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천

거친 호흡 몰아쉬며 바람 저편 굽이치는 산맥 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

李文吉의 감동 산문선 말 없는 山 너머 날은 저물고 /시인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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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음악

2022. 2. 21.

[화제]
老시인 李文吉의 감동 산문선
말 없는 山 너머 날은 저물고…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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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산문집 간행… 평생 시집 14권, 수필집 3권 펴내
⊙ 단조로우며 서정적인 詩語, 잔잔한 두근거림 느낄 수 있어
⊙ ‘나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이 있다. 비밀이 너무 많아 말 못 하겠다’

 

  노시인 이문길(李文吉·1939~)이 산문집 《날은 저물고》(북랜드 刊)를 펴냈다. 시집 겉장엔 아무 디자인이 없다. 제목과 시인 이름, 출판사 이름이 전부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책을 내고 시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러나 수줍은 듯 “(책을) 내고 나니 후회가 밀려온다. 괜스레 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얼마나 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산문 역시 별다른 기교 없이 일견 무덤덤해 보인다. 단아하며 서정적인 시어, 읽고 나면 마음에 긴 추를 달아놓은 듯 묵직하고 뭉클하게 감동이 밀려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언젠가부터 감동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인스턴트 같은, 헝겊으로 덧대어 꿰맨 가짜 가슴을 진짜 가슴인 양 달고 살아가지만 이 산문집을 읽다 보니 멎었던 심장에 피가 돌면서 잔잔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기자는 산문 몇 편을 《월간조선》에 소개하고 싶은데 허락을 구하지 못했다. 허락을 구하면 “말라고예(뭐 할려고)”라고 거절할 것 같았다. 책이 좀 팔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편을 소개한다.
 
  기자는 《월간조선》 2020년 6월호에 ‘여든둘 감동 시인 이문길’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는 학창 시절을 대구서 보내고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수료했다.

산골짝 외딴집에 살며 아내가 채소 반티(함지) 장사로 돈을 벌어 1981년 첫 시집 《허생(許生)의 살구나무》를 펴냈다.

평생 시집 14권, 수필집 3권을 냈다.

몇 해 전 파킨슨병을 앓던 아내 홍노미(洪老美)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랫동안 아내를 보살펴왔다.  
 
  경비원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공직생활 14년, 개인회사 8년을 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은 자식 다섯 얻은 것뿐이었다. 고향에 돌아와 선산 아래를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고 브로크 집을 짓고 살아가자니 아무래도 어려워 할 수 없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러 가게 되었다. 경비를 직업이라고 나서는 날 아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아직도 고마워하던 아내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그로부터 고향에서 5년, 타향에서 7년을 경비 생활을 했다.
 
  첫 월급을 받는 날 나는 월급이 너무 적어 놀랐다. 청소부보다 적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일했다. 주민들은 모두 나를 좋아하고 경비원들도 나를 좋아했다.
 
  나는 주민들이 버리는 그 어떤 것도 나누어 가졌고 같이 근무하는 분에게 양보했다.
 
  밤이면 밖에 나와 하늘을 살피고 시를 썼다. 나에게는 시 쓰기에 그만한 직업이 없었다. 내가 처음 근무하던 곳은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 학기가 바뀔 때나 이사 갈 때 버리는 책이 참으로 많았다. 나는 그때 많은 책을 수집했다. 세계문학전집부터 철학서적, 종교서적,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식물도감, 곤충도감도 있었다. 경비는 잠 못 자는 직업이었지만 내게는 그만한 직업도 없었다.
 
  경비원은 지난날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시골 농군부터 초등학교 교장까지, 전직 순경부터 잠시 근무하다 그만둔 경감까지, 개인회사 과장부터 고물상 사장까지 있었고, 학력도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생까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투는 일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 빠진 가위가 세 개 있고

  제각기 가는 시간이 다른 시계가 두 개 있고
  잡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라디오가 있고

  노래 테이프를 물고 있는 오디오도 있고
 
  화장실 구석에는 줄 끊어진 배드민턴 채도 있고

  줄 없는 낚싯대도 있고
  창문가 책상 위에는 주워 모아 만든

  산세베리아 화분이 있고
  먼지 앉은 조화도 있다
 
  없는 것이 없는 경비실에 TV가 없고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심심하여
  수염이 더 늙고
  대부분 무엇인지도 모를 약을 한 웅큼씩 먹는다
 
  자주 주인이 바뀌는 경비실
  늙은 경비원들이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살고 있다
 
  무엇이 틀렸는지
  어제는 김씨가 그만둔다고 신던 구두도 버리고
  밥솥도 버리고 갔다.
 
