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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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28 심도기행 고려궁지 외규장각 진송루 망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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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바람

2019. 5. 18.

심도기행 1편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881


위의 1편과 이어집니다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스물 여덟번째이야기 2

5월 18일 하늘색 파란 토요일

심도기행 강화산성 사대문 둘러보기


김포 대명항 ~ 초지대교 ~ 광성보 ~ 오두돈대 ~화도돈대 ~ 용진진 ~ 가리포 ~ 강화풍물시장 ~강화산성 남문 ~ 강화산성 서문 ~ 조양방직 카페 ~ 연무정 ~ 강화향교 ~ 선원비각 ~ 고려궁지(외규장각) ~ 강화산성 북문 ~ 용흥궁 ~ 강화산성 동문 ~ 편의점 휴식 ~ 초지진 ~ 대명리 원점회기 ( 샤방 샤방 때론 빡세게 왕복 53km)




강화산성

강화내성 사대문의 이름을 살펴보면 ​ : 동문 망한루 ​(望漢樓), 서문 첨화루(瞻華樓). 남문 안파루(晏波樓) , 북문 진송루(鎭松樓)와

2개소의 수문, 2개소의 성문장청이 있었다.


동문은 '한양을 바라본다'라는 뜻의 망한루 ​(望漢樓)

서문은 '서문으로 아름다움을 본다'는 첨화루(瞻華樓)

남문은 '물결(파도)이 늦게 온다는' 안파루(晏波樓)

북문은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해서 진송루(鎭松樓)인가? 유추해본다.






▲ 강화읍내로 들어서는 첫 관문인 강화 남문(안파루) 입니다


▲ 고려궁지 ~ 북문 진송루 가는 길


▲ 고려궁지 (외규장각 )


행궁 궁아제단(行宮 宮娥祭壇)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祗今寥落古行宮  지금은 무너져버린 옛적의 행궁은,
後苑叢林細雨中  후원의 숲속에서 가랑비에 젖어 있네.
唯有層壇山與屹  오직 기단만이 산과 함께 우뚝하여,
年年春色杜鵑紅  해마다 맞는 봄볕에 진달래의 붉음이여.


○ 행궁(行宮)은 부의 관아 북쪽 송악산에 있다. 정축년 난리에 빈궁(嬪宮)을 모시고 온 궁인(宮人)들이 오랑캐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서 행궁 후원의 나무에 목매 죽었다.
○ 영조는 특별히 유수에게 명하여 그 땅에 단을 설치하고 제사지내게 했으며 매해마다 그리 하도록 했다.



고려궁지(高麗宮址)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麗王何事昔移都  고려왕은 무슨 일로 도읍을 옮겨 왔나,
延慶康安摠虛無  연경궁과 강안전이 모두 다 허무하네.
埋地洪鍾誰敢發  땅에 묻힌 큰 종을 누가 감히 꺼내겠나,
滿天雷雨卽時驅  하늘 가득 우레 소리가 곧바로 몰아친다는데.


○ 고려 고종 19년 임진년(1232)에 최우(崔瑀)가 왕을 보좌하여 강화도로 천도하였다가 원종 11년 경오(1270)에 예전의 서울로 돌아갔다. 충렬왕은 왕 16년 경인년(1290)에 또 강화에 도읍하였고 18년 임진(1292)에 개경으로 돌아갔다. 지금 그 성터와 궁터가 모두 강화부의 동남쪽 정자산 바깥에 있다. 강안전(康安殿)은 연경궁의 안에 있었는데 세속에 전하기를 “그 터에서 옛날의 종이 묻혀 있다고 하는데 발굴하려 하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다.”라고 하였다. 궁터4, 5리 안에는 담장, 산재한 주춧돌, 붕괴된 기와, 깨진 옹기 등이 군데군데 밭 사이에 쌓여 있다.


○ 지금 장령(長嶺)의 성문현(城門峴)과 선원(仙源)의 대문현(大門峴)과 인정(仁政)의 서문동(西門洞) 그리고 대묘동(大廟洞)·도감동(都監洞)의 지명은 여전히 남아있다.


○ 가정(稼亭) 이곡(李穀)215)의 시는 다음과 같다.

