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커피 한 잔 마시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잠시 머물고 추억하며 즐거우시기 바랍니다. 브런치에 오셔도 제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onko

28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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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봄이 좋아졌다

어려서는 가을과 겨울을, 낮보다는 밤을 좋아했다. 아마도 인생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구르며 내는 소리,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좋았다. 모두가 잠든 밤, 램프를 켜고 음악 방송을 들으며 한 소녀에게 편지를 쓰곤 했었다.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다 버리고, 어떤 것은 부치지도 못하고. 이놈들이 처음 나타난 것은 7-8년 전의 일이다. 연두색 풀 속에 노란 꽃이 몇 개 보이더니 그 후 매년 아래로 내려오며 숫자가 늘어났다. 3-4년 전, 비가 많이 왔던 봄에는 뒷동산 가득 피기도 했었다. 금년에는 날씨가 가물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3월 상순 몇 차례의 비에 뒷동산이 초록으로 변하더니 며칠 전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매일 그 숫자..

댓글 칼럼 모음 2021. 3. 28.

10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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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존엄한 죽음

코로나로 시작한 칩거도 이제 2년 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책과 영화를 가까이하게 된다. ‘수잔 서랜든’ 주연의 영화 ‘완벽한 가족’(Blackbird)를 보았다. 루게릭병에 걸려 이미 한쪽 팔은 쓸 수가 없고 다리도 불편한 중년 여성 ‘릴리’가 더 이상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두 딸과 그들의 가족, 절친을 집으로 불러 때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녀가 큰딸의 아들인 손자와 나누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손자가 “할머니, 어른이 되어 중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쓸만한 삶의 지혜 같은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답한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뭐 대단한 통찰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척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생은 그냥 살아보아야 ..

댓글 칼럼 모음 2021. 3. 10.

24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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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 메리 크리스마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사나운 날 밤,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있는데 8시가 넘은 시간에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아마존에서 늦은 시간에 배달이 오는 날이 있긴 하지만 그날을 올 것이 없었다. 주저하다 아내가 나가보더니 누군가 오렌지 박스를 두고 갔다고 한다. 박스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고 쪽지도 없다. 머리를 굴려 보아도 짐작 가는 곳이 없다. 산타의 정체는 잠시 후 아내의 전화기에 뜬 카톡 메시지로 풀렸다. 근처에 사는 교우가 두고 간 것이었다. 12월은 일 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이다. 회사 다닐 때, 12월 한 달은 거의 축제 분위기로 보냈다. 휴게실에는 누군가 사 오거나 구워 온 다과가 있었고, 직원들의 책상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카드로 화려하게 도배를 했었다. 팀별로 팟럭이나..

댓글 칼럼 모음 2020. 12. 24.

20 2020년 12월

20

칼럼 모음 산타의 계절

회사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선물 교환을 하며 이를 위해 12월 초에 참여하는 모든 직원의 이름을 바구니에 넣고 이름을 뽑는다. 선물을 준비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날 오후에 회의실에 모여 차례대로 선물을 준다. 누군가 먼저 자기가 뽑은 사람에게 선물을 주면, 그걸 받은 사람은 자기가 준비한 선물을 다음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가장 좋은 선물은 사장님에게서 받는 현금봉투다. 그래서 직원들은 혹시나 사장님이 자기 이름을 뽑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 휴게실 문에는 선물 나누기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종이가 붙여진다. 여기에 각자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적어 놓을 수 있다. 금년에는 누군가 재미있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미첼, 벌써 네 선물은 샀어.” 이미 사놓았으니 무엇을 적어도 소..

댓글 칼럼 모음 2020. 12. 20.

25 2020년 11월

25

칼럼 모음 가족도 못 보는 명절

금년 추수감사절에는 가족 모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 가족 모임은 3 가정으로 제한하라고 하니 좋아하는 자식 둘만 불러야 할 텐데 누굴 오라고 할 거예요?” 10월 중순, 막내아들이 가족 톡방에 올린 내용이다. 형과 동생까지 다 오면 4 가정이니 그중 하나는 빼야 할 거 아니냐는 농담이다. 3 가정이나 4 가정, 무슨 큰 차이가 있어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내는 신중한 성격이다. 11월부터는 일주일에 며칠씩 사무실에도 나가야 하니 그전에 미리 왔다며 11월 초에 다녀갔다. 이제 3 가정이 남았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급속히 나빠졌다. 이 정도면 다시 봉쇄령을 내려야 할 텐데, 주민들의 반발에 따른 정치적인 이유로 미루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 지내는 교우는 코로나에 걸려 1주일이나 병원에 입..

댓글 칼럼 모음 2020. 11. 25.

07 2020년 11월

07

칼럼 모음 단풍이 아름다운 까닭은…

지난가을 신문을 보다가 평생에 한 번은 가보아야 하는 드라이브 코스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 샌디에고의 79번 국도가 있었다. 봄에는 꽃이 예쁘게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다는 말에 마침 그쪽으로 출장을 갈 일도 있고 해서 신문을 오려두었다. 10월 말 출장길에 아내와 함께 그 길을 찾아갔다. 한 두해 전에 산불이 크게 났었는지 산에는 까맣게 타버린 나무들 사이로 이제 새로 올라오는 어린 나무들 뿐이었고 단풍 든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쿠야마카 (CUYAMACA) 호수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무 몇 그루를 볼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아 11월 초 단풍을 보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밸리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세인트 앤드류 애비 (St Andrew..

댓글 칼럼 모음 2020. 11. 7.

16 2020년 10월

16

칼럼 모음 나의 살던 고향은

이제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 와서 보낸 시간이 10년이나 더 길다. 누군가는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아직도 미국이 고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게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고향은 없다. 아버지는 실향민이었고, 외가는 손바닥만 한 집이라도 사대문 안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서울 중인이다. 남들은 명절이 다가오면 서울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 자리를 펴고 차표를 구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명절을 집에서 보냈다. 사전에 보면 고향이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또는, 자기 조상이 오래 누리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의 고향은 외가가 있던 관훈동이고, 아버지가 사업을 접고 양계를 시작했던 구파발이며, 미국 오기 전까지 갈빗집을 하며 살았던 벽제다. 외가..

댓글 칼럼 모음 2020. 10. 16.

27 2020년 09월

27

칼럼 모음 변해가는 명절 가족모임

아내의 명절증후군은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며 시작된다. 추수감사절로 시작되는 가족모임은 성탄절, 그리고 설날까지 이어진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이보다 앞선 추석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추석 다음날인 어머니 생신으로 시작해서, 곧 아버지 생신이고, 바로 추수감사절과 연말이 시작된다. 결혼 초에는 부모님의 생신을 집에서 차려 드리기도 했었는데, 그 후로 어머니날, 아버지 날, 생신 등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집만 해도 아이들이 다 모이면 넷이고, 짝들도 있고, 올망졸망 손자들도 있다. 몇이 빠져도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20여 명도 모인다. 가족 모임은 주로 나와 동생의 집에서 했는데, 한 달 남짓한 기간에 3번을 모이니, 한 집에서는 2번 모이게 된다. 아내는 대가족에서 자랐기 때문에 손이 크..

댓글 칼럼 모음 2020.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