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커피 한 잔 마시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잠시 머물고 추억하며 즐거우시기 바랍니다. 브런치에 오셔도 제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onko

04 2020년 10월

04

맛이 기억 종이 아줌마의 빵

며칠 전의 일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마켓에 갔다가 한국 빵집에 들렀다. 갓 구워낸 맛있어 보이는 온갖 빵들이 있었다. 빵을 보니 문득 옛일이 생각났다. 이모의 친구 중에 '종이 아줌마'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종희' 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귀에는 '종이'라고 들렸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종이' 아줌마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녀가 이모를 찾아 외가에 왔었다. 그날따라 이모는 외출을 하고 집에 없었다. 할머니는 종이 아줌마에게 잠깐 집을 좀 지키고 있으라며 장에 가셨다. 한옥 대문에는 열쇠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집에 있어야 했다. 나와 종이 아줌마만 남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 기다란 빵을 사들고 있었다. 집에 있는 동생들에게 주려고 샀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어린 동생들이 여럿 있었다. 피하려고 하..

댓글 맛이 기억 2020. 10. 4.

30 2020년 09월

30

맛이 기억 할머니의 고추장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이라고 한다. 조선 개화사에 의하면 이때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돌살키 위하여 가져왔으나 우리 체질에 맞아 즐겨 먹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내가 매운맛을 접한 것은 3-4 살 무렵의 일이 아닌가 싶다. 김치를 물에 씻어 밥에 올려 먹은 것이 내가 처음 맛 본 매운맛이다. 그 무렵의 아이들은 대개 물에 씻은 김치를 시작으로 밥상 위의 반찬에 맛을 들여 갔다. 내가 자란 외가에는 손바닥 만한 마당에 반지하의 창고가 있어 그 지붕에 할머니의 장독들이 있었다. 그중 할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고추장 항아리였다. 3-4년쯤 묵힌 찹쌀고추장은 요즘 고추장과는 달리 검은빛이 돌며 끝 맛이 달짝지근했다. 가을이 되면 할머니는 고추를 말려 씨를 빼고 ..

댓글 맛이 기억 2020. 9. 30.

29 2020년 09월

29

맛이 기억 테이블 매너

나는 늘 외할아버지와 겸상으로 밥을 먹었다. 내가 할아버지와 밥을 먹고 나면, 할머니와 이모가 그 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늘 그렇게 지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외가에는 나름의 밥 먹는 예절이 있었다. 밥상을 받으면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시기 전에는 먼저 수저를 들 수 없다. 반찬도 할아버지가 먼저 손을 대신 후에야 먹을 수 있다. 맛있는 반찬이라고 해서 그것만 먹어서도 안되고, 눈치껏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할아버지가 내 쪽으로 밀어주시곤 했기 때문에 늘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가끔 우리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되면 전혀 다른 상황을 접하게 된다. 2-3년 터울의 5남매가 모여 먹는 밥상은 할아버지와 둘이서 조용히 먹던 내게는 문화적 충격..

댓글 맛이 기억 2020. 9. 29.

20 2020년 09월

20

맛이 기억 구운 옥수수

백일해는 소아 감염질환 중 전염력이 강한 질환 중 하나다. 한국에는 80년대부터 정제 백일해 백신이 혼합된 DTaP 백신이 도입되면서 유행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백일해에 걸리면 기도가 막힌 ‘색색’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마치 금세라도 숨이 넘어 갈듯이 격렬한 기침을 한다. 한 번 걸리면 백일 동안 기침을 한다고 해서 백일해다. 한국에 백일해 백신이 보급되기 전의 일이다. 동생이 먼저 걸려 왔다고 기억한다. 할머니는 육모초 (익모초) 달인 물이 백일해에 좋다며 나와 동생에게 수시로 육모초 달인 물을 마시게 했다. 그 무렵 나는 백일해 탓인지 입맛이 없어 밥을 잘 먹지 못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장에 다녀오시는 길에 구운 옥수수를 하나 사 오셨다. 그놈을 반으로 잘라 큰 것은 내게, 작은 것은 동생에게 주었다..

