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Paradiso

    별에서오다 2019. 10. 25. 18:34


    쓰레기 파업으로 악취가 가득한 도시에 사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우울한 광대분장을 하고 중고가게 광고보드를 들고 춤을 추며 힘들게 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동네 어린 양아치들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급기야 골목에서 집단 린치까지 당하지만 그를 도와 줄 사람은 없습니다.

     

     

     

    억지로 짜내어 웃는 듯한 웃음인지 울음인지 괴로움인지 모호한 기괴한 웃음. 그는 정신병 때문에 아무 때나 터지는 웃음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는 정신병원에 갇힌 전력이 있으며, 지금도 약을 7개나 먹고 있습니다. 상담사에게 보여준 그의 노트는 누가 보더라도 정신병이 있는 환자라는 것을 쉽게 짐작케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 보입니다.

    ‘내 죽음이 삶보다 가취있기를’ 이라는 문구는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필체가 달라 보입니다. 그의 내면에 또 다른 자아가 숨어 있다는 암시입니다. 

     


     

     

     

    그는 어머니와 오랫동안 단 둘이 살아왔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코미디 쇼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듯 합니다. 그는 머레이라는 유명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쇼를 보면서 자신이 그 쇼에 출연하는 망상을 합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머레이 역을 맡았는데, 그는 과거에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에서 주연을 맡았고, 감독도 그 영화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 장면에서 밝혀지는 그의 이름은 ‘아서’이며 머레이를 정신적 멘토뿐만 아니라,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주길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토마스 웨인이 이 도시뿐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구원자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30년도 전에 그 집의 하녀로 일했기 때문에 그 친분 하나만을 믿고 자신들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좀 뻔한 복선이죠.


     

     

     

     

    다음날, 광대회사 사무실에서 신발을 붙잡고 애쓰는 아서의 뒷모습은 마치 당장이라도 에일리언이 튀어나올 듯한 그로테스크한 몰골을 보여줍니다. 앙상한 마른 몸에 유난히 튀어나온 척추와 화상자국은 마치 그의 온 몸으로 고담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부기영화 ‘에일리언 프로메테우스’편에서 급소각격은 <발은 ‘정체성’이다>, 라고 말했습니다.(발이나 신발이나) 즉 아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잡고 놓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의제기는 급소가격에게)

     

     

     

    같은 사무실의 직원들은 그가 폭행당했다는 사실에 위로를 건넵니다. 그리고 동료 랜들은 총을 건네주며 스스로 몸을 보호하라고 권합니다. 처음엔 거부하지만 또 다시 그런 꼴을 당하기 싫었던 아서는 총을 갖고 있기로 합니다.

    이때, 동료들이 왜소증이 있는 동료를 놀리며 웃는데, 그는 동료들이 웃고 난 후에 뒤늦게 웃음을 터트리며 사장실로 불려갑니다.

    사장은 왜 광고 보드판을 훔쳐갔느냐며 물어내라고 다그칩니다. 그가 폭행을 당하고 양아치들이 광고 보드판을 부서졌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화가 난 아서는 쓰레기를 짓이기며 화를 폭발시키지만 허무할 뿐입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여전히 가파르고 그의 삶을 힘들게 보여줍니다.

     

     

    집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여성 ‘소피’.

    그녀는 힘든 삶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합니다. 아서도 뒤늦게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농담에 답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흠좀무.

     

     

    아서는 혼자 TV를 보며 총을 들고 혼잣말을 하는데 이 장면은 택시 드라이버의 유명한 장면을 따온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은 로버트 드니로의 애드립이었다고 하더군요)

     

     

     

    아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소피’를 스토킹하고 클럽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관람하며 나름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웃기 전이나 후에, 어긋난 타이밍에 웃음을 웃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소피’가 찾아와 자신을 미행했느냐고 묻는데 아서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조크’를 보여주며 소피의 환심을 얻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코미디를 하는 걸 보러오라고 합니다.

     

     

     

     

    아서는 아동병원에서 광대일을 합니다. 그런데 춤을 추다가 그만 실수로 권총을 떨어뜨리고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 해고당합니다. 그리고 총을 준 랜들은 아서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실의에 빠진 아서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양복입은 3명의 양아치들을 목격합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가씨에게 시비를 걸던 그들을 보던 아서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양복 양아치들은 ‘Send in the Clowns(어릿광대를 보내주오)’를 흥얼대며 아서를 놀리고 급기야 그를 집단폭행합니다.