“산해의 깊은곳에 작은 배가 떠있고(山海深處一扁舟) 화산을 다니는데 흥이 아직 남았구나.(行到華山興未休)

옛날부터 금성탕지는 덕을 펴기에 해가되니(自古金湯能害德) 이곳으로 천도한 것은 누구의 계획인가?(移都此地是誰謀)”


○ 고려의 허금(許錦)216)의 시는 다음과 같다.

“어부 초동도 옛날의 천경을 말하는데(漁樵猶說舊天京) 임금 수레 기구하여 이 성에 행차하였네.(玉輦崎嶇幸此城)

구름이 참담하여 찬 빛인 듯 하는데(洞雲慘惔疑寒色) 궁의 나무 남아서 옛소리를 울리네.(宮樹潺湲咽舊聲)”


○ 용헌(容軒) 이원(李原)217)의 시는 다음과 같다.

“길을 닦아 바다 섬에 통하고(修程通海島) 예전의 관은 구름 봉우리에 기댔구나.(古館倚雲峰)

고요히 밤 지내니 시끄러움 없어지고(夜靜坐喧息) 빈처마에 달빛이 파고 드네.(簷虛月色侵)

침상에는 살랑살랑 맑은 바람불어오고(床風淸細細) 뜰에 있는 나무에는 녹음이 우거지네.(庭樹綠陰陰)

살고 있는 백성들이 말하는 걸 듣자니(聽得居民話) / 태평한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네.(昇平正値今)”


○ 함부림(咸傅霖)218)의 시는 다음과 같다. “바다는 가까우니 구름은 물기 머금고(海近雲猶濕) / 산으로 둘러싸여 해가 쉽게 지는구나.(山圍日易陰)”
○ 안숭선(安崇善)219)의 시는 다음과 같다. “이어진 산에는 비취 빛이 떠서 멀고(連崗浮遠翠) / 깍아지른 언덕에는 층층이 구름 이네.(斷壟起層雲)”
○ 권맹손(權孟孫)220)의 시는 다음과 같다. “고국은 푸른 바다에둘러 있고(故國環滄海) / 빈 성은 비취빛 산으로 벌려있네.(空城列翠岑)”


▲ 고려의 또 다른 도읍지 강화도 궁궐터 ‘고려궁지’

1232년(고종 19년)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원종 11년)까지 38년간 사용된 고려궁궐터인 고려궁지는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져 현재에는 궁궐을 볼 수는 없으나 유적터 및 동헌, 이방청 등을 볼 수 있으며,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외규장각 또한 볼 수 있다.


▲ 외침으로 인한 아픈 역사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강화 고려궁지.


고려 수도 '江都'

개경 그대로 '복사'한 14개 건물
궁궐 뒷산 이름까지 똑같이 명명


 몽골에 굴복 않고 지켜낸 '국통'
고종 승하 1259년 3중성 허물어






강화유수부 동헌은 고려궁지 안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로 오늘날 군청과 같은 역할을 맡았던 곳으로 1977년 복원 및 수리를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업무를 보던 모습을 재현해 놓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동헌 관람한 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한 외규장각을 볼 수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불에 타 소실된 외규장각은 현재는 복원되어 있으며, 외규장각 실내에 입장해 의궤의 제작 및 보관 방법, 역사적 자료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규장외각(奎章外閣)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奎章閣在古宮傍  규장각은 행궁의 옆 자리에 있었는데,
一視天恩最我鄕  임금님 은혜 보여주니 우리 고장 으뜸가네.
玉牒丹書眞寶氣  옥첩과 단서는 참된 보배 기운이니,
海西夜夜亘虹光  서쪽 바다엔 밤마다 무지개빛 뻗혔네.


○ 정조 신축년(1781)에 유수 서호수(徐浩修)178)에게 명하여 행궁의 동쪽에 규장외각(奎章外閣)을 지어서 열조(列朝)의 보첩(譜牒)·단보어제(丹寶御製)·어정제서(御定諸書)들을 봉안하였고 각신(閣臣)에게 명하여 액자를 써서 걸게 하였으니, 대체로 문장을 같게 하여 한결같이 보려는 뜻이었다





▲ 강화산성 성문을 열고 닫을 때 쳤던 강화동종.




북장대(北將臺)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石築嵬然北將臺  높다란 석축 위에 북장대가 있는데,
滿山草木有風來  산 가득 숲 우거졌고 산들바람 불어오네.
誰能先據宣威武  누가 먼저 차지하여 무예 위엄 보이는가.
軍令分明數擧杯  분명한 군령 후엔 몇 잔 술이 있었겠지.


