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시한論

    소다 2007. 6. 6. 12:10

     

     

     

     

    해체된 농촌, 풀나라의 기억
     - 박태일 시집 『풀나라』(문학과지성사)


                                       유  재  천(문학평론가, 경상대 교수)


     

    1
    박태일은 백석의 연구자이면서 백석의 뛰어난 해석자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풀나라』는 그 동안 시인의 백석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시인들이 백석의 시를 흉내내고 있지만 형태만 모방하는데 그쳤을 뿐인데 비해 박태일의 『풀나라』는 백석 시의 근본을 꿰뚫고 그 방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석은 1930년대 유년기 체험과 설화적 세계, 음식물을 소재로 한 뛰어난 서정시를 남겼던 시인이다. 그의 시는 표면적으로 당시 시대적인 문제와 관련이 없는 순수시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일제 말기 남다른 시대인식을 바탕으로 시를 통해 일제 말기의 강압적인 식민정책에 맞서려고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일제 말기는 우리의 민족성마저 지켜내기 힘들었던 문자 그대로 민족성 위기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30년대 일제의 극심한 수탈로 우리 민족은 고향을 등지고 만주 등지로 유랑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고 농촌은 해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농촌의 해체는 바로 우리 만족 정신의 바탕을 이루는 공동체 문화의 해체를 의미했으며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 정신의 해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기에 일제말기의 민족말살정책은 나라를 빼앗은 데서 나아가 우리의 민족성마저 빼앗으려는 책략으로 민족의 대를 끊어놓으려는 것과 같은 모욕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에 시인의 임무는 일제의 강압적인 정책 앞에서 어떻게 민족성을 지켜내느냐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백석은 이러한 민족성 위기의 시대에 우리 민족의 공통적인 체험 공간인 설화적 세계와 유년기 체험, 그리고 음식물을 소재로 한 서정시들을 통해 고향을 상실하고 떠도는 유랑민들에게 핏줄을 확인시켜주고 그들이 떠돌 수밖에 없는 이유를 되돌려보게 하려고 했던, 시를 통해 일제와 맞서려 했던 시인이다.
    『풀나라』는 제목만 보면 자칫 자연생태 시집으로 읽히기 쉬운 시집이다. 그러나 이 시집은 자연생태와는 거리가 먼 농촌의 해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집이다.
    일제 말기가 유랑의 시대, 민족성 위기의 시대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또다른 차원에서 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농촌은 떠날 수 없는 노인들만 남아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농촌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농촌은 그야말로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을로 변해버릴 것이다. 30년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마지막 남은 병든 노부부마저 굶어 죽음으로써 한 마을이 공동화되어 가는 현실을 그리고 있는 백석의 『마을의 유화』의 현실과 오늘날 박태일이 그리는 우리 농촌의 모습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젖쟁이 노랑쟁이 나생이 잔다꾸
    사람 없고 사람 닮은 풀들만
    파도밭을 담장으로 삼고 사는 나라
    예순 아들이 여든 어머니 점심상을 차리고
    대소사 상다리 이고 지는 마을
    사람만 봐도 개는 굼실 집 안으로 내빼
    이름 잊혀진 채 그저 풀로만 불리는
    강바랭이 씀바구 광대쟁이 독새기
    이장 댁 한산 할배 마을 회관 마룻바닥에
    소금 전 양 등줄 꺼지게 누운 마을
    토광 옆 마늘 종다리는 무슨 힘으로
    아침저녁 울컥벌컥 잘도 돋는데
    한때 마흔 이젠 스무 집 어른들
    집집 다 버리고 마을 회관 두 방
    문지방 내외하며 자고 먹는 풀나라
    굴 양식 뜰것이 아침마다 허옇게
    저승길 종이꽃처럼 피는 바다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풀나라


    「풀나라」는 한 때 40호 되던 마을이 이제 20호로 줄어들고 그 20호마저 노인들만 남아 마을회관 두 방에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하며 모여 먹고 자는 마을로 변한 오늘의 어촌 마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마을이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시인은 첫행과 마지막 행에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를 배치하여 이 마을들이 먼 나라, 이미 남의 나라나 옛날처럼 우리들의 머리 속에서 까마득히 잊혀져 가고 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풀나라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풀들만 남아있는 또는 이름없는 풀들처럼 존재마저 잊혀져가는 노인들만 남은 황폐해진 우리의 고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타고 목포 걸어 우포
    사람들은 우포를 이미 잊었다
    죄 떠난 탓이다 부산에서
    간이 망가져 들어온 중늙은이
    옴마니반메홈 옴마니반메홈
    진언만 넘나드는 신반댁 할머님
    한 등성이 사이로 저녁 불빛을 나눈다
    집 건너 집이 한때 반백을 넘고
    대사며 장날엔 한 차로도 모자랐는데
    장타령으로 즐겁던 이방 양반도
    이방장도 묻혔다 그쳤다
    자운영 붉은 꽃빛은 언덕까지 치벋고
    아카시아 내린 무덤들은 벌써
    아래위 뗏밥 서로 뒤섞는다
    타고 목포 걸어 우포
    우포에 우포 사람 없고
    움머움머 황소개구리만
    봄밤 지샌다
    봄밤 운다.
                             ―우포


