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2007. 11. 27. 23:55

 

 

 

 

 

 

 

 

 

 

 

 

86년의 어느날..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들국화란 이름의 밴드가 무대에서 뿜어내던 카리스마는

그들을 보고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보던 수많은 관객들 중 한명..

그 어린 소년의 마음 속에 들국화의 음악은 별이 되어 떨어지고

풋내기 모범생 소년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습니다

 

 

 

 

이승환 그렇게

 

음악이란 세상과

 

조우하게 됩니다.

 

 

 

 

 

 

 

 

 

 

 

 

 

 

 

 

 

 

 

 

 

 

 

 

 

 

 

 

 

 

 

 

 

 

 

 

 

 

 

 

 

 

 

 

 

 

 

 

 

 

 

 

 

 

 

88올림픽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던 1989년.

당시 가요계는 데뷔앨범의 전 곡을 히트시키며 인기몰이를 했던 변진섭과

수많은 히트곡의 주인공 이문세, 조하문 등으로 대표되는 

발라드와 트로트로 양분된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굉장한 발라드의 '별'들 속에서

여리여리한 목소리의 한 가수의 노래가

아주 천천히.. 조용하게 길거리에 울려 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기존의 발라드 가수들과는 다른 느낌의

맑고 깨끗하고 청아한 목소리에 서서히 매료되고,

점점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군지 궁금하게 됐죠.

이런 궁금증은 레코드 샾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집어든 LP판에는 [B.C 603]이라는 앨범 타이틀 밑에

'이승환' 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텅빈 마음>은..

그렇게.. 이승환 1집 [B.C 603]

아주 조용하게, 혹은 갑작스럽게

80년대의 어느날에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승환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려준 노래는

1집의 1번 트랙 <텅빈 마음>이었습니다.

이 곡이 타이틀 곡이 된 이유도, 이 곡이 알려진 계기도

단지 1번 트랙에 실려 있었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조 분위기의 발라드 넘버는

보컬이 가지고 있는 '깨끗하고 희망찬(?)' 음색으로 인해

오묘한 느낌을 주며 많은 사람들의

(참 촌스러운 표현이지만)심금을 울립니다.

 

 

(데뷔곡 <텅빈 마음>은 사실 지금 들어도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 드는 곡 중의 하나죠.

전형적인 발라드 형식의 구성은 전혀 이질감 없이 친숙하게 다가오고,

너무나도 수려한 멜로디 라인은 시간이 지나도 전혀 빛을 잃지 않습니다..

지금 들어도 독보적인 이승환의 목소리와 함께)

 

 

이승환이 1집을 제작한 과정은 꽤나 극적이었습니다.

아니, 한국 음악계에 획을 그엇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싶어요.

들국화의 공연에 온 마음을 빼앗긴 그 순간부터

이승환의 꿈은 단 하나, 가수였고 그의 세계는 음악이었습니다.

이런 욕망을 '모범생 본능'으로 가까스로 억누르며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교 동아리에서 그룹 사운드와의 만남

그의 꿈을 현실로 다가가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됩니다.

 

 

참으로 영화처럼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어서' 보컬을 지원했고,

만화처럼 한번에 턱! 붙진 못했지만..^^;

근성으로 결국에는 그룹사운드 보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가 몸 담았던 밴드의 성향은 당시 대세였던 헤비메탈 밴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록에서의 출발은 후에 그의 음악적 성향과

음악적인 지향 방향을 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끼치게 됩니다.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면 할수록 그의 미래는

가수라는 길로 더더욱 확고하게 정립되어 갔고,

결국 이런 생각은 학교 중퇴라는 결과를 낳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웁니다..만

너무나도 극심한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죠.

 

 

이러한 집안의 극구반대는 결국 그의 성격까지 변화시키고..

자폐증에 히카코모리 증세까지 보이며 자신의 방에

하루종일 갖혀 세상과의 모든 소통을 중단하기에 이르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함'의 수준을 떠나서

'신앙적인 믿음'으로 발전되면 이런 증세가 나타날까요..)

이런 인간같지 않은 삶을 살기 2개월,

결국 드디어 아버지에게 절반의 승낙을 얻어냅니다!

 

 

'모든게 끝났다고 시작한 그 시점이 시작이다' 라는 말은

긍정적, 부정적인 경우 모두에 해당 되는 말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집안의 승낙으로 드디어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진정한 시련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고 서른 군데가 넘는 소속사를 돌아다녔지만 

이승환은 모두 퇴짜를 맞기에 이르죠.

 

 

그래도 포기 않고 계속해서 발품을 판 끝에 드디어 

데모 테이프를 받아준 기획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획사의 계약 조건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 였습니다.

계약조건 3년에 앨범 3장, 계약금과 인세는 일체 없고 1년에 한 번씩 홍보비 납부

....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조건이었죠.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환상 속에서 살고있던

풋내기 21살 어린 아이가 현실과 만났던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에도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결국 아버지는 최후통첩을 제안합니다.

'이 돈으로 앨범 만들고 망하면 군말 없이 음악 포기해라'

라는 조건을 내걸고 음반 제작 자금을 대준 것이죠. 

 

 

사실 아버지의 입장에선 그 험한 바닥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풋내기가 성공할 확률은 0%로 보았고,

하루빨리 아들이 마음을 잡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제안이었지만..

