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천

거친 호흡 몰아쉬며 바람 저편 굽이치는 산맥 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

백두대간 라이딩 단독종주 마지막편 장계 무룡고개 복성이재 여원재 정령치 성삼재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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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1400km

2015. 10. 11.

 

전편에 이어   [한국의산천 :  http://blog.daum.net/koreasan/]

백두대간 라이딩 1400km 단독종주 마지막 3편 : 장계~ 무룡고개 ~ 복성이재 ~ 여원재 ~ 정령치 ~ 성삼재 ~ 구례 ~ 인천 귀가

 

백두대간 1,400km 14일간의 기록 마지막회

강원도 고성군 진부령에서 강 한번 건너지 않고 산마루길 54개의 고개와 령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 나는 그것을 백/ 두/ 대/ 간 /이라 쓰고 '열정'이라고 읽는다.

 

▲ 성삼재1,090m  전망대에서 ⓒ 2015 한국의산천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의 로망이자 "위대한 도전"이라 일컷는 '백두대간 라이딩 1400km'를 꿈꿔온지 얼마만에 이룬 꿈인가?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다. 

 

단독종주

마침내 굽이치는 백두대간 고개 넘어

1,400km를 달려 그 꿈을 이루고 성삼재에 서다

 

성삼재에 올라 인증샷을 한후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이제 성삼재에 올랐어"

 

스마트폰으로 들려오는 "수고 많으셨고 축하해요"라는 아내의 말에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것이 울컥 솟구치며 순간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주위의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볼까봐 얼른 전망대 난간가로 다가가서

멀리 보이는 코발트빛 가을 하늘을 보면서 겨우 '으...응, 고마워'라는 한마디를 응답하고

바람처럼 성삼재를 내려와 구례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간 열심히 응원해준 집사람과 딸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힘을 실어준 동동님과 운산의 봄님, 친구들,

카페회원님들과 블로거님들, 묵묵히 지켜봐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매주 떠나기전에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신 부천 올바이크 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전편 정령치 라이딩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252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또 하나의 화양연화를 느끼며. 성삼재(1,090m)를 배경으로

내가 미니 삼각대로 셀카를 찍고 있으니 어느분께서 사진을 찍어주신다기에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고마운 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리산 성삼재, 백두대간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임을 상기하며 . . .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곧 물을 나눈다.

 

14일간 자전거로 넘어온 1400km 백두대간상의 주요 고개

 

1일차  / 1. 진부령(529m) ~ 2.미시령(767m) ~ 목우재 ~ 3. 한계령(1,004m) ~ 현리 ~ 곰배령 민박

2일차  / 4.조침령(770m) ~5.구룡령(1,013m) ~6.운두령(1,089m) ~ 이승복 생가 야영장

3일차  / 속사재 ~ 7. 진고개(960m) ~ 소금강 ~ 연곡 ~ 강릉 ~ 8.대관령(832m) ~ 횡계 모텔 

4일차  / 9.안반데기(피덕령 :1,000m) ~10.닭목령(700m) ~11.삽당령(680m) ~ 버들고개 ~ 12.백복령(780m) ~ 동해터미널 (귀가 )

5일차  / 동해터미널~13.댓재(810m)~14.건의령(한의령/858m)~통리재~송이재~ 15.피재(삼수령/920m) ~노나무재~16.두문동재(싸리재/1,268m)~두문동재 야영장

6일차  / 17.만항재(1,330m)~18. 함백산(1573m)~19.화방재(936m)~소야재~20.도래기재(770m)~21.주실령(780m)~22.마구령(803m)~베틀재~보발재~고수재~단양(귀가)

7일차  / 23.죽령(689m) ~ 고항재 ~ 24.저수령(850m) ~ (폭우가 내려서 벌재 아래서 민박 )

8일차  / 25.벌재(625m) ~여우목 고개~26.하늘재(525m) ~27.조령 (643m,문경새재) ~28.소조령(370m) ~ 29.이화령(529m) ~ 문경 터미널 (귀가)

