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천

거친 호흡 몰아쉬며 바람 저편 굽이치는 산맥 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30 교동도 라이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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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바람

2019. 6. 22.

두 바퀴에 스치는 바람 서른번째 이야기 


교동도 라이딩 2 [2019 6 22 하늘파란 토요일]


전편

연산군 유배지, 대룡시장 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902



▲ 교동도 외곽의 자전거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 난정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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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동읍성 ⓒ 2019 한국의산천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7년(1629)에 세웠으며 이 성은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 본진 주둔지였을 만큼 성세가 대단했다.

둘레는 430m, 높이는 약 6m이며 동, 남, 북 세곳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각 문에는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그리고 북문은 공북루하 하였다.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치 않다.

 

1753년(영조 29)에 통어사 백동원이 치첩(雉堞)을 수축하였고, 1764년에 방어사 백낙윤(白樂倫)이 남문(庾亮樓)을 중건하였으나 동문(統三樓)과 북문(拱北樓)은 수축하지 못하였으며, 동, 서, 북문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으며, 남문만이 현존하고 있다. 내부에는 조선시대 수영터를 확인할 수 있다.

 


▲ 2016년에 답사때에는 누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새로 지어 올렸다



▲ 좌측 측벽에 '南樓(남루)'와 '三道統門 (삼도통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즉 이곳이 남문이며  삼도통문이라 교동에는 3도 즉 경기, 황해, 충청의 수군 통어영이 있었다는 뜻을 추측케해준다.



▲ 교동부(터) ⓒ 2019 한국의산천

 

  조선 인조 7년(1629년)에 남양의 화량진을 옮겨 경기수영이 교동읍내리에 설치되고 교동현이 교동부로 승격된 후 설치된 것이다.

현 부지에는 돌로 쌓은 계단 20여개가 남아있어 삼도(경기·황해·충청) 수군통어영을 관장하던 본영다운 규모를 엿볼 수 있으며 안해루(현종9년-1667년 부사 구문저가 창건)의 석주가 2개 남아있고, 객사터와 북문과 서문, 동문의 흔적과 성곽의 일부가 제법 남아있다.













▲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월선포 매표소가 지금은 부동산자리로 변신







교동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강화도 검문소에 도착하면 해병대 초병에게 '교동지역 임시출입증'을 반납합니다


교동도에 연도교가 놓이게 되어 민통선이라는 제약은 있지만 그래도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였다.

한때 중국과 고려를 이어주던 교량적 역활을 하던 곳이였고, 또 한때는 조선 삼도수군의 심장부였던 교동은 이제 교동대교의 개통으로 인하여 다시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시간의 멈춤듯한 공간과 역사의 심판속에 광란의 일생을 마친 연산군의 행적들을 돌아보며 올바르게 산다는것의 정답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하며 교동대교를 건너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 50km의 라이딩을 마치고 민통선 밖에 세워둔 차에 자전거를 싣고 귀가하기


푸른 하늘을 보며 또 다시 내일 라이딩을 계획하며 귀가하기.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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