이같은 결정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낳기에 이릅니다.

가수가 앨범을 직접 제작한 최초의 가수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던 1집

 

 

89년 겨울에 발매됐던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예상대로 조금의 파장도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떤 메니지먼트사도 없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앨범이라 홍보 수단은 아무 것도 없었고,

방송사들이 신인을 방송에 출연시키기 전 실시하던 오디션에서도

모두 떨어지며 방송 출연 자체를 못했기 때문이었죠..

   

 

이문세, 변진섭 같은 거물들이 지배하고 있던 발라드 계에

철저한 무명에 대형 메니지먼트사도 없던 신인

설 곳이 없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가수의 데뷔앨범.. 1집이 밀리언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건

다름아닌 '길보드 차트' 때문이었습니다.

 

 

소위 다운타운 챠트라고 말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세계는

이승환 1집의 1번트랙 <텅빈 마음>에 기적적으로 생명을 부여합니다.

음악다방 등과 도심지 길거리, 번화가 등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목소리의 발라드 곡은 많은 이들에게 가수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고.. 

1집이 나오고 나서 1년이 다 되어서야 이승환이란 신인 가수의 앨범은

'주목'을 받고 1집 앨범은 노래처럼 조용히, 막강하게 팔려나갔습니다

 

 

  

 

 

 

 

 

 

 

 

 

 

 

 

 

 

 

 

 

 

 

 

 

 

 

 

 

 

 

 

1집의 곡은 변진섭 1집이 그랬던 것처럼

전곡이 히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텅빈 마음> <가을 흔적>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크리스마스에는> <좋은날> <눈물로 시를 써도> 등등

 

 

모든 곡들이 '오태호' 라는 걸출한 멜로디 메이커의 존재 덕택에

수려한, 소위 말하는 '먹히는' 노래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포진되어 있었고, 

감수성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멜로디 라인은 이승환의

너무나 신선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와 환상적으로 어우러졌죠..

(초창기 이승환을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이 1집을 최고 명반으로 꼽는 이유입니다)

 

 

당시 발라드가 주를 이루던 가요계에서도

<텅빈 마음>의 완성도는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집 앨범을 주목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크리스마스에는> <그저그런 이야기> 에 있습니다.

 

 

'최초의 창작 캐롤' 로 알려진 <크리스마스에는>

제목이나 앨범 발매 시기로 볼 때, 12월에 맞춰 억지로 끼워 넣은 노래라고 보여지지만

실상 노래를 듣고 보면 이승환의 대단히 세련되고 팝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곡이죠.  

(이 노래는 후에 편집 앨범에 완연한 캐롤 트랙으로 편곡되어 실리는데..

이 리믹스 버전은 김현철, 임상아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과 더불어

가요계에서 가장 뛰어난 창작 캐롤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그런 이야기>는 대중성을 많이 생각한 1집 앨범에서

록적인 느낌을 유일하게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트랙입니다. 

아직까지 이때는 이런 락킹한 비트의 곡조차도 '예쁘장하게' 부르는

이승환이지만, 사실 이 곡의 진가는 '락의 본능으로서의 회귀' 후 열린

콘서트의 락 버전의 편곡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1집의 어머어마한 성공은

앨범 발매 후 꼭 1년 만인 1990년 12월,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던

잠실 실내체육관에서의 콘서트 전좌석 매진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

집안에서 이승환의 음악 활동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된 시점도 이 시기였죠.

 

 

1집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1991년 2집 [Always] 를 발표하게 되고..

2집을 발매할 당시 이승환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태세였죠.

 

 

 

  

 

 

 

 

 

 

 

 

 

 

 

 

 

 

 

 

 

 

 

 

 

 

 

 

 

 

 

 

 

 

현재까지 왕성한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비교적 알려진 곡이 없는 이승환이지만

이 앨범에 수록된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곡이고,

그와 더불어 초창기 이승환 발라드의 정점,

타이틀 곡 <너를 향한 마음>은 발라드의 정석, 그 자체였습니다.

(더불어 음악 파트너 오태호의 역량이 절정으로 만개한 앨범이 바로 이승환 2집이었습니다)

 

 

2집 앨범은 1집에 비해 약간 더 마이너한 감수성 이 나타나는 앨범이었습니다.

<회상이 지나간 오후> 라던가 <슬픔에 관하여> 에서 보여주던 철저한 어두움,

반면에 <하숙생> <사랑하는 걸> 과 같은 밝은 느낌이 공존해 있던 앨범이었죠.

2집의 최고 명곡은 가요계 사상 가장 아름다운 가사 중 하나로 생각하는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나는 나일뿐>이란 곡을 꼽고 싶은데요.

<나는 나일뿐>[이오공감] 앨범 발매 후 냈던 라이브 앨범

[The Show]에서 피아노 발라드 편곡 버전으로 더 알려져 있기도 한 곡입니다.

 

 

본 앨범 역시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이제 이승환이 가요계, 정확히는 발라드계에서 차지한 위상

여느 스타들과 동급 반열에 오를 정도였습니다

1집, 2집 단 두장의 앨범만으로 수많은 팬들을 양산시킨 것이었죠.