9일차  / 문경 ~ 30. 불한령(불란치재) ~ 31.버리미기재(480m) ~32.늘재(389m) ~33.밤티재(480m) ~34.말티재(430m) ~ 속리산 입구 야영장

10일차 / 35.갈목재(390m)~36.비재(343m)~갈령~37.화령재(320m)~38.신의터재(280m)~39.지기재(260m)~40.개머리재(295m)~41.큰재(320m)~42.작점고개(340m)~ 43.추풍령(221m) (귀가)

11일차/ 44.괘방령(300m) ~45.우두령(720m)~46.부항령(삼도봉터널,660m) ~ 민박

12일차/ 47.덕산재(640m) ~ 칡목재 ~ 48.소사고개(670m) ~ 오두재 ~ 49.빼재(신풍령,수령/930m)~ 남령~50.육십령(734m) ~ 장계터미널(귀가)

13일차/ 장계 ~ 51.무룡고개(926m) ~52.복성이재(550m) ~ 운봉 둥지민박

14일차/ 53.여원재(470m) ~54.정령치(1,172m) ~55.성삼재(1,090m) (이후로는 국립공원 탐방로이기에 자전거는 출입금지 구역임) ~구례공용버스터미널 귀가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2009년 3월 5일자로 개정된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백두대간이라 함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산경표에 따르면 백두산부터 원산, 함경도 단천의 황토령, 함흥의 황초령, 설한령, 평안도 연원의 낭림산, 함경도 안변의 분수령, 강원도 회양의 철령과 금강산, 강릉의 오대산, 삼척의 태백산, 충청도 보은의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7월 주말에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홍천강을 다녀왔다. 푸른 강물 그리고 산위로 흰구름이 여유롭게 피어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등받이 의자에 편히 누워 하늘을 보며 그간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봤다

바람 저편 굽이치는 능선 넘어로 흩어지는 구름처럼 내게 남은것은 한조각의 허무이었던가

이제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더 늦기전에

 

지금가지 않으면 못갈것 같아서... 밤을 세워 걸었던 백두대간길을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따라 백두대간상의 고개를 넘으려한다.

설레이는 가슴, 불면의 밤과 함께 7월 한달 내내 도상연구와 라이딩 구간거리 숙소 거리 체크 등등 준비를 했다.

 

 

길이 강물을 만나면 나루가 되고 바다를 만나면 포구가 되며, 산을 만나면 고개가 된다. 그 길을 따라 산을 넘어간다.

 

대간을 이루는 주요 산은 기점인 백두산(2,744m)으로부터 동남쪽으로 허항령(虛項嶺, 1,401m), 포태산(胞胎山, 2,289m), 최가령(崔哥嶺, 1,527m), 백사봉(白沙峰), 두류산(頭流山, 2,309m) 등 2,000m 정도의 높은 산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의 유역을 동·서로 분계하였으며 북동쪽으로 장백정간(長白正幹)을 갈래하였다.

 

  서남쪽으로 후치재〔厚致峙, 1,335m〕, 부전령(赴戰嶺, 1,445m), 황초령(黃草嶺)으로 이어져 압록강의 남쪽과 동해로 흘러드는 분수기를 이루며,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遮日峰, 1,743m), 철옹산(鐵瓮山, 1,085m), 두류산(頭流山, 1,324m)으로 이어져 대동강의 남쪽 정맥인 해서정맥(海西正脈)을 서남쪽으로 두었다.

 

  원산 서남쪽으로 이어진 대간은 마식령(馬息嶺, 788m), 백암산(白岩山, 1,110m), 추가령(楸哥嶺, 752m)으로 연결되어 임진강의 북쪽 유역의 경계를 이루었고 한강 북쪽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시점을 이루었다.

