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천

거친 호흡 몰아쉬며 바람 저편 굽이치는 산맥 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

백두대간 라이딩 9회차 1편 불란치재 불한령 버리미기재 늘재 밤치재 새목이재 말티재

댓글 18

백두대간1400km

2015. 9. 14.

백두대간 라이딩 9회차 1편 [ 2015년 9월12~13일 한국의산천 : http://blog.daum.net/koreasan ]

 

달리면서 행복했고 또 올라야할 고개를 생각하니 설레임과 두려움이 앞선다

 

오늘 라이딩 거리

문경공용시외버스 터미널 ~ 불란치재(불한령) ~ 버리미기재 ~ 늘재 ~ 밤치재 ~ 새목이재(속리터널) ~ 말티재~ 갈목재 ~ 비재 ~ 화령재 ~ 신의터재 ~ 지기재 ~ 개머리재 ~ 큰재 ~ 작점고개 ~ 추풍령 (186km :거리 누계 1,026km)

 

 

앞으로 올라야할 백두대간 고개

43.괘방령(300m) ~44.우두령(720m) ~45.부항령(가목재,660m) ~46.덕산재(640m) ~ 47.소사고개(670m) ~ 48.빼재(신풍령,수령/930m) ~49.육십령(734m) ~50.무룡고개(926m) ~51.복성이재(550m) ~52.여원재(470m) ~53.정령치(1,172m) ~54.성삼재(1,090m) (이후로는 국립공원 탐방로이기에 자전거는 출입금지 구역임)

 

9회차 2편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243

 

비가 내리는 토요일 새벽 4시에 출발하여 1박 2일의 라이딩을 마치고 일요일 오후 4시에 추풍령에서 귀가 출발을 하였으나 성묘객이 많아서 그런지 고속도로 정체. 집에 밤 9시30분 도착.

 

▲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백두대간을 달리며 작품성은 없을지라도 나만의 기록을 남긴다. 그래 열정이 남아 있을때가 좋으거야 ~ 히~  

 

▲ 지난 번 라이딩 종료지인 문경을 향하여 고고씽 ⓒ 2015 한국의산천

 

 

   백두대간은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남한강과 낙동강,금강과 낙동강을 나누고 있고, 또 영남과 충청,영남과 호남을 구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고대 축성된산성들은 백두대간 동·서사면에 가장 많이 존재하고 있다.

 

  백두대간 옛 고개중 추풍령, 조령( 문경새재), 계립령(하늘재),죽령 등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계립령(156년)과 죽령(158년)은 문헌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첫,두번째 고개이고 추풍령과 조령은 외침이 있을 때마다 적의 주요 통행로가 되는 등 역사의 무대에 자주 등장했다.

 

  이들 백두대간 옛 고개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 상업 발달과 함께 상로(商路)가 개척되면서 고개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역사적 의미가 가득한 백두대간의 고개를 넘어보려 한다.

 

 

▲ 토요일 아침 일찍 비가 그치고 연풍을 지나서 이화령으로 오르면서 보이는 풍경

 

 

 

29568

 

언제나 변함없는 푸른 산과 같이  내맘에 남아있는 꿈, 구름에 살아있어
그리워 불러볼 수 없는 그대의 이름 같이 내맘에 변함없는 없는 사랑  영원히 살아있네
왜 난 사는 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난 걷는건지  어디가 나의 쉴 곳인지

그리워 저 산을 바라봐 흘러가는 구름이 내맘에 남아있는 모습 눈물로 가려지고
올라도 오를수 없는 저 푸른 산과 하늘이 무어라 내게 말하는 지 나는 들리지 않네..
왜 난, 사는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난, 걷는건지  어디가 나의 쉴 곳인지

그리워 저 산을 바라봐  흘러가는 구름이  내맘에 남아있는 모습  눈물로 가려지고
올라도 오를수 없는, 저 푸른 산과 하늘이 무어라 내게 말하는 지. 나는 들리지 않네
무어라 내게 말하는 지. 내겐 들리지 않네

 

 

 

▲ 집에서 4시 출발. 문경도착 후 터미널 앞에서 식사 후 8시 30분 라이딩 출발

 