  -시 ‘경비원’ 전문
 
  그 후 나는 나이가 많아 타향에서 경비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어저께의 일이다. 누가 반장님, 하고 불러 돌아다 보니 옛날 같이 일하던 경비원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팔십 가까운 나이에 아직 경비 생활을 하니 놀라웠다. 땜방이라고 했다.
 
  지금도 경비원과 주민 사이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비원을 괴롭히는 주민은 어디에고 있었다. 경비 생활을 무사히 끝낸 내가 자랑스럽다. 합산하여 시집 14권, 수필 2권을 낸 시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비밀 

◀ 이문길의 두 번째 시집 《내 잠이 아무리 깊기로서니》에 실린 시인의 약력 글이다.


  나는 아내의 비밀을 알고 있다. 세상 떠나면서도 말 안 한 비밀, 나는 아내가 죽은 후 2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죽기 전 나보고 죄가 많아서 죽는다고 하던 비밀, 나는 죽을 때까지 말 안 할 것이다.
 
  나는 엄마의 비밀도 알고 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말해주겠다고 한 비밀, 엄마는 말 안 하고 죽었다. 나는 엄마가 죽은 뒤 알았다. 나는 그 비밀을 말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의 비밀도 알고 있다. 말하면 안 되는 비밀, 나는 죽을 때까지 말 안 할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바보였다. 어쩌면 세상 사람 다 아는 비밀을 나만 몰랐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살다가 시집간 누나의 비밀도 알고 있다. 죽을 때까지 둘이서 말 안 하기로 한 비밀, 엄마는 알지 못하고 죽었다.
 
  나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이 있다. 비밀이 너무 많아 말 못 하겠다. 오죽하면 하나님을 대신해서 비밀을 듣는 사람이 생겨났을까? 나는 늦게야 알았다. 

 

이 세상은 비밀 있는 사람들, 험달이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나는 성직자도 말 못 할 비밀이 있고 승려도 비구니도 수녀도 성모 마리아도 예수도 석가도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수가 사랑한 여인이 있었으며 예수를 사랑한 여인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있었으면 어떠랴.
 
  옛날 교회 부흥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죄지은 사람 회개하라고 하자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시더니 옛날 처녀 때 앞집 총각과 어떻고 하며 외쳤다. 

목사님이 노하여 그 할머니를 자리에 앉혔다. 나는 왜 회개하라고 해놓고 못 하게 하는지 나중에야 알았다.
 
  세상에는 말하면 안 되는 비밀,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비밀은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 죽을 때까지 회개해도 잊히지 않는 비밀, 그런 비밀은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을 말해야 하는 비밀을 말 안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숨긴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이다. 없다고 할 것이다.
 
 
  운문사
 

경북 청도 운문사 북대암의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청도 운문사는 호거산 골짝에 있다. 

산이라야 기암절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 뒷산 같은 평범한 산이다. 운문사는 그 산 아래 평지에 있다. 볼 것이라고는 정문 안에 처진 소나무 한 그루뿐이다. 기도하러 오는 신도도 없고 관광객도 별로 없다. 절 한가운데 만세루라는 커다란 건물이 있지만 문이 하나도 없는 그 건물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청도 운문사는 여승들만 사는 절이다. 

기거하는 숙사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빨랫줄에 널려 있는 빨래만 산바람에 흔들거린다. 그 많은 여승이 어디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농사철이 되어 담 밖 밭에 감자를 캘 무렵이면 웬 밭은 여승들 천지다. 그 많은 여승이 어디 있다 나왔는지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하다. 참으로 평화롭게 보인다. 우리네 시골 농촌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운문사 종각이라고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조그마한 대문 위에 있다. 거기에 범종, 법고, 운판이 다 있다. 아무것도 없다 싶은 운문사 거기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는 것이 있다. 범종 소리다. 나는 범종 소리가 좋아 우리나라 범종 소리를 모아놓은 테이프 4개를 사서 들었는데 제일 좋은 종소리는 역시 경주 에밀레 종소리와 운문사 종소리, 그리고 충청도 어디 있는 작은 종소리뿐이었다. 나는 나중 싫증이 나서 테이프를 다 버렸지만 청도 운문사 종소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타향에 이사 와서 운문사 종소리는 들을 수 없었으나 다행히 TV 불교방송에서 저녁 예불할 때 그 종소리를 듣는다. 호거산 골짝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우웅대며 가다가 멈추어 돌아오고 기다리다 다시 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어디 그뿐이랴. 법고 소리 또한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다. 남자 스님이 치는 소리는 아무래도 억세고 도전적이지만 가느다란 손으로 여승이 치는 소리는 섬세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그 소리 속에 세상 한스러운 소리가 살아나온다. 운판 소리도 마찬가지다.
 
