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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등산여행

2021. 12. 1.

[12월 마운스토리 : 강화 마니산] 수도권 최고의 일몰 명산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입력 2021.12.01 10:05

 

12월 ‘마운스토리’ 강화 마니산
고구려 때 창건설 전등사·고려 임시수도 강화도·곶 등 볼거리 수두룩

한반도의 일몰 명소로 유명한 마니산에서 서서히 해가 서쪽 바다로 기울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강화 마니산摩尼山(472.1m)은 서해의 일몰 명산으로 꼽힌다. 

여름엔 함허동천涵虛洞天과 같은 시원한 계곡에 많은 캠핑족들이 찾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에도 경건한 마음으로 일몰을 보면서 차분히 일 년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찾아 야영을 즐긴다. 

높지도 않아 수도권 등산객들이 연말을 맞아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쌓았다고 전하는 참성단(사적 제136호), 선사시대 부족국가의 무덤이 있는 고인돌 군락, 정설은 아니지만 고구려 때 창건했다고 전하는 우리나라 최고 사찰로 알려진 전등사, 고려 후기 몽골의 침입을 피해 임시수도였고 왕이 피란했던 강화성城, 조선 초기 함허대사가 중건했다는 정수사, 그리고 그가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가히 삼매경에 들 수 있는 곳”이라고 극찬했던 산과 물이 묘한 조화를 이룬 함허동천, 19세기 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광성보·덕진진·초지진 등 유적을 포함한 자연·문화 경관이 좋아 일몰과 함께 주변 볼거리로 유적나들이 코스로 적격이다.


선사시대부터 고대 삼국시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곳이 바로 마니산이다. 

특히 조선 후기 서구 열강들이 한반도를 침입해 올 때 격전지로서의 아픈 흔적은 강화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주요 침입로가 바로 강화였던 것이다. 그것은 강화도의 지명이 여실히 증명한다.


강화도는 원래 고구려 영토였다. 고대 지명은 고구려 고어로 갑비고차甲比古次였다고 한다. 

갑비는 구멍穴을 뜻하는 고어로, 배가 드나드는 나루를 가리킨다. 고차는 입口을 뜻한다. 

이는 지금의 곶串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언어학자들은 말한다. 따라서 갑비고차는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곳에 있는 나루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구려 초기 갑비고차는 한자가 들어오면서 혈구로 바뀐다. 강화도에 있는 혈구산(466m)이 그 의미의 자취로 보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경덕왕은 혈구를 다시 ‘바다의 입구’라는 뜻의 해구海口로 변경한다. 이 같은 내용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지리지>에 고스란히 나온다.

 

조선시대 함허대사가 수도 정진했다는 함허동천계곡에 ‘涵虛洞天’ 마애석각이 있다.


갑비고차→혈구→해구→강화로 지명 변천
<삼국사기>에 ‘해구군은 본래 고구려 혈구현이었는데 바다 가운데에 있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강화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지리지>에는 ‘강화현은 본래 고구려 혈구군(갑비고차라고도 한다)으로 바다 가운데 있으며, 정주貞州의 바로 서남쪽에, 통진현의 서쪽에 있다. 

신라 경덕왕 때 해구군으로 고쳤으며,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중략) 마리산摩利山은 부府의 남쪽에 있으며, 산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이라 한다. 전등산(일명 삼랑성三郎城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은 것”이라 한다)이 있다’는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이자 문장가였던 이첨(1345~1405)의 기문에 ‘한강과 임진이 합류하여 조강祖江이 되고, 서쪽으로 잇달아 바다로 들어가는데 따로 흘러 갑곳이 되었다. 

 

전조前朝의 고왕이 여기 와서 피난하는데 원나라 군사들이 쫓아와 말하기를 “갑옷만 쌓아 놓아도 건너갈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갑곶이라 이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지의 내용과는 다소 다르지만 그럴 듯한 유래를 소개한다.


따라서 강화의 어원이 갑비고차에서 유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설명일 수 있지만 한국 남방계 언어로 갑비는 구멍을 뜻하는 구무였고, 구무가 다시 굼으로, 이어 강으로 변했다고 한다. 

 

고차는 고지 또는 곶으로 변했고, 중세 한국어에서 곶은 꽃이었기 때문에 꽃을 나타내는 한자 화華로 바뀌었다고 언어학자들은 말한다. 결론적으로 갑비고차에서 혈구로, 뒤이어 해구로 바뀌어서 지금 사용하는 강화로 됐다고 한다. 

의미는 똑 같을지 몰라도 글자만으로 볼 때는 전혀 다른 뜻인 듯하다.

 

마니산 함허동천 방향으로 중간쯤에 조선시대 조성한 참성단 중수비가 있다.


고려에서는 행정구역으로 강화현에서 강화군으로 승격했으나 지명을 강도江都라고 불렀다고 문헌에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들어서 강화도로 완전 바뀌었다. 여러 고지도에서 확인된다. 

 

강화의 유래에 대해서 이미 설명했지만 강화도에 화도華島라고 별도 지명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유래는 다른 설명이 있다. 화도는 지형이 꽃과 같이 생겼거나 꽃이 많아 명명됐을 수 있지만 곶串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해서 ‘곶마을’이 되고, 이것이 ‘꽃마을’로 변해서, 다시 한자화하면서 화도로 정착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강화에 대한 지명유래의 정확한 어원은 아직 정착되지 못한 실정이라 의견들이 아직 많다.


어쨌든 강화도와 마니산의 깊고 오래된 역사를 기록에서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강화도 마니산은 고대부터 최서쪽에 위치한 한반도 명산으로, 그것도 섬으로서 거의 유일하게 자리매김한 산이라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위도상으로 최서쪽은 아니지만 일찌감치 명산반열에 오른 산인 것이다.

 

16세기 후반 제작된 고지도 <동람도>에 현재 사용하는 지명 그대로 표기돼 있다.