    「우포」 역시 한 때 오십여 호나 되던 마을이 이제 간이 망가져 들어온 중늙은이와 신반댁 할머니 두 집만 남은 해체된 농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때 큰 일 때나 장날은 한 차로도 모자랐던 마을이 등성이 너머로 두집만 불빛을 나누는 적막강산으로 변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떠났다는 것은 마을의 축소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같이했던 이방장도 그치고 이방 양반의 장타령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마을의 해체와 더불어 이 마을이 가지고 있던 전설과 문화, 역사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자운영 풀들은 언덕까지 치뻗고 사람들이 찾아와 돌보지 않는 무덤에는 아카시아가 뿌리를 내리고 무덤과 무덤은 떼를 섞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우포는 우포 사람들이 살지 않고 외래종 식물과 이국종 황소개구리의 울음이 뒤덮은 산업사회의 우리의 모습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시이다.
    마을이 해체되고 공동화될 때 그 곳의 공동체 문화도 사라지고 자운영, 아카시아, 황소개구리가 상징하는 이국종 문화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아카시아가 무덤까지 뿌리를 뻗고 무덤과 무덤이 떼를 섞은 우포는 우리 전통문화의 해체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2
    박태일의 『풀나라』는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본 노인들만 남은 해체된 농촌과 그들의 삶, 그리고 시인이 어렸을 적 경험했던 농촌의 기억을 담고 있는 시집이다.
    농촌의 공동화 문제는 단지 경제적 인구의 이동 문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농촌은 우리 문화의 뿌리이고 그것의 해체와 그 기억의 상실은 바로 우리 민족 정신의 단절과 해체, 그리고 뿌리없는 이질적인 도시 문화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태일이 『풀나라』에서 농촌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제의 수탈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제 말기의 유랑민이라면 오늘날 농촌을 떠나 도시에 살고 있는 중·장년층 역시 고향을 떠난 유랑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유랑민들인 현대의 중·장년층들에게 농촌은 자신들을 키워준 삶의 뿌리이자 정신적 토대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정신적 토대인 농촌은 도시 유랑민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져가고 먼 나라로 기억될 뿐이다. 뿌리에 대한 기억이 없는 도시인들은 영원히 유랑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태일의 시집은 과거를 잊고 도시적 삶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현재 황폐해진 농촌의 모습과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줌으로써 그들의 뿌리를 확인시켜주고 과거와 현재를 통시적으로 연결하여 자신들을 재구조화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 눈가를 비비시더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비시더니
    어린 순애 떠나는 버스 밑에서도
    잘 가라 손 저어 말씀하시고
    눈 붉혀 조심해라 이어시더니
    사람 많은 출차대 차마 마음 누르지 못해
    내려보고 올려보시더니 어머니
    털옷에 묻은 겨울바람도 어머니 비비시더니
    마산 댓거리 바다 정류장
    뒷걸음질 버스도 부르르 떨더니
    버스 안에서 눈을 비비던 순애
    어디로 떠난다는 것인가 울산
    방어진 어느 구들 낮은 주소일까
    설묻은 화장기에 아침을 속삭이는 입김
    어머니 눈 비비며 돌아서시더니
    딸그락딸그락 설거지 소리로 돌아서
    어머니 그렇게 늙으시더니
    고향집 골짝에 봄까지 남아
    밤새 장독간을 서성이던
    눈바람 바람.
                    ―어머니와 순애


    「어머니와 순애」는 어린 딸을 객지로 떠나보낸 어머니의 심정과 그 후 가슴 속의 납덩이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린 딸을 공장이나 식모살이로 떠나 보내야 해던 60, 70년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시이다. 숟가락 하나 덜기 위해 딸자식을 객지로 보내고 다른 자식들에게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뒤돌아서서 딸그락 딸그락 설거지 소리만 내며 눈물을 삼키던 어머니의 모습은 60, 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장년층들의 기억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들은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무의식 깊숙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 "어머니 그렇게 늙으시더니/ 고향집 골짝에 봄까지 남아/ 밤새 장독간 서성이던/ 눈바람 바람"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시 속의 어머니는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시의 화자는 밤새 장독간을 서성이는 눈바람을 죽어서도 순애 생각에 서성이는 어머니로 생각하고 북받치는 설움과 죄책감을 "―비비시더니, ―이어시더니, ―돌아서시더니, ―늙으시더니"로 이어지는 회상조 넋두리 형식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옷바우말 호랑머리 염개 뒷개
    졸랑졸랑 바닷길이 올려 앉힌 마을
    가끔 물기 빠진 속빨래 같지만
    그래도 울컥 그리운 고향입니다