 

 

▲ 문경시청 방면으로 가다가 삼거리에서 석탄박물관 가은 방면으로 우회전 ⓒ 2015 한국의산천

오늘 코스는 도로의 갈랫길이 많기에 길찾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우리지 않으면 고개를 빠트리거나 시간외 알바를 해야한다  

 

 

▲ 가을은 이미 내 가슴속에 들어와 있네

 

▲ 가은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는 온통 사과밭에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주렁 주렁

 

▲ 평도로에서 시속 33km로 아침 출발이 매우 상쾌하다  

 

▲ 가은으로 가는 작은 동네 업힐에서 쎌카도하고 ㅎ 

 

▲ 삼거리 업힐에서 가은으로 우회전

 

▲ 멀리보이는 가은읍

 

 

 

 

 

▲ 이곳에는 대추과수원 또한 대규모로 크게 농사를 짓고 있다

 

▲ 멀리 보이는 잘생긴 희양산과 그 아래에는 일년에 단 한번 부처님 오신날에만 산문을 개방하는 봉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 멀리 대야산이 보인다

 

▲ 의병 이강년 선생의 기념관

 

 

 

▲ 이강년 선생 생가

 

▲ 불란치재는 대야산 입구 주차장에서 들어간다

 

  외래어 같은 불란치재의 옛 이름은 불한령(弗寒嶺)이다. 즉 '춥지 않은 고개'라는 뜻이다. 대야산과 장성봉에 가로막히고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의 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어 한겨울 찬바람에도 포근하다고 하여 불한령으로 불린 것으로 생각된다.

 

  버리미기재를 넘는 922번 2차선 포장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문경의 가은읍 완장리와 충북 괴산의 청천면 관평리를 이어주던 옛길로 통행량이 제법 많았던 고개이지만 교통이 발달하면서 불란치재는 버리미기재에게 922번 포장도로를 넘겨주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옛길이 되었다. 옛길의 흔적만 있을 뿐 지나는 이 거의 없는 옛길이 되었다. 

 

▲ 버리미기재가 생기기 전에 넘나들던 불한령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길이기에 폐도가되어 산너머러 건너가는 길은 자전거로는 거의 불가능하기에 되돌아서서 버리미기재를 향하여 고고씽.

 

 불한령 옛길이다. 불한령은 우마차가 다닐 정도의 도로폭이면 교통량이 상당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까닭에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도 불한령을 다소 비중있게 다뤘다.       

여지도서(1572·영조) 문경현 산천조는 불한령을 '대야산 허리에 위치하는데 괴산 경계로 통한다(弗寒嶺 在大耶山腰 通槐山界)'라고 적었다.      

대동지지(1861·철종)도 대야산이 중심이 된 일대의 지리적 환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희양산 남쪽 갈래로 주봉을 비로라 하고 선유동의 주산이 된다. 서쪽으로 청주 화양동 삼십리 거리에 있다.'(曦陽山南支 主峰曰毘盧 爲仙遊洞主山 西巨淸州華陽洞三十里) (참고 충북일보)

 

▲ 한 겨울에도 춥지 않게 넘어가는 고개하여 불한령이라고 불리운다

 

불란치재(불한령 → 불한치재 → 불란치재)

 

지금 불리우는 불란치재라는 지명은 상당히 외국스럽게 특히 불란서(france)스럽게 들리지만 불한령의 구개음화 작용에 의해 불란치재로 변화되었음을 알수있다. 아무리 문헌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기에 물론 당연히 내 생각이다.     

 

 

 백두대간 충북의 옛고개 - 불한령(괴산 청천-문경 가은) 행정적으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를 동서 방향으로 연결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남쪽 대야산(930m)과 장성산(916m)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산세가 높은 만큼 불한령(弗寒嶺)의 해발고도는 비교적 높다. 510m이다. 고개 양사면도 비교적 가파른 편이고

 

백두대간인 만큼 마루금 자체가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쪽 사면의 경우, 이제부터는 금강수계가 아닌 남한강수계가 등장한다. 서쪽의 물은 괴산 선유동-화양동-달천을 거쳐 남한강으로 유입된다. 반면 동쪽의 물은 문경 선유동-영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대동여지도는 백두대간 대야산 위에 '불한령'(不寒嶺)을 표시해 놓았다. 참고로 한자 '不'과 '弗' 자는 같은 뜻으로 '不'이 약자가 된다. 그러나 두 지역을 연결하는 선은 그어져 있지 않다.      