그런데 <고려사>에는 마니산과 마리산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뜻은 전혀 달라 보인다. 기록자의 오기인지 같은 의미로 실제 같이 사용했는지 이 또한 알 길이 없다. 마니산 등산로 입구에는 마니산에 대한 유래를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마니산의 원래의 의미 우두머리라는 뜻의 두악頭嶽으로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태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마리는 머리를 뜻하며, 민족의 머리로 상징되어 민족의 영산으로 불러오고 있다. 강화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가 472.1m이며, 사면이 급경사로 화강암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후략)’


조금 다른 안내판도 있다.


‘마리산·마루산·두악산이라고도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72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과 영종도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략)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郎城(사적 제130 호)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가 있다. 북동쪽 기슭에는 정수사법당(보물 제161호)이 있고, 북서쪽 해안에는 장곶돈대 1기가 있다.’

 

매년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하는 마니산 정상 참성단. 지금은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강화군청 제공


마니는 우두머리 또는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마니산을 ‘두악’이라 했다고 안내문에 설명했는데 실제 기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산은 고려 마리산摩利山이다. 강화도호부 남쪽에 있다. 꼭대기에 참성단이 있는데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로는 모지고 아래는 궁글며, 단 위의 사면이 각기 6척 6촌이고, 아래의 너비가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이라” 한다. 산기슭에… (후략)’


조선왕조실록의 다른 기록에는 마니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마리산과 마니산을 혼용해서 썼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정도 되면 마니산과 마리산은 같은 뜻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른 관찬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강화도호부에서는 마니산으로 초지일관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강화 진산이 마니산에서 고려산으로 슬쩍 바뀐다.


그렇다면 마니산이든 마리산이든 의미가 같다면 과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안내문에는 ‘마니’가 머리를 뜻한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 변화로, 왜 그렇게 변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언어학자들은 마니는 르완다어 ‘manye’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이는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라고 한다. 따라서 마니산은 ‘나라를 지키는 산’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정상 참성단과 연결해서 이해하면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어 보인다. 참성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1682년 제작된 <동여비고>에도 마니산으로 나온다.


또 일부에서는 “마니는 강과 바다의 모퉁이라, 땅이 따로 동떨어지고 깨끗하며 고요하여 신명의 집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혈구 또는 해구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강과 바다와 통하고, 하늘과 땅이 맞닿은 산이라는 의미로 신성한 참성단의 유래와도 맥이 닿는 듯하다. 불교적 의미로 ‘마니’는 보배 같은 지혜를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마니는 우두머리의 산, 나라를 지키는 산, 지혜의 산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마니산은 그러한 의미를 총체적으로 지닌 산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 정설이 없으니 가능성으로 추측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대 중반 강화 지역주민들이 마니산을 실제 그들이 사용하는 마리산으로 바꾸자는 ‘지명 되찾기 운동’을 벌인 적 있다. 당시까지 마리산초등학교가 있었고, 교가에도 마리산이 등장한다. 어떤 기준으로 마리산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는지 정확히 파악할 길 없지만 역사적으로 마리산보다는 마니산이 실제 더 많이 등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으며, 이로 비춰볼 때 어느 특정단체가 조금 과잉주장한 것 아닌가 여겨진다. 결국 바뀌지 않았지만 마리산보다는 마니산이 조금 더 신성성이 있어 보인다. 

 

조선시대 16세기부터 제작된 고지도 <동람도> <동여비고> <천하지도> <대동여지도> <해좌승람> 등에는 전부 마니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제가 지명을 정리한     <조선지지자료>에도 마니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도 일부 주민들은 마리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마니산과 불가분의 관계인 정상 참성단도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정확히 파악할 길 없지만 역사서에 등장은 <고려사>부터이다. 태백산 천성단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숱하게 등장하는 것과는 사뭇 비교된다. 그렇다면 마니산 참성단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임시도읍으로 사용했을 때 하늘의 신성한 힘을 빌리기 위해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마니산에 참성단을 조성해서 외적을 물리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강화는 고려의 임시도성으로 사용했을 만큼 도읍지로서 모든 기능을 갖췄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가능성이다.

 

한 젊은 등산객이 함허동천 능선과 서해바다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강화도는 천혜의 요새이면서 토지가 비옥


마니산 정상 참성단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단군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마니산 제천단이라고도 한다. 자연석으로 기초를 둥글게 쌓고 그 위에 네모로 쌓았다. 아래 둥근 부분의 지름은 8.7m이며, 상단 네모의 1변의 길이는 6.6m의 정방형 단이다. 상방하원上方下圓, 즉 위가 네모나고 아래는 둥근 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생각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에 임금이나 제관이 참성단에서 제사를 올렸으며, 조선시대에도 하늘의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중략) 현재 참성단에는 매년 10월 3일 제천행사가 있으며, 전국체전 성화가 칠선녀에 의해 이곳에서 봉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열린다.’


조선은 고려의 마니산 유산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동국여지지> 에는 강화도의 형승을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토지가 비옥하니 큰 구릉과 평지가 있고, 식물이 풍성하게 자라니 콩, 보리, 벼가 자라기 적합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는 ‘강도는 천연의 험지이니 섬으로 성을 삼고 바다는 천연의 해자가 된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천연의 요새이면서 비옥한 토지를 지녀 자급자족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많이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니산에 참성단 중수비 조성과 함께 선비들이 유유자적 하며 음풍농월을 즐기는 장소로 참성단과 함허동천은 특히 인기 있었다. 많은 개인문집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니산 참성단 재현.
마니산 참성단에 오른 감흥을 읊은 조선시대 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문집에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한다.
‘단군께서 몸소 만들었다 전해지는/ 천 년 된 높은 제단 참성단에 올라왔네.// 발아래 피어나는 구름과 노을 보려고 왔는데/ 머리 위엔 해와 달만 걸려 있게 하였구나. (후략)’


마니산 정상 참성단에 올라 구름에 가려 석양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읊고 있다. 여말선초 이색도 참성단에 올라 시를 남겼다. 