    멀리 멸장 고는 연기 한 줄기
    돌돌 돌길 따라 언덕 위로 올라서면
    오월 으름꽃 볼 부은 연보라
    연보라빛 향내에 나는 꿈길을 걷고


    두 집안 정지 밟지 않겠다고
    친정에 허물 남기지 않겠다고
    청상 마흔 해 잘도 건넜는데
    도시 아들 짐 된다고 목맨 마산댁


    옷바위말 호랑머리 염개 뒷개
    뱃길 몇 차례로 동무 마을 기별하면서
    오늘 아침 무테
    마산 화장장으로 신행 가는 길


    강씨 묘각 큰 소나무 큰 가지 아래 서서
    돈냉이 별꽃 풀나라 아이들과 배웅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아침밥도 안 먹고 배웅했습니다.
                                      ―신행


    역시 죽음을 소재로 한 「신행」은 마산에서 섬으로 시집와 자식 하나 낳고 청상으로 사십년을 지내다가 도시 아들 짐 된다고 목맨 한 여인의 슬픈 생애를 다루고 있는 시이다. 섬으로 시집간 새댁의 답답함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출가외인 두 집안 정지 밟지 말라는 엄격한 가르침 때문에 눈물 날 때 산에 올라 고향 쪽을 바라볼 뿐 신행 한번 다녀오지 못하고 남편을 여의고 청상으로 살다가 목매어 죽어서 화장장으로 가는 길, 그 길이 신행길이 된 고달픈 삶 속에서도 자식에게까지 의존치 않으려는 망자의 정결함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반면에 옷바위말 호랑머리 염개 뒷개 뱃길에 이어지는 동무 마을 이별하고 돈냉이, 별꽃 풀나라 이이들과 배웅하는 망자의 가는 길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어머니와 순애」, 「신행」에 나오는 이야기는 도시 장년층에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도시로 나와 고향과 어머니를 잊고 지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어머니의 이야기인 것이다.
    시인은 도시 중·장년층이 가진 그러한 기억들을 불러냄으로써 먼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농촌과 어촌이 바로 자신의 뿌리라는 것을 인식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기억은 기억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정신과 자신들의 현재를 가능하게 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우리가 결코 남이 아니고 하나였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개인화, 비인간화되어 가는 도시문명 속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3
    객지를 떠도는 사람들에게 어느 날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친 어릴 때 먹었던 고향의 음식은 가슴을 울컥 치밀어 오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때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라 바로 고향 그 자체요, 어머니인 것이다. 음식물 하나가 우연히 발굴된 구석기시대 그릇조각처럼 과거를 복원시켜주는 것이다.
    박태일의 『풀나라』는 대부분 시인이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시로 꾸며져 있다. 이 시집에서 박태일은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잊혀진 풀들의 삶과 기억을 재현해내고 그것을 매개시켜주고 있다. 박태일의 시는 독자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매개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풀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요 형식이나, 대화체, 옛 서한체나 사설투, 넋두리, 옛 제문 형식 등은 그러한 방법들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문체들은 현재는 사용되지 않지만 도시 중·장년층들이 어린 시절 겪어봤던 문체들이다. 그 문체들은 각각 그 문체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시인은 그 옛 문체들을 현대시에 도입하여 도시 중장년층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도시의 각박함 속에서 어린 시절의 순박하고 꾸밈없는 인정의 공동체 세계로 돌려놓는다.


    유세차 갑오 정월 초이틀 임신은 우리 천가 아바 곧 이 세상 버리시고 구원천대 돌아가신 그날이라 앞날의 저녁 출가 소녀 수련은 왼손으로 눈물 닦고 오른 손으로 가슴 쥐고 엎드려 아뢰오니
    ..........................
    하물며 임종시에 약 한 첩 못 달이고 화급총총 가신 날에 말씀 한 번 못 들으니 딸자식이 자식인가 출가외인 분명하다 눈에 삼삼 우리 아바 저 세상 왕랫길은 얼마나 멀고 멀어 다시 올 줄 모르시나


    되오소서 되오소서 피고 지는 좋은 날에 다시 한번 되오소서 어이어이 바쁜 세월 어언간 소상이라 구곡같이 맺힌 정회 깜박깜박 아뢰오니 아룀이 계시거든 흠향 흠향하옵소서 오호 애재 상 향
                                                                                            ―어린 소녀 왔습니다


