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돌부처 2009. 1. 18. 10:35

 

 

 

김종목(金鍾) 약력

   

*1938년 일본 아이치愛知현 가마고리 출생(*예명-김종金鍾, 김향) *아호-무림霧林

*1964<매일신문>신춘문예 동화석류당선

*1966년 제 5회 문공부 신인예술상에 동시산골아이로 아동문학부 수석상 수상

*19685.5 <대한민국예술교육공로상> 수상

*1970<새한신문>창간기념 현상공모 시별리당선

*1970년 제 5<월간문학>신인상에 동시꽃장수당선

*1971년 제1<소년중앙> 동화 현상공모에빛과 소리를 잡는 아이당선

(김동리, 황순원 선)

*1972<소년중앙> 동시박꽃가을이 최우수 당선(박목월, 박두진 선)

*1972<중앙일보>신춘문예 시조가을에당선(초정 김상옥 선)

*1974MBC(HLKU) 라디오드라마 공모에 <웃고가는 사람들> 당선

*1981년 전국 교사수기 공모 당선문제아의 항변

*1982<경향신문>신춘문예 시겨울바다당선(박재삼, 박희진 선)

*1983<현대문학>지 시 추천 완료

*1983년 제 2<계몽사>어린이문학상 수상

*1<한국인>창간기념 <교사의 글> 공모 당선사랑의 매 감정의 매

*19869월 장편서사시어느 학도병의 일기로 호국문예 당선

*1986년 부산문화방송 신인문예작품 심사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함

*2016년 부산문화재단 <올해의 문학>에 선정-시조집무위능력

*작품집에 시집 <다시 또 눈 내리고><이름 없는 꽃>외 6

시조집 <고이 살다가><무위능력>2

동시집 <시골정거장><작은 풀잎>2

동화집 <인형이 되고 싶은 마네킹><황 놀부와 황 돼지>6

고전소설집 <금방울전, 조웅전 >과 산문집 <당신을 풀꽃이라 이름했을 때>

등 발간 저서 25권과 미 발간 작품집 243권을 합쳐 모두 267권에 29,000여 편의 작품이 있고, 시 낭송음반 및 cd<당신을 풀꽃이라 이름했을 때>1.2.3.4집이 있음.

(오아시스레코드-낭송에 탈랜트 박상원, 황신혜, 이덕화)

*1997년 국민훈장목련장 수훈

*2021년 현재까지 시작품 12,500여 편, 시조작품 11,000여 편(28,000여 수) 동시작품

4,500여 편, 기타 동화 콩트 수필 라디오드라마 등 1,300여 편의 작품이 있음.

*현재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한국 시조시인협회회원. 부산문협 시분과 회원

*기타-부산 동고등학교 교가 작사. 남천여중(남천중)교가 작사.

개금여자중학교 교가작사. 부산어린이날 경축대회가 작사(이수인 작곡)

 

*Email주소-ks0030m@naver.com

*블로그주소-blog.daum.net/ks0001

 

 

 

 

 

 

*김종목(김향, 金鍾) 작품집

 

1. 196610.1 동시집 <임자 없는 상점> 문예사(대구)

2. 196610.1 동화집 <꼬마 대통령> 문예사(대구)

3. 196610.1 동화집 <빨가벗은 운동회> 문예사(대구)

4. 196610.1 동화집 <자면서 집 본 아이> 문예사(대구)

5. 197511.30 시조집 <고이 살다가> 제일문화사(부산)

6. 19771.30 고전소설집 <금방울전, 조운전> 대우출판사(서울)

7. 198310.20 시집 <겨울바다> 소문출판사(부산)

8. 19843.20 동화집 <눈은 작게 코는 크게> 꿈동산(서울)

9. 19856.28 동시집 <아기의 하루> 아동문예사(서울)

10. 19875.10 동화집 <반가운 눈물> 꿈동산(서울)

11. 19882.13 동화집 <황놀부와 황돼지> 남강출판사(서울)

12. 199011.20 시와 시조집 <모닥불> 시로 출판사(부산)

13. 199012.30 시집 <아내라는 이름으로> 빛남출판사(부산)

14. 19914.20 산문집 <당신을 풀꽃이라 이름했을 때> 도서출핀 상원(서울)

15. 199111.20 동시집 <시골 정거장> 꿈동산(서울)

16. 19921.20 시집 <차마 못한 그 한 마디는> 박우사(서울)

17. 199412.10 시집 <다시 또 눈 내리고> 혜림출판사(서울)

18. 199510.5 동화집 <사람이 되고 싶은 마네킹> 예림당(서울)

19. 19981.10 동화집 <또야와 이상한 구두> 남강 출판사(서울)

20. 20053.25 동시집 <작은 풀잎> 세계문예사(서울)

21. 201212.7 시집 <이름 없는 꽃> 시선사(서울)

22. 20166.15 시조집 <무위능력> 산지니(부산)

23. 20171.21 시집 <인생의 향기> 시선사(서울)

24. 2018년 6.30 시조집 <슬로시티>100편 산지니(부산)

25. 19955.5 시 낭송음반 및 CD 1<당신을 풀꽃이라 이름 했을 때>

-탤런트 이덕화, 황신혜 낭송-오아시스레코드(서울)

26. 19957.5 시 낭송음반 및 CD 4<당신을 풀꽃이라 이름 했을 때>

-탤런트 박상원 황신혜 낭송-오아시스레코드(서울)

,

동시집-4

동화집-8

시집-8

시조집-4

고전소설집-1

산문집 1

시 낭송음반 및CD-4

 

 

 

 

 

*시 작품

 

초등학교 동창회

 

 

동창회가 여럿 있지만

초등학교 동창회가 최고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허연 수염 달고 인형극 하듯

낄낄거리며 만날 수 있다.