‘긴 바람 나에게 불어 요대瑤臺(신선이 사는 곳)에 오르니/ 넓은 바다 먼 하늘이 만 리나 터졌네// 옷을 털고 이어 발 씻을 것도 없다/ 신선의 피리와 학이 공중에서 내려오는 듯하네.’ 

 

18세기 전기에 제작된 <천하지도>에도 강화 마니산 표기가 뚜렷하게 있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마니산에 올라 서해의 일몰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하다. 

시적 감흥도 절로 날 듯하다. 또한 마음도 정리하면서, 선사부터 근대까지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반도에서 몇 안 되는 장소다. 마니산은 1977년 일찌감치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마니산 산행은 크게 4개 코스로 나뉜다. 

계단로로 부르는 제1코스는 마니산매표소에서 1004계단을 거쳐 개미허리와 헐떡고개를 지난 정상 참성단에 오른다. 왕복 4.8㎞에 약 2시간 30분 소요된다. 

 

제2코스는 사실상 마니산 종주코스로 단군로에서 정상을 지나 함허동천까지 간다. 마니산매표소~단군로~372계단~정상 참성단~단군계단~헬기장~마니계단~바위능선~칠선교~칠선녀계단~함허동천로를 거쳐 함허동천매표소로 하산한다. 총 6.5㎞에 3시간 남짓 소요. 

 

제3코스는 단군로에서 정수사로 하산하는 총 5.5㎞에 3시간 30분 소요되는 등산로다. 마니산매표소~단군로~372계단~정상 참성단~단군계단~헬기장~마니계단~바위능선~칠선교~칠선녀계단~정수사로 암릉구간을 힘들게 거쳐 정수사매표소로 하산한다. 

계단이 싫다면 단군로로 정상에 올라가서 그대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서해바다의 일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총 7㎞ 남짓 3시간 이상 걸린다.

 

19세기 중반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도 마니산이 등장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1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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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추천, 12월엔 이 산!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C영상미디어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입력 2021.12.01 10:05

 

1 선자령仙子嶺(1,158m)


선자령은 엄밀히 따지면 고개가 아닌 봉우리다. 그러나 지형이 완만하고 여러 길이 만나는 곳이라 ‘령嶺’이라 불린다. 

강릉에서 보면 성벽처럼 긴 산줄기가 완만한 흐름으로 뻗어 있어, 어디를 오르더라도 내륙과 강릉을 잇는 길목(고개)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 신경준이 쓴 〈산경표〉에 ‘대관산大關山’이라 기록돼 있는데, 대관령이란 지명도 여기서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선자령은 겨울에 많이 찾는다. 완만해서 산행이 쉽고, 초원이라 개방감이 탁월하며 겨울엔 적설량이 많아 눈산행지로 인기 있다. 또한 새해 일출 산행지로도 천혜의 지형 조건을 갖췄다. 

 

절벽을 이룬 동쪽으로 막힘없이 시야가 터지기 때문. 날 맑으면 넓은 해안 평야지대와 나지막한 야산 뒤로 펼쳐지는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만날 수 있다. 

군데군데 서있는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이다. 그만큼 거친 바람이 분다. 

눈 속에서 하룻밤 보내려는 백패커들이 텐트를 세우느라 바람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2 운악산雲岳山(935m)


경기 5악 중 하나인 운악산은 아름다운 산세를 지녀 ‘경기의 금강’으로 불린다. 

한북정맥에서도 기운이 남다른 산으로 꼽히는 운악산은 전형적인 골산이다. 

동쪽 가평군 하면 일원의 미륵바위능선과 병풍바위는 기암절벽의 교과서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서쪽 포천군 화현면 일원의 신선대, 망경대 능선, 네모바위 능선 등은 기운찬 암릉의 전형이다. 

 

아기자기한 산행코스와 서울도심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점 등으로 등산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산 서쪽 기슭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돼 있고, 동쪽에는 많은 숙박업소와 맛집들이 들어서 있다는 점 또한 매력이다. 

암벽코스와 평탄한 등산로를 함께 지녀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산행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산 전체가 바위산이라 길이 아닌 곳은 위험하다. 

 

현등사 위 철사다리가 설치된 부근이나 정상 서쪽 아래 100m폭포 쪽은 간혹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니 주의해야 한다.

3 미륵산彌勒山(458m)


통영 미륵도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육지와 연결된 섬이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1년 4개월에 걸쳐 만들어진 터널로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이다. 예전 미륵도는 밀물 때면 섬이 됐다. 


미륵산은 한려해상의 전망대다. 정상에서 섬산만이 갖는 탁월한 개방감과 바다 경치가 펼쳐진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등산로는 거미줄처럼 조밀하게 나있다. 시내에서 가까운 용화사 광장으로 가장 많이 오른다. 

용화사 광장~관음사~도솔암~여시재~정상~용화사~용화사 광장 순으로 돌아 내려오는 코스. 총 4㎞ 에 2~3시간이면 들머리로 돌아온다. 

 

정상으로 이어진 산길은 가파른 바위 오름길이 연이어 나타나지만 고정로프와 철계단 등 안전시설이 군데군데 있어 특별히 위험한 곳은 없다. 바위지대인 미륵산 정상은 돌탑과 표지석, 너른 데크전망대가 있다. 


미륵도 낙조는 유명하다. 

섬 남단 끄트머리인 산양읍 미남리에 자리한 달아공원이 석양을 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도 해안 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다 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완만한 오솔길을 5분쯤 오르면 관해정觀海亭이 나온다. 

여기서 바라보는 일몰이 일품이다.

 

4 도봉산道峯山(740m)


세계 최고의 산 한 곳을 고른다면? 엄홍길 대장에게 물었다. “도봉산이지요!” 8,000m가 넘는 산 16곳을 오른 산악인이 1,000m가 안 되는 주말 산객들로 붐비는 ‘전철 산행지’에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도봉산 자락에서 자란 엄 대장이기에 팔은 안으로 굽을 수 있다. 그러나 산은 높이가 전부가 아니다. 도봉산은 낮지만 알차고 다채로운 모습을 지닌 명산이다. 