 

  동해안을 끼고 국토의 척추인 양 이어진 대간은 금강산(金剛山, 1,638m), 진부령(陳富嶺, 529m), 설악산(雪岳山, 1,708m), 오대산(五臺山, 1,563m), 대관령(大關嶺, 832m), 두타산(頭陀山, 1,353m), 태백산(太白山, 1,567m)으로 이어 흐르다가 남쪽으로 낙동강의 동쪽 분수 산줄기인 낙동정맥(洛東正脈)을 형성시켰다.

 

  대간의 본줄기는 내륙 깊숙이 소백산(小白山, 1, 421m), 죽령(竹嶺, 689m), 계립령(鷄立嶺), 이화령(梨花嶺, 548m), 속리산(俗離山, 1,508m)으로 뻗어내려 한강과 낙동강을 남북으로 분수하였다. 이로부터 추풍령(秋風嶺), 황학산(黃鶴山, 1,111m), 삼도봉(三道峰, 1,177m), 덕유산(德裕山, 1,614m), 육십령(六十嶺, 734m), 영취산(靈鷲山)까지 금강의 동쪽 분수산맥을 형성하며 섬진강의 동쪽 분수령인 지리산(智異山, 1, 915m)에서 백두대간은 끝난다.

 

▲ 백두대간 관련 지도와 자료

나에게는 GPS가민도 없고 아나로그에 익숙한 세대이기에 종이지도를 보는것이 내게는 더 편한일이다. 

오래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기억을 되살리며 몇달동안 집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시간나는대로 백두대간에 관한 지도를 보며 백두대간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를 찾고 공부하고 머리속에 지명을 외었다.  

 

 

백두대간이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에서 한반도의 산줄기를 대간과 정간, 정맥으로 나타낸 체계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산경표는 1913년 활자로 인쇄된 책자가 많이 남아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나라 땅의 산줄기〔山經〕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지었다. 크게 나누어 동·서 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다시 갈라져 하나하나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산맥'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서 기인된 것으로, 그 전까지는 '산맥'이란 개념이 없었다.

 

  우리 선조들의 국토 이해 방식은 산맥이 아니라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이었다. 이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 '산자분수령'이란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곧 물을 나눈다'는 의미다.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일찍이 전통적 지리인식의 바탕에 자리잡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중환의 택리지등이 모두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조선 후기 여암 신경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山經表)를 통해 개념을 완성시켰다.

 

산경표(山經表)에서는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는데, 이중에서 근간이자 기둥이 되는 가장 커다란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신경준은 백두대간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이어진 대간산맥으로 단절이 없는 대분수령으로 한반도 남북을 달리는 대산맥축으로 정리했다.

 

   백두대간은 장백정간(長白正幹)과 함께 서쪽으로 해안선까지 많은 ‘골’과 ‘들’을 이루며 뻗어 내려간 13개의 정맥, 즉 청북정맥(淸北正脈)·청남정맥(淸南正脈)·해서정맥(海西正脈)·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한북정맥(漢北正脈)·한남정맥(漢南正脈)·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금북정맥(錦北正脈)·금남정맥(錦南正脈)·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호남정맥(湖南正脈)·낙동정맥(洛東正脈)·낙남정맥(洛南正脈)과 연결되고 있다.

 

  이들 산줄기의 이름은 강줄기의 이름에서 얻어진 것이다. 산과 물이 하나로 자연을 이루고, 언어·습관·풍속 등과 의식주의 다양함이 산줄기와 물줄기의 가름으로 세분화되어 생활 철학을 탄생하게 하였다.

 

  산줄기마다 지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되어 부족국가의 영역을 이루었고 삼국의 국경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루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자연스런 각 지방의 분계선이 되었다. 이 땅의 지세(地勢)를 파악하고 지리를 밝히는 데 있어서 백두대간은 그 근본이 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오늘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코스인 지리산 정령치를 거쳐서 성삼재에서 종료하는 날이다.

몇달전 계획을 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라이딩을 해야하는 시간과 먹고 자고 왕복 교통비 그리고 제일 중요한 체력이 뒷받침되어 과연 해낼수있을까하는 염려로 꿈까지 꾸며 밤잠을 설치곤했다.