     

     

    ‘Send in the Clowns(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뮤지컬 A Little Night Music의 삽입곡입니다.

     

    여주인공 데지레는 서커스단에서 일하던 여자인데,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랑하지만 같이 할 수 없는 처지를 확인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이 노래는 아서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이죠.

     

    멋지지 않아요? 우리는 좋은 콤비죠?

    나는 바닥에 있는데, 당신은 하늘에 붕 떠 있어요(신분차이)

    어릿광대를 보내줘요. 이건 축복일까? 그렇지 않아요?

    누구는 뛰어다니고, 누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릿광대는 어디 있죠? 어릿광대를 보내줘요.

    내가 문을 열어젖혔을 때, 마침내 알았어요. 내가 원했던 건 당신이었다는 걸.

    내가 가진 재능을 갖고 다시 등장하면서.

    대사도 확신했는데, 아무도 그곳에 없네요.

    멋지지 않아요? 이상하진 않나요? 경력도 충분한데 타이밍을 놓치다니.

    그런데 어릿광대는 어디에 있죠? 어릿광대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내년에는...(기회가 올지도 모르니 편지를 계속 쓰자)

     

    (이 노래는 데지레가 자신이 쇼에 나갈 차례가 되었지만 실의에 차서 도저히 나갈 수 없으니 대신 어릿광대를 땜빵용으로 보내 관객들을 상대하게 해달라며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곡은 2014년 김연아 선수가 소치에서 쇼트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기도 했었죠.


     (안구정화를 위한 링크. 자막 有)

       

     

     

     

    그러니까 이 영화는 페니 플렌의 인생에서 튀어나온 광대 아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이야기가 멋대로 상상으로 새기도 하고,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없도록 모호하게 처리되기도 합니다.

    이런걸까? 저런걸까? 어때? 알겠어? 라고 감독이 광대처럼 관객을 희롱하듯 합니다.

     

     

     

     

    광대 아서의 인생은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머피의 법칙의 정점에 선 인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이름을 아서가 아니라 머피라고 지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아서를 ‘해피’라고 부릅니다. 자식을 강아지 이름으로 부르다니.

    아줌마, 미쳤어요?

     

    하다하다 이젠 이 영화를 만든 감독도 주인공인 그를 무시하고 괴롭힙니다.

     

     

     

    이 영화 속에서 감독은 아서를 어머니 페니 플렌의 이야기에서 땜빵용으로 튀어나온 광대취급 하듯, 그를 주변 사람들이 계속 무시하고 짓밟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그가 클럽 코미디 홀에 처음 섰을 때에도, 아서가 미친 듯이 웃고 난 뒤에, 본격적인 조크를 관객에게 던지려고 하니, 그 조크마저 무시하듯 소리를 없애버립니다.

    실제로는 야유를 보내야 할 관중들마저 그를 무시하듯 내내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내용이 나옴. 근데 별거 아님)

    아서는 이렇게 영화 속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불쌍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서는 행복합니다. 잠시나마 밝은 조명아래서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었으니까요. 옆에 새로 사귄 여친 ‘소피’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앞으로의 삶이 조금이나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서, 아서는 양복 양아치들에게 사정없이 쳐 맞다가 결국 랜들이 준 권총을 사용하게 됩니다. 정당방위로 2명을 죽이지만, 쌓였던 울분이 폭발했는지 나머지 한 명을 끝까지 쫓아가 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더 이상 정당방위가 아니라 살인입니다.

     

    이미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상대를 끝까지 추격해서 총을 쏘고, 쓰러진 상대를 향해 나머지 탄알을 모두 발사하는 것은 원한에 의한 살인에서 많이 나타나는 방식이라고 중립국 스위스에서 오신 ‘소피’소령님이 말씀하신 바가 있죠. 

     

     

     

     

     

     

    양아치들을 모두 죽인 후, 아서는 지하철에서 달아나 어느 화장실로 도망칩니다.

    그곳에서 청색도 아니고 녹색도 아닌 청록색 조명아래 그는 천천히 무언가에 홀린 듯 춤을 춥니다.