 

 

세상에 뿌려진 사랑을 노래하고,

너를 향한 마음을 기다린 날도 그대를 위했던 시간이었다는

좋은날 속에서 뽀송뽀송한 발라드를 부르던 어린왕자 이승환의 이미지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건... 오태호와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던

[이오공감] 이후 3집 [My Story] 부터였습니다.

 

 

 

 

 

 

 

 

 

 

 

 

 

 

 

 

 

 

 

 

 

 

 

 

 

 

 

 

 

 

초기 이승환의 음악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건 오태호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때부터 '엄청난 기타리스트' 로 주목을 받았던 오태호

잉베이 맘스틴, 임펠리테리등의 속주 기타리스트들이 광적인 지지를 받던

80년대 국내 메틀계에서 가히 속주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한 실력을 자랑했죠.

 

 

(여담이지만.. 당시 속주가 대세였던 80년대 국내 그룹사운드계에서는 묘한 소문이 떠돌았는데요.

마치 최배달이 무도관을 하나씩 찾아가 격파했던 것처럼

당시에는 소위 기타리스트 사이의 '기타 배틀'이 유행 했었답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에 언젠가부터 입이 쩍 벌어지는 속주 실력으로

각지의 밴드들을 초토화시키며 돌아다니는 녀석이 있다는

정체불명의 뜬소문이 전설처럼 떠돌곤 했었는데.. 그 주인공이 오태호라는 소리가 있었습니다-_-;;)

 

 

시나위의 기타리스트가 공석이었을 때 가장 유력한 후보로 대두되었을 정도로

속주 뿐만 아니라 탄탄한 기본 재량도 갖고 있었던 오태호는 이승환을 만나며,

이승환이 들려준 엘튼 존 앨범을 듣고 그의 음악적 행보는 180도 바뀌게 됩니다..

이후 팝 발라드에 빠져서 음악 방향을 급선회했고,

그 역량은 발라드곡을 작곡하던 그 때에도 찬란히 빛났습니다.

 

 

 

  

 

 

 

 

 

 

 

 

 

 

 

 

 

 

 

 

 

오태호는 이승환에게 없었던 그야말로 '천부적인' 대중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그의 능력은 이승환 1, 2집이 밀리언 히트를 기록하게 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죠.

그리고 이 둘은 드디어 [이오공감] 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매하게 됩니다.

 

 

90년대에 나왔던 발라드 곡중에서 가장 완벽한 멜로디 라인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곡인

<한사람을 위한 마음>을 비롯해서 <플란다스의 개> 등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결과적으로는 둘 사이를 음악적으로 갈라놓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오태호는 더욱 더 말랑말랑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곡 들을 원했고,

이승환은 전형적인 발라드에서 탈피해 '변화'를 원했던 시점에서

약간은 이도 저도 아닌 성격으로 나온 이 앨범으로 인해 둘은 음악적으로 결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 간간한 음악적 교류는 계속해서 이어지죠.)

 

 

그리고.. 93년, 3집 [My Story]가 발매됩니다.

 

 

 

  

 

 

 

 

 

 

 

 

 

 

 

 

 

 

 

 

 

 

 

 

 

 

 

 

 

 

 

 

 

 

 

 

 

 

 

3집을 만들면서 이승환이 만나게 되는 뮤지션은

후에.. 불후의 명곡 <마법의 성> 한 곡으로

대한민국을 들었다놓은 김광진이었습니다.

 

 

당시 이승환이 추구하는 음악적 색깔은 발라드의 틀은 유지하되,

대곡 지향의 웅장한 발라드 곡을 원했습니다.

(사실상 이런 그의 의도가 완벽하게 반영된 곡은 2년 뒤에 나온

4집의 <천일동안>이었지만, 김광진이 작사, 작곡한 3집의 타이틀 곡

<내게>는  <천일동안> 의 바탕을 만들어 준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장 5분 17초에 달하는 러닝타임에 '전형적인 히트곡 공식'의 틀을

완전히 배제한 타이틀 곡 <내게>팬들 사이에선 콘서트 편곡 버전으로 인해

이젠 원곡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지만, 화려한 코러스와 연주 라인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부분을 비롯해서.. 원곡은 상당히 웅장한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이 앨범부터 이승환의 음악적인 변모는 서서히 시작됩니다.

많은 분들이 4집부터 이승환의 음악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4집 변화의 틀은 3집에서 서서히 구축되어 있었죠

 

 

이전 앨범들에 비해 확연히 신디사이저 등의 전자음 사용이 월등히 많아졌고,

타이틀 곡 부터 '전형적인 발라드 공식'의 곡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015B의 정석원이 만든 <너의 기억>같은 곡들만 들어도 확연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죠.

 

 

 

 

 

 

 

 

 

 

 

 

 

 

 

 

 

 

 

 

 

 

 

 

 

 

 

 

 

'록의 본능으로서의 회귀' 는  <무너져버린 믿음 앞에서>같은

트랙을 통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집에는.. 너무나도 015B스러운 가사의 <사랑에 관한 충고>와 

명곡 <덩크슛> 같은 노래들의 틈 사이에서

유난히 튀어나온 달달한 곡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화려하지 않은 고백> 입니다.