  청도 운문사 여승은 어린 여승부터 할머니 여승도 있다. 여승들은 머리는 깎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여승이 많다. 어찌 세속여인의 화장하고 가꾼 아름다움이 그들의 아름다움을 따르랴. 나는 수녀님들 중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수녀님을 본 적이 있으나 아무래도 그 얼굴에는 세상 그늘이 져 있지만 여승의 아름다움에는 그 그늘이 없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청도 운문사는 대구 동쪽에 있다. 산 하나 넘어가면 경북 울진군이다. 운문사 안에 들어가서 개울 따라 골짝으로 올라가면 산 중턱에 또 하나의 절이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멀리 운문댐이 보이는 청도 운문사 언제나 빈집 같은 청도 운문사 아무도 반기는 스님이 없지만 나는 가끔 텅 빈 마당에 혼자 서성거렸다.
 
  저녁 다섯 시 예불 시간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승이 사는 운문사의 범종 소리, 법고 소리, 운판 소리를 들어야겠다. 타향에 살고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
 
 
  나의 명시 ‘어’
 
  나는 처음 시 쓸 때부터 시 같지 않은 시, 시 냄새가 안 나는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보통 말같이 하는 시, 운문과 산문이 구별 안 가는 시, 시인 줄 모르고 읽고 나면 감동을 주는 시, 그런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끝내 서정주 선생님과 헤어졌다. 대학 1년 가기 전 문단에 내세워줌세,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저버렸다. 1985년 10월호 《현대문학》에 이남호씨는 ‘시와 시치미’ 속에서 내 시를 아래와 같이 평했다.
 
  〈왜 말이 없나
  죽었으니깐
 
  죽었다고 말을 못 하나
  죽도록 살려고 했으나 죽었으니
  말 못 하겠다
 
  말도 못 하는 것이 땅에서
  왜 동그랗게 튀어나왔나
  억새는 왜 뒤집어썼나
 
  죽은 것이 어떻게 아나
  너나 알지
 
  그럼 왜 여기 누워 있나
  다른 데 가지 왜 골짝에 모여 있나
  할 말 있거든 말해라
  할 말 있거든 말해라
 
  -‘무덤’ 전문
 
  위의 시는 하고자 하는 말을 전혀 비치지 않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시인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웃음부터 나온다. 어려운 의미는 하나도 없다. 아니 쉬운 의미조차도 없는 것 같다. 

웬 미친놈이 무덤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고 있을 뿐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이 시의 물음에서 어떤 철학적인 의미를 캐려고 할지 모르나 아마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이 시의 표면적 의미는 ‘터무니없음’ 그 자체이다. 너무 엉뚱하여 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 시는 원관념이 완전히 배제되고 보조관념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시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실마리는 시인과 독자가 공유하고 있는 삶의 체험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말 없는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대구 방천시장에 살 때 쓴 시도 그랬다. 방천시장에는 떠돌며 사는 바보 수부야가 있었다. 상점에서 아무것이나 주워 먹어도 사람들은 귀찮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말도 못 하고 흐릿한 눈으로 말하는 것이라고는 ‘아아아 어어 아아아어어’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수부야가 무슨 속상한 일이 있는지 큰 소리로 손을 흔들며 어어 아아 하고 고함을 질러 너무 놀라고 가슴이 막혀 그대로 시를 썼다. 그때 쓴 시 제목 ‘바보 수부야’는 아아아 어어어 아아아 어어어 이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 시를 써놓고 드디어 명작을 썼다고 혼자 떨었다. 보통 명작 같은 시를 보았을 때는 하루쯤 떨었으나 그때 나는 사흘을 떨었다.
 