     

     

     

    지금껏 그의 내면에 갇혀 있었던 또 다른 자아가 이 살인을 통해 드디어 눈을 뜬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 또 다른 자아가, 민트성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C세계관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은 없지만, 그 또 다른 자아는 치느님을 영접할 때,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찍어 먹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음날 아서는 사무실로 가서 짐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출근도장기계를 부시고 계단 위에 ‘웃음을 잃지 말라’는 문구를 ‘웃지마’로 바꾼 뒤에 호탕한 웃음으로 계단을 내려갑니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 자신을 맞이하는 환한 <황금빛> 속으로 희망찬 탈출을 합니다.

     

     

     

    그 뒤 아서는 드디어 처음으로 클럽에서 코미디 쇼를 하고, ‘소피’와 데이트도 하고, 길거리에서 자신을 잡으려는 경찰의 전단지도 보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춤을 춥니다.

    그래,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나쁜 일만 일어날 수가 있어?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는 거지.

    그런데 호기심에 어머니의 편지를 읽어보고 자신이 토마스 웨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계속 토마스 웨인을 감쌉니다.

     

     

     

     

     

    아서는 토마스 웨인의 집으로 찾아가서 어린 부르스 웨인을 만납니다. 부르스에게 또 다시 웃기지도 않은 재주를 보여주다가 집사 알프레드를 만나는데, 그는 아서를 경멸하듯 대합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망상장애가 있었다고. 아서는 알프레드의 멱살을 잡고 조르다가 도망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쇼크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갑니다. 형사들이 지하철 살인사건을 쫓다가 아서를 의심하고 집으로 찾아 온 것입니다.

    형사들은 아서에게 아동병원에서 총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추궁하지만 아서는 그 자리를 피하려다 유리창에 부딪힙니다. 그곳은 ‘출구’였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어도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같은 한 장면. 아서는 어느새 다시 머피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들어 가는 곳과 나가는 곳을 모르는 아서.

    잘못 된 장소에서 헤매는 아서.

    실수로 뒤바뀐 그의 인생을 표현하는 듯 합니다.

     

     

     

    병실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서의 주위는 다시 어둡고 묘한 청록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 조명은 아서의 정신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때 TV에서 머레이쇼가 나오는데, 코미디 클럽에 갔던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가 찍은 모습이 나오면서 머레이의 혹평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코미디가 어떤 수준이었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아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상담사와 대화하는 아서는 표정도 말도 생각도 온통 ‘부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그를 무시하고, 심리적 육체적으로 폭행했고, 이제는 유일하게 기대어 왔던 정신상담사에게 마저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먹어오던 약도 더 이상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앞에 있는 결말은 뻔하죠.

     

     

     

    아서는 토마스 웨인을 만나러 화려한 고급 극장 안으로 잠입해 들어갑니다. 극장 안에서는 부호들이 철지난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화장실로 간 토마스 웨인을 따라 간 아서.

    그러나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토마스 웨인은 그를 보고 기뻐해 주지도 동정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서에게 그는 페니가 입양한 양자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어머니가 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웃음병이 터진 아서를 주먹으로 폭행까지 하죠.

    친아버지에게조차 배신당한 아서는 묘한 청록색 조명이 가득한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가둡니다.

    이 냉장고는 마치 그의 관처럼 느껴지죠. 아서가 죽고 싶을만큼 괴롭다는 것을 감독은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짝짝짝.

     

    또 하나, 감독이 아서의 내면을 잘 표현한 장면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발작하는 정신병자의 모습. 주인공의 내면상태를 다른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죠.

     

     

     

    아서는 토마스 웨인이 말한 얘기가 진짜인지 알아보기 위해 정신병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자신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됩니다.

    아서의 집과 병원은 아치형의 입구가 있습니다. 아서(arthur)와 아치(arch)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어원을 조사해보고 싶지만 귀찮습니다. 급소를 가격당한 누군가가 이 궁금증을 해결해 주시리라 믿쑵니다.

     

     

     

     

    아서는 자신이 토마스 웨인의 아들도 어머니의 아들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는 망상장애 환자였고, 자신은 어릴 때 입양되었고, 어머니의 남친에게 끔찍한 아동학대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진실이라 알고 있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웃여자 ‘소피(지혜, 철학)’도 여친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아는 현실의 깨달음(소피)으로부터 동떨어져 처음부터 홀로 망상의 세계를 떠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실에 눈을 뜬 아서는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더니, 희극이었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과 함께 어머니를 살해합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병들고 소외된 인물이 사회의 병폐와 무관심 때문에 조커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프로파일 관점으로 보면, 아서는 정신병 때문에 언젠가는 조커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냐가 문제였을 뿐이죠.