 

 

너무나도 예쁜 가사와 멜로디의 주인공은 오태호의 결과물이었죠.

이승환은 비록 오태호는 자신과 음악적인 성향이 다르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천재적인 대중적 감각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 곡은 약간은 '안전빵' 비슷한 존재가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3집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곡 중의 하나가 됐죠.

 

 

그리고.. 3집의 진정한 의미는 비로소 가수 이승환이 아닌

'뮤지션' 이승환으로 각성한 앨범 이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

이제서야 음악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인 '노래'로 표현했던 앨범이었죠.

 

 

3집 앨범 제작 중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은 마지막 트랙으로 '노래'로서 승화됐고,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 연예계란 세상을

점점 더 알아가며 느꼈던 모든 느낌들을 점차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예술적인 언어인 노래로 말하는 법을 알게 된 계기가 된 앨범이 바로 3집이었습니다.

 

 

 

 

 

영원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사랑도 믿음도... 그리고 미움도, 나에겐 그랬다

-My Story-

 

 

 

 

 

 

 

 

 

 

 

 

 

그리고... 격변의 앨범 4집 [Human]

 

20세기 가요계 100대 명반을 꼽을 때 반드시 꼽히는 앨범  

 

 

 

 

 

 

 

 

 

 

 

 

 

 

 

 

 

 

 

 

 

 

 

 

 

 

 

 

 

이 앨범은 일단 시작부터가 차원이 달랐습니다.

'사운드의 광적인 집착' 이 비로소 이 앨범부터 시작됐었죠.

미국에서 제작된 이 앨범에 참여한 외국 세션진들만 해도 200명이었고,

015B 정석원, 토이 유희열이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하게 되며

음악적 색채에서도 이전 앨범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 앨범이었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사운드는 본조비 앨범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데이비드 캠벨의 조율 아래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크래쉬 1집 앨범 등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실로 경이로운 사운드를 뽑아내며 전문가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의 역사적인 수록곡인 김동률 작곡의 <천일동안>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의 '유일한' 히트곡이 됨과 동시에 

그가 그토록 원했던 대곡 지향성 발라드의 완성형이었습니다.

(곡이 처음 나왔을 때의 느낌은 전형적인 팝 발라드였으나

데이비드 켐벨의 편곡 아래 지금의 곡으로 탄생됐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죠.)

 

 

이승환이 이 곡에만 들인 공은 세션 연주자들을 수십,수백 번 갈아 엎을 만큼 엄청났고,

이 곡 하나 때문에 인해 이승환은 창법의 변화 마저 주었습니다. 

흔히들 이승환 특유의 창법이라고 말하는 '꺾기 창법'이 여기서 시작됐었죠.  

(이러한 창법의 변화는 본 앨범에 들어있는 또하나의 명곡 <다만>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발매되는 앨범에서 그의 대중적, 음악적 평가를

방해하는 '넘을 수 없는 벽'의 비극 을 준 곡이기도 합니다.

M/V에서도 이 곡은 스토리 있는 내용을 거의 최초로,

그럴듯 하게 도입하며 몇년 뒤 탄생하는 뮤비드라마의 토대가 되기도 했죠

 

 

 

 

 

 

 

 

 

 

 

 

 

 

 

 

 

 

4집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굉장했습니다.

사운드의 완벽함 뿐만이 아니라 13트랙 모두의 완성도는 

가히 "완벽한 팝 앨범"이 뭔지를 보여주는 차원이었죠.

 

 

미디움 템포의 <체념을 위한 미련>이나

너무나도 훌륭한 곡 <변해가는 그대> 김동률 불후의 명곡 <다만>

'궁극의 가사'를 자랑하는 <내가 바라는 나>

펑키한 느낌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마지막 트랙 <지금쯤 너에게>까지.. 

이전 앨범 수준에서 단숨에 3~4계단을 뛰어 오른 느낌을 주었던 앨범입니다.

 

 

그리고 이 앨범이 너무나 큰 가치를 지니게 된 데에는 

이승환의 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곡 <너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표방한 9분 4초에 달하는 길이의 이 곡은

이승환의 '음악적 혁명' 그 자체였습니다.

 

 

여리여리하게 발라드만 부르던 어린왕자가

하드한 연주 위에서 샤우팅와 그로울링을 섞어가며 절규하는 이 곡은

락커 이승환의 최초의 모습을 대중들 앞에 보여주며,

동시에.. 수많은 팬들과 결별하는 이유가 된 곡 이었습니다.

 

 

포효하는 이승환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던 것이었죠.

<천일동안>에 이끌려 산 앨범에 악마같은 이미지의 노래..

게다가 가사는 비극과 절망 그 자체.그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완벽하게 담아낸

이 역작을 많은 팬들은 외면했지만 그 반면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열정적인 매니아 팬'층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 노래가 이 곡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앨범 4집을 기점으로 이승환은 완벽히 변모하게 되고.. 5집 [Cycle]이 97년 발매됩니다.

 

 

 

  

 

 

 

 

 

 

 

 

 

 

 

 

 

 

 

 

 

 

 

 

 

 

 

 

 

 

 

 

 

유희열과 이승환의 만남은 5집에서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유희열의 세련되고 트랜디한, 신선한 감성은

이승환의 색채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며 또 하나의 명반을 탄생하게 되죠.