    시집간 딸이 아버지 소상을 맞이하여 올리는 제문이다. 살아생전 병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께 약 한 첩 못 달여들이고 아버님을 떠나보낸 자식의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이 구구절절 넋두리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늘날의 형식화된 제례 속에서는 도저히 발견될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제문 형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러한 옛 양식들은 앵두의 이름, 광음이 흐르는 물과 같아, 용전 사깃골, 집현산 보현사 등 많은 시에서 시도되고 있는데 이런 문체들은 이 문체들이 가진 과거의 기억들과 더불어 그 속에 남아 있는 놀랍도록 다감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들을 오늘에 복원시켜 충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들 외에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유년기 기억을 환기시켜주는 언어와 장소, 또는 이름들을 전경화시키는 방식이다.
    박태일은 『풀나라』에서 지역어(방언)와 옛말, 옛날 어렸을 때 사용했던,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을 즐겨 사용한다. 박태일의 시를 읽을 때 단어의 의미가 알 듯 알 듯 하면서 정확히 생각나지 않아 사전을 찾아보고 싶은 욕구를 문득 문득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박태일이 이런 말들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그런 말들이 유년기의 기억들을 매개하고 있고 이런 말들은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죽 지는 잎은 지면서
    구름 흔들고
    노을 훌쩍 건너서는
    쇠오리 가창오리
    돌대추 가지에 종아리 긁히며
    혼백 시집간 고모는 어느 길로 들었을까
    물모래 땅콩밭 십리 더 위엔
    오포 불던 옛 장터
    나루도 있다.
                  ―황강1


    이 시에서 가죽 지는 잎, 돌대추, 물모래, 땅콩밭, 장터, 나루 같은 말들은 유년기의 체험이 묻어 있는 말들이다. 오포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독자들이 시인과 똑같은 환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 속의 추억들은 과거의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공통된 체험들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시 속의 낱말들을 매개로 자신들의 유년기를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포라는 단어는 정오에 오포 소리와 관련된 기억들을 아련하게 떠올리고 그 시절의 삶을 재구성하고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두렁콩 베는 날에 해가 저물어
    진주로 시집간 콩점이 생각
    곡식도 씨 따는데
    사람이 못 딸까
    내리 딸 넷에 아들
    남편 상 났단 소식도 이어 들리고


    콩점아 콩점아 콩 보자
    사타리에 점 보자
    잔불 놓던 둑너미엔
    첫날 첫 봄밤


    달빛 홀로 다복다복 어디로 왔나
                              ―황강 7


    「황강 7」의 콩점이라는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입성이 충분치 못했던 시절 어린 아이들은 벌거벗은 채 형이나 누이들 등에 업혀 자랐다. 벌거벗고 크다보니 누가 어디에 점이 있는 것까지 다 알수 있다. 콩점이는 사타구니에 콩알만한 점이 있어서 콩점이라고 불린 것이다. 화자는 콩베는 날 콩점이에 대한 기억을 해내고 시집가서 평탄치 못하게 살고 있다는 소문을 문득 떠올리고 잔불 쬐며 놀던 시절 등을 기억해낸다. 콩점이가 아니더라도 독자들은 유사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고 이 시를 매개로 어릴 적 동무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볼 수 있게 된다.


    4
    박태일은 「니나노 금정산」에서 제자들이 이름없는 풀이라고 하면 "등신 거튼 놈들" 하고 한마디로 대꾸조차 하지 않던 스승에 대한 기억을 보여준다. 아마 한마디 덧붙였다면 "이 등신같은 놈들아, 세상에 이름없는 풀이 어디있어? 너희가 이름을 모를 뿐이지" 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박태일의 『풀나라』에서 ㅣ도하고 있는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 이름없는 풀들에 이름 붙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없는 풀들처럼 보이지만 모든 풀들은 제 나름의 삶과 기억을 가진 당당한 우주의 일부분이다. 다만 사람들이 제 눈에 색안경을 끼고 있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농촌은 먼 나라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들이 태어나고 자란 우리의 기억의 보고이며 우리 문화의 정신적 뿌리이다. 그 속에는 우리의 아픈 기억들과 삶, 공동체 문화의 기억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농촌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의 기억들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박태일의 『풀나라』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풀나라로 변해가는 우리의 농촌과 그 속에서 해체 위기에 직면한 공동체 문화의 기억들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서 그것을 복원시켜 우리 문화와 정신적 줄기를 잇고자 하는 소중한 작업이다.


                                      『문학마을』 13호, 2002년 겨울호 pp.212-225

    신경림의 시를 읽다가 황강이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황강이 이 글까지 읽었습니다. 박태일 시인의 시를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이 시집은 오늘 처음 봅니다. 잊었던 가락이 낭창낭창 살아있는 인용된 시들이 참 좋습니다.
    제 벗들에게 읽어보라고 옮겨갑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시공부 안한지 오래되서서... 가물가물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