    (물론 그 시기는 사회와 주변인물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이 영화는 지금이 그 때임을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코미디언이면서도 지독하게 재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웃음을 웃는 타이밍도 남들과 다릅니다.

    웃는 것도 마치 점수를 매기듯, 이럴 때는 이정도로 웃는 게 맞겠지.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지 못하고 상당히 가식적인 웃음입니다.

    마치 타인과 감정을 교감할 줄 모르는 사이코패스가 정상인처럼 사는 방법을 교육받은 뒤에, 장례식에서 같이 울어주는 직업을 가진 것과 같죠.

    그리고 이런 정신적 문제를 가진 아서를 지금까지 컨트롤 해 온 것은 그의 어머니입니다.

     

     

     

    어릴 때 학대를 당한 아이는 자라서 타인을 학대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서가 정신병을 앓게 된 정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가능성을 제시할 뿐입니다.

     

    아서는 부모의 정신병력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고, 어머니와 남친의 학대 때문에 정신병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과거를 가진 아이에게 어머니는 왜 ‘해피’라는 애칭을 붙였을 까요? 왜 항상 웃으라고 했던 것일까요?

    혹시 아서의 내면에 숨겨진 이중성을 알아보고 그를 감금해 두기 위한 자물쇠는 아니었을까요?

    단순히 형사들이 찾아와서 간단한 질문한 한 것 뿐인데 쇼크로 쓰러지는 건 부자연스럽습니다.

    혹시 아서의 과거에는 어머니만이 알고 있는 뭔가 어떤 끔찍한 일이 숨겨져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쇼크가 왔던 것일까요?

    과거에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냥 단순히 과거에 자신이 학대를 했던 끔찍한 과거를 잊으라는 페니의 자기보호를 위한 주문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부르스 웨인 과거도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죽이 후에 토마스 웨인이 사인이 적힌 어머니의 사진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토마스 웨인의 음모라는 가설은 증거가 부족합니다.

    (어쩌면 페니가 미혼모라는 사실 숨기고 토마스와 연애를 하다 들통나서 토마스의 부모가 페니를 쫓아냈을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는 배신감에 페니를 외면한 거고요. 아님말고)

     

    여친 ‘소피’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전 안 죽였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서는 아직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아서의 자아를 갖고 있으므로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범죄영화에서 보면 연쇄살인범이 경찰에 쫓겨 궁지에 몰리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근원이죠.

     

    병원서류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된 아서는,

    여친 소피가 자신의 망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서는

    심리적 궁지에 몰려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흉(어머니)을 죽이고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빛> 햇살을 얼굴에 쐽니다. 마치 ‘이제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아동학대에 의한 조커탄생이 농후해 보임)

     

     

     

     

    어머니의 죽음으로 연쇄살인범의 심리적 트리거(방아쇠)는 당겨졌습니다.

    ‘이제 나는 자유야. 더 이상 가짜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HAPPY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돼.’

    지금까지 어머니에 의해 아서라는 평범한 인물로 '행복'이라는 허무의 껍질을 쓰고 살아 왔으나,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암시로 덧씌워졌던 가짜 인격, ‘해피’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해피'의 껍질을 벗고 기쁨의 축하 세레머니를 합니다.

    아까보다 더 커다란 창문으로 <황금빛>이 가득 쏟아져 들어와 그의 몸을 비춥니다. 

    아서의 내면에 숨어있던 진짜 정체성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겁니다. 얼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단 한 장의 팬티는 마지막 남아 있는 유일한 이성(아서)라는 뜻 일지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광대회사 동료 랜달과 왜소증 친구가 위로하러 찾아옵니다.

    처음엔 형사가 찾아온 줄 알고 가위를 꺼냈으나 친구가 왔으니까 안 죽일 거라고 관객은 생각했겠지만,

    어머니의 사망으로 유일한 안전장치가 풀려버렸기 때문에 아서는 가위로 랜달을 잔인하게 난자해 죽입니다.

    해고당한 복수를 한 것입니다.

     

    (만약 아서가 어머니를 죽인 후에 소피의 집을 찾아갔고, 소피가 느닷없는 침입자 아서에게 무례하게 욕하며 난리를 쳤다면? 죽였을 것임)

     

     

     

    하지만 회사에서 자신에게 유일하게 잘해준 왜소증 친구는 살려줍니다. 안 죽일 테니 그냥 나가라고.