먹은 나이도 금방 줄어들어

철부지로 돌아간다.

 

동심으로 돌아간 연기력이 대단하다.

이고 진 나이를 떨어버리고

까까머리로 야, 자 하는 말투가

아직도 유치찬란하다.

정다운 목소리가 눈물 나게 그립고

덥석덥석 잡아보는 손이

옛날처럼 따스하다.

 

빌어먹을 세월이

그 새 미친 듯 헛돈 것인가.

왜들 모두 백설과

주름진 탈을 뒤집어썼는지

마음은 아직 예 그대로인데

몸은 벌써 늙어버렸다.

 

이제는 아무리 낄낄거려도

노인 역만 할 수 있는 우리는

서로 바라보면 반갑기는 하지만

왜 마음엔 눈물이 흐르는지,

알 수가 없다.

도무지 모르겠다.

 

    2019년 월간 <시문학>11월호

 

     

표지 모델의 유혹

 

 

묵은 옷장에서

옛날의 <선데이 서울>이라는 주간지가 웃고 있다.

요염한 포즈를 취한 여인의 나신이 울컥 다가온다.

 

, 이런 잡지가 어찌하여 옷장에 오래 처박혀 있었는지

상자 밑에 깔린 채 반세기를 견뎌왔으니

들떴던 내 청춘과 함께 사랑받았던 여인을 깊이 숨긴 채

시침 떼듯 결백한 듯 살아왔구나.

 

통속적인 주간지일망정 표지 모델의 여인에게

정신을 잃었던 순진한 청춘 시절

아니, 부끄러운 시절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주간지 <선데이 서울>의 표지 모델을 보니

그때 가슴 뛰었던 흥분이 미진으로 일어난다.

 

여인은 예 그대로 매력적이다.

세월과는 무관하게 젊어 있는 여인은

언제까지 늙은 나를 유혹할 것인지,

아니면 유혹당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2019년 월간<시문학>11월호 

 

 

 

시간의 관념

 

 

하루를 면벽하나 십 년을 면벽하나

다 같은 면벽이다.

부처의 세계에선 시간을 뛰어넘어 장단이 따로 없다.

마음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짧아도 길고 길어도 짧다.

그러니까 몇 분간의 면벽도

장구한 면벽이 될 수 있는 것,

얼마만큼 치열함이 있느냐 하는 것에 좌우되는 것이다.

 

연꽃 위에 앉은 잠자리도

짧은 시간인지 긴 시간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용맹정진의 마음으로 앉았다면

몇 십 년을 능가하고

그냥 무심으로 앉았다면 순간일 뿐이다.

 

사람이 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구십 백을 살아도 그냥저냥 살았다면 의미가 없고

삼사십을 살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구십 백을 능가하는 장수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햇수만 채웠다고 장수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치열하게 살았느냐 하는 것

이것으로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2019년 월간 <문학도시>6월호 이달의 작가

 

    

다 가는 그 길

 

 

주례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한 정거장 더 가서 감전역에 내렸다고 한다.

어디냐고 전화를 거니까 아내가 다 늙은 목소리로

다시 돌아가려고 차선을 바꾸는 중이라고 말한다.

깜빡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눌러 생각하면서도

덜컥 걱정이 되는 것이다.

 

설마 치매는 아니겠지. 그럼, 깜빡한 것일 뿐,

나도 그런 적이 있는데 그렇고말고,

눌러, 눌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돌아온 아내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핀잔을 준다.

핀잔을 줄 자격도 없는 내가 화가 조금 나서 그리 말한 것이지만

어쩐지 측은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저 백발이 섞인 얼굴도 얼마 후엔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울컥 치밀어 가슴이 아팠다.

 

이제 우리는 살 만큼 산 사람들이다.

오늘 밤 자다가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슬프지만 어쩌겠는가.

다 가는 그 길이 앞에 놓여 있는데

뻗댄다고 안 갈 수도 없는 것이다.

부르면 불시에 가야 하는 길이다.

 

 

    2019년 월간 <문학도시>6월호 이달의 작가

 

 

 

고난도의 기술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다시 사람행세를 하는 것도 고난도의 기술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가진 아내와 살고 있는 나는

가끔씩 소름이 돋기도 한다.

분명히 죽었던 사람이 몇 십 분 후에

다시 숨을 내쉬며 살아났으니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기적을 통과한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이

제대로 믿기지 않는 것이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것은

역발장사도 어려운 일,

그런 부활의 힘으로 온갖 병을 거느리고도

지금까지 살고 있다.