 

주요 산행 기점은 가장 북쪽의 안골유원지부터 시계방향으로 회룡사 입구, 원도봉유원지, 도봉유원지, 성황당, 우이동, 송추 등을 꼽는다. 특히 도봉산역에서 접근하는 도봉유원지 기점은 주말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찾는다. 

 

도봉산 등산로의 핵심은 포대능선길. 주봉인 자운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이 능선은 대공포진지인 포대砲臺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포대능선에서 자운봉(혹은 신선대)~칼바위~우이암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가장 도봉산다운 풍치를 맛볼 수 있는 곳. 

깎아지른 바위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조망이 감동적이다. 

반면 도봉산 서쪽 송추유원지 기점은 비교적 한적하고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Copyrights ⓒ 월간산.

 

12월의 갈 만한 산 5선!
글 박정원 편집장 사진 C영상미디어 입력 2019.12.04 09:47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단풍 들자 무섭게 낙엽이다. 떨어진 달력 마냥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쌓인다. 낙엽 밟자마자 겨울 추위가 몰려온다. 설악산은 벌써 첫눈이 내렸고 내장산·두륜산은 마지막 단풍을 불태우고 있다.

연말이다. 정리의 시간이고 마무리의 시간이다. 한 해의 잘잘못을 돌아보며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낙조·석양은 정리이고 마무리다. 장엄한 일출은 기운을 주지만 황금빛 노을은 위안을 준다. 정리와 마무리를 하고, 위안을 받기 위한 장소를 찾는다. 당연히 남도다. 굳이 남도가 아니더라도 황금빛 석양을 볼 수 있는 산이라면 어디든 간다.

12월의 명산은 그래서 석양·노을이 좋은 산으로 선정했다. 한반도 끝자락의 달마산과 그 북쪽으로 연결되는 두륜산은 서산대사와 초의선사로 유명하다. 해탈문도 있다.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초연해지라는 그 해탈이다.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한라산도 보인다.

변산은 사진작가들의 대표 낙조 출사지이다. 노을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서석대가 있는 무등산, 서해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가 보이는 서산 가야산, 높지는 않지만 정상 부근에 낙조대가 있는 선운산 등 어디든 한 걸음에 내달리고 싶은 명산들이다. 자세한 정보는 월간<山> 홈페이지san.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산
낙조대·월명암 노을 일품… 봉래·영주로 부르기도

변산邊山(508m)은 12월에 가장 많이 찾는다. 내변산에는 낙조대·월명암이 있고, 외변산에는 채석강과 적벽강, 하섬 등 바다에 비친 황금빛 노을과 함께 볼거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변산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삼국사기>에 변산이란 지명이 나오고, <삼국유사>에는 ‘백제땅에 변산이 있어 변한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변산을 영주산瀛洲山, 봉래산蓬萊山이라고도 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변산에 봉래구곡이 있는 것이다. 

 

고창의 방장산, 고부의 두승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꼽혔다. 다른 별칭으로 능가산楞枷山도 있다. 이는 석가모니가 대해보살에게 설법을 베풀었다는 산이다. 내변산에만 팔만구천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많이 회자됐고, 족보 있는 명칭도 몇 개나 된다.

이중환 <택리지>에는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높지는 않으나 골짜기가 깊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넓은 평지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조선시대 십승지 중의 한 곳이다. 

지금은 국립공원지역으로 출입금지다. 조선 선비들이 숱하게 찾았으며, 여러 문헌에도 그 기록이 그대로 전한다. 내변산·외변산 모두에서 낙조를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두륜산
산세가 바퀴같이 둥근 데서 유래… 해탈문 유명

두륜산頭輪山(703m)은 대흥사와 해탈문으로 유명하다. 물론 설악산부터 시작한 단풍명산 소개는 항상 남도 끝자락 두륜산으로 끝낸다.

단풍으로 유명한 도립공원이지만 그보다는 주봉인 가련봉을 비롯, 노승봉(685m),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 총 8개의 봉우리가 U자형으로 둘러싸고 중앙에 대흥사가 자리 잡은 형세가 볼 만하다. 이와 함께 해탈문을 한 번 걸어보는 것도 연말 분위기와 맞다.

대흥사는 원래 대둔사大芚寺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남현 편에 ‘(두륜산)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이 산에 오르면 제주의 한라산과 서로 바라보인다. (대둔사) 두륜산에 있다. 절 앞에 신암·사은·선유 세 중의 부도가 있다’고 나온다. 이들은 고려시대의 승려였으며, 조선시대 들어서는 서산대사가 의병을 일으켜 활동함과 동시에 부도가 대흥사에 있다. 

 

대둔사라는 이름이 대둔산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조선 초기까지 대둔사로 사용한 기록을 보아 서산대사 이후 명칭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서산대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대흥사로 개명됐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두륜의 뜻은 산 봉우리가 바퀴같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 ‘둥근머리산’ 또는 산정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딴 이름이라고도 한다.

 


무등산
서석대 반짝이는 빛과 어울린 황금빛 노을은 환상적

무등산無等山(1,186.8m)은 무돌, 무당산, 무정산, 무진악, 무악, 무덤산, 서석산 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통일신라 소사로 지정된 뒤부터 많은 사연을 갖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국사기>권32 잡지 제사조에 무진악武珍岳으로 처음 등장한다. 무등산이란 지명은 <고려사>에 처음 나온다. 권71 백제조에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의 큰 읍인데, 이 산에 성을 쌓으니… (후략)’이라는 내용이 무등산 지명에 대한 첫 기록이다. <고려사지리지>에는 서석산도 함께 나온다.

지명의 변천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역사적 사건과 지리적 조건·구조를 동시에 봐야 한다. 그 사연만 분석해도 산의 역사가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무등산의 경우, 주상절리가 있는 정상 서석대와 입석대가 지명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한다. 