8월 8일 휴가의 시작과 더불어 그 뜨거운 날에 진부령에서부터 출발하였다.

 

  헤밍웨이는 그이 작품 '노인과 바다' 에 대해 "인생을 통틀어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 말했다. 그 작품은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소설속의 주인공 어부 산티아고는 85일째되던날 큰 고기를 잡지만 항구로 돌아오던중 상어떼에게 다 뜯기고 앙상하게 뼈만남은 고기를 끌고 들어와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소설에서 노인은 몰려드는 상어떼를 물리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그 노인의 진정한 도전 정신과 불굴의 투지를 느끼게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에서 노인을 이렇게 묘사한다. '머리가 허옇고 얼굴은 수척하지만 두 눈만큼은 바다 빛깔이고 쾌활함과 불굴의 의지로 불탄다.'고...

 그래 열심히 달리자.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 당신은 자유로워질 용기를 가졌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숨죽이고 집안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유유히 그러나 힘차게 흐르는 백두대간을 달리며 보았다.

삶과 정신 의식주를 모두 산에 묶어두고 손비닥만한 조그만 땅뙈기에 삶을 의지하고 맑은 물소리 들으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래서 산은 우리의 쉼터이자 영원한 안식처인 것이다

 

▲ 마치 용트림을 하듯 경사율이 높아지는 정령치 마지막 부분 헤어핀 구간  

육모정 출발지에서 구간 상승고도 1,000m. 정녕 명성만큼이나 큰 엘리베이션을 가진 정령치의 마지막 헤어핀 구간에 접어들며   

 

▲ 정령치의 마지막 구간은 백두대간의 종료를 아쉬워하듯 빡쎈 구간으로 온몸의 열정을 불태우며 기쁜 마음으로 올랐다  

매 주말에 시간을 내어서 1박 2일로 달려야하기에 라이딩 In ~ Out 지점까지 가고, 귀가하는 교통시간과 수면등을 고려하면 양 이틀간 달려야하는 거리가 그리 길지는 않다. 집에서 라이딩 In ~ Out 지점이 멀어질수록 더욱 그러하다

 

▲ 몇해만에 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마침내 정령치에 오르다

 

참 이상하지

거친호흡 몰아쉬며 힘겹게 페달을 밟고 올라 고갯마루에 두다리로 단단히 섰을 때 내가 존재함을 느낀다. 가을바람이 참 시원하다 

 

 

▲ 굽이치는 저 산맥 너머로 중봉과 천왕봉이 아련하게 하늘금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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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신  현  대

 

걸어 보아도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고  항상 도로 그길
끝이 시작인지 시작이 끝인지 알 수 없는 그 길  

 

걸어 보아도 새로운 산은 보이지 않고  항상 도로 그 산
끝이 시작인지 시작이 끝인지  알 수 없는 그 산 알 수 없는 그 산 

 

▲ 하늘금을 그리며 힘차게 흐르는 산줄기들이 웅혼한 기상으로 다가선다  

이곳에서 마지막 구간인 성삼재까지는 11km 의 거리만 남았을 뿐이다. 또 달리자

 

▲ 가을의 전령사 억새와 그 뒤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반야봉

 

가을 억새

                              - 정 일 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성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 이제 자전거를 타고 마지막으로 오를 수있는 고개 성삼재를 향하여 갑니다

성삼재는 정령치로 부터 11km 떨어져 있으며 달궁삼거리까지 약 6km 정도를 내려간후 다시 올라야하는 고개입니다.

 

 

계속해서 다운힐을 하여 이제 노고단이 있는 성삼재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 달궁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 성삼재로 오르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었다. 서서히 물드는 단풍이 아름답다

 

 

▲ 조금 전에 지난 도계 삼거리에서 성삼재까지는 약 6km

경사율은 세지 않으며 앞으로 진행할 수록 경사가 낮아지는 매우 기분 좋은 길이다. 더구나 가을이 무르익으며 주변의 단풍이 들면서 그 아름다운 풍경은 보너스이다

 

▲ 성삼재를 넘어오는 젊은 청춘의 아름다운 라이더들

 

 

 

▲ 해발 900m 지점 통과

 

▲ 드디어 성삼재 고개가 보인다

성삼재는 마한시대에 성씨가 각기다른 세명의 장수가 이곳을 지켰기에 성삼재라고 부른다는.... 

