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천

거친 호흡 몰아쉬며 바람 저편 굽이치는 산맥 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

10월 산행지 10월에 갈 만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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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등산여행

2019. 10. 2.

 

 

[SEASON SPECIAL] 10월에 갈 만한 국내여행지 4선!

글 서현우 기자 사진 C영상미디어, 국립공원공단 입력 2019.10.04 15:36  

 

 


10월이 되고 가을이 깊어 가면 나무들은 하나 둘씩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대도시의 가로수도 단풍은 들지만 삭막한 빌딩숲 사이에선 아무래도 빛이 바랜다. 단풍은 모름지기 깊은 산 중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깊은 산에는 항상 사찰이 있다.

 

10월에 갈 만한 국내 여행지는 단풍 구경하기 좋은 사찰들로 꼽아봤다. 단풍과 어울린 고찰들은 한국적인 멋의 극치를 보여 준다. 또한 조용한 사찰에선 가을의 고즈넉함이 더욱 깊이를 더한다.

 

보통 가을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호남 지방의 사찰들이 단풍을 구경하기에 좋다. 내장산 백양사와 선운산 선운사가 이에 속한다. 다른 지방의 사찰들도 단풍과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곳이 많다. 강원도에 위치한 오대산 월정사, 영남에 있는 가지산 석남사가 대표적인 예다.

 

1 강원도 평창 | 오대산 월정사

 

월정사는 중국 유학길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한 고찰이다. 오대산(1,565.3m) 곳곳에는 문수보살을 모신 선원으로 이름 높은 상원사上院寺 외에 적멸보궁의 수호암자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등이 있으며 모두 월정사 부속 사암들이다. 이렇듯 산 전체가 불교 성지를 이룬 곳은 국내에 오대산이 유일하다.

 

단풍과 어울린 월정사뿐만 아니라 월정사 위아래의 숲길도 가을빛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월정사 일주문 전나무 숲에는 1.9km의 순환형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길 양옆으로 매끈하게 솟아 있는 1,700그루의 전나무들을 바라보며 걸으면 그 자체로 힐링이다. 이곳은 TV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기도 하다.

경내를 둘러보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좋다면 상원사로 이어지는 9km의 월정사계곡 선재길을 걸으면 된다. 선재길은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골짜기 양 옆으로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들이 모두 거목이 아닌 게 없을 만큼 온통 노거수 일색이다.

 

 


2 울산 울주 | 가지산 석남사

 

단풍과 억새, 고즈넉한 사찰까지 한 번에 둘러보고 싶다면 가지산 석남사가 제격이다. 국내 최대의 비구니 수도처로 유명한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 때 도의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가 1957년 비구니 인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중수중창을 거치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석남사계곡을 따라 울창한 단풍 터널을 지나면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석남사가 나타난다. 병풍처럼 들어선 상운산과 가지산 능선의 단풍과 석남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여기서 더 단풍을 즐기려면 석남사골을 따라 가지산으로 오르면 된다.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인근에 또 하나의 단풍 명소인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찾는다. 반구대 암각화는 최대 약 7,000년 전의 수렵과 어로생활 등의 모습이 바위에 새겨진 국보 제285호 유적지로, 가을이면 암각화까지 이어진 오솔길이 단풍으로 물들어 무척 아름답다. 억새는 가까운 영남알프스의 신불평원이나 간월재, 사자평원 등에서 돌아볼 수 있다.

 

 


3 전남 장성 | 내장산 백양사

 

내장산은 한국 최고의 단풍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내장산의 단풍이 특별히 더 아름다운 것은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단풍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시간이 길수록 색이 선명해지는데 내장산은 남부내륙에 위치해 일교차도 크고, 주위에 큰 산이 없어 일조시간도 길다. 또한 단풍나무의 수종도 애기단풍나무, 신나무 등 11종으로 다양해 각양각색의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흔히 내장산 단풍 탐승은 내장사 일원에서 이뤄지지만, 백양사도 이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단풍 경관을 뽐내는 곳이다. 백양사 법라스님에 따르면, 백제 무왕 33년(632)에 여환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호남불교의 요람이며, 창건 당시 이름은 백암사였지만 고려 때 정토사로, 다시 조선시대에는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백양사에서는 특히 목은 이색이 이름을 짓고, 정몽주가 시문을 남겼다는 쌍계루가 단풍과 어울린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또한 백양사 계곡 입구에는 어린아이의 손처럼 작고 앙증맞아 ‘애기단풍’이라 불리며 고운 색을 자랑하는 애기단풍나무도 많아 눈길을 끈다.