‘빛고을’이란 수식어도 서석대에서 유래했다. 주상절리 서석대가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고 한다. 반짝이는 상서로운 돌이 있는 동네란 뜻으로 ‘빛고을’이란 명칭이 붙은 것이다.

서석대에 반짝이는 빛과 어울린 노을은 환상적이다. 연말 분위기에 딱 어울린다. 지난 2013년 3월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선운산
낙조대 오르는 도솔암 풍광 장관

선운산禪雲山(336m)은 주로 선운사의 뒷산인 도솔산(336m)을 일컫지만 실제로는 1979년 전라북도에서 지정한 도립공원 내의 경수산(444m), 청룡산(313m), 구황봉(285m), 개이빨산(355m) 등을 두루 지칭한다. 원래 도솔산이 일반적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있어 선운산이라 널리 불리게 됐다.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선운산) 禪을 仙으로도 쓴다. <고려사> 악지에 선운산곡이 있는데 백제 때 장사가 전장에 나갔다가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그리워서 부른 노래다’라고 나온다. 산은 일찌감치 알려진 듯하다. 천연기념물인 봄 동백과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단풍 또한 탁월하다. 11월 초 절정에 이르는 애기단풍을 만날 수 있다.

일몰 광경으로 유명한 낙조대,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노닐었다는 선학암 외 봉두암·사자암·만월대·천마봉·여래봉·인경봉·노적봉 등 이름난 경승지가 많다. 일몰이 아름다운 낙조대 오르는 길의 천마봉 자락에서 본 도솔암 풍광은 장관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못 내려올지도 모른다.

 


서산 가야산
정상에서 서해 노을 그대로 보여… 옛날 중국과 교류 관문

서산의 가야산伽倻山(678m)은 평야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산이 예로부터 호서 제일의 산으로 평가받는 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자락이 동·서쪽으로 넓게 펼쳐져 이른바 ‘내포’를 품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내포란 육지 깊숙이 들어온 포浦를 말한다. 과거 안면도와 홍성 사이의 바닷물이 가야산 자락까지 드나들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내포는 통칭 가야산 일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됐다.

<택리지>에 ‘충청도에서 내포가 제일 좋은 곳이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이백 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는데, 서해가 쑥 들어온 곳이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들 가운데 또 한 개의 포가 있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아울러 내포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가야산은 예로부터 서해로 연결되는 포구로 물산이 드나들었고, 바닷길을 통해 중국의 문물이 들어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은 중국과의 문물교류가 낳은 걸작으로 불린다.

서해 바다로 넘어가는 노을이 산 정상에서 그대로 바라보인다. 연말에 산꾼들이 찾는 대표적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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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갈 만한 산 4선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C영상미디어

입력 2020.11.30 10:27

 


1. 태백산 (1,567m)

산이 높되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아 초보자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산행 시작부터 천제단까지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태백산은 겨울 눈꽃으로 유명하다. 적설량이 많고 바람이 세차기로 유명한데 몰아치는 바람이 눈을 날려 설화를 만든다.

 

연말쯤이면 어김없이 태백산은 두툼한 눈으로 뒤덮이며, 간혹 밤새 안개바람이나 눈보라가 몰아친 뒤면 온 능선이 하얀 설화로 뒤덮인다. 태백산 최고봉은 장군봉이지만 사람들은 1,560.6m봉 위의 천제단이 선 곳을 정상으로 여긴다.

 

태백산릉의 제단은 모두 세 개다.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 정상에 있는 것이 상단 장군단이며, 그 아래로 중단인 천제단과 하단이 차례로 늘어섰다. 제단의 크기로 보나 역사로 보나 천제단이 이 세 개 단 중 으뜸이다.

 


2. 민주지산 (1,242m)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 경북 김천시 세 개 도의 접점에 위치한 산. 높이는 1,242m이다. 육산으로 산세가 유순하고 넉넉하다. 정상 좌우로 삼도봉·석기봉·각호산을 거느린 능선길 조망이 뛰어나 겨울 눈 산행지로 인기다.

 

산이 높아 계곡이 아름다운 골짜기도 여럿 거느리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물한계곡이다. 한여름에도 한기가 돈다는 물한계곡은 낙엽송이 쭉쭉 뻗어 있어 운치 있고 길이 완만해 민주지산을 찾는 대부분의 산객은 이곳을 기점으로 잡는다.

 

계곡 초입에 차를 두고 삼도봉과 석기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하산하는 능선 산행이 일반적인데 각호산까지 17㎞ 원점 종주 산행을 이어갈 수도 있다. 삼도봉 정상과 바로 밑 헬기장은 조망이 뛰어나 백패커들에게 인기가 있다.

민주지산 이름의 유래에 설이 분분한데 산세가 민두름하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그중 하나.

 


3. 달마산 (489m)

암릉과 억새와 다도해. 산행은 약 7㎞로 3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지만 볼거리가 넘쳐 남해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능선의 모양새는 기암괴석이 들쭉날쭉, 바위 전시장을 옮겨 놓은 듯하다.

서쪽 골짜기에 신라 경덕왕(749년) 때 세워진 미황사가 있다. 절 뒤편으로 달마산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석양 무렵 응진전에 서면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낙조가 마중나온다.

 

산을 오르는 도중 돌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산행이 쉽지는 않으며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바위산행이 부담스럽다면 달마산둘레길도 있다. 달마고도는 미황사의 큰바람재, 노랑지골, 몰고리재 등 달마산의 주 능선을 아우르는 17.74km 둘레길이다. 달마산에 전해 오는 옛 12개 암자를 잇는 순례코스로, 옛 사람들이 걷던 길을 살려 만들었다. 4개의 길로 구성되어 있고, 한 바퀴 도는 데 6시간 걸린다.

 


4. 덕숭산 (495m)

충남 예산 덕숭산은 내포 땅 명당자리다. 건너편 가야산은 물론 도고산 금오산(예산) 봉수산 오서산 백월산 팔봉산 삼준산 등 내포 지방 모든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덕숭산은 명찰 수덕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수덕산이라고도 불린다.