 

차에 치어도 살고

암에 걸렸어도 이겨내는 억척같은 아내,

그래서 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죽어서 살아올 수 있는 사람인데 무슨 걱정,

마음 텅 놓고 산다.

행여 내가 죽을병에 걸려 저승으로 끌려간다 해도

아내가 나를 다시 살려 놓을 것이다.

죽음도 업어치기로 살려 놓는

고난도의 기술을 발휘해줄 것이다.

 

 

        2019년 월간 <문학도시>6월호 이달의 작가

 

 

 

으악새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라는 노래가 있다.

그렇다면 으악새가 울지 않으면

가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으악새란 어떤 새인가.

그런데 으악새가 새가 아닌 억샌 풀이라고 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 풀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운다고 했으니

감정 과잉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슬피 운다고 했으니

완전 뻥튀기다.

 

어쨌거나 풀잎이 새가 되었던 때도 있었으니

잘못 알고 불러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것

이게 얼마나 다행인가.

조금만 잘못되면 사단이 나고 큰일 나는 세상에서

풀잎이 새가 되든 말든 무사통과로 살아온 것이다.

 

산 낙지라 해서 산에 무슨 낙지가 있나 했던 때도

산 갈치라 해서 산에도 갈치가 산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오류 속에서도

별 탈 없이 살아왔으니

세상사 조금 틀리고 빗나가더라도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19년 월간 <문학도시>6월호 이달의 작가

 

 

 

맷돌

 

 

맷돌이 있다.

위에 것은 숫 맷돌

아랫것은 암 맷돌

두 개가 돌아가면

콩이나 메밀이 슬금슬금 갈리어

가루로 나오거나 액이 되어 나온다.

두 개가 맞붙어 돌아가야만

비로소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니,

음양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암수 맷돌 두 개가

언제나 포개진 채

하나로 돌아간다.

권태기도 없고

이별도 없는 사랑

, 맷돌 같은 사랑이

문득 그립다.

 

 

     2019년 월간 <문학도시>6월호 이달의 작가

 

 

 

눈 내린 산사에서

 

 

1

백담사 계곡에 눈이 한 자다.

고요도 못지않게 한 자 세 치로 쌓여 있고

 

가끔씩 솔잎에서 떨어지는 눈 소리가

경 읽는 소리처럼 맑고 그윽하다.

 

2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소리 없이 녹는다.

 

왔다가 가는 모습은 언제나 깨끗하다.

 

와서 아름답고

또 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저런 모습으로 내 눈을 일깨운다.

 

3

경전 몇 권이 내 마음을 스쳐간 듯

마음으로 눈바람이 몇 번을 후려친다.

 

죽비가 없어도 피가 맺히는 밤,

 

몇 년을 더 엎드려 절을 해야 하는지

산다고 살았어도 아무 것도 모르겠다.

 

 

     2019년 월간 <문학도시>6월호 이달의 작가

 

 

 

연탄불 사랑

 

 

벌겋게 탈 때는 모른다.

아래 연탄에서 위의 연탄으로 벌겋게 타지만

완전한 하나가 아니었다.

그냥 벌겋게 탈 뿐이었는데.

 

다 타고 나서 보니

남은 하얀 연탄이 하나로 붙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완전한 하나로 굳어진 사랑,

 

사랑은 그런 것이다.

화르르 탈 때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불이 꺼지고 사랑이 끝났을 때,

비로소 하나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2019년 월간 <문학도시>6월호 이달의 작가

 

 

*돌려받기

                외     

                    김 종 목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가서 내려

다시 걸어서 30분 쯤 들어간다.

빌려 준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갔지만

도저히 돈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마누라는 간암 말기로 누워 있고

퀘퀘한 냄새 나는 방꼬라지는

사람 사는 집이 아니었다.

실직해 일일 노동자로 전락한 친구는

제대로 먹지 못해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놈이라는 욕이 튀어나왔지만

억지로 참았다.

냉수 한 사발만 마시고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긁어 상 위에 놓고 나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50만 원, 한 달만 쓰고 갚겠다더니

벌써 3년이 지났다.

 

하는 꼴을 보니 받기는 영영 걸렀다.

나는 그 돈 없어도 살지만 친구가 걱정이다.

마누라가 죽고 나면 어떻게 살 것인가.

돈 받을 생각은 까맣게 잊고

친구 걱정만 하면서 돌아왔다.

 

     2018년 월간 <시인동네>5월호

 

 


 

 

*사랑의 엄살

 

 

사랑을 하다가 가슴을 베였다고도 하고

부젓가락 같은 것으로 쿡쿡 쑤셔 박힌 듯 아프다고도 하는데

왜 그런 걸 하려고 안달하는 것일까.

정신이 헷가닥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짓을 할까마는

목숨을 걸어놓고 덤비는 것을 보면 참으로 괴이하다.

 

사랑도 하지 말고 미워도 하지 말라는 고승의 말을 실감하지만

보통 사람으로서는 홍역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주 바라보면

눈에 스파크가 팍팍 튄다.

그 팍팍 튀는 불꽃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에 따라 강력하게 움직이게 한다.