 

▲ 성삼재 입구는 차량과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성삼재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고 올라가는 길 양쪽에 차를 주차시켜놓으니 남은 차선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듯한 길에 위에서 내려오고 아래에서 올라가다보니 오도가도 못하고 모든 도로의 차량통행이 정지가 되고 그대로 주차장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들고 빠져나갔다

 

 

▲ 아! 이제 이곳이 백두대간의 마침표를 찍는 곳이라 생각하니 지나온 14일간의 라이딩 그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 성삼재의 넓은 주차장은 연휴를 맞아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지 오래다

 

 

 

 

 

지리산은 왜 지리산인가

백두산 기운이 백두대간을 타고 흘러와 마지막에 영롱하게 맺힌 지리산 (1,915m 한번 구경 한번 오소 1/9/1/5 m)은 영호남 땅 800리에 뻗쳐 민중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삶의 터전이다.

 

  경남의 함양, 하동,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이렇게 3개도 5개군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특히 동서간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권으로 만들기도 했다.

백제 문화권과 신라 문화권의 구분이 지리산 굵은 줄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리산은 글자 그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異人)이 많은 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리산은 그 너른 품만큼이나 이름도 많다.

지리산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쌍계사 진감성사대공탑비(국보47호)에 신라 최치원이 쓴 비문에 나오는 '智異山 (지이산)이고, 잭두산의 맥이 흘러왔다고 해서 '두류산' ,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 혹은 현재의 음과 같은 '地理山' 등으로 불렸다

 

  또한 이성계가 기도 드릴때 지리산에서만 소지가 타오르지 않았다하여 '불복산' 현대에 들어서는 빨지산의 소굴이었다고해서 적구산으로도 불렸다. 허나 후에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智異山' 으로 굳어졌고 이 때문에 '지리산'으로 읽으면서도 한자로는 智異山(지이산)으로 쓴다.   -조선일보 백두대간중에서 - 

 

 

 

 

▲ 카페 베네에서 거금을 들여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했다    

 

 

▲ 이제 이곳 성삼재도 작별을 해야한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 산수유의 산지 평온하게 보이는 산동마을

 

 

 

▲ 다운힐을 하며 아쉬움에 다시 돌아보면 성삼재에는 지금도 많은 차량이 오르고 있다

 

 

 

▲ 고찰 천은사 입구

 

 

▲ 천은사 입구 일주문에서 구례까지 8km 남았다 백두대간 1400km의 여정이 이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 성삼재에서 내려와서 천은삼거리에서 양쪽에서 음주단속을 한다 이때가 오후 2시경

 

 

▲ 보는이의 마음까지도 시원한 도로

 

▲ 황금색의 가을 들녁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 구례읍에 입성

 

▲ 구례 터미널은 왼쪽 하동방향으로 감

 

 

▲ 구례는 역시 예술의 혼이 살아있는 곳임을 느낀다

 

▲ 한옥 스타일로 멋지게 신축된 구례 공용터미널

 

▲ 버스 터미널에 3시에 도착하니 3시발 인천행 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3시행 버스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이제는 잠시 느긋함을 즐기고 싶어 이곳에서 식사와 함께 한잔술로 자축을 하고 5시 버스를 타고 귀가 예정

 

▲ 종주를 끝내고 구례 터미널에서   

  

▲ 구례시장에 있는 유명한 순대국집에서 이름도 예쁜 잎새주와 함께  

 

  이제 14일간의 백두대간 종주 라이딩을 마치고 끝내려함에 내 마음은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말라버린 코스모스의 대궁마냥 힘이없고 허전함과 공허가 몰려든다.