 

덕숭산은 남쪽을 향해 양편의 등성이가 두 팔을 벌려 가운데 바위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가운데 골짜기 아래쪽에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덕숭산은 호서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했다. 산 전체에 숲이 울창하고 잘 생긴 노송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숲에 둘러싸인 산 한가운데의 골짜기는 깊고 가팔라 낮에도 해를 보기 어렵다.

 

이 경관이 좋은 덕숭산 남면 일대는 거의가 수덕사 경내로 산 여기저기에 정혜사, 정월사, 금선대, 향운각, 소림초당, 비구니 암자인 견성암, 환희대, 그리고 만월당, 선수암, 운수암, 극락암, 만공탑, 관음보살상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수덕사에서는 근대 한국 선불교를 중흥 시킨 경허, 만공 등 걸출한 스님들의 자취를 만날 수 있다.

 

[12월 마운스토리] 서산 가야산

넘어가는 해를 잡아 둘 길 없어… 가야산을 깎아 내고 싶어라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입력 2020.12.21 09:43 | 수정 2020.12.21 09:55

백제 때부터 불교 번성한 산인 듯… 동남쪽은 토산, 서북쪽은 돌산

가야산 정상에서 맑은 날이면 서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연기 모래 구름 나무 사이로 조그만 점 하나 指點烟沙霧樹間

조각배가 가로질러 만조에 돌아오네 小舟橫折晩潮還

서산에 급히 넘어가는 해를 잡아둘 길 없어 無緣得駐西飛日

만 겹 가야산을 깎아내고 싶어라 欲剗伽倻萬疊山

 

조선 말기 성리학자 조긍섭이 쓴 칠언율시다. 가야산을 깎아내서라도 넘어가는 해를 잡고 싶은 작가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 해를 정리할 시점이 되면 누구나 가는 세월을 붙잡고 마무리 하지 못했던 일을 끝내고 싶지 않을까. 동해의 산들이 일출을 보는 산이라면 서해의 산들은 노을에 비친 일몰을 보는 산이라 할 수 있다. 서해의 일몰을 보는 산 중에 대표적인 명산이 바로 서산 가야산伽倻山(677.6m)이다.

 

서산 가야산은 합천 가야산과 한자도 같다. 두 산을 서로 비교할 만한 내용이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론에 나온다. 복거론은 점을 쳐서 살 만한 장소를 고르는 것을 말한다.

 

‘해미의 가야산은 동남쪽이 토산이고, 서북쪽은 돌산이다. 동쪽에 있는 가야사伽倻寺 골짜기는 아주 먼 옛날 상황象王의 궁궐 터이다. 서쪽에 있는 수렴동은 바위와 폭포가 빼어나고 아름답다. 북쪽에 있는 강당동과 무릉동도 수석이 아름다우며, 아울러 마을과 아주 가까워서 머물러 살 만하다. 합천 가야산보다는 못하나 바닷가의 빼어난 경치를 독차지하기에는 충분하다.’

 

‘해미의 무릉동에 대대로 터 잡고 사는 부자들이 많다. 또한 이웃한 여러 고을도 뱃길이 편리해 경성의 사대부들이 모두 여기에서 수송해 가는 물산을 바라보고 살고 있다. 깊은 산이나 골짜기가 없기는 하나 바다 모퉁이의 궁벽한 지역이기 때문에 병란이 애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가장 좋은 복지로 일컬어진다.’

 

원효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가야산 정상이 길게 뻗어 있다.


서산 가야산이 합천 가야산보다 풍광으로는 조금 못할 수 있지만 바닷가를 끼고 있는 것을 장점으로 치면 교통과 풍부한 물산면에서 오히려 완전 내륙인 합천 가야산보다 더 나을 수 있다.

 

사찰 창건연대도 서산 가야산 주변에 있는 수덕사(6세기 후반 추정)나 개심사(651년 추정)가 합천 해인사(802년)보다 200여 년이나 빠르다. 신라보다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백제가 가야산과 상왕산을 중심으로 번창시켰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가야산이란 지명도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불교의 4대 성지 중 한 곳이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인 인도 부다가야 근방에 위치한 석가모니의 주요 설법처 중의 한 장소로 신성시 되는 가야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세계 어느 곳이든 가야산이란 지명은 십중팔구 불교와 관련 있다.

 

원효봉 8부 능선 동굴 안에 있는 금술샘.


서해 일몰 빼어난 경관 독차지

 

가야산 정상에 올라서면 서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는 해를 산을 깎아서라도 붙잡아 두고 싶지만 오늘이 가야 내일이 있듯 못내 아쉬운 심정으로 가야산 정상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2020년 경자년 한 해를 보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예로부터 충청도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내포에 바로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 서쪽은 서해 바다이고, 북쪽은 대진大津(지금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인접해 있다. 여기는 서해가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가야산 동쪽은 큰 들이 펼쳐져 곡창지대를 이룬다. 들판 가운데 큰 포구가 있어 유궁진由宮津이라 한다. 유궁진은 밀물이 가득 차올라야만 배를 운항할 수 있다.

 

가야산 앞뒤로 열 개의 고을이 있어 다 함께 내포라 한다. 가야산이 중심이다. 10개의 마을은 해미, 안면도, 태안과 서산, 당진, 아산, 홍주와 덕산, 예산, 신창이다. 토지는 비옥하고 물가나 평지는 평탄하고 드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흔해 부자와 사대부도 많았다. 산천은 평탄해 좋고, 드넓어 활짝 트였으나 멋지고 빼어난 느낌이다. 이와 같이 가야산과 그 주변은 풍광이 좋고 물산이 매우 풍부해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살았고 부유했다.

 

그 풍부한 물산의 중심에 있는 가야산은 일찌감치 고려시대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고려사지리지>에 ‘이산현은 본래 백제의 마시산군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군이 되었다. 현종 9년(1018)에 홍주에 내속했다. 뒤에 감무를 두었다. 가야산이 있다’고 나온다.

