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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승’ 명산 ②]오대산 소금강·구룡령, 무릉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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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0.

[‘한국의 명승’ 명산 ②]오대산 소금강·구룡령, 율곡이 天遊·鏡潭이라 부른 무릉계, 그리고 만물상…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입력 2021.01.19 09:44


삼라만상 형상의 암벽 이어져, 미수 허목 석각도 남아… 구룡령옛길도 걸을 만.

 

마의태자가 군사를 일으키기 위해 훈련하다 쉬었던 바위로 전하는 청학동 소금강 식당암 옆으로 무릉계곡이 흐르고 있다.


청학산, 아니 오대산五臺山(1,563.1m)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명산이며, 그 동쪽 자락에 있는 소금강은 한국의 명승 제1호이다. 정식 명칭은 명주 청학동 소금강溟州 靑鶴洞 小金剛. 1970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이란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가장 먼저 지정됐다. 이어 2007년엔 오대산 서쪽 끝자락에 있는 구룡령옛길이 명승 제29호로 지정됐다. 따라서 오대산에는 청학동 소금강과 구룡령옛길 두 개가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소금강계곡의 명소 구룡폭이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듯 구불구불 흘러내린다. 사진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제공


문화재보호법에서 명승은 ‘경치 좋은 곳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경관만 좋은 게 아니고 역사·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정의를 했다.

 

영조 때 문사 이현운은 1761년 쓴 글에서 ‘무릇 명승이 명승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반드시 한 시대의 풍류가 있는 문사들이 시로 읊고 글로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제야 비로소 명승을 널리 알리고 후세에까지 날릴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명승은 시대를 걸쳐 시인묵객들이 찾고,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으며, 경관이 뛰어난 곳이라 할 수 있다.

 

오대산 만물상에 있는 사람 옆모습을 닮았다는 귀면암.


그렇다면 청학동 소금강은 명승 제1호로서 어떤 역사·문화적, 예술적, 경관적 가치가 있을까. 문화재청에서 소금강을 명승으로 지정할 때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강원도 오대산에 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산이 깎이고 계곡이 깊어지면서 만들어진 경치가 아름답다. 원래 이름은 청학산이었는데, 율곡 이이 선생이 이곳의 경치가 금강산을 닮아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의 소금강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는 1,000년 전 신라 마의태자가 생활했다는 아미산성을 비롯해 구룡연못, 비봉폭포, 무릉계, 백마봉, 옥류동, 식당암, 만물상, 선녀탕 등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후략)’

 

술 잘 마시고 시 잘 읊었다는 조선 선비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이능계 바위가 무릉계에 석각으로 남아 있다.


명승 지정 이유에서 언급됐다시피 소금강은 율곡 이이의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로 인해 조선 선비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 이전까지 청학동이나 청학산, 소금강 관련 유산기나 문헌을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강릉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양과 강릉을 주로 오가던 길에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방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한양과 명주(지금의 강릉)를 오가던 길이 바로 오대산 왼쪽 끝자락에 있는 구룡령이다.

 

율곡은 유산기에서 지금 식당암이라 부르는 바위를 비선암이라 하고, 전체 골짜기를 천유동天遊洞, 절벽 밑에 있는 못을 경담鏡潭이라 하고, 산 전체를 전설 속의 새, 청학靑鶴이 깃들어 사는 선경이라 하며 청학산이라 명명했다. 청학 형상을 한 바위는 학유대라고 했다. 또한 무릉계와 신선대 등도 등장한다. 13km에 이르는 무릉계 뒷부분에 있는 만물상은 명승으로 지정된 배경이 된 소금강의 하이라이트.

 

소금강 백운대 바위가 상류에 있다.


허균의 문집에도 신비의 산 청학산 나와
<홍길동>을 쓴 허균의 고향도 강릉.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 제2권에 청학산에 대해 언급된다.

‘청학산은 봉우리와 골짜기의 아름다운 경치가 봉래산(금강산)과 비슷하다. 한쪽에는 청학이 와서 살고 있으며, 그 안에는 구룡연이 있는데 바로 오대의 동쪽이다.’