터미널 가까운 순대국밥집에서 시원한 소·맥으로 또 다시 허기지는 가슴을 채우고 너른품을 가진 아름다운 지리산과 구례를 떠나려 한다

 

한편의 詩가 떠오른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가을 억새中에서

 

▲ 버스시간이 두시간 남았기에 구례읍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달린 카메라를 닦아주었다

 

▲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또 하나의 화양연화를 느끼며 이제 백두대간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점인 지리산 성삼재와 구례를 떠나려 한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백두대간과 지리산 그리고 구례 오래도록 내 가슴에 살아있을것이다  

 

▲ 인천터미널 까지 빠르고 저렴한 우등고속버스가 운행중이다. 아마도 자주 이용하게 될듯

 

▲ 인천터미널에 먼저 들려서 부천 소풍터미널로 이동한다.

 

 

▲ 집으로 귀가하는 차표한장

1박2일의 라이딩이라도 전날 아침에 일어나 출발지에 도착하면 대략 11시경 그리고 그 다음날 라이딩을 마치고 귀경차량에 시간을 맟추려면 1박2일간의 라이딩 시간을 모두 합쳐도 15~16시간정도이다

 

  양 이틀간에 약 200km를 달리려면 열심히 달려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 서서히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노고단과 성삼재

빈집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그렇게 바람같은 자유로움으로 달렸다.

폭우와 천둥번개속에서 달리던일, 뜨거운 태양아래 힘들었던 나날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아름답게 각인되는 시간이다  

 

▲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잘록한 부분의 성삼재와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노고단

마치 차를 태워 보내는 등을 보이는 연인처럼 아쉽고 다시 달려가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돌아보니 지나온 산길은 멀고 아련하기만 한데... 그래 행복했던 시간을 가슴에 담자   

 

▲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풍경 내가 오르고 지나온 성삼재에서 보았던 노고단이 서서히 뒤로 사라진다

 

▲ 저 멀리 힘차게 굽이치는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고개도 아마 내가 넘었을거야 ~  다시금 그 시간들이 아쉬움으로 용해되어 가슴에 녹아든다

 

▲ 지리산 둘레길

터미널에 3시에 도착하니 버스가 막 떠나서 구례 서점에서 책을 한권 사서 읽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인가 버스가 흔들려서 그런가 책을 보니 눈이 조금 아프기에 책을 덮고 잠시 잠을 청했다  

 

 

▲ 영상기록에 충실한 카메라   

내가 달리는 동안 내 목에 같이 매달려서 달리는 중에도 촬영을 가능케했던 나의 카메라

이번에는 28~280mm에 해당하는 렌즈를 달아주었더니 광각과 망원을 편하게 사용할 수있었다.  

 

▲ 아 이제는 아련하고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저 능선... 다시금 달려가고픈 마음이 일어난다

 

▲ 해는 지고 잠시 매직아워 타임에 길고 긴 능선이 나와 함께 달린다. 그래 우리 같이 가자꾸나

 

진부령에서 지리산 성삼재까지 단독종주 라이딩 그것은 아직도 내가 열정을 가지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성삼재는 백두대간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임을 상기하며...

 

▲ 저녁 9시 부평 시장역 도착 

인천터미널에서 전철을 타고 부평 시장역 하차해서 마중 나온 식구들과 식사를 하다

 

함께 말없이 묵묵히 무사 무탈하게 잘 달려준 나의 애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자전거 트러블도 없었고 펑크한번 없었다. 자빠링도 없었고 날씨도 거의 모든것이 순조로웠다  

 

힘들었던 업힐들이 시간이 갈수록 친근해지고 점점 쉬워지는것을 느낄때 쯤 끝이 났다

염려를 해주시고 응원을 아끼지 않은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제 내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내 자신이 뿌듯해진다.

 

여행은 환상이다

환상의 끝은 없기에 또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이제 어디로 갈까? 내 자신을 위한 더 멋진 곳으로의 여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