 

서산 가야산은 서쪽은 서해, 동쪽은 평야로 물산이 풍부해 예로부터 부자가 많았다.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이 바로 위에 있어


이 지역이 불교가 번창한 지역이라는 사실은 주변 산들의 명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야산 윗자락 능선이 상왕산이다. 일부 문헌에서는 가야산의 옛 지명이 상왕산이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고 가야산보다 조금 위에 있다.

 

상왕은 불교 <열반경>에 따르면 부처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히 부처가 설법한 장소의 이름을 따와 가야산이라 칭했고, 부처를 의미하는 상왕을 따와 바로 위의 산을 상왕산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상두산이나 상왕산도 마찬가지로 십중팔구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지금 개심사나 서산 마애삼존불이 상왕산 언저리에 있다.

 

불교의 번창은 곳곳에 제작된 마애불과 불상의 유적으로 알 수 있다. 백제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불삼존불상은 백제 마애불상의 백미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마애불로 평가받는다. 또한 원효가 중국 가는 길에 들렀다는 원효굴과 원효암·의상암 터, 원효봉도 지금까지 남아 있어 가야산의 주요 볼거리다. 옛날에는 대진을 통해 중국으로 가는 길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최단거리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들어서 가야산은 명확히 명산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해미현에 ‘상왕산은 여미현 동쪽 4리에 있고, 가야산은 현 동쪽 11리에 있는데, 상왕산과 서로 연해 있다’고 설명한다. <세종지리지>에도 ‘가야산은 덕산에 있고, 상왕산이 진산이고, 모두 사전祀典에 올라 있다’고 나온다. 국가 주도적으로 산신제나 기우제를 지내던 산이라는 의미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지리전고 산천의 형승에도 ‘해미의 가야산은 상왕산과 서로 연해 있고, 동쪽 가야사가 있는 동학洞壑(동굴과 계곡)은 곧 옛날 상왕의 궁궐이 있던 곳이다. 서쪽에 수렴동이 있는데 산악과 폭포가 매우 기묘하다. 북쪽에 강당동·무당동이 있는데 수석이 또한 아름답다’고 <택리지>와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가야산 자락에 상왕의 궁궐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상왕은 백제의 후예이고, 가야산이 상왕국의 옛 도읍이라고 한다. 전설의 진위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무너진 보루와 망가진 성채는 산마루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현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상왕의 전설은 후대의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고, 사실은 부처를 상징하는 의미로 명명됐을 수 있다.

 

서산 가야산과 관련한 가장 명망 있는 인물로는 신라 말기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는 고운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관리를 하다 귀국한 뒤 무너져가는 신라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이 실패하자 중앙에서 물러나 서산 태수로 발령받아 낙향한다. 최치원은 서산 태수로 2년여 간 지내며 흔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동람도>에도 가야산이 명확히 표시돼 있다. / <산경표> 금북정맥에 가야산에 포함돼 있다.


조선 중기 백담 구봉령도 서산 가야산을 빛낸 인물 중의 한 명이다. 백담은 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으며, 기대승에 비견될 정도로 시문에 뛰어난 인물이다. 그가 쓴 <백담집>에 가야산 관련 칠언절구와 칠언율시를 남겼다. 칠언율시로는 ‘次洪州軒韻送州牧崔復初別차홍주헌운송주목최복초별’이란 제목이 있다.

 

‘가야산 푸른 빛 기둥 밖에 가득하고 倻山翠拂軒楹外

불어난 바다 물빛 책상 앞에 어른거리네 漲海光吹几案前

공사 적어 송사하는 뜰에 풀 우거지니 草滿訟庭公事少

술 가운데 즐거움은 청주와 탁주라네 酒中歡趣聖和賢’

 

나중에 영의정을 지낸 목사 최복초를 전별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지은 시인데, 탁주와 청주를 예찬한 구절이 재미있다. 하긴 당시엔 청주와 탁주뿐이었겠지만 비교한 내용은 지금도 읊을 만하다.

 

가야산 정상에 흉물처럼 우뚝 솟은 송신탑이 있다. 가야산의 서북쪽은 돌산이지만 동남쪽은 토산인데 북쪽 능선에서 내려가고 있다.


원래 당나라 이백이 달 아래에서 혼자 술 마시면서 읊은 감흥을 노래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이문청비성已聞淸比聖 복도독여현復道獨如賢’이란 구절이 나온다. ‘청주는 성인과 같다는 말을 들었고,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말하네’이다. 성인과 현인이 되려면 어느 정도 청주와 탁주를 마셔야 할까.

이와 함께 ‘서산 가는 중에 가야산을 바라보며瑞山道中東望伽倻山’라는 제목의 칠언절구도 남겼다.

 

‘가야산 푸른 숲이 허공에 떠있고 伽倻積翠浮層空

겹겹 흰 구름이 골짝에 자욱하네 萬疊白雲迷洞壑

신선 길 찾으려 해도 아득히 자취 없으니 欲尋仙路杳無蹤

어떻게 바람에 생학을 타고 오르겠는가 那得天風駕笙鶴’


가야산을 생소를 불다가 학을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그 정도 명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고의 극찬이다.

서산 가야산이 고대문헌뿐만 아니라 16세기부터 발행된 옛 지도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정도면 고대부터 널리 알려진 명산이라는 사실엔 틀림없다.

 

서산 가야산은 16세기부터 제작된 지도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산이다.


정상 데크 건립 후 금북정맥 등산로 희미해져

지금은 덕숭산과 가야산 일대를 합쳐 지난 1973년 일찌감치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덕산은 산 이름이 아니고 덕숭산과 가야산 일대에 있는 덕산의 행정지명을 따서 명명됐다.