몇 만 볼트의 끓는 피는 순식간에 넘치면서

눈이 멀 정도의 섬광을 내뿜는다.

화르르 타버리는 화마(火魔) 속에서

화상은 고사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사랑도 할 수 없다.

 

그러니 가슴이 베였다거나

부젓가락에 쿡쿡 쑤셔 박힌 듯 아프다거나 하는 것도

사랑 앞에서는 엄살에 불과하다.

 

     2018년도 계간 <한국문학인> 여름호 

 

     

 

감꽃 2

 

 

감잎이 떨어진 마당

환하다.

 

내 눈도 마당으로 떨어져

노란 목걸이를 그리워한다.

 

감꽃을 주워

실에 꿰던 누이도 가고

 

이제 쓸쓸히 떨어진 감꽃,

주어 실에 꿸 사람도 없다.

 

그냥 떨어져

동그랗게 외롭다.

             

          시집 <인생의 향기>

    

 

 

배롱나무 꽃

 

 

창문으로 보이는 배롱나무가

액자 속에 든 그림 같다.

봄부터 붉은 꽃을 피워

늦여름까지도 눈을 부시게 한다.

 

꽃은 꽃인데 장수하는 꽃,

어찌 보면 심한 몸살을 앓아

온몸에 열꽃이 핀 듯도 하고

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정열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창문을 통해 배롱나무 한 그루가

고스란히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화사하고 우아한 정열의 꽃을 본다는 것은

엄청난 위안과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수십 억 나가는 그림이 무슨 소용이랴.

살아 움직이는 꽃그림이 눈앞에 있는데

내 그런 그림을 탐할 까닭이 없다.

해마다 더 우아하게 피는 꽃,

눈이 부시고 마음까지 부시다.

 

            2018년 계간<불교문예>여름호 

    

                 

슬픈 코미디 2

 

 

이상하다.

옆집에 사는 젊은 부부,

장난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무엇을 부수는지 와장창 소리가 나고

비명이 터져 나오고

고요한 밤이 깜짝 놀라 귀를 기울이며 걱정하는 밤,

 

왜 저럴까.

술만 먹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툭탁거리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이 아니다.

이판사판 원수로 만나

일차 이차 삼차를 넘어

한계점으로 달려온 것 같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튀어나오고

갈라서자는 말이 칼날처럼 번쩍이는데,

인생 무엇이 그리 길다고

저리 밤마다 핏대를 올려 싸우는 것일까.

 

금방 끝장날 것 같은 부부도

아침이 되면 감쪽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 차에 동승하여 출근하는 부부,

산다는 게 정말 수수게끼다.

술만 먹으면 밤새도록 싸우고도 이상 무인 사람들,

무슨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시집 <인생의 향기> 

 

     

    

로또 아파트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분양 받기만 하면

육칠 억의 시세 차익을 거둔다 하니

물불을 안 가리고 줄을 서는 것이다.

실제 분양받아 입주할 사람들은 드물고

대부분이 당첨되면 차익을 남기고는

그냥 팔아버릴 사람들이다.

 

참말로 돈 놓고 돈 먹기다.

한 마디로 개판이다.

한 달 코에 단내 나게 일 해봤자

200만 원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을

우롱하듯 지랄들을 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런 돈 놓고 돈 먹기의 도박 같은 일들을

눈 뜨고 보고 있을 나으리들도

모른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

그냥 엎어버리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분노와 통탄의 마음으로

동백꽃이 뚝뚝 진다.

 

           2018년 계간<불교문예>여름호 

    

 

 

내장산 단풍

 

 

아름다운 단풍은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퍼 갔다.

 

눈과 가슴으로 다 퍼 담아 가고

 

이제 단풍은 바닥나버렸다.

 

조금 아껴 남겨두지도 않고

 

곱다고 무지막지 다 퍼 가벼렸다.

 

 

    

  

*억새의 작품

 

 

억새꽃이 핀 언덕으로

억새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아간다.

 

날아가 하얀 구름이 되어

둥둥 떠내려간다.

 

혹자는

갈대의 일필휘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갈대가 몸을 던져

전신으로 그린 그림이 구름이다.

 

하늘로 띄운

억새의 작품이다.

 

 

2018년 계간 <시와 반시>여름호

 

 

 

 

 

 

 

*어려운 사랑

 

 

사랑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서로 좋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하더라도

수가 틀리면 강제 추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언제 변할지도 모르는 것이어서

뜨거움이 식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손을 잡거나 껴안지도 말아야 하고

입도 맞추지 말아야 안전하다.

세상이 어찌 된 것인지

사랑에도 화끈함이 사라지고 무미건조해지고

결혼이라는 의식을 거쳐야만

겨우 뜨거움을 발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슬아슬함이나 가슴 졸임 같은 것도 사라지고

참사랑의 짜릿함 같은 것도 빼앗겨버렸으니

가슴이 쓸쓸해지고 세상이 한없이 적막해졌다.

사랑하는 것도 눈치를 보아야 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2018년 계간 <시와 정신> 여름호

  

 

 

 

*사랑의 돈키호테

 

 

사랑에 목숨을 건다고 한다.

