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南여행

    소다 2020. 5. 4. 01:23

     

    유유자적 떠나고 싶은 유적지 기행 함안 성산산성

     

    공현선

     

     

    봄은 왔지만 달콤하지 않은 봄이다. 엘리엇의 시를 언급하지 않아도 올해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감싸고 길을 나섰다. 사람 많이 모이는 도시 공원들은 일제히 통제되었다. 혼자 유유자적 떠나고 싶은 유적지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숨바꼭질, 보물찾기로도 안성맞춤인 장소다. 학술적으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사람 발길이 그리운 함안 성산산성이다.

     

     

     

     

    1400년 전의 아라가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성산산성은 무진정을 지나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다. 봄 햇살 가득 담든 무진정 연못 충노담은 계절을 타지 않는 판타지 그 자체다. 올해는 전국 모든 봄축제가 중지되어, 무진정 일원에서 벌이는 전통불꽃놀이 ‘함안낙화놀이’ 를 볼 수 없어 아쉽다. 이곳은 넓은 공용주차장과 화장실 2개소, 관광안내소까지 갖추고 있다. 무진정 담장너머 굽은 소나무를 지나면 바로 성산산성 가는 길이다.

     

     

     

     

    *사적 제67호 함안 성산산성(1963년1월 21일 지정) 개선 안내판

     

     

     

    성산산성 입구 안내판은 2019년 문화재청에서 새롭게 개선된 것이다. <사적(史蹟)은 무슨 문화재를 지칭하는 걸까?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 있었거나 건축물 · 시설이 있던 곳, 또는 그 자취를 국가가 법으로 지정한 문화재를 말한다. 사적으로 지정이 되면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새로 개선된 안내판은 전문 용어는 줄이고 문장도 간결하게 다듬었다. 사진은 함안 성산산성 항공 촬영 사진이다.(함안군) 발굴 성과는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축약하였고, '여지도서'와 '함주지' 같은 어려운 단어는 각주를 사용해 설명을 달았다. 성산산성 도면을 삽입해 한눈에 구조를 이해하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문화재청-

     

    또한 성산산성에 관한 전설이 가미되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아라가야 역사를 한층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성산산성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아라가야가 신라에 점령되었을 때 신라군에 맞서 싸우던 장군이 전쟁에 진 것을 원통해 하며 울면서 성산으로 들어갔다. 그 뒤부터 장군을 본 사람도 없고 장군의 행적이나 사후의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성산산성에는 신라와의 전쟁에서 진 아라가야 장군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산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산성을 오른다면 오래된 미래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함안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함안 성산(139.4m) 정상부분에 있는 산성이다. 성벽 윗부분이 많이 허물어져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처럼 보이나, 1991년부터 4년간 진행되었던 발굴조사에서는 납작하게 다듬은 모난 돌들을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린 것이 확인되었다. 전체길이 1.4km 성벽은 안쪽 작은 분지를 감싸면서 높은 곳을 따라 쌓았는데 그 모양은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타원형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의 성벽에서 성문터가 조사되었고, 성 안에서는 물을 저장하던 시설(우물터)과 건물터 네 곳 정도가 확인되었다.

     

     

     

     

    여지도서(與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에는 가야고성(加耶古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발굴조사에서 주로 신라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산성의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산성 형식은 삼국시대 유형이라 한다. 안라국(安羅國.阿羅加耶)에는 백제, 신라, 왜의 사신들이 모이기도 했던 고당(高當)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안라국의 중심시설을 신라가 다시 쌓았을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성산산성을 발굴할 때 목제품, 과일씨와 함께 신라 기와, 깨진 토기조각이 나왔으며, 700년 전의 연꽃 씨앗도 출토되었는데 그 싹을 틔운 것이 바로 ‘아라홍련’이다. 동문 터 안쪽 300여점의 목간(木簡)이 출토되었는데 이 목간들은 산성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밝혀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목간은 고대의 다양한 지명과 인명, 등 문서행정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유산이다. <*목간은 문서나 편지 등의 글을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에 적은 것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또는 널리 쓰이기 이전 그에 대신하는 용도로 쓰였다.>

     

     

    들꽃 봄마중

     

    산성 가는 길은 시멘트 블록으로 다듬어져 오르막이지만 걷기 편하다. 길가 군데군데 보일 듯 말 듯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작은 들꽃들을 만난다. 주변에 흔히 만나는 들꽃에게 말을 걸어보는 넉넉함을 가져보면 어떨까?

     

    볕 좋은 양지바른 곳에 피는 ‘양지꽃’, 까치처럼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봄 제일 먼저 알리는 ‘봄까치’,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 쯤 피는 ‘제비꽃’ , 어린아이 주머니 끈 끝에 차는 노리개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혀진 ‘자주괴불주머니’. 괴불은 오래된 연뿌리에 서식하는 열매 이름이라 한다.

     

    그 외 별꽃, 광대나물, 갈퀴나물등 주변에 흔히 만나는 야생화들이다. 이름 없는 사람이 없듯 이름 없는 꽃은 없다. 단지 이름을 모를 뿐이다. 산과 들을 아름답게 수놓는 소중한 풀꽃들 알아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다.

     

     

    4월에 날리는 꽃눈

     

     

    볕에 그을린 농부의 봄은 바쁘다. 싱싱하게 잘 자란 토실토실 풋마늘이 탐스럽다. 병아리 주둥이 닮은 개나리 노랑노랑 놀아 달라 칭얼거린다.