등산로는 ▲북쪽 상왕산 자락 개심사나 보원사지 등을 들머리 삼아 능선종주로 길게 가야산을 지나 한치고개를 거쳐 덕숭산 수덕사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고 ▲동쪽 덕산면 상가저수지를 기점으로 원효봉~가야산~석문봉~옥양봉을 거치거나 그 역방향으로 원점회귀하는 방법 ▲ 옥계저수지를 기점으로 원효봉 가야산을 거쳐 상가리로 하산하는 방법 등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는 상가리에서 옥양봉~석문봉~가야산~원효봉을 거쳐 원점회귀로 하산하는 방법이다. 몇 년 전 예산군에서 가야산 정상 데크를 만들면서 금북정맥 능선종주하는 등산로가 데크에 묻혀 버렸다. 그래도 가끔 종주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다소 위험하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확 트여 서해의 노을빛 석양을 만끽할 수 있다. 서산 가야산이 한 해를 보내는 12월의 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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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째 주 추천산행지] 무등산, 눈꽃 핀 서석대·입석대 절경

월간山 편집실

입력 2020.12.02 11:08 | 수정 2020.12.02 14:21

사계절 산행지 꼽혀… 고려까지 국가에서 제사


무돌, 무당산, 무정산, 무진악, 무악, 무덤산, 서석산 등이 전부 현재 무등산을 가리키는 과거의 지명들이다. 이름이 많으면 그만큼 사연도 많다.

 

무등산無等山(1,186.8m)이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건 통일신라가 소사小祀로 지정되면서부터. <삼국사기>권32 잡지 제사조에 무진악武珍岳으로 소개된 소사가 지금의 무등산이다.

 

무등산이란 지명은 <고려사>에 처음 나온다. 권71 백제조에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의 큰 읍인데, 이 산에 성을 쌓으니… (후략)’이라는 내용이 무등산 지명에 대한 첫 기록이다. <고려사>지리지 권11 해양현조에는 ‘무등산이 있다. 일명 무진악이라고 하고 서석산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 소사를 지내고 고려 때 국제를 올렸다’고 돼 있다.

무등산과 함께 서석산이란 지명도 동시에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광산현 산천조에는 ‘무등산은 (광산)현의 동쪽 10리에 있는데 진산이며, 일명 무진악 또는 서석산瑞石山이라고도 한다. (중략) 이 산 서쪽 양지 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 개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높이가 백 자나 된다. 산 이름 서석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후략)’라고 기록돼 있다.

 

전라도의 산은 3곳이 고대 문헌에 전한다. 지리산(중사 남악)과 월출산(소사), 그리고 무등산이다. 지리산이 전라도의 산으로 기록된 이유는 바로 산신을 지낸 제단이 노고단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에 지리산, 금산 등 전국의 명산을 다니며 두루 산신기도를 올린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무등산에도 들른 것으로 전한다. 무등산 산신이 이성계의 기도를 거부하자 이성계는 무등산 산신을 귀양 보내고 이 산을 무정한 산이라 하여 무정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무정산은 왕명에 불복한 산이라는 의미다. 무등산의 ‘불복’ 이미지는 후삼국부터 고려 중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무정산에 이어 무당산이란 지명도 있다. 증심사 뒤쪽 ‘무당골’ 골짜기에서 무당의 움막이 1980년대까지 군데군데 있었다. 곳곳에서 내림굿이 펼쳐졌다. 무당들의 활동으로 인해 무등산은무당산으로 불렸으며, 또한 무등산의 신령스러운 기운과 영험함을 믿는 민중들의 믿음에 따라 무당산이라 명명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명의 변천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역사적 사건과 지리적조건·구조를 동시에 봐야 한다. 무등산의 경우, 주상절리가 있는 정상 서석대와 입석대가 지명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한다. ‘빛고을’이란 수식어도 서석대에서 유래했다. 주상절리 서석대가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고 한다. 반짝이는 상서로운 돌이 있는 동네란 뜻으로 ‘빛고을’이란 명칭이 붙은 것이다.

 

무등산은 지난 2013년 3월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정되자마자 탐방객 순위 상위권으로 올랐다. 2016년 총 탐방객은 357만1,712명. 산악형 국립공원으로는 북한산(609만여 명), 설악산(365만여 명)에 이어 세 번째다. 지리산(288만여 명)보다 많다.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억새와 단풍, 겨울 눈꽃 등 모두 볼 만하다. 특히 서석대와 입석대, 규봉암에 있는 눈꽃은 가히 절경이다.

 

증심사.


주변 관광지

증심사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무등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다. 통일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澈鑒禪師가 9세기 중엽에 창건했다. 증심사의 유물로는 오백전五百殿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 131호),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호), 범종각, 각층의 4면에 범자가 새겨진 범자칠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무진고성 광주시 북구 두암동 일대에 있는 산성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진고성은 무등산 장원봉 일대에 조성된 석성으로 백제시대 축성법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현재까지 무진고성의 정확한 성격은 규명되지 않았으며 지역 대학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산수오거리에서 원효사 가는 도로 옆에 무진고성이 복원되어 있다.

 


맛집·별미·특산물

무등산 수박 무등산 수박을 재배하려면 강한 광선과 높은 온도, 긴 일조시간 등의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이런 천혜의 조건 속에서 자란 무등산 수박은 특이한 향기와 맛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옛날 임금에게 진상되던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보리밥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무등산보리밥’이다. 무등산 자락의 증심사로 향하는 길목에 보리밥집들이 모여 있다. 무등산을 등산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보리밥에 각종 채소와 제철 나물들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먹는다. 무등산보리밥뷔페(062-232-9116), 쉬어가는보리밥집(062-222-0208), 온천할머니집(062-225-0776) 등.


교통 정보

광주 시내에서 증심사 집단지구로 운행하는 운림35, 첨단09, 수완12, 운림50, 운림51, 운림54, 지원152번 버스를 이용해 증심사 주차장에서 하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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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걷기 좋은 길 >>>https://blog.daum.net/koreasan/15607493

 

12월에 걷기 좋은 길

월간산 추천, 12월에 걷기 좋은 길 BEST 4 글 서현우 기자 사진 조선일보DB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입력 2021.12.01 10:05 1. 인천 해안누리 삼형제섬길 삼형제섬길은 인천 영종도 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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