○ 송악의 정상에 사방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돌을 쌓아 북장대(北將臺)를 지었다.



기우청단(祈雨晴壇)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祈雨祈晴築有壇  비를 빌고 개기를 빌기 위해 쌓은 제단은,
神靈怳若鎭峯巒  신령이 깃들여 산봉우리 진압하는 듯.
推看六所皆如此  여섯 곳이 모두다 이 곳과 같을지니,
庶免人間旱澇嘆  가뭄 장마 인간 걱정 면해주길 기원하네.


○ 기우청제단(祈雨請祭壇)은 모두 6개소인데 고려산(高麗山), 화산(花山), 마니악(摩尼嶽), 송악산(松嶽山), 혈구산(穴口山), 갑곶진(甲串津)이다.



북장춘목(北場春牧)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松岳山北草色齊  송악산 북쪽은 풀색이 가지런하고,
三三兩兩馬牛蹄  삼삼오오 늘어있는 소와 말의 발자욱들.
春風一葉聲聲笛  한 줄기 봄바람 속에 들려오는 피리소리,
吹送江天日影西  하늘 닿은 서쪽 강으로 지는 해를 보내노라.


○ 송악산 북쪽 우마장(牛馬場)도 강화부 10경 중의 하나이다.


▲북문 진송루


북문(北門)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鎭松門下久徘徊  진송루 성문 아래서 한참을 머물러 보니,
山自高麗屈曲來  산은 고려산에서 굽이쳐 흘러왔고,
眼下一千茅瓦屋  눈 아래는 일천 채의 초가집과 기와집,
烟火影裡半塵埃  연기 그림자 속에 절반이 티끌이네.

○ 강화부의 북산(北山)을 송악(松嶽)이라 하고 북문으로 진송문(鎭松門)이라고 하였다.
○ 정조 계묘년(1783)에 유수(留守) 김노진168)이 다음과 같은 기문을 지었다.
“강화도는 산을 빙 둘러 성을 쌓은 것이, 또한 10리이다. 무릇 4문을 설치하였는데 동문 서문 남문에는 모두 누각이 있으나 유독 북문만 누각이 없으니 어찌 북쪽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는가. 대개 미처 누각을 쌓을 겨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절도사직을 제수 받고 송정에서 전함을 사열하였는데, 길이 이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벗겨진 첩과 짧은 구릉이 어슴프리 쑥대밭 사이로 보였다. 이어 좌우에 있는 수행원에게 ʻ아, 이와 같은데 방어를 보장할 수 있겠는가.ʼ라고 말하였다.


이 문은 송악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송악과 대치하고 있으니 옛 서울과 접하는 것이다. 송정에 임하여 굽어 살펴보니 전함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람들이 담장 밖에서 지나가는데 그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투가 보이는 것과 같다. 돈대와 섬들이 멀리 희미하게 보이고, 날개 모양으로 숲 사이로 드러난 것이 연미정이다.


호서와 영서의 조운선이 경유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짝 지어 경작하는 볼만 하다. 갓옷을 입고 허리띠를 두르고 있으니 편안한 날로 교화할 수 있고, 빗장을 단단히 잠가서 폭도를 막을 수 있으니 이 가운데 한 가지만 해당되어도 누각이 없을 수가 없다. 하물며 두 가지를 다 갖추고 있는데 누각이 없어서 되겠는가. 이에 누각을 지어 앞선 사람들이 남긴 나머지를 대신하면 좋지 않겠는가.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ʻ좋다ʼ라고 하였다.


돌을 캐고 재화를 모아서 축조를 시작하니 얼마 안 되어 완성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누각에 편액을 달아 ʻ진송ʼ이라 이름을 명명하고 그 대략을 이와 같이 기록한다. 계묘년(1783) 초여름 하순에 유수 김노진(金魯鎭)은 기록한다.”


▲ 강화산성 북문 누각의 편액은 진송루입니다







여제단(厲祭壇)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門外指云厲祭壇  북문 밖 가까운 곳에 여제단이 있는데,
沈沈烟霧鬼難看  연무가 내려앉아 귀신조차 보기 어렵네.
導迎和氣年年祝  화기(和氣)를 모아서 해마다 축원하니,
庶使州人得一安  고을 사람들 모두가 편안하길 바라네.