     

     

    무덤과 무덤사이 모과나무 요염한 몸매가 부럽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의 엄숙한 장례를 지켜본다. 그것 또한 자연의 섭리이며 저들의 역사다.

     

     

     

    넓은 들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6세기전 가야 성벽이다. 성벽 형태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지만 기분이 묘하다.

     

     

     

    큰 바위 틈에서 쑥이 자라고 있다. 이곳은 지천이 쑥이다. 이 쑥들도 가야시대 먹거리였을까? 음식보다 약초로 이용되지 않았을까? 산책 나 온 사람들 몇몇이 햇살을 등에 업고 봄을 캐고 있다.

     

     

     

    성산산성은 현재 복원 정비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산성을 걷는 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성벽 설명은 안내판에서 미리 사진에 담아두었다. 산성을 상상하며 걷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큰 돌무더기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놓여있다. 무슨 용도일까 건물터처럼 보인다.

     

     

     

    괴향마을 사람들의 성문 남문지(南門地)

     

    남문지는 괴향마을 사람들이 성으로 오르내리던 출입구다. 출구를 따라가 보니 꽤나 넓은 길이다. 이곳은 거의 무덤이다. 무덤마다 ‘성산산성 분묘조사’ 푯말이 꽂혀있다.

     

     

     

     

    문화재 보호지역이라 분묘 이장에 관련 협조 요청이다. 내려가는 길은 키 큰 갈대와 풀숲으로 끝까지 두르지 못하고 도로 나왔다. 무다이 내려갔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남문지 쪽으로는 내려가지 않기를 권한다.

     

     

     

     

    성산산성은 허물어진 성벽이지만 형태는 남아있다. 성벽은 돌무더기로 울퉁불퉁하여 걷기엔 조금 불편하지만, 함안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어 좋다. 걷기 불편한 사람은 구지 성벽을 걷지 않아도 된다. 성안으로도 잘 다듬어진 오솔길을 따라 성 전체 한 바퀴 도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성산산성 연둣빛 정원

     

    성 내부는 오목하고 편편하게 생긴 평지로 대부분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었다.  봄 이라지만 아직 잎을 달지 않은 나무들이 많다. 나무는 언제 식재된 것일까? 겨우 겨울눈을 뗀 키버들(버들강아지)만이 꿈틀꿈틀 하늘을 기어오른다. 봄이 무르익으면 성산산성의 아름다운 연둣빛 정원을 상상해본다.

     

     

     

     

     

    백산마을 사람들의 성문 서문지(西門地)

     

    성벽을 따라 걷는다. 가까이 낮은 구릉과 멀리 보이는 산들이 서로 어깨를 걸친 모습은  마치 넘실대는 파도 물결무늬 같다. 고대 아라가야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성문 서문지다. 서문지는 서남쪽 성벽에 위치해 백산마을 사람들이 오르내리던 출입구로 이용되었으며, 성문 외부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원형의 석축시설이 확인되었다. 당초문 보상화문 암막새, 연화문 수막새 등 기화류가 다량 수습되었다.

     

     

     

     

    서문지 출입구는 제법 길게 놓여있었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성내 오솔길로 방향을 틀었다. 서문지 안내표지판 옆으로 둥근 나무계단을 밟는다. 산성 안 나무들 모두 노란 이름표를 달고 서있다.  나무의 내력까지 적혀있다.  저절로 눈길이 간다.  우리 중 누군가는 나무 이름 한 그루 라도 기억하지 않을까?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소나무

     

    계속 성벽을 따라 걸었다. 걷는 중간 중간 움푹 파인 방공호 같은 구덩이를 만난다.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없다. 무슨 용도였을까? 수많은 세월을 건너온 산성의 내력은 출토된 유물들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성벽 중앙에 우뚝 선 오래된 느티나무를 만난다. 그 위엄한 모습은 성산산성을 지키는 보호수다.

     

     

     

     

    성벽 너머 왼쪽 적송 두 그루 혼자 보기 아깝다. 사진으로 담았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특별한 관리를 받는 적송일지도 모른다. 마치 그림 속을 빠져 나온 나무처럼 그 우아함이 예사롭지 않다. 보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라가야의 소중한 유적지 성산산성 복원

     

    북성벽구간으로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멀리 아버지와 아들이 산성에 오른다.  그들의 뒷모습이 액자처럼 하늘에 걸린다. 성 내부는 황량한 들판이다. 내려오는 길 100번 ‘성산산성 분묘조사’ 푯말을 지나오니 바로 소나무 군락지다.

     

     

     

     

    활발히 정비중인 동문지와 동성벽이 길게 이어져있다. 성벽은 흙과 돌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습이다. 성산산성 남쪽 성벽 남문지 부터 서문지, 동문지 순으로 성산산성 한 바퀴를 모두 걸었다.

     

     

     

     

    전북 고창에서 전해져 오는 세시풍속 답성놀이가 있다. 윤달에 성곽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만, 재미있는 컨텐츠로 활용한다면 건강은 물론 유적지 답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함안 성산산성은 자연 그대로 성벽은 삼국시대 모습이다. 산성 정비 사업이 완료되면 고대 아라가야를 느낄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더 가까이 아라 가야, 가야를 더 크게 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