이승환, 유희열 만남의 정점을 느낄 수 있는 곡은 <붉은 낙타> 였습니다.

 

 

한국의 대중 음악사가 수백년이 흐른다 하더라도

여전히 신선하고 파격적인 곡으로 남을 것이라고 장담 할 수 있는

이 곡은 이승환의 '위대한' 가사가 유희열의 독창적인 재능과 만나면

나올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경우가 현실로 발현된 곡이었습니다.

곡 구성의 완벽함은 가스펠 형식으로 끝나는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으로 치달으며 마무리 되죠. 

 

 

이밖에도 재치있는 패러디 <백일동안> 이나 뛰어난 디스코 펑키 트랙 <미용실에서>

<천일동안>에 비해 전연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발라드 트랙 <애원>

뿐만 아니라 <사자왕> <흡혈귀> 같은 발군의 곡들과

가장 훌륭한 노래가사로 꼽히기도 했던 <가족> 등..

수많은 명곡 들을 갖고 있는 앨범이 5집 [Cycle] 입니다.

 

 

그리고 이 앨범의 사운드의 완벽함은 전작 4집을 뛰어넘어

'사운드가 가장 훌륭한 90년대의 앨범'으로 꼽히기도 했죠.

 

 

이토록 보이지 않는 디테일함과 더불어 곡 자체의 완성도 면에 있어서도 

오히려 4집을 뛰어 넘는 굉장한 모습을 보여준 이 앨범은 그러나 사실

발매 당시에는 앨범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외적인 요인으로 화제가 된 앨범이었어요.

5집 앨범 과정 중, 미국에서 연주자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억대의 사기를 당했던 얘기나

<애원> M/V에서 찍힌 귀신이 앨범 홍보를 위한 목적으로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등의 구설수등으로.. 허나 이런 시련들과 귀신소동은 6집으로 넘어가며

또 하나의 '명곡'을 탄생한 계기가 됐으니.. 이승환은 이제 진정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음악으로 표출할 수 있는 확고한 뮤지션이 된 것이죠.

 

 

1999년, 세기말에 발매 된 6집 [The War In Life]

 

 

  

 

 

 

 

 

 

 

 

 

 

 

 

 

 

 

 

 

 

 

 

 

 

 

 

<천일동안>이 구축한 철옹성 같은 '벽'은, 사실 이승환 자신은

본 앨범의 <그대는 모릅니다>로 인해 깨뜨렸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는 대중들이 <천일동안> 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타이틀 곡 <그대는 모릅니다><천일동안>을 표방한 대곡 발라드 였습니다.

비록 대중적으로는 완벽히 실패했지만, 사운드의 정교함이나

곡 구성은 <천일동안> 의 완성도에 필적하는,

아니 어쩌면 그를 뛰어넘는 완성도 를 가지고 있는 곡이었죠.

 

 

6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중친화적'인 모습으로 회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가지 소원> 같은 말랑말랑한 감수성의 곡은

이승환 음악에서 참 오랫만에 느꼈던 코드였어요.

<첫날의 약속> 이나 <오늘은 울기 좋은 날> 같은 곡들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귀신 루머로 인해 탄생한 곡인 <귀신소동>

특히 <Rumor>는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서태지의 아우라' 를 느꼈던 곡이기도 합니다

(이승환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예요)

 

 

 

 

 

 

 

 

 

 

 

 

 

 

전형적인 메틀곡 에서 뿜어내는 '락커'의 이미지는

이제 더이상 낯설고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너의 나라>와 쌍둥이 곡과 같은 <나의 영웅>

가사의 예술성이나 더욱더 극적인 곡 구성, 드라마틱한 창법의 변화 등등

대곡의 포스를 여지없이 뿜어내는 이승환 최고의 곡으로 화자되기도 하는 노래입니다.

3집에서 애잔한 발라드 코드로 풀어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Rock 이란 언어로 노래하게 된 곡이 이 곡이었죠.

 

 

그리고.. 이 앨범의 존재의 이유 <당부>

(개인적으로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합니다)

해금 소리가 어우러진 동양적인 선율 의 이 곡은 오리엔탈을 표방한 발라드 곡중

국내, 아니 전세계를 통털어서도 이보다 완벽한 곡은 쉽사리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곡입니다. 

윤상이 스트링 편곡을 한 이 노래의 선율은... '슬픔' 그 이상의 한 을 느끼게 해 주고,

더불어 입이 쩍 벌어지는 완성도의 환상적인 M/V는 그해 최고의 뮤직비디오 상을 받기도 했죠

 

 

2001년에 발매된 이승환의 7집 [Egg]는 mp3의 등장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가요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앨범이었습니다.

 

 

  

 

 

 

 

 

 

 

 

 

 

 

 

 

 

 

 

 

 

 

 

 

 

 

 

 

 

 

사실 이 앨범의 2CD라는 구성은 시기가 너무 안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창이나 앨범 판매량이 mp3라는 신 매체와 맞물려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규앨범을 2장의 CD로 냈다는건.. 상업적으로 보면 철저히 실패한 작전이었죠.

(그 반면에 앨범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7집은 개인적으로 '팬'의 입장에서 본 이승환의 앨범 중 최대 명반이라고 생각하는 앨범입니다.