     

     

     

    그런데 그 순간 찰리 채플린의 희극 같은 장면이 또 한 번 벌어집니다.

    왜소증인 친구는 키가 닿지 않아 잠긴 문을 풀고 그냥 걸어 나가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약간의 장애를 갖고 있을 뿐인데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간단한 삶조차 살아가는 게 이렇게 힘듭니다.

    옆에 남친이 있었으면 ㅂㄹ을 탁 쳤을 만큼 훌륭한 비유와 메시지였습니다. 

     

     

     

     

     

     

    해피의 껍질을 벗은 아서는 조커의 껍질을 입습니다. 그리고 머레이쇼 출연 연습을 합니다. 그는 머레이 앞에서 자살을 할 계획입니다. 머레이쇼에 출연하고 싶다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삶에 미련도 없으니까요.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화려한 정점을 찍을 생각에 흥겨워 춤을 춥니다.

    정말 미치도록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형사들이 그를 쫓아오지만 도망칩니다. 택시에 부딪혀 구르지만 상관하지 않습니다. 광대가면을 쓴 시위대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받습니다. 형사가 실수로 발포를 함으로써 상황은 악화됩니다.

     

    "너도 알다시피 광기는 중력과도 같은 거야. 조금만 밀어줘도 금방 추락하지."

    - 조커, 다크나이트

     

    그는 이 사건으로 군중을 이용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더욱 당당해지고 온 몸에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옵니다. (호아킨 만세!)

    이제 꿈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머레이에게 자신을 조커로 소개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출연하기 직전, 그는 머레이가 자신을 단순히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초대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평범한 아서(비정상)였을 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미친 조커(정상)가 되니 오히려 현실을 직시할 수있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진짜 정체는 아서가 아닌 조커입니다.

     

    출구와 입구를 잘못 찾아 엉뚱한 곳을 헤맸듯이, 지금까지 아서와 조커의 정체성이 뒤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머레이의 초청에 응했고, 남들 웃을 때 같이 웃을 줄도 몰랐으며, 코미디 하겠다며 조크 하나 제대로 할 줄 몰랐고(아서의 조크가 성공한 것은 망상 속에서 소피에게 한 게 유일), 2가지의 필체로 노트를 썼으며, 망상 속의 여친과 ㅅㅅ하고  등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성의 마지막 지푸라기였던 내면의 아버지의 배신.

    계획은 변경되었습니다. 자살하려던 조커는 머레이를 죽입니다.

    생방송으로 나간 살인 장면으로 인해 시위대의 광기가 폭주하고 고담시는 불탑니다.

    경찰차 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조커의 모습은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연상시킵니다.

    조커는 시위대에 의해 구출되고 마치 구세주처럼 부활합니다.

     

    피로 그린 스마일. 진정한 조커의 탄생.

    호아킨의 연기에 소름이 끼칩니다.

     

     

     

    동시에 고담의 수호신도 깨어납니다.  

    영원한 숙적.

    빛과 어둠의 탄생.

    오 마이 갓.

     

     

     

    조커는 다시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상담사를 죽이고, 밝은 대낮에 순결한 백색 복도를 걸어갑니다.

    조커의 발자국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눈을 밟고 들길을 갈 때는 행여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러이 가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의 본보기가 되리로다’

     

    그렇게 조커는 DC역사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피로 쓴 발자취를 남기며 미친듯이 웃고 춤추고 뛰며 다시 희극을 연출합니다.

    자신이 원하던 <황금빛>햇살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은 것 마냥.

     

     

     

    That's life. 그것이 조커의 진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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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자면,

     

    감독은 아서가 조커가 된 진짜 원인이나 그의 숨겨진 과거에 대해선 무엇하나 딱부러지게 밝혀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조커의 기원을 다룬 영화라기 보다는, 아서가 조커가 되는 '과정만'을 집중해서 엄~청~ 간지나게 표현한 영화라고 봅니다.

     

    아서가 조커가 된 것은 애초에 뒤바뀐 정체성의 문제였으므로,

    사회가 그렇게 부조리하지 않았더라도,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도, (그에겐 유일하게 잘 대해준 친구가 이미 있었습니다.)

    조커는 언젠가는 탄생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영화가 지적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범죄자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사회가 범죄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다만 이 영화에 나오는 조커는 단순히 사회적 문제로 인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 오히려 문제랄까요. (뭐 제 생각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