이는 조선시대 불한령이 공로(公露)가 아닌 상로(商路)로 주로 이용됐음을 의미하고 있다.       

 

  대동지지(1861·철종)는 괴산현의 토산품으로 옻(漆), 지치(紫草), 꿀(蜂蜜), 누치(訥魚), 쏘가리(錦鱗魚), 대추(棗) 등을 적었다. 지치는 현재 자초 또는 자근으로 불리는 것으로, 한약재로 주로 사용된다.       

문경현의 토산품으로는 감(枾), 잣(海松子, 송이, 석이(버섯 종류), 닥(楮), 꿀(蜂蜜), 웅담(熊膽), 은어(銀口魚) 등을 적었다.      

따라서 보부상들에 의해 양쪽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이 주로 거래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시일은 괴산은 3·8일, 문경 2·7일로 역시 각각 달랐다.       

  
   장시일이 다른 것은 보부상들이 불한령을 넘어 양쪽을 오갔음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

25년전 불한령 북쪽을 우회하는 왕복 2차선 922번 지방도가 개설됐다. 그 영로 정상이 버리미기재이다.  

 

 

▲ 오늘의 첫번째 업힐 버리미기재

약 3km의 업힐구간으로 시속 9..8...7...6km의 정도로 꾸준히 이어지며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힘들 즈음에 정상에 도착하는 착한 고개다.  

이제 한참을 달려서 늘재로 간다.

 

 

▲ 약 25년전에 포장되며 차도가 생긴 버리미기재

이 고개를 넘나들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이 고개 이름은 가족을 - 벌어 먹이다- 라는 뜻의 버리미기재로 불린다. 힘들고

먼 옛날 이 고개를 넘나들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던 가장의 힘든 삶이 엿보이는 고개이다

8년만에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이성부시인의 시 한수가 떠오른다

 

버리미기재

 

                       - 이 성 부


고갯마루에 내려서니 어느덧 눈발은

빗줄기가 되었다 다 젖어서 쓸쓸한 마음들이

굴다리 밑으로 내려가

각자의 쓸쓸함을 버너 불에 말린다

산도 어쩐지 서먹하고 산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낯설다 그런데 이 낯선 것들이

왜 자꾸 말문을 트게 만들까 영재는 남의 술병을 들어

제 것인 양 나에게 권하고

뜨신 국물에 밥까지 얻어 말아 먹는다

모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아름답다

굶주림과 추위가 사람 사는 마을을 떠나

이 고개에까지 올라와서

어리시절 아버지 말씀 죽비소리로 내린다

느그덜 벌어 멕이느라 등골이 휜당께

그렇게 돌아 나가시는 아버지의 처진 어깨가

지금 나에게 이르러 내 고단함이 되었구나

손을 들어도 자동차들은 씽씽 지나쳐 가버리고

나는 고개 위를 어슬렁거리면서

먹이 물어다 주는 아비 새처럼 바빠짐이여 

 

 

 

 

 

 

 

 

 

 

 

 

 

 

 

▲ 이곳 저곳 둘러보며 업힐하는데 갑자기 커다란 백두대간 표석이 ..늘재는 거저먹었다

 

▲ 고개 도로 한가운데는 이곳이 분수령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앞으로 자주보게되는 표지판이다.