  나중 친구가 와서 그 시를 보고 그게 무슨 시냐고 하여 낙담했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 시가 내가 쓴 것 중 최고의 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음악가였더라면 그 ‘어’를 높고 낮게 표현할 수 있었으련만 시인이니 그저 ‘어’로 끝난 것이다.
 
  나는 오늘 TV에서 먹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추상화가 김호득 선생의 그림을 보았다. 그림을 그릴 때 먹물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그의 충고가 가슴에 와닿았다. 먹물 한 방울은 그림이 아니지만 그 한 방울 먹물 속에는 수많은 명작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명은 그런 것이 아닌가. 꽃이 져도 꽃나무 속에는 꽃이 숨어 있다. 잎에도 줄기에도 뿌리에도 씨앗에도 꽃은 숨어 있다. 나는 60년이 지난 후에도 떨어진 한 방울의 먹물 같은 시를 쓰고 있다.
 
  아파 누워 말 못 하는 아내를 두고 쓴 시다.
 
  내 보이나
  어
  내 보이나
  어
  아내 곁에 앉아 다시 묻는다.
  내 보이나
  어
  내 보이나
  어
 
  나는 이 시를 써놓고 오랜만에 떨었다. 한평생 시를 쓰면서 떨 때가 없었는데 이 시를 써놓고 떨었다. 나는 그동안 자신도 떨지 않는 그런 시를 썼다. 나는 바보였다. 아득한 옛날 바보 수부야를 써놓고 사흘을 떨던 그때가 그립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누가
 

시인의 시집들. 지금까지 14권의 시집과 3권의 수필집을 냈다.


  누가 가다가 서면 보인다고 했던가. 

아내가 가고 나니 내가 밥을 해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고 청소를 해야 하고 길 가는 사람이 아내 소식을 물으면 없다 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먼 산을 쳐다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제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길 가며 울타리 아래에 있는 참새를 보아야 하고 개울가에 모여 있는 비둘기를 보아야 하고 나무에 앉아 울고 있는 까치를 보아야 하고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며 은행이 열려 있는가 살핀다.
 
  나는 아내가 죽었다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에게도 친척이나 동생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포천 광릉 뒷산에 아내를 묻었다. 

시끄러운 세상, 시끄러운 것이 싫어 아무에게도 아내 죽은 것 말하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나도 곧 따라간다고 하였으니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꼬마동산 문방구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제과점에 사람이 있는가 들여다보고 모퉁이 꽃집 꽃구경하고 내가 오면 좋아하는 흰 고양이가 있는가 보니 없다.
 
  부용천 개울가를 지나며 지하철 공사장 얼마 팠는지 인부들에게 물어보려다 참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버스 안에 타고 가는 사람 어디로 가는지 들여다본다.
 
  이제 집 떠나 멀리 가지 않는다. 오늘도 아파트 입구에서 세 번을 쉬며 하늘을 살핀다. 어제 구름 어디 갔나 살피고 하늘 끝까지 살피고 무엇이 있는가 살펴도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느티나무 아래 서서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도 우리 집 창문을 살핀다.
 
  기다려야겠다. 단풍을 보려면 가을이 와야 하는데 오늘이 입추인 데도 너무 덥다. 길에 고추잠자리가 날고 매미 소리가 깊어지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앞산 어느 골짝에 가을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기다려야겠다. 단풍을 보려면 기다려야 되는데 자꾸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진다. 쓰고 있는 수필을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오늘 하루 볼 것 다 보았는데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 것 같다. 집 문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여다본다. 아무도 없다. 시계는 혼자 가고 부는 바람에 창문만 덜컹거린다.
 
  누가 가다가 서면 보이는 것이라고 했던가. 서 있으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가야겠다. 가는 것들과 함께 같이 가야겠다.
   

 
  드디어 떠날 때가 되었다. 

불에 다 탄 아름드리 통나무 배는 물결 따라 흘러가면서 어둠 속에 사라졌다. 돌아갈 수 없었다. 지나온 곳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숯으로 만든 배가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디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황천 가는 꿈이었다.
 
  한밤중 꿈을 깨어 불을 켜니 내 곁에 흰둥이가 배를 내어놓고 자고 있었다. 꿈에 불탄 배는 어디 갔는지 가고 없었다.
 