대중친화적인 발라드와 팝으로 구성된 [Sunny-Side Up]

대중성보다는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만을 펼친 [Over Easy]

두장의 CD에 빼곡히 들어있는 스물 세개의 곡은 각각 '절정'의 수준을 자랑합니다.

 

 

[Sunny-Side Up] 에서 보여준 대중 친화적인 감수성

이승환에게 아직까지 이런 모습이 남아있었구나 할 정도로 

이제는 아예 '새로움' '신선함'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승환과 유희열의 또 하나의 완벽한 만남의 결과 <만추>

정지찬의 새로운 발견 <푸른 아침 상념>

환상적인 그루브 감각을 보여주는 앨범 최고 트랙중 하나 <춤바람> 등등..

가벼운 소품 형식으로 만든 나 <..사랑하나요!?>

음악의 색깔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트랙에서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런 [Sunny Side-Up] 의 훌륭한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가려지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단 한곡의 존재 때문입니다. 

7집의 위대함은 [Over Easy] 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위험한 낙원>으로 모두 집중되기 때문이죠. 

 

 

 

 

 

 

 

 

 

 

 

 

 

 

 

 

 

 

 

 

7집에서 이승환은 결정적인 음악적 커넥션을 완성하게 되는데요.

'이규호'라는 뮤지션과의 만남이 그것이었죠.  

 

 

한국 포크 음악과 포크 뮤지션의 산실,

하나기획에서 나온 이규호의 데뷔앨범 [Alterego]

비록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이 앨범은

일각에서는 '한국 포크계의 천재 뮤지션 등장' 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습니다.

시부야케이 사운드와 보사노바, 록적인 느낌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이 훌륭한 결과물은

생김새 만큼이나 '여성적인 보이스 톤'과 어우러지며 너무나도 독특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들리던 소문에.. 김광진이 이규호를 처음보고 너무나도 곱상한 외모때문에

여자로 착각하고 몇 달 정도 애틋한 감정에 빠졌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규호와 이승환의 만남은 <위험한 낙원>이라는

이승환 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난폭함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여리여리한 분위기의 이규호가

이런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거니와,

Queen의 <Bohemian Rhapsody>가 연상되는 오페라틱 락을 표방한

변화무쌍한 대곡은 그가 3집부터 추구하고, 4집부터 시작한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음악적인 지향점이 이 곡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이미지와 너무나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곡이었죠.

 

 

이외에도 명반 015B 6집의 느낌이 강하게 풍겨오는 정석원 작품의

유희열식 록음악을 보여주는 <I Hate It> 죽이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Workaholic>

개인적으로 이승환의 록넘버중 가장 좋아하는 트랙 <Warning> 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카리스마..  

 

 

이토록 수많은 명곡들이 포진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 앨범은 30만장이라는 충격적인 판매고 를 기록하게 됩니다.

현재 가요계로 볼때 30만장이면 대박중에서도 초대박이지만

지금처럼 절망적인 음반계가 아니었던 당시 시점에서,

또 이승환이라는 네임밸류 면에서 볼 때

30만장이라는 앨범 판매량은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였죠..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 꼭 2년 터울로 정규 앨범을 발매하던 이승환은..

왠일인지 7집이 발매되고 3년이 지난 2004년에

8집 앨범 [Karma] 를 발표하게 됩니다..

 

 

  

 

 

 

 

 

 

 

 

 

 

 

 

 

 

 

 

 

사실.. 8집 앨범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승환 앨범을 들으면서 눈이 높을대로 쳐 높아진 저에게

처음으로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앨범이었기에..

 

 

타이틀 곡 <심장병>은 이전 트랙들에 비해 아무리 들어도 귀에 감기지 않았고

역대 최강을 자부하는 세션의 연주와 노래 각각의 완성도 역시 끝내줬지만..

왠지 모르게.. 다 듣고나면 허탈한 느낌이 많던 앨범이었어요

<마지막 인사>같은 훌륭한 발라드 트랙들과 <물어본다>같은 

매력적인 노래들이 있음에도 '허전'하고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던 참으로 이절적인 앨범이었던 8집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8집 즈음했던 이때가 이승환의 음악 인생에서

처음으로 '침체기' 혹은 '슬럼프' 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했던 시기였습니다.

너무나도 극렬한 빠심 때문에 (-_-;) 이승환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모든 음악은

지독한 팬의 입장에 사로잡혀 억지로라도 좋게 듣는 편인데..

8집 만큼의 묘한 느낌을 준 앨범은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

 

 

이승환 개인으로써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후.. 

2년 뒤 나온 9집이 [Hwantastic 9] 이었습니다

 

 

 

  

 

 

 

 

 

 

 

 

 

 

 

 

 

 

 

 

 

 

 

 

 

 

 

 

9집은 근래 나왔던 이승환의 앨범 중에 가장 성공한 앨범입니다.

(앨범 판매량을 떠나서 그의 '대중적 지지도'를 한층 높게 해준 앨범이었죠)

<남편>이나 <그늘>에서 보여준 처연한 감수성,

이승환식 락의 진보를 보여준 베스트 트랙 <소통의 오류>

에서 보여주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사운드.