사랑을 해보면 별것도 아닌데

그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이 있어 가슴이 뛴다.

 

별것도 없는 세상에서

그대들이 휘두르는 칼날의 번쩍임에 눈길이 끌린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설 같은 일들이

답답한 이 세상을 살맛나게 만든다.

그래, 그런 멋도 없다면 어떻게 견디랴.

목숨을 걸고 칼이라도 휘두르는 그대들이 있기에

나도 덩달아 신나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는 현대의 돈키호테,

그런 기사가 신문에 자주 나타나기를 바란다.

무미건조한 세상,

그대들 때문에 살맛이 난다.

 

 

         2018년 월간 <시와 표현> 6월호

 

 

 

       

몸이 야윈 그녀

 

 

가난한 그녀는 몸이 야위었다.

볼 때마다 측은하여 그의 몸속으로 나를 넣어주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배가 차츰 불러왔다.

홀쭉한 그녀의 배가 불룩하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얼마 후, 그녀는 나를 닮은 남자 아기를 낳았다.

다시 배가 홀쭉하게 야위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배를 불리는 일,

그녀는 다시 배가 불러왔고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야위어도 아무런 걱정 없다.

살찌우는 비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안생의 향기> 

 

 


  

 

*칼금을 긋는 세월

 

 

아내가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칼금을 긋는 세월,

모르게 긋고 모르게 상처 입고

서서히 죽어간다.

세월이 아무리 속여도 내 눈에는 보인다.

아닌 척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명줄을 끊는 소리,

그 무심의 소리를 내 귀는 듣고 있다.

 

무심한 듯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저러다 언젠가는 정말 숨을 놓아버리고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 엄청난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언젠가는 겪어야만 할 일이다.

 

이건 아내만의 일이 아니다.

나도 지금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 과정이 보이지 않을 뿐

세월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어쩌면 아내는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월의 칼날에 내 얼굴이 베이고

아픔과 슬픔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못 본 척하면서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8년 월간 <시와 표현> 6월호

 

 

    

 

 

*애틋한 추억

 

 

그녀와 헤어졌다.

내 나이 21세 때 18세의 그녀와 헤어졌으니

한창때의 일이다.

뜨겁게 사랑하다 헤어졌지만

그 상처는 두고두고 도지곤 했다.

 

벚꽃 피는 봄이나 노을이 뜨는 날은

어김없이 가슴이 저려오곤 했었는데,

보고 싶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앳된 고운 얼굴이다.

나는 늙었어도

그녀는 늙지 않았다.

 

서로 만나지 않았기에

그녀에겐 나도 21세의 총각일 것이고

나에겐 그녀가 18세의 처녀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아니한 것

그래서 늘 청춘으로 그리워한 추억

아프지만 한 폭의 그림처럼 삼삼하다.

 

 

      2018년 계간 <시와 정신> 여름호

 

 

 

 

  

 

*매미소리 8

 

 

 

얼마나 볶아야

매미소린 다 익는가

 

따글따글 여름 내내 불볕에 볶아대다

 

몸채로

까맣게 타버렸다

소리마저 숯덩이다.

 

 

      2018년 계간 <시와 시학> 여름호

          시조집<슬로시티>

 

 

 

 

  

 

  *  동시 한 편 

 

 

초승달 2

 

 

하늘이 숨을 쉰다.

 

달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어떨 때는 달이 하늘의 가슴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

보이지도 않는다.

 

한참 숨을 멈추었다가

이윽고 후- 내쉬면

 

꼭 끼었던 달이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온다.

 

초승달이 되어 빠져나온다.

 

 

2018년 격월간 <아동문예> 1.2월호

 

 

 

 

 

 

   

그냥

 

 

따르르릉------,

전화가 왔다.

 

-애비다.

-!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세요?

-그냥!

-그냥요?

-그래, 그냥!

 

잠시 멍멍하다.

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그냥 전화를 거신 아버지,

 

아버지 가신 지도 어언 30

보고 싶은 자식을 두고

어디로 가셨을까.

 

전화기를 보면

-애비다.

하는 목소리에

울컥 눈물이 난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냥 보고 싶다.

 

 

 

*동시 

     

물의 꽃

         -목련

 

 

 

비가 온다.

아주 가늘어서 소리도 없다.

 

물의 실 같은 비

저 가는 투명한 실들이

목련가지를 대바늘 삼아

꽃을 짜 낸다.

 

소리 없이 고이고이

하얀 꽃을 짜 낸다.

 

물의 실로 짠

아름다운 물의 꽃.

 

 

  2018년 계간 <동시와 동화> 여름호 

 

 

 

 

 

  

   

 

아들의 얼굴

 

 

아버지는 나를 보려고

삼십 리나 되는 길을 걸어오셨다.

오셔서 그냥 내 얼굴만 보시다가는

또 그냥 그대로 돌아가셨다.

무슨 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아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오신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들이 보고 싶어 아들집에 갔다가

별 볼일도 없으면서 그냥 갔다가

얼굴만 보다가는 또 그냥 돌아온다.

잘 있느냐 어떠냐하는 말은 필요 없다.