 

 


4 전북 고창 | 선운산 선운사

 

선운산은 나지막하지만 명산으로 대접받는 곳이다. 도립공원 내 최고봉인 경수산의 높이가 444m, 나머지는 300m 내외에 불과하지만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화려한 내장산과 달리 선운산 단풍은 그윽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선운산에 깃들어 있는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제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 2대 본사며, 조선 후기 선운산 곳곳에 89개의 암자를 거느리기도 했다고 한다.

 

선운사는 봄의 동백, 늦여름 꽃무릇의 유명세가 강해 상대적으로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이 가려진 곳이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 선운사로 오르는 도솔천 양 옆으로 우람한 느티나무와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만들어내는 단풍 터널, 극락교 주변 계곡의 단풍 반영, 선운사를 지나 도솔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기암과 단풍이 어우러진 풍광 등은 한 번쯤은 꼭 봐야 할 가을 볼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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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SPECIAL] 10월에 갈 만한 산 4선!

글 박정원 편집장 사진 C영상미디어 입력 2019.10.01 09:53

 

 

 
본격 가을에 접어든다. 가을 등산객과 행락객은 11월이 연중 가장 많다. 그 다음 10월이고, 5월 순서로 나선다. ‘가을산행은 어디가 좋을까’ 당연히 고민한다. 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핵심어가 단풍과 억새다.

 

올해 첫 단풍은 9월 28일 설악산부터 시작한다. 절정은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이어진다. 억새는 이미 9월부터 싱싱한 이파리를 뽐내지만 바람에 나부끼며 햇빛에 반사된 은빛으로 유혹하는 10월이 돼야 제대로 빛을 발한다. 따라서 10월 산행지 선택기준이 되는 핵심어는 당연히 단풍과 억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구름다리의 산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구름다리를 조성하고 있다. 환경만 훼손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편의시설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선택한 10월의 대표적인 산은 설악산, 오대산, 청량산, 강천산, 신불산이다. 청량산은 바로 앞부분 ‘10월의 명산’에 소개됐고, 나머지 산들도 이전에 나갔지만 간략히 안내한다. 자세한 정보는 월간<山> 홈페이지 san.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설악산

고대부터 이름 그대로인 한국 최고의 산

 

고대부터 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산은 한반도에 몇 개 안 된다. 그 대표적인 산이 설악산雪嶽山(1,708m)이다. 지리산조차 한자가 조금씩 바뀌었고, 금강산은 상악霜岳에서 조선시대 들어 지금 이름으로 정착했다. 다시 말해 설악산은 가장 오래된 족보를 가진 산에 속한다.

 

통일신라가 전국의 명산대천을 대사·중사·소사로 나눌 때 소사 20여 곳 중의 하나로 지정했다고 <삼국사기>에 나온다. <고려사>에 이어 <조선왕조실록>에도 명산으로 지정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대부터 명산이었고, 근대 들어서도 그 명성이 이어졌다.

 

설악산의 지명유래는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8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이듬해 여름이 돼서 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다’고 나온다. 그 이전 기록은 없다. 글자 그대로 눈 덮인 바위산이란 의미다. 실제도 그렇다. 옛날에는 눈이 워낙 많아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설뫼雪嶽라고도 했다. 눈雪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이다.

 

자연자원과 식생이 뛰어나 남한에서 가장 먼저 1965년 11월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됐고, 1970년에는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또한 세계적으로 희귀 동식물 분포지역으로 유네스코에서 1982년 지정한 한국 유일의 생물권 보존지구이기도 하다. 

 

남한의 단풍은 항상 설악산부터 시작한다. 설악산 단풍이 언제부터 물드는가가 남한 첫 단풍의 절대 기준이다. 그만큼 단풍이 뛰어나다. 10월 말 설악동과 백담사 가는 길은 단풍인파로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는다. 눈의 호사 대가는 몸의 피로를 낳는다. 10월 방문객만 100만 명에 육박한다.

 

 


2. 오대산

단풍에 전나무숲길까지… 가을에 꼭 가볼 만한 곳

 

남한의 단풍은 설악산부터 시작해서 오대산五臺山(1,565.3m)을 거쳐 남하한다. 오대산도 단풍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오대산에는 한 가지 더 있다. 월정사와 상원사로 이어지는 계곡과 함께 걷는 호젓한 전나무숲길이다. 굳이 등산이 아니더라도 가을이면 가볼 만한 장소다.