  나는 요사이 꿈을 자주 꾼다. 저승 가는 꿈이다. 아내 간 곳을 찾아야 하는데 못 찾는 꿈을 꾸고 나면 남아 사는 것이 슬프다. 어저께 아내가 있다고 가본 산에는 아내가 없었다. 사람들은 왔다가 쓸쓸히 돌아갔다. 나중 내가 아내 곁에 묻히면 아내와 만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아아 산은 알고 있을까. 내가 간 것을 알고 있을까. 산은 말이 없다.
 
  산 뒤에 산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승 끝나면 저승이듯
  산 뒤에 산이 있고
  그 산 너머 다시 산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가도 슬프고,
  와도 슬픈 산길
 
  나는 오늘도 그 산길을 갔다 왔다.
  산속에 자고 있는 아내를 보고 왔다.
 
  말 없는 산 너머
  말 없는 산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오늘 밤 또 배를 타고 가보아야겠다. 아내가 사는 곳을 찾아가 보아야겠다. 가다가 물속에 가라앉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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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끙끙 앓으며 詩 첫문장을 기다린다”
제주 이주 1년 시인 문태준, 시집·산문집 동시에 펴내
“자연은 낭만이 아닌 노동… 구름·태풍·고립이 나를 맑게해”

이기문 기자
입력 2022.02.21 03:00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지 1년 반 동안 시인의 손은 투박해졌다. 문태준 시인은 “퇴근하면 텃밭을 일군다”며 “자연 속의 생생한 시어들이 싸락눈처럼 쏟아질 때 즐겁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문태준(52) 시인은 지난 2020년 8월, 오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 애월읍 장전리로 갔다. 

고향은 경북 김천. 제주도 출신 아내가 태어났던 폐가를 허물고 새집을 지었다. 방 2개와 작업실을 갖추고 ‘문정헌(文庭軒)’이라 이름 붙였다. 

 

글과 뜰이 있는 집에 살며 최근 여덟 번째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창비)와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마음의숲)를 펴냈다. 1994년 등단한 그는 서정시의 계보를 이으며 2000년대 미당문학상·노작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두루 받은 시인이다.

‘아침’과 ‘첫 문장’이란 낱말이 먼저 다가왔다. 도시를 떠나 시작한 섬의 삶과 문학은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서울에서 만난 시인은 “체중이 8㎏ 빠졌다”고 했다. “낮에는 제주 불교방송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퇴근하면 돌 쌓고 풀 뽑고 농약 치고 가지를 쳤습니다. 완전히 ‘노동하는 몸’으로 1년 넘게 살았습니다.”

자연과의 교감을 주로 노래한 시인이지만, 제주의 자연은 낭만과 동의어가 아니었다. “내륙의 자연과 달랐습니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불현듯 태풍이 일어요. 밤은 길고 깊습니다. 머리가 깨지도록 사나운 추위에 시달린 적도 있어요. 외롭고 고립된 섬처럼 고독감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섬 생활을 처음 경험한 시인의 눈에는 떠나는 모습이 주로 보였다고 했다. 매일 여객선이 출항하고, 손님들은 뭍으로 떠나갔다.

산문집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목차를 나눠 계절마다 마주한 감상을 적었다. 그는 “옮겨 심은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생활이 안정되는 데 사계절이 걸렸다”고 했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시린 추위가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눈이 시원해졌다. “아, 한기가 이렇게 깨끗하고 맑을 수 있구나.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제2의 자연이었습니다.” 이번 시집엔 꽃과 새, 눈과 돌이 등장하는 시가 유난히 많다.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 앉고(’꽃’), 손바닥에 내려 앉는 첫눈에서 사라진 얼굴을 발견한다(‘첫눈’).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자연과 한데 어울려 있거나 동화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며 “문태준 시의 세계는 위계가 있는 세계가 아니라 나란히 함께 있는 연대의 세계”라고 평했다.

남편이자 아빠, 직장인으로 사는 시인에게 캄캄한 새벽은 “빈 마당에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는 “등단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쓰지 않았던 문장을 시로 쓰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며 “28년 시인으로 살면서 시를 태어나게 하는 조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조건은 “맨손 맨발로 굳은살 박이면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 “제주살이는 시가 내게 찾아올 수 있도록 나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새벽마다 시 쓰려 끙끙 앓으면서 첫 문장을 기다립니다. 이런 조건들이 저를 만들고 있다는 게 흡족합니다.”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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