 생일에 아이들이 사준 것이다. 거실에 있는 삼성 TV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것인데도 잘 지내고 있는데, 전자제품이나 사람이나 가는 길에는 순서가 없는 모양이다.

 

내가 처음 TV를 접한 것은 6-7살 때의 일이 아닌가 싶다. 국영 방송인 KBS 가 개국을 하던 무렵이다. 부모님과 함께 2층 큰 방에서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드라마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원자폭탄이 터져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 주인공이 무섭게 느껴졌었다. 

 

60년대 TV는 콘솔 스타일로 양쪽 끝에는 스피커가 들어 있고, 가운데에는 문이 있어, 이걸 열면 화면이 나왔다. TV 방송국은 하나, 저녁 방송만 했다. 그 후 방송국이 두 개 더 생기며 채널 다툼이 생겨났다. 아버지와 우리 두 형제는 운동 중계나 서부활극 따위를 보려고 했고, 어머니와 누이들은 드라마와 쇼 프로를 선호했다. 그 후 아침 방송이 시작되어 어머니는 전날 놓친 드라마를 다음날 볼 수 있었고, 나는 형제들이 모두 학교에 간 시간에 집에서 학교 방송을 볼 수 있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화면 상태가 달라졌다. 아마도 방송 전파가 약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방송국에 따라서도 신호가 달라 채널을 돌리면 안테나도 따라 방향을 돌려야 했다. 구파발에 살 때는 방의 위치 때문에 낮이면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TV 화면에 닿았다. 주말 오후 명화극장을 보려면 국방색 담요로 창을 막아야 했다. 

 

영어 공부를 하며 미군 방송인 AFKN을 접했다. 내 나이 또래의 미국인들을 만나 그때 보았던 미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향수에 젖곤 한다. 

 

큰 아들 세일이는 세 살 때 미국에 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를 데이케어 보냈더니 울며 가지 않으려 했다. 며칠 만에 할아버지를 설득하여 집에 남게 되었다. 매일 집에서 TV로 만화를 보더니 영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내가 따로 영어를 가르친 적도 없는데, 언어의 어려움 없이 2년 후 유치원에 잘 다녔다.

 

미국에 오니 한국방송을 저녁에만 잠깐 했다. 다시 6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래서 비디오 대여점이 각광을 받았다. 사람들은 비디오를 한 무더기 빌려다가 이웃이나 교우들과 돌려가며 보았다. 이제는 케이블이나 위성 TV로 한국방송을 24시간 볼 수 있다. 그 많던 비디오 가게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케이블을 시청하면 고화질 화면에 100여 개가 넘는 채널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TV를 켜면 볼만한 방송이 없다. 아래 위로 채널을 바꾸다가 꺼버리고 만다. 프로그램에 빠져들려면 잠시 그 방송을 보고 있어야 하는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유튜브에 익숙해진 뇌는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보려 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는 스트리밍으로 보는 것이 훨씬 쉽고 편리하다. 광고도 없고, 한꺼번에 보고 싶은 만큼 보고 멈추었다 다시 볼 수도 있다. 요즘 TV로는 야구나 축구 중계 정도만 본다. 

 

TV 가 고장 나자 아내는 거실에 있는 것을 방으로 옮기고, 거실에는 좀 더 큰 TV를 놓자고 했다. 며칠 전 TV 옮길 자리를 만들기 위해 방을 정리하는 아내에게 당분간 TV를 사지 말자고 했다. 아내도 선뜻 그러자고 한다. 당분간 TV 없는 침실에서 잠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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