○ 여제단(厲祭壇)은 북문 바깥에 있다. 여제단은 나라에 역질이 돌 때에 여귀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이다



당주동(唐州洞)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北望唐州一谷深  북쪽 당주마을 골짜기 깊은 곳이,
世云舊邑址傳今  예전의 읍터라고 지금껏 세상에 전해오네.
後人結構東西密  뒷날의 사람들이 빼곡이 집을 짓고,
耕織生涯淡泊心  밭 갈고 옷감 짜며 담담하게 살고 있네.
○ 당주동(唐州洞)의 구읍(舊邑) 터는 부의 안쪽 경계 내의 북문 바깥에 있다.











용흥궁(龍興宮)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龍興宮裡五雲多  용흥궁 안쪽에 오색구름 가득하니,
庚戌元年海內歌  경술(1860) 원년 강화섬에 노래 소리 울렸었네.
江水益深山益重  강물 더욱 깊이 흐르고 산 또한 첩첩하니,
昇平日月聿中和  태평스런 세월이 중화를 이루었네.


○ 용흥궁(龍興宮)은 열무당의 동쪽에 있다. 동쪽 성 안에 있는 철종(哲宗)210)의 잠저이다. 경술년(1850)에 등극하였다.


▲ 경찰 지구대 이름도 강화의 옛지명인 심도 지구대입니다



시장(市場)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閱武堂前一市場  열무당 앞쪽에 큰 시장이 있는데,
日之二七列廛商  2일과 7일에는 가게들이 늘어서네.
朝來暮去紛紛處  아침에 왔다 저녁에 가는 분주한 곳이지만,
殖貨何人辨出藏  돈 버는데 어느 누가 오고 감을 따지겠나.


○ 시장은 열무당 앞 구천(緱泉)의 뒤편에 있었다. 매월 2일과 7일에 장이 서서 물건을 사고 판다.


▲동문 망한루 가는 길 

읍내에서 성문이 보이니 신기하고 너무 좋더군요




동문(東門)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望漢樓前望漢陽  망한루 앞에 서서 한양을 바라보니,
圓紅朝旭自東方  붉고 둥근 아침 해가 동쪽에서 일어나네.
操兵場上菲菲草  병사들의 조련장은 풀들만이 무성하고,
含得光輝未吐芳  햇빛을 머금었지만 향기 내지 못하네.


○ 망한루(望漢樓)는 심부(沁府 : 강화부)의 동문(東門)의 편액이다. 문 밖에 병사를 조련하는 훈련장이 있었다. 병인양요(1866년) 후에 설치하였는데 지금은 모두 빈터가 되었다.


▲ 강화산성 동문의 편액 망한루

동쪽에 있는 한양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망한루입니다


▲ 동문 정면에는 강화의 옛이름 강도 그리고 동문이라고 쓰여있습니다



강화부성(江華府城)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環城終日感懷多  성을 돌다 해가 지니 감회가 많구나,
五十年間變幾何  지나간 오십 년 동안 변란이 몇 번 있었는가.
官吏武文多少式  문무의 관리들이 많았을 터인데,
摠如一劫夢中過  모두가 한순간의 꿈처럼 지나갔네.




▲ 강화대교 옆 갑곶돈대의 풍경입니다




▲ 용진진 좌강돈대를 지납니다


▲ 용당돈대 입구에는 아카시 향기가 가득합니다



지천(芝川)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芝川一曲向東流  지천이 한 번 굽어 동쪽 향해 흐르는데,
羅列家基小洞幽  작은 마을 그윽한 곳에 나씨 집들 모여 있네.
三十年前書榻上  30년 전부터 있어온 책상 위에서,
慇懃月色訂前遊  은근한 달빛이 옛날 교유 일깨워주네.

○ 지천(芝川)은 고잔동(高盞洞)의 작은 지명이다. 주사 나진국(羅鎭國)과 정교 나홍교(羅鴻敎)는 나와 매우 친한 사이로서 오랫동안 같이 노닐던 가문의 사람들이다.
○ 내가 일찍이 30년 전에 한제수(韓霽洙)와 이곳에서 노닐었다







▲ 초지대교를 다시 건너오며 답사를 마침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 정조 때의 문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