전해성과 함께한 첫 곡 <이노래>에서부터

9집의 대중성은 이미 먹고 들어가는 것이었죠.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곡은 타이틀 곡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입니다.

이승환의 음악을 들으면서 <천일동안>을 뛰어 넘은 발라드 곡이라고 생각했던 곡이

현재까지 딱 두 곡이 있는데 <그대는 모릅니다>와 바로 이 곡이예요.

 

 

<그대는 모릅니다>가 대중적으로 실패한 원인은 훅이 너무 '단조의 느낌'이 나서였고

절정 부분이 곡의 말미에서야 겨우겨우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천일동안>역시 절정은 곡의 후반부에 가서야 터지지만 절정으로 넘어가는 과정

굉장히 자연스럽고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듣기에 '지루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었죠.

 

 

철저히 대중을 겨냥한 곡인 이 곡은 훅이 굉장히 빨리 등장합니다.

그리고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극적으로 멜로디가 변화되죠.

마지막 부분에서는 내지르면서 절정에 치닫고 페이드 아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전 같았으면 곡의 전체적인 구성을 파괴하면서까지

코러스 부분을 갑작스레 등장시키지 않았을텐데.. 이 곡 같은 경우에서는

'대중에게 다가가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반영된 결과,

이전 이승환의 발라드 곡에서 존재했던 '절정으로 가는 과정'을 점프한 것이죠.  

 

 

어쨌건 이런 약간의 무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고,

현재 트렌드에 다분히 맞춘 곡이었음에도

이승환만이 가지는 '특유의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음악적인 완성도 역시 보통 이상을 보여준 곡이었죠.

 

 

흔히들 말하기를 음악에서 대중성과 예술적 완성도의 관계는

반비례라고들 하지만 이 두가지 상관관계를 '비례'적인 관계로

만들 수 있는 흔치 않은 국내 뮤지션 중의 한명이 이승환이고,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승환 9집 [Hwantastic 9]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승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콘서트' 부분인데요.

현재 국내에서 행하는 모든 '쇼적인 장치'를 고안한 콘서트는

이승환 공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정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최초의 틀'을 만들어 길을 닦아놓은

사람이 이승환임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이승환이 공연을 중요시 한 건 사실 데뷔 때의 사정들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당시 별다른 홍보수단이 없었던 이승환의 유일한 '홍보방법'은 공연이었고,

소극장 공연을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공연 중심의 가수, 얼굴없는 가수로 인식되곤 했죠.

 

 

또 하나의 이유는 이승환 자신이 들국화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

그들이 추구했던 '방송출연 일체거부'라는 일종의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

따라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인데요. 어쨌건 결과적으로 이런 공연 위주의 활동은

국내 라이브 공연계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굉장한 결과로 나타났죠.

 

 

보여주는 '쇼 중심'의 공연을 하게 된건

97년 5집이 발매되고 난후 가졌던 "드림팩토리 투어" 때부터 였습니다.

5집을 발매하고 자신의 소속사이자 스탭들이자 팬들의 모임의 총칭

'드림팩토리'를 결성하며 '이승환 밴드(드림팩토리 밴드) & 이승환 스탭' 이라는

고정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고, 이 때 결성된 멤버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고 있을 정도로 단단한 팀워크로 뭉치게 됩니다.

 

 

 

 

 

 

 

 

 

 

 

 

 

 

 

 

 

 

 

 

 

 

 

97년 "드림팩토리 투어" 를 하며 본격적으로 화려한 쇼에 관심을 가졌던

이승환의 이러한 노력은 비로소 99년 "무적전설 투어" 로 '완성'시키게 됩니다.

무적전설 투어는 가히 국내 공연계의 기념비적인 투어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공연이었죠.

압도적인 시각적 비쥬얼은 이전까지 국내에선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이었고,

무대장치, 조명, 음향세팅 등등 현존하는 모든 콘서트의 '체계'를 이루었던 공연이었습니다.

 

 

'지독한 완벽주의'를 바탕으로 이뤄낸 이승환의 무적전설 투어는 

이 때부터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인정 받았고,

화려한 볼거리 외에도 공연 때마다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맛깔스런 편곡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폐활량'을 바탕으로 한 경이적인 콘서트 시간 기록 등등..

 

 

 

 

 

 

 

 

 

 

 

 

 

 

 

 

 

 

 

 

 

 

그리고.. 공연계의 전설로 만든 "무적전설" 투어의

뒤를 잇는 역사적인 공연, "끝장" 라이브 콘서트.

후에 DVD로도 발매 됐었던 이 공연에서,

특히 2003년 5월에 열렸던 전쟁기념관에서의 서울 앵콜 콘서트

역대 최고의 볼거리와 더불어 단 한명의 게스트도 없이 홀로

무려 5시간 33분의 공연을 한.. 미친 공연이었습니다

 

 

'이승환.. 나이도 들고 이제 약간은 주춤한게 아니냐' 라는

세간의 말들을 한방에 잠재워 버린 공연이었죠

(이후 출시된 DVD의 음향 수준은 현존하는 국내 콘서트 실황 DVD중

조용필의 '비상'과 더불어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몸까지 키워서 체력을 보강하고, 

또 얼마전에는 '이제서야 무대공포증을 극복했다' 는 말로

더 좋은 공연을 보여주겠다는 말 등을 하며

'옹'으로 불리우는 그의 닉네임을 무색하게 하는,

불혹의 나이에도 그야말로 더더욱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나왔던 이승환 앨범들을 써봤는데..

