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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것은 이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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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2020. 7. 29.

미영씨가 죽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4개월 만이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녀는 아내의 절친이다. 고향 친구며 동창이다. 시험관 시술로 낳은 쌍둥이 두 딸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유방암이 발견되었다. 유방암 투병 중 그녀의 소망은 딸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사는 것이었다. 수술과 힘든 항암을 잘 견뎌내고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 연말에는 UCSB에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큰 딸을 보기 위해 미국에 와 우리 집에서 3주가량 머물다 갔다. 함께 미사도 가고 성탄절을 보냈다. 암을 다 이겨낸 것처럼 건강해 보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고 얼마 후 췌장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공무원인 남편의 근무지가 세종시라 몇 년 동안 주말 부부로 살다가 얼마 전 서울로 돌아와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만하니 암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간절히 살고 싶은데도 죽어야 하고, 누군가는 헌신짝 버리듯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아내는 그녀 곁에 가고 싶어 했지만 코로나 탓에 오도 가도 못하고 결국 화상통화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이가 들어가니 주변에서 하나둘씩 떠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 얼마 전에는 우리가 고모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사촌동생이 돌아가셨다. 이제 우리 집안에는 작은 아버지만 남았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나 다음으로 내가 나이가 많다. 죽음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신문에 나는 부고를 유심히 보게 되고 삶은 무엇이며 죽음 후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우주의 물질은 결코 사라짐 없이 이것이 되었다가, 저것이 되기도 한다. 죽고 나면 나를 이루고 있던 원소들은 하나씩 내 몸을 빠져나가 다른 생명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은 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서 조개나 물고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풀로 자라기도 할 것이다.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원소들은 나를 기억할까. 과연 그 안에는 내가 살며 나누었던 인연과 사랑과 이별과 아픔의 흔적이 얼마나 남게 될까. 

 

미영씨의 발인날 아침,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병화씨나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겠나요. 그래도 내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 몇 자 적습니다. 그동안 힘드셨죠? 아픈 사람도 힘들었겠지만 곁에서 이를 간호하고 지켜보는 사람은 또 얼마나 힘들고 아픈가요. 애 많이 쓰셨습니다.

 

우리는 입고 쓰던 물건은 모두 두고 가지만 살며 나누었던 기억과 사랑은 가지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몸은 우리 곁에 없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은 우리 안에 계속 사는 거죠.

 

가끔씩 연락하며 지내요. 미영씨는 없지만 미영씨가 만들어 준 우리의 인연은 이어 가야지요. 좋은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며 지내요.”

 

(미영씨의 카톡 프로필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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