얼굴색만 슬쩍 보아도 다 알 수 있는 것을.

환한 얼굴이면 웃으면서 돌아오고

어두운 얼굴이면 수심(愁心)으로 돌아오고.

 

, 아버지도 내 얼굴을 보시고 그러하셨으리라.

말없이 왔다 가셔도 다 헤아렸을 것이니

그 때 내 얼굴이 밝았는지 어땠는지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는 하진 않았는지

돌아보면 마음이 짠하게 아파오고

그리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2018년 계간 <푸른문학> 봄호

 

 

 

 

 

 

 

 

순자 씨 2

 

 

순자 씨는 나이 50이다.

인생 반을 살아온 고통이 얼굴에 배어 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고아원에서 자라 여태 독신으로 살고 있는 순자 씨는

얼굴에 전혀 장치가 없는

완전 100% 자연산이다.
검버섯과 흠집들이 자유분방하게 자리 잡았다.

강물이 흐르듯 주름살이 자잘하게 난 곳으로

생의 희로애락이 수도 없이 피고 졌다.

기쁨보다도 슬픈 쪽으로 더 기울어져

순자 씨의 첫인상은 늘 젖은 표정이다.

 

아무리 슬픔을 가렸어도

은연중애 그 여독이 드러나서

얼굴에 배고 마는 것이다.

눈이 밝은 사람들이 잽싸게 낚아채어 읽어버린다.

읽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순자 씨,

오늘도 시장바닥 귀통이 한 평 남짓 가게에서

빈대떡을 굽는다.

지글지글 피와 땀을 구울 때마다

외로움과 슬픔도 노릇하게 굽히고

목구멍에 울컥 불덩이가 넘어간다.

 

     시집 <인생의 향기> 

      

 

아내의 찬 손 2

 

 

손이 찬 사람이 있다.

악수하다가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내 아내가 그렇다.

갑상선 암 수술을 받은 사람의 손은 차다.

차도 너무 차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차지 않았는데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받고나서부터 차게 된 것이다.

약을 계속 먹고 있지만

손이 찬 것만은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의술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손이 차서 마음까지 냉랭해졌다.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축 늘어진 모습이 안쓰럽다.

수술을 받은 지 반세기가 되었는데도

손이 찬 것이다.

이 후유증만은 어쩔 수 없다니

자주 따뜻한 물에 담그거나

여름에도 장갑을 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그만하기 얼마나 다행인가.

갑상선 종양을 완전히 제거했으니

귀한 생명은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저승에 있을 사람과

아직도 같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아

찬 손을 잡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2018년 계간 <다층> 여름호 

 

    

 

사랑의 화살

 

 

어머니의 등이 활처럼 굽었다.

무엇을 쏘기 위함이라면

거기 장전된 화살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의 화살을 장전하여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쏘느라고

저렇게 허리가 굽었을 것이다.

 

허리가 굽었어도 아름다운 것이다.

온몸으로 기꺼이 활이 된 어머니

불편한 몸으로도 사랑의 힘으로 쏘았을 것이다.

비록 낡은 활이지만

사랑이 남아 있는 한

자식들을 향하여 계속 쏠 것이다.

 

        2018년도 계간 <다층>여름호

 

 

 

   

 

 

 

 

 

 

 

 

이슬 9

 

 

풀잎 위에

이슬이 맺혔다.

 

하룻밤 사이

급속으로 익혀 낸 열매,

 

속임 없는 투명한

무욕의 결정체.

 

잠시 맺혔다가

이내 사라진다.

 

한 점 흔적도 없는

깨끗한 뒤끝.

 

 

2018년 계간 <한국동서문학> 가을호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어릴 때 나는 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서

구름을 쪼아 먹고 사는 줄 알았다.

벌레 따위는 먹지 않을 것이라는 그 천진한 시절

내 마음이 기똥차게 아름다웠다는 것을

먼 훗날에야 알았다.

 

살다 보면 너무 영악한 것에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좀 어수룩하고 뒤처지게 못난 것이

귀하고 사랑스러워질 때가 있듯이

너무 똑똑하여 빈틈없는 계산기 같은 사람,

인정까지도 됫박으로 재거나 천평 저울 위에 올리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은 나를 질리게 한다.

 

물고기는 물만 먹고 살고

꽃들은 바람이나 빗물만 먹고 사는 줄 아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아직도 구시대의 사람이라서

그런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2018년 계간 <한국동서문학> 가을호

 

 

 

 

 

 

 

100%의 사랑

 

 

사랑을 할 때 절반만 하겠느냐.

온전한 사랑, 아니 쥐어짜서라도

피 한 방울도 남지 않게

열정을 쏟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절반의 사랑이 어디 있겠느냐.

A를 만나고 B를 만나도 절반이 아니다.

그 누구를 만나도 통째의 사랑이다.

 

사랑은 화수분과 같아서 무진장 쏟아져 나온다.

 

나는 절반의 사랑은 모른다.

아낌의 사랑이 어디 있으랴.

50%, 70%, 90%의 사랑도 아닌

완전 100%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라.