 

오대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 자장율사가 수도한 중국 오대산에서 유래했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과 닮은 다섯 봉우리가 있는 오대산에 진신사리를 모시고 절을 지은 자리가 적멸보궁이라는 설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선 오대 지명에 대해 ‘동쪽이 만월滿月, 남쪽이 기린麒麟, 서쪽이 장령長嶺, 북쪽이 상왕象王, 복판이 지로智爐인데, 다섯 봉우리가 고리처럼 벌려 섰고,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라 이름했다’고 소개한다.

매년 오대산 방문객은 150여만 명에 이르지만 10월 방문객이 30만 명을 훌쩍 넘는다.

 

 


3. 강천산

천봉만학 풍광 자랑하는 구름다리 명소

 

강천산剛泉山(571.9m)은 단풍과 구름다리로 유명하다. 천봉·만학·기암·괴석이 천태만상을 이루는 최고 풍광을 자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우리만 해도 연대봉·운대봉·수령봉·천자봉·깃대봉·왕자봉·견제봉·송락봉 등이 있고, 여기서 발원한 물은 연대계곡·선녀계곡·원등계곡·분통골·지적골·소목골·삼인대계곡·기우제골·세냥골·물통골·초당골·우작골·동막골·금강계곡·승방골·변두골 등 수많은 계곡으로 흘러내려 호수로 합류한다. 그래서 산 이름에 ‘천泉’자가 붙은 것이다.

골짜기마다 단단한 암반 위로 깨끗하고 맑은 물이 샘처럼 솟아 흐른다 하여 ‘강천剛泉’이라 불렀고, 그래서 강천산이라 명명됐다 전한다.

 

강천산군립공원 홈페이지에는 강천사라는 절 이름에서 강천산이 유래했다고 하나 이 역시 근거가 없다. 같은 홈페이지에 ‘강천사의 원명은 복천사福泉寺라고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복천사는 광덕산에, 용천사는 추월산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봉만학·기암괴석과 어울린 단풍은 금강산이 부럽지 않을 정도라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구름다리도 일찌감치 조성돼 가을단풍을 보기 위해 찾는 등산객들로 10월과 11월은 엄청 붐빈다.

 

 


4. 신불산

가을 억새 대표 산행지… 사자평 습지는 국내 최대 규모

 

신불산神佛山, 이름만 봐도 신비감을 자아낸다.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이란 의미다. 지명유래부터 찾았지만 불확실하다. 유일하게 나와 있는 유래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낸 ‘옛날 산중허리에 신불사라는 사찰이 있어 신불산으로 유래했다’고 한다. 옛 문헌에선 <세종실록>에 ‘세종 8년 신불사에서 법석…’이라는 기록뿐이다.

 

해발 1,000m 이상 산군이 알프스 풍광을 닮았다 해서 영남알프스라 명명됐으며, 대표 억새명산이기도 하다. 간월산(1,083m), 신불산(1,209m), 영축산(1,059m), 재약산(1,108m), 천황산(1,189m), 가지산(1,240m), 고헌산(1,032m) 등 해발 1,000m 이상의 7개 산군으로 이뤄져 있다.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신불평원은 가을 억새의 명불허전 명소다. 특히 10월 초에는 영남알프스 억새대축제를 신불평원에서 열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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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산행 

 

[새연재ㅣ옛 문헌에 나오는 청량산] <화엄경> 문수보살 관련된 조선 12대 명산

글 박정원 편집장 사진 C영상미디어 입력 2019.10.02 11:02 | 수정 2019.10.02 13:45

 

주세붕 첫 <유청량산록>에 퇴계가 발문… 지역적으로 水山으로도 불린 듯
 

 

▲ 12봉 12대를 가진 청량산 답게 다양한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다. 중앙에 두 봉우리를 연결하는 800m 구름다리가 명물이다. 사진 봉화군청 제공


청량산淸凉山(869.7m)은 이름만으로 보면 전형적인 가을 산이지만 속뜻은 불교 <화엄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화엄경>에 ‘(중국) 화북지방에 청량산이란 명산이 있는데, 그곳에 보살이 상주하고 있다. 그 보살은 문수. 문수보살은 1만여 명의 보살과 함께 살며 항상 설법을 한다’고 나온다.

 

오대산이 청량산이고, 청량산이 곧 오대산이라는 의미다. 한반도에서는 평창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효시이고, 청량산도 그에 못지않다. 지금 한국에 문수사나 청량사, 또는 청량산·오대산·문수산 등의 지명이나 이름은 전부 문수보살과 관련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 의미를 모르고 아무렇게나 작명한 산이나 사찰은 관련성이 없겠지만 원래 의미는 그렇다.