댓글 맛이 기억 2020. 9. 20.

14 2020년 09월

14

맛이 기억 요리의 달인

주 정부 공무원이 되어 처음 근무했던 사무실에 ‘Janet’이라는 백인 여성이 있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낯선 직장에 익숙해지기까지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한국인임을 안 그녀가 한국식 불고기 조리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한국식 구이를 좋아하는 그녀와 남편은 가끔 밸리의 ‘덕수장’에 (지금은 없어졌다) 가서 불고기를 구워 먹는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고추장 양념을 한 돼지 불고기가 맛있다고 했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내 손으로 불고기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려서 외할머니가 음식을 만드시는 것을 늘 보아 왔기 때문에 불고기 양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푸줏간에서 기계로 썰어 주는 고기를 사지 않았다. 늘 돼지의 삼겹살을 사다가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저며 양념..

댓글 맛이 기억 2020. 9. 14.

11 2020년 09월

11

맛이 기억 내장탕

난 소나 돼지의 내장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서는 내장을 많이 먹었다. 소의 간은 저며서 달걀을 씌워 전을 만들어 먹었다. 따뜻할 때 초간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식은 것을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미국에 오니 ‘liver and onion’이라는 요리가 있었다. 얇게 저민 소 간에 밀가루를 묻혀 베이컨 기름에 양파와 함께 지진 요리다. 80-90년대만 해도 웬만한 식당의 메뉴에 들어 있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소 간은 가격이 저렴해 전에는 자주 해 먹었는데, 언제부턴지 간을 먹고 나면 다음날 소변 색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성장 호르몬과 항생제 때문이 아닌가 싶어 먹지 않게 되었다. 외가에서는 겨울이면 곱창과 양, 사태를 넣고 끓인 곰국을 만들어 먹었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소금..

댓글 맛이 기억 2020. 9. 11.

23 2020년 08월

23

맛이 기억 '탱'으로 만든 얼음과자

오렌지 주스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내 나이 4-5세 때의 일이 아닌가 싶다. 삼촌의 팔에 안겨 서커스 구경을 가서 삼각형 비닐봉지에 든 오렌지 음료를 마신 기억이 있다. 요즘도 동남아에서는 이렇게 비닐봉지에 음료수를 넣어 파는 것 같다. 오렌지 주스에 관한 그다음 기억은 누나와의 일이다. 누나가 중학교 1학년쯤 되었으니 내 나이는 10-11살 정도. 그날 외가에는 누나와 나, 둘이 있었다. 그 동네에는 오후 3-4시가 되면 리어카에 잡다한 물건을 싣고 오는 고물장수가 있었다. 엿이나 강넹이를 싣고 다니는 여느 고물장수와 달리 그는 과자와 사탕, 딱지와 장난감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물건들을 싣고 다녔다. 물자가 귀해 빈 깡통, 신문, 잡지, 헌 공책은 물론 빈병도 재활용을 위해 사가던 시절이..

댓글 맛이 기억 2020. 8. 23.

12 2020년 08월

12

맛이 기억 당신의 컴포트 푸드는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기쁨과 안정을 주거나 슬프거나 아플 때 찾는 음식을 컴포트 푸드 (comfort food)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단연 ‘맥 앤 치즈’를 꼽을 것이다. 한국의 한 과학잡지가 수도권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자는 술 (16.7%), 치킨 (13.9%), 고기 (12.7%), 여자는 치킨 (13.5%), 아이스크림 (11.9%), 피자와 스파게티 (9.9%) 등을 찾는다고 한다. 컴포트 푸드는 뭐니 뭐니 해도 어릴 때 먹던 음식이 아닌가 싶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생일상을 받으며 늘 고향에서 먹던 생일상을 들먹여 음식을 장만한 어머니를 섭섭하게 하곤 했다. 고향집 밥에는 늘 쌀보다 감자가 많았다. 생일을 맞은 사람은 쌀이 넉넉히 들어 간 밥에 무채를 썰어 넣은 가자미 ..

댓글 맛이 기억 2020.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