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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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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야기

2021. 10. 22.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던 1998년, 미국 온 지 17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 산재보험기금에 근무한 덕에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장애인 관련 단체 임원들도 만났다. 그때 나는 한국의 복지 담당자들이 유럽의 복지제도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유럽이지만 제도는 사회주의적인 것이 많다. 복지만 해도 그렇다. 국가가 일률적으로 책임지고 제공하는 개념이다. 좋아 보이지만, 모든 일에는 늘 양면이 있다. 좋은 복지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며, 국가의 재원은 세금이다. 국민들은 많은 세금을 선지급하여 좋은 복지로 되돌려 받는 것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며 지방자치제가 발달한 나라다. 복지도 소비자(국민)에게 선택권을 주며 제공한다. 그 좋은 예가 건강보험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는 65세 미만의 국민에게는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국민은 다양한 건강보험 상품 중, 자신의 형편에 맞는 것을 골라 선택해야 한다. 

 

오바마 때 시행된 법으로 인해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회사가 제공하는 보험에 가입하지만, 이런 단체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마바 케어’가 제공하는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수입에 따라 정부가 보험료를 보조해 주는 개념이다. 이 경우에도 소비자는 다양한 종류의 보험을 선택할 수 있다. 각자 수입에 따라, 선택한 보험에 따라,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보조금의 액수가 달라진다. 같은 보험이라도 혜택에 따라 보험료와 본인 부담액이 달라진다. 

 

65세 이상의 미국인과 장애인에게는 ‘메디케어’라는,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이 주어진다. 이때도 정부와 계약을 맺은 보험사들이 제공하는 보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보험사는 메디케어는 제공하지 않는 치과, 헬스장, 차량 지원 등의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하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소비자가 자유롭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메디케어'나 '오바마 케어'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는 매년 가을 'open enrollement' 기간에 보험사를 바꿀 수 있다. 이맘때가 되면 각 가정의 편지함에는 보험사들이 보낸 안내책자가 쌓이고, 신문에는 연일 보험사들의 광고가 실린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다분히 인기주의를 의식하며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알고 있기로, 감기 몸살 같은 가벼운 증상에도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고 약을 받는 것으로 안다. 내시경이나 CT/MRI 같은 검사도 본인이 원하면 쉽게 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막상 중증 질환이나 난치병을 앓게 되면 본인 부담액이 크게 늘어나는 모양이다. 미국 병원에서는 증상이 없으면 이런 검사들은 해주지 않는다.

 

살다 보면 누구나 흔히 가벼운 증상을 겪게 되지만 중증 질환에 걸리는 숫자는 적다. 정치적 인기를 위해서는 어느 쪽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이 유리한가는 쉽게 결정이 난다. 

 

가벼운 증상에도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고 약을 받으면, 환자는 진료를 받아 좋고, 병원과 약국은 보험료를 받으니 좋을 수밖에. 가벼운 감기는 열이나 기침, 콧물 등을 해소하는 약을 먹고 쉬면 낫는 병이다. 굳이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먹을 필요는 없다. 미국에서는 병원에 한 번 가면 기본적으로 적게는 $15, 많게는 $25 정도의 본인 부담금(co-pay)이 있다. 그러니 가벼운 증상에는 그 돈으로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만다. 

 

큰 병이 걸려 전문의를 만나거나 항암치료 같이 비싼 진료를 받을 때도 같은 액수의 본인 부담금만 내면 된다. 그리고 가족 합계, 일 년에 부담해야 하는 돈이 $1,000 – 5,000 (본인의 보험에 따라 다름)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병원비가 10만 달러가 되건, 100만 달러가 되건, 남어지는 보험사가 모두 지급한다. 

 

오마마 케어를 들며 보험료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카운티 정부가 제공하는 보험이 주어진다. 내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메디켈’이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어떤 이유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병들어 병원에 가면, 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똑같은 진료를 받는다. 수술이나 항암치료 등도 모두 받을 수 있다. 

 

보험의 기본 개념은 사소한 손실을 보장받자는 것이 아니다. 적은 돈을 내고 큰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소한 질병보다는 큰 병을 커버해 주는 것이 건강보험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일차적으로는 개인에게 맡겨두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지는 안전망을 두고 있다. 이때도 문제는 재원이다. 그래서 미국에는 세금이 많다

 

장애인 복지도 같은 방법으로 접근한다. 장애인에게는 기본적으로 SSI 또는 SSDI라는 생활지원금이 주어진다. 혼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는 별도의 간병인이나 보조원 서비스가 제공되며, 혼자 살 수 없는 이들이 그룹홈에 들어가면 그 비용을 지급해 준다. 이때도 거주 지역이나 방법을 정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선택한다. 간병인이나 보조원도 본인이 선택하며, 마음이 맞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다.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나 개인은 장애인을 소비자로 본다. 

 

자유시장 경제는 아주 단순한 개념이다. 소비자는 값싸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몰리고, 소비자가 찾지 않는 업체는 문을 닫게 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지고,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오른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 이번에는 어떤 인기주의 복지정책들이 나올는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복지를 생각해 볼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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