만나는 여인마다 나의 첫사랑이고

절대적인 100%의 사랑뿐이다.

 

 

 

 

 

 

 

  

  

 

 *시조  

 

 

가을 저녁

 

 

괜히 허공으로 돌멩이를 던졌다

 

어디선가

쨍그렁

가을 창이 깨어지고

 

아뿔싸!

서녘 별 하나

창 너머서 내다본다.


  2018년 계간 <시조문학>가을호 

 

   

 

가을비 11

 

 

가을비가

들국화에 꽂힌다

 

파르르 떨리면서

명맥을 유지하던

 

가을의

절명을 본다

지는 소리.

 

   

  2018년 계간 <시조문학>가을호 

 

 

 

 

구름 한 장

 

 

강물에

구름 한 장

떨어져서

남실댄다

 

왜가리 가만 보다

슬쩍 물어 올린다

 

구름이

번쩍하더니

목으로

꿀꺽 넘어간다.

 

 

     2018년 계간 <시조문학>가을호 

 

귀뚜라미 소리 2

 

 

고요한 밤중에

귀뚜라미 슬피 운다

 

고요가 깨어졌다

다시 붙어 고요하다

 

깨지고 붙기를 거듭하면서

밤이 빠져나간다.

 

 

    2018년 계간 <시조문학>가을호  

 

    

 

그대 눈빛

 

 

그대와 딱 한 번 눈 마주친 적 있었는데

 

그 때 그 강렬한 접착력의 눈빛으로

 

내 마음 그리운 눈 하나 끌려가고 말았네.

 

내 눈을 잃을 만큼 강렬했던 것일까

 

텅 빈 내 눈 하나 행방이 묘연하고

 

황홀한 그대 눈빛만 아찔하게 터지네.


 

 

       2018년 계간 <시조문학>가을호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 대웅보전에 빗발치듯 흐른 세월

기둥과 꽃살문엔 단청마저 벗겨지고

춘양목 나뭇결마다

고고한 멋 서렸다.

 

가부좌한 스님들의 목탁소리 배어들고

경을 읽는 소리도 다 받아 안는 듯이

빈 공간 차오르는 고요와 팽팽하게 맞섰다.

 

귀 기울여 들으면 고색창연한 소리들이

별빛으로 반짝이며 우수수 쏟아질 듯

간신히 받친 세월이

무너질 듯 기운다.

 

    2018년 계간 <시조문학>가을호  

 

 

    

(시 )

 

물집

      

네가 준 너의 사진 한 장

보고 또 보느라고

눈에 물집이 생겼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면 몰라도

얼마나 보았기에

눈에 물집이 생겼을까.

 

나도 의아하다.

그러나 물집이 잡힌 것은 사실이고

이 물집은 분명

네가 준 너의 사진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인데

그리 되면 마음에도 물집이 생길 것이다.

쓰라리고 아프겠지만

사랑의 맹독이라 생각하고

꾹 참고 견딜 것이다.

 

       2018년 월간<시문학> 12월호 

 

    

물금역

 

 

부산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슬금슬금 가다보면

물금이라는 작은 역이 나온다.

물금, 아주 아름다운 이름이다.

물금(勿禁)이라고 발음하면 매력을 느끼게 된다.

 

금지된 사랑도 여기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술을 파마시고 지랄발광을 해도 괜찮을 것이고

고스톱으로 밤을 새워도 말리지 않는 관대한 천국,

그래, 얽매이고 간섭받고 배척당한 사람들이 살만한 곳이다.

이곳에만 오면 마음 활짝 펴고 살 수 있으니

금방 인구가 불어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물금에도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낯선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금하지 않는 자유를 찾아

이동해 온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이 역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맺지 못한 첫사랑도 이곳으로 왔었더라면 성공했을 것인데

그 때는 왜 물금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진각에 물금역을 알았더라면

방 하나 얻어 살림을 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짠해지곤 하는 것이다.

 

            2018년 월간<시문학> 12월호 

 

 

*시조 

 

 

()

 

 

흙을 빚어 만든 잔이

완전 백옥이다

차를 담든 술을 담든 달빛이나 구름을 담든

지금은 비어 가득한

고요도 백옥이다.

 

세월이 음미하는

저 고요를 마셔본다

눈으로 마음으로 정화된 적막의 잔

기울여 입술만 대어도

맑게 취할 것만 같다.

 

   2018년계간<불교문예>겨울호

 

   

밤비 9

 

 

어둠의 적막이 조용히 젖고 있다

양철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처량(凄涼)

넘어 두드리는

애상의 파편이다.

 

옛 추억이 부화하는 싸늘한 저 소리에

가슴을 몇 번이나 도리듯 아린 것은

내 삶이 저렇듯 흐느끼며 끌려왔던 것이니.

 

젖고 찢어지고 으깨진 나의 일생

밤마다 푹 젖어 온몸으로 울먹인다

해일로

덮치는 통증은

끝도 없이 도진다.

 

    2018년계간<불교문예>겨울호

 

 

 

 

명품식사

 

 

다 같은 음식이라도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가장 맛이 있다.

비록 찬은 적지만

정성껏 차려주는 밥상 앞에서는

따뜻하고 행복해진다.