 

중국의 3대 불교 영산이 오대산(청량산), 보타산, 아미산이다. 중국 오대산은 세계 5대 불교성지에 속한다. 오대산은 중국 불교의 효시이자 문수보살의 효시이기도 한 산이다.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현몽하고 귀국한 설화는 지금까지 전하는 유명한 내용이다. 자장이 귀국한 뒤 문수보살을 현몽한 장소를 찾아 사찰을 건립한 곳이 바로 지금의 오대산이라고 전한다.

 

이 정도 되면 삼국시대부터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대의 역사서에 청량산이 숱하게 등장했을 법한데 어디에도 청량산이란 지명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야사野史를 기록한 <삼국유사>에 몇 부분 등장한다.

 

<삼국유사>권3 탑상조에 ‘산중의 고전을 살펴보면, 이 산을 참 성자의 거주처라고 이름 한 것은 자장법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법사가 중국 오대산의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고자 선덕왕 때인 정관 10년(636) 병신丙申에 당나라에 들어갔다. 처음에 법사가 중국 태화지太和池 가의 문수보살 석상이 있는 곳에 이르러 7일 동안 정성스럽게 기도했더니, 홀연히 꿈에 대성大聖이 4구의 게偈를 주었다. 꿈을 깨고 보니 기억은 하겠으나 모두 범어梵語이므로 해독하지 못하여 망연하였다’고 나온다. 여기 나오는 오대산이 청량산이다. 오대산과 청량산은 동격이면서 오히려 불교적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같은 책 권4 의해조에는 ‘자장은 스스로 변방에서 태어난 것을 한탄하여 서쪽에서 불교의 교화를 배우기를 바랐다. 인평 3년 병신丙申에 칙명을 받아 문하의 중인 실實 등 10여 명과 함께 서쪽으로 당에 들어가 청량산(중국 산시성 태원부에 있는 오대산. 오대산은 문수사리의 정토로 전해진다. 산에 만수대성(문수보살을 말하는 것으로 보현보살과 함께 부처의 협시보살로 지혜를 맡고 있다. 이 보살은 중국 산서성 오대산에서 1만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강원도 오대산에 있다고도 하여, 상원사는 문수를 주존으로 모시고 예불한다)의 소상이 있는데, 그 나라에 서로 전하여 말하기를 “제석천이 석공을 이끌고 와서 조각한 것”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청량산 5층석탑과 어울린 산세.


중국에선 청량산·오대산 같은 산으로 봐

같은책 권5 피은조에는 ‘스님은 일찍이 구름을 타고 중국의 청량산에서 머무르며, 대중을 따라 강의를 듣고 조금 있다가 돌아왔다. (중략) 낭지는 산 중의 이상한 나뭇가지 하나를 꺾고 돌아와 바쳤다. 그 스님이 이것을 보고 말하길, “이 나무는 범어로 달제가怛提伽라 부르는데, 이것을 혁赫이라 하고, 오직 서축과 해동의 두 영축산에만 그것이 있다’고 나온다.

 

이같이 불교의 성지로 평가받는 족보 있는 청량산이 정사正史에는 기록이 없고 야사에만 소개되는 이유는 ‘신라 수도인 경주에서 어중간하게 떨어져 있는 위치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라고 판단된다. 당시의 산은 군사전략적인 부분과 신성한 부분을 고려해서 국가에서 지정관리했다. 경주 주변의 산은 야트막한 산까지 통일신라 전에 이미 삼산오악으로 지정하면서 수도 경주를 경비하는 기능을 했다. 동시에 숭배 대상으로 삼았다는 기록은 여러 군데 나온다. 하지만 청량산은 원래 신라 영토에서 살짝 벗어난 관계로 전국을 5개 지역으로 나눈 오악에 포함되기도, 지방호족세력을 다스리기 위한 소사로 지정하기도 애매한 위치였다. 따라서 명산이자 영산인 동시에 문수보살의 본고장이었지만 명산 취급을 못 받은 대표적인 산으로 꼽을 수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 들어서도 문수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한 청량사가 있는 청량산은 여전히 홀대 받는다. 어느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사인 <고려사>에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북한산에 있었던 청량사만 <고려사>에 한 줄 정도 비칠 뿐이다. 하지만 전하는 내용으로 청량사 유리보전 현판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온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한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란 뜻이다. 왕이 피란 와서 글씨를 남겼을 정도면 정사에 충분히 기록을 남겼을 법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여하튼 청량산은 고려시대에도 여전히 숨은 명산으로 존재했다.

