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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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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일기

2011. 11. 12.

여름을 기억하며

어제 광복절(光復節)날이 말복(末伏)이었다.
말복이 지나 이제 바야흐로 여름의 말미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머리를 감고 말리지 않고 자서 그런지 기침이 좀 나온다. 재채기와 함께..
지는 여름,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에프 킬라 모기향을 며칠 전 다시 하나 샀다.
통통한 암컷 모기들의 숨통을 죄어 산란을 방해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여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킬러를 통해서....
그들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 대롱을 살에 꽂아 피를 섞었을까?
그들은 단지 그것이 일상(日常)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상대적으로 어떤 행위나 말로서
그 결과가 피해가 가고 오고, 또 오해를 사는 일도 그 원인이
실상은 제어할 수 없고 일상적인 그저 평범한 행위와 말의 결과였기 때문이라면
내가 남에게 남이 나에게 욕을 하든 원망을 하든 또는
나무라거나 증오할 수도 없는 게 우리네 세상살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망각의 귀신 아닌가?
평소에 정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걷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우고 서로 탓하는 것이 아닐까?

어두운 밤길을 걸어 보물섬 같은 나의 슬픈 우리로
진주할 때 갓 재 포장한 검은 그러나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스팔트길에서 주은 부채 하나와
작년에 옥탑방에서 사다 쓰다 남은 모기향 하나 그리고 엊그제
말복 전날 산 킬라 모기향 하나로 여름을 보냈다. 아파했다. 즐겼다.

그렇다. 여름은 여름 나름대로의 향(香)이 있다. 또 소리가 있다.
비록 선풍기 한번 돌리지 않고 보내서 탈탈거리는 선풍기 소리는 잊었지만
이곳 지상에서 낮은 곳에서 살찐 매미 소리와 함께 타워 크레인의 기중기 소리를
들으며 트럭 야채 생선 노점상의 스피커 소리를 들으며
백보드를 튕기는 농구공의 경쾌한 탄성을 들으며
이 여름을 보낸 나는 진정으로 행복하였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마라톤 반환점을 숨가쁘게
돌고 있는것 같다.
모기향을 피우며 여름을 기억해본다.

59년생 나랑 딱 10살 터울이있는 형님과 며칠간 있으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형과는 7-8년전에 만났다. 그러니까 내가 이십대 후반이었고 그 형님이
30대 후반이었다. 형님에게는 젬마라는 나와 또래의 형수가 있다. 아니
동거녀가 있다. 일찍이 형님은 부모를 여위고 혼자 힘으로 가게를 일으키신
분이신데 나를 통해 즐거운 세상으로 빠져 들어오신
분이다. 전철을 타고 형님을 배웅하며 물었다. "형 다시 사랑이 올 것 같아요?"
"규석아..... "형은 나를 바라보며 머리가 빠진 것을 가린 중절모를 고쳐쓰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허허롭게 웃는다. 나는 형님의 손을 잡아주었다.
형님은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사랑'이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사실 슬픈 일이다. 사랑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지독히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형은 기쁘게 맞이 하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에 이번 여름을 돌이켜보면 불꽃이 되었다가 재도 되었다가
어쨌든 사랑하는 방법을 알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행복할 것이다. 이 여름의 향기와 소리를 이해한다.

계속 하는 생각이지만 '걷는다'는 것은 '기억하다'와 동일(=)하다.
하지만 또 걷는 다는 것은 설계하다 계획하다 >, < 하나 아무래도
기억하다와 추억하다보다는 범위보다는 못한 것 같다.
걷는다는 현재형, 걸었다는 과거형 모두 과거속으로 흡수되어간다.
지금 내가 걸어도 열 발자국 전에 시간과 공간은 과거가 된다.

비를 본다는 것은
걸음을 떼지 않고 몸을 움직이지 않고 걷는 것이다.
내가 본 빗방울이 곧 발걸음이 되어 멀리 멀리 흘러 가기 때문이다.
비를 맞고도 걸어보았고 비를 피하고도 걸어보았고 빗속을
가로질러 뛰어뛰어도 보았고... 빗속을 울면서 걷기도 하였고
호탕하게 웃으며 빗속을 걷기도 하였고 젖은 눈자위를
훔치며 비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것은 비.를 바.라.본.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고 걷는 다는 것이며 움직이지 않고
과거를 근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며 미래를 근미래를 가늠해보는 일이다.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환한 미소가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그 사람의 내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발걸음이 되어 나는 떠나간다.

나의 삶과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생각해보며
여름을 살며 걸었던 기억이 나에게는 아주 행복하다.
그래서 이 여름이 고맙다.
그 여름이 사랑스럽다.
지난 여름이 오래도록 그리울거다.

출처 : ㅡ세상걷기ㅡ
글쓴이 : 참외배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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