된장국 하나만으로도 즐겁고

깍두기 하나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밥도 그냥 밥이 아니고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어

입에 넣으면 그냥 달다.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보며 먹는 밥,

나는 아내의 미소가 반찬이 될 때도 있고

아내의 이야기가 국이 될 때도 있다.

어쨌든 한 그릇 먹고 나면

뱃속이 든든해지고 힘이 솟는다.

 

나의 건강비결은

아내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명품식사를 매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시집<인생의 향기> 

 

*시       

 

난감한 친구

 

 

친구가 왔다.

와서 갈 때까지 쉼 없이 지껄였다.

A라는 친구를 욕하는 것이다.

돈 좀 빌리자는데 먹고 죽으려도 없다느니

인정머리가 눈곱만큼도 없다느니 하면서

험담만 늘어놓는다.

나도 그 친구를 잘 알기에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이 친구, 왜 왔을까.

돈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면

나도 마찬가지 대답이 나올 텐데

어쩌지.

잔뜩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느닷없이 투자 이야기를 한다.

목 좋은 땅이 있는데 같이 투자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투자할 만한 여유가 없는 내가

무슨 돈으로 투자한단 말인가.

돈이 없다고 하니 집을 은행에 담보해서라도 투자하면

1년 안에 배로 번다고 말한다.

한참 열을 올리던 얼굴이 전혀 먹혀들지 않자

들뜬 목소리가 거품처럼 꺼지고 실망의 빛이 영력했다.

 

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걸 잘 아는 나이기에

그런 유혹은 먹혀들지 않는다.

1년 안에 배로 번다면 판 사람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을 내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딱 거절한 나를 또 누군가에게 욕을 할지도 모른다.

욕을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

투자하기 위해서 집까지 담보하라니

말도 안 된다.

 

친구를 보내고 나니 앓던 이가 쑥 빠진 듯

속이 시원했다.

 

 

    2019년 <문학공간>1월호

 

 

 

 

 

천 개의 혀

 

 

천 개의 혀로 말하는 시인이 있다.

천 개의 혀로 말하기 때문에

천 개의 귀가 없이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귀가 하나뿐인데

천 개의 혀로 말한다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천 개의 혀로 말하는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닌

귀신의 소리일 것이니

귀신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천 개의 혀가 있다는 것은 사람의 혀가 아니며

천 개의 귀가 있다는 것도 사람의 귀가 아니다.

천개의 혀를 가진 시인이여

내가 죽어 귀신이 되거든

천 개의 귀를 달고 들어보겠다.

 

  시집<인생의 향기> 

 

*동시  

      

*파도 2

             김 종 목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바다 속의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기 때문이다.

 

언제나 철썩이는 파도는

바다고기들이 건강하다는 증거,

 

바다 속의 고기는 볼 수 없지만

파도로 고기들의 움직임을 짐작한다.

 

힘찬 파도

힘찬 물고기,

 

고기의 안부를 바다가 전해준다.

파도로 전해준다.

 

        2019년 격월간<아동문예>5.6월호

      

     

*아기가 되는 엄마

 

 

서른 살 엄마가

아기가 될 때가 있지요.

 

할머니 앞에만 가면

아기가 되지요.

 

할머니가

-아가!

하고 부르면

 

엄마가

--! 하고

대답하지요.

 

      2019년 격월간<아동문예>5.6월호

 

 

 

 

말의 옷장

 

 

옷장에 옷을 차곡차곡 쌓아놓듯

내 혀의 옷장에

말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네.

꼭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말을 한 벌씩 꺼내 쓴다네.

말이 맞지 않으면 맞는 옷으로 갈아입으면 되네.

옷은 가급적 깨끗하고 품위가 있는 것이 좋듯

말의 옷도 마찬가지네.

 

눈살이 찌푸려지는 말의 옷

거칠거나 상스러운 옷은

아예 입지 않을 것이네.

누구든 품위 있는 옷을 입고 싶어 하네.

누가 허름하고 보기 흉한 옷을 입고 싶어 하겠어.

반듯한 말의 옷, 고운 말의 옷

그런 말을 혀의 옷장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으니

언제든지 꺼내 쓸 수가 있네.

 

 

    시집<인생의 향기>

 

 

동시* 

 

무거운 아파트

 

                                김 종 목 

              

나는 아파트 1층에 산다.

 

동수는 2

정호는 3

달구는 4

경희는 5

정옥이는 6

순희는 7

영자는 8

 

, 무겁다.

나는 밤마다 깔려서 자고,

 

꾸는 꿈도 납작해진다.

 

    2017년 격월간 <아동문예> 1.2월호

 

 

   *시조

   

 

*야묘(夜猫)

 

 

1

어둠 속에 어둠이 똘똘 뭉쳐 있다

 

장독대 밑 몰래 숨은 정적의 빛나는 눈

 

순식간 용수철처럼

섬뜩하게 튀는 살의(殺意).

 

 

2

-하는 비명(悲鳴)도 금세 끝나고 마는

 

저 황홀한 식욕(食慾)이 어둠을 찢어 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서늘한 달빛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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