 

 

▲ 청량산 청량사의 한 전각.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서는 거의 모든 역사서와 지리지, 개인문집에 등장한다. <세종지리지> 경상도 안동 대도호부에 ‘청량산은 재산현才山縣 서쪽에 있다. 청량산 석성은 재산현 서쪽 21리에 있으며, 본부와의 거리가 71리이다’는 내용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24권 경상도편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나오며, ‘치원봉은 청량산에 있으며, 최치원이 여기에서 글을 읽었으므로 이름 지은 것이다. 청량사는 청량산에 있다’는 내용이 추가돼 있다. 여기서 재산현은 원래 덕산부곡德山部曲인데 고려 충선왕이 경화옹주의 고향이라 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으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재산현은 안동도호부의 동쪽으로 보면 지금 봉화쯤 된다. 

 

최치원이 남긴 작품으로 전하는 <고운선생사적孤雲先生事蹟>에도 <여지승람輿地勝覺>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듯 ‘안동부 재산현 서쪽에 위치하며, 최치원이 있었고, 치원암에서 선생이 독서를 하며 머물렀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선비들의 개인문집에는 많은 학자들이 작품을 남겼다. 주세붕도 청량산에 올라 청량산 최초의 유산기로 평가받는 <유청량산록>을 문집에 남겼다. 퇴계 이황은 주세붕의 <유청량산록>에 발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이 산은 실제로 내 집안의 산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괴나리봇짐을 메고 수없이 이 산을 왕래하며 독서했는데, 그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조선 초 역대 시문선집 <동문선東文選>에는 ‘수산水山’으로 소개된다. 수산의 유래는 전혀 알려진 바 없으나 1998년 안동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수산청량사水山淸凉寺’라고 새겨진 명문기와를 수습하면서 청량산이 수산과 같이 불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1901년 출간된 지역 지리지 <오가산지吾家山誌>에도 ‘淸凉山 在才山縣南 古名水山’이라고 나온다. 이로 볼 때 수산이 널리 사용된 건 아니지만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청량산과 혼용해서 사용했을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청량산의 명물 구름다리.


<택리지> 명산과 명찰편에 청량산·청량사 언급

조선 후기 들어서 대표적인 지리지 <택리지>에는 청량산을 조선의 12대 명산에 포함시켰다. 같은 책 산수편에 ‘명산과 명찰’편에 ‘백두대간 등줄기에서 오직 금강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선유산·덕유산·지리산의 여덟 개의 산이 가장 뛰어나다.

 

산맥(백두대간) 등줄기에서 벗어나 있는 명산, 칠보산·묘향산·가야산(합천)·청량산 네 개의 산만이 백두대간 여덟 개 산과 더불어 나라 안의 큰 명산으로 은둔자들이 깃들어 수양하는 곳이다. 옛말에 “천하의 명산은 승려가 많이 차지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불교만 있고 도교는 없어서 이 열두 개의 명산을 모두 사찰이 차지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중환은 청량산에 대해서는 ‘태백산맥 한 줄기가 들판으로 뻗어 내려와 예안의 강가에서 뭉쳐 솟구친 산으로, 멀리 밖으로 바라보면 봉우리가 두어 개 있는 흙산일 뿐이다. 하지만 강을 건너 골짜기로 들어가면 사방에 석벽이 만길 높이로 둘러쳐 있어 엄숙하고 기이하며 험준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산 안쪽에는 난가대가 있다. 고운 최치원이 바둑 두던 장소인데, 바둑판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며, 근처에는 한 노파의 석상이 석굴 안에 안치되어 있다. 고운이 산에 머물 때 밥을 지어 주던 여종이라 전해 온다. 산에는 연대사가 있고, 연대사에는 신라의 김생이 손수 쓴 불경이 많다. 근래 한 선비가 절에서 글을 읽다가 불경 한 권을 훔쳤는데 집에 이르자마자 역병에 걸려 죽자 집안 사람들이 두려워서 즉시 절에 돌려주었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조선시대에는 청량산이 매우 높게 평가된 듯하다. 물론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주세붕과 이황이 즐겨 찾던 산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 풍광과 얽힌 전설이 어느 산 못지않다는 객관적 사실이 조선시대 들어서 빛을 발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외에도 <대동여지도>에는 안동도호부로부터 서북쪽으로, 안동 일대를 자세히 묘사한 <영남지도>에는 낙동강 줄기가 흐르는 모습과 함께 상세히 표시돼 있다. 조선 선비들의 기록이 아직까지 전하고, 그 이전 인물인 원효와 최치원, 김생 등은 전설만 전하지만 가을이 깊어가는 10월과 11월 어느 날에 맑고 신선한 청량산을 찾아가면 가을을 다 보낸 듯한 느낌은 충분히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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