예상치 못하게 글이 엄청나게 길어져 버렸네요..ㅠ_ㅠ

정말 마음 같아서는 [유치뽕] [His Ballad]시리즈, Tribute Album 참여곡,

[무적전설] [반란] [The Show] [Serious Day] [Long Live Dreamfactory] 등등

비정규 앨범들까지 싹 다 훑어보고 싶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너무나 글이 방대해질 것 같아서.. 자제할께요. 

 

 

글을 쓰면서도 내내 들었던 이승환 노래들..

제가 이 노래들을 처음 듣고 느꼈던 벅찬 희열과 감동을

단 한 분이라도 이 글을 통해서 음악을 접하는 계기가 되고,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노래만 만들어 봐라, 당장에 CD사지" 라는

옹졸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다운로드 족들의 책임회피성 발언에

당당히 그들의 눈 앞에 떡하니 앨범을 권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부끄럽지 않은 뮤지션.

 

 

항상 그의 노래에는.. 희망과.. 감동과.. 열정이 있습니다.

점점 더 험난해지는 가요계에서 그저 오래오래 버티어서

오래오래 행복한 음악들 평생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창 시절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랐던 제 추억이 부끄럽지 않은

단 한 가지 이유는, 그 추억의 이름이 바로 '이승환'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나를 바라보며 음악인생을 꿈꾸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내 음악을 들으며 슬픔이 정화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내 공연장에 와서 손을 높이 치켜드는 것 만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내 음악과 내 공연을 아껴주는 모든 분들을 위해

언제까지.. 이 자리에서 음악을 할 것이다

 

-이승환-

 

 

  

 

 

 

 

 

 

 

 

좋은글 모셔갑니다. 건강하세요.
퍼가요.
퍼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글 ㄳㄳ
4집앨범의 프로듀싱은 David cambel , 정석원 , 이승환 입니다 (유희열 아닙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승환옹에 대해 궁금한게 많이 풀렸어요.. 대단한 글이네요~! 승환오빠 정말 최고예요!
저 역시 환님에 팬으로써 이글을 퍼갑니다..^^
'위험한 낙원' 들으면서 댓글남깁니다.. 공장장님 말씀처럼 슬픔이 정화되는 그런 곡이에요!!
히스발라드2 공연을 끝으로 이제 나의 드팩에 대한 뜨거웠던 한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 보면서 커피숍 한켠에서 눈물찔끔 ;
저 역시 전 앨범을 소유하고 있으며 10년 넘게 이승환씨의 팬입니다. 에그 앨범 굉장히 좋아했는데 30만장 밖에 안 팔렸다는 게 오히려 놀랍네요. 어... 어째서;;;; 뭐랄까 이승환씨 앨범을 들으면 뻔한 곡이 아닌 이런저런 색다른 시도와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곡들로 채워져있다는 생각을 해요. 전 이승환씨가 대표적으로 저평가 받는 가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가진 뮤지션으로써의 재능, 보컬로써의 재능, 엔터테이너로써의 재능이 단순히 "동안"이나 "오타쿠"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단 한 곡이라도 허투루 만든 곡이 없는 매번 걸작의 앨범을 내놓고 있는데 말이죠. "귀신소동" 역시 너무나 좋아하는 곡이고 유치뽕 앨범도 너무 좋죠... 단 한 곡도 버릴 곡이 없어요... ㅠㅠ
정말 좋은 글입니다.저도 전 앨범 소장하고 있고 요새는 차에 아예 다 가지고 다닙니다. 언제나 들을 수 있게요. 역시 cd로 듣는 사운드가 정말 다릅니다. 이런 사실을 무지한 대중들은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구요, 아마도 이승환씨가 저평가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데뷔초기때부터 기획사의 도움없이 스스로 운영해 왔기 때문에 기존 시장에서 그를 곱게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사라는게 그냥 나오는게 없고 다 어떤 로비와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죠.. 요새는 더욱더 그의 음악이 간절해 집니다. 그리고 그가 나이가 들면서 욕심이 없어졌다고 하는 얘기가 좋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합니다.
중1때 처음 이승환4집을 접하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열혈팬인데 그때 4집앨범을 듣고,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그 벅찬 감정이 되살아날만큼 정말 공감가는 글이였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런글을 쓰실수 있는지....
읽는것에 비해 글을 쓰는건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존경스럽습니다
읽는중에 울컥울컥 했네요

7집 '확인' , [Serious Day]의 '왜' 이곡들도 정말 좋아요^^
언젠가(2007년2월) 휘닉스파크에 갔는데 야간시간에 이승환 앨범전곡(몇집인지기억안나구요 락음악이많았음) 틀어주신분 보드타기보다 스키장 가득 울려퍼지는 이승환노래가 더 신경쓰였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ㅎㅎ
저는 초기팬이라 님 말씀처럼 4집이후 이승환 앨범과는 간절되었네요 오태호류의 발라드 넘버를 좋아해서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지금고 이승환 1.2.3집 열심히 듣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