 

▲ 늘재에서 미니 삼각대를 놓고 인증사진 ㅎ

이곳에서는 늘재를 눌재라고도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늘티라고 해야 쉽게 알아듣는다. 고개 아래에 윗늘티와 아랫늘티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 셀프타이머 10초를 놓고 저기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백두대간 표석을 사랑하니깐 ㅎ

 

 

 

▲ 오래전 백두대간 산행길에 어두운 밤이어서 그랬는지 저기 성황당은 못보고 지나갔다

 

 

▲ 대간을 지나는 사람들의 흔적이 이곳에도 가득하다

 

 

▲ 늘재에서 신나게 딴힐을 하다가 마을이 있는 삼거리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밤치재로 올라서는 길이 나온다 대략 4km정도 거리에 있다  

 

▲ 밤치재 오르는 길은 초장부터 예사롭지 않더만 9...8...7...6....5km...마지막 구간에는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있다 

 

▲ 밤치재에서 한장 ㅎ

 

▲ 밤치재 지킴이 센타

 

 

▲ 어렵게 올라온길이지만 딴힐 또한 길고도 시원하게 내려간다. 추워서 재킷을 꺼내입고 다시 내려갔다

 

▲ 백악산 연봉인가?

 

 

▲ 이동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1km 정도 가면 식당있음

 

 

▲ 이곳 식당에서 된장찌게 한그릇을 먹고 ...다시 고고씽

 

▲ 속리산 연봉이 불꽃처럼 하늘로 치솟고 있다

 

 

 

 

▲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되는 무명업힐

 

 

 

 

▲ 백두대간 라이딩시 주의할점은 경유지 표지판만 보고 직진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백두대간 고개를 넘어서 경유하는곳이기에 직진하다보면 고개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기에 우선적으로 고개의 위치를 파악하고 미리 접어들어야한다는 것이다

 

▲ 평지길을 30km 로 속도로 순항하고 있다

오늘 이코스는 큰 고개도 없는 최고의 힐링코스가 아닌가 싶다. 구경하며 달려보자  

 

▲ 이표지에서 좌회전

 

▲ 옆에 폐업한 주유소 앞길 삼거리에서 좌회전  

 

▲ 달천 다리를 건너서 좌회전 (저는 우회전하여 한참 가다가 다시 빽 ㅎ)

 

 

▲ 시인 백석 선생이 생각나는 동네다. 그래 백석 시인의 詩 한수 때리고 가자

 

늙은 갈대의 독백

                              - 백   석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달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 앉는 이 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내 잎을 따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자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ㅡ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 잣고개 업힐도 하고 잠시 쉬었다가 쎌카도 찍고 ㅎ

 

 

 

 

▲ 길가에 밤이 영글어 간다.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는구나

 

▲ 여기서 법주사 방면으로 바로 가면 안되고 삼거리에서 보은, 속리산 터널을 지나서 말티재를 넘어서 속리산으로 가야함 함 함 ....

 

 

▲ 새목이재 속리터널 업힐 터널 통과

 

▲ 새목이재 속리터널을 빠져나오자 바로 나오는 동학터널.

 

 

▲ 신나게 다운힐 하다가 동학혁명 기념공원에서

 

 

▲ 여기서 상주방향으로 좌회전

 

 

▲ 좌회전 후 직진 .. 또 삼거리가 나와도 말티재를 향하여 (좌)직진

 

 

 

 

▲ 장재슈퍼에서 캔맥주에 양파링 깔짝

 

 

▲ 역시 열두굽이의 심상치 않은 초입

중학교때 이곳 속리산에 수학여행왔을 때 우리가 탄 버스가 퍼져서 이곳을 걸어서 올라갔던 기억이 있는 곳을 이제는 자전거로 올라야하는 운명

 

 

▲ 뒤돌아보며 경치를 감상하며 올라오니 그리 어렵지 않은 재미있는 코스

 

 

 

 

 

▲ 말티재 정상 쉼터에서

난 요즘 정상 표석이 왜이케 좋은지 ㅋㅋㅋㅋ

 

▲ 사랑한다 말티재 표석아  

 

 

 

▲ 폭풍과 눈의 무게에 가지가 떨어져 나갔지만 그래도 기품을 잃지 않는 정이품 소나무. 

 

 

 

 

 

 

 

▲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촬영을 즐기는 지원팀은 이곳에 먼저와서 야영 준비를 끝냈다는 반가운 전화가...

 

 

▲ 속리산 오리숲

 

 

 

 

 

▲ 오늘 라이딩 거리 100km. 경치를 돌아보며 즐겁게 달린 힐링코스였다  

계속해서 추풍령까지 9회차 2편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