 

소금강 입구에 들어서면 무릉계라는 지명이 눈에 들어온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같은 무릉계곡이다. 초입 부분을 조금 지나 직경 5m가량 되는 타원형 바위에 二能契이능계, 詠春臺영춘대, 小金剛소금강이라 새긴 석각이 있다. 이능계는 두 가지 잘 하는 계모임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명주에 살던 술 잘 마시고 시 잘 읊는 선비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이능계 회원들의 명단이 바위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영춘대는 이들이 봄에 와서 노래를 읊었다는 널찍한 바위라는 뜻이다. 이능계 위에 회남계會南契도 나온다.

 

명승 청학동 소금강의 하이라이트인 삼라만상의 형상을 했다는 만물상.
회남계 위의 계곡은 별세계다. 마의태자의 전설이 서린 식당암, 아니 비선암이고 그 뒤 산으로 촉운봉이 있다. 율곡이 언급한 천유동과 경담, 그리고 청학동이 펼쳐진다. 율곡은 당일 비가 와서 여기서 돌아가지만 이후 소금강의 진수가 이어진다.

 

구룡폭은 아홉 개의 폭포가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한다. 구룡소에서 나온 9마리의 용이 폭포 하나씩 차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제1폭을 상팔담, 제6폭을 군자폭, 제9폭을 구룡폭포라 한다. 제8폭 하단 반석에 미수 허목이 쓴 ‘九龍淵구룡연’이란 전서체의 석각이 있다. 미수는 바위 한 쪽에 ‘醉仙巖취선암’이란 글자도 새겨놓았다고 전하지만 찾을 수 없다.

 

상류 쪽으로 조금 더 가면 만 가지 형상의 암벽이 그려진 만물상이 나온다. 사람의 옆모습과 귀를 닮았다는 귀면암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옆으로 삼라만상의 온갖 형상의 암벽이 계곡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크고 작은 형상을 조목조목 뜯어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형상이지만 크게 봐도 또 하나의 형상을 이룬 듯하다. 그러니 만물상이라 붙여졌겠지만….

 

전설 속의 새로 알려진 청학의 형상으로 알려진 학유대도 무릉계곡에 있다.


그 위로는 식당암보다 더 넓은 백운대가 펼쳐진다. 크고 흰 바위가 구름같이 공중에 붕 떠 있고, 주변은 넓은 반석이어서 명명됐다. 절묘하게 작은 돌멩이가 자신보다 몇 배가 더 큰 바위를 떠받들고 있다. 보이는 바위들이 전부 볼 만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작은 폭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낙영폭포를 끝으로 무릉계곡은 노인봉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다.

 

무릉계곡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만 해도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율곡 이이와 미수 허목, 그리고 그들이 남긴 석각으로 역사·문화적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식당암과 아미산성에 전하는 마의태자와 그 군사들이 지닌 전설적 가치까지 더한다. 만물상과 학유대, 식당암(비선암)이 보여 주는 경관적 가치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이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예술적 가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계곡보다 길면서 다양한 형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소금강 만물상 무릉계곡은 명승으로 지정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무릉계에 회남계 바위도 있다.


백두대간 넘는 구룡령 해발 1,000m 넘어

명승 제29호 구룡령옛길은 문화재청에서 지정사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옛길로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명칭에서 유래하듯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라 하며,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영동지방 구룡령옛길 입구는 마을에서 시작한다.


옛길 입구에는 굽이져 흐르는 계곡이 있고, 길의 중간 중간에 길의 위치를 표시하는 횟돌반쟁이, 묘반쟁이, 솔반쟁이 등이 자리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옛길 걷기의 흥미를 더해 주고 있다. 또한 구룡령옛길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어 일대 주민들이 강제 징집됐던 애환의 역사가 서린 철광소와 케이블카가 남아 있고, 옛길 길가에는 경복궁 복원 당시 사용되어 밑동만 남아 있는 소나무 거목 흔적이 남아 있는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사의 역사가 함께 잔존하여 역사적 가치가 큰 소중한 명승지이다.’

 

이 고갯길이 백두대간을 넘어 한양으로 오는 길목이었다. 걷기길이라고 하지만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1,089m이다. 웬만한 산보다 높다. 구룡이 승천하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해서 명명된 구룡령 길은 1874년 개통됐다. 걷기 좋아하는 사람은 옛날을 떠올리며 꼭 한 번 가볼 만한 길이다. 영동지방 구룡령 입구에 마을이 있고 영서로 내려서도 마을이 나온다.

출처 : 월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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