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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여행(3): 살고개 작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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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뿌리여행

2017. 1. 1.

2013. 6 

 

아버지(남용우)께서 생전에 여러번 찾아 뵌 20대 조부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할아버지의 묘소는 분당선 가천대역 4번 출구로 나와 도보 3분 내 거리에 계셨기에 참배하기가 쉬었습니다.

 

남경문할아버지는 26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으나, 현숙한 부인이신 숙녕택주 온양방씨(淑寧宅主 溫陽方氏)할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남지(충간공, 뿌리 여행1 에서 소개), 남간(직제학공_남효온 조부), 남휘(태종 부마_ 남이 장군 조부) 삼 형제를 키우셨습니다.

 

묘소는 살고개 ‘작은능’ 이라고 불렸으며 후손으로는 조선초 충간공 '남지'(뿌리여행1), '남이'장군을 비롯, 생육신 남효온, 조선중기 '남응운'(뿌리여행2), 인목대비의 폐위에 반대하다 파직되어 유배된 이조판서 남이공, 정묘호란시 안주성에서 항복을 거부하고 화약을 폭파_ 청나라 군대 3천명을 멸살시키며 장렬히 자폭하신 충장공 '남이흥'장군(요즘 재조명), 동창이 밝았느냐의 시인 영의정 '남구만', 조선후기 순조 때 영의정을 역임하여 치적을 남긴 '남공철', 가톨릭 성인 '남종삼'이 모두 할아버지의 후손들 이십니다.

 

의령남씨는 남경문 할아버지 묘소를 지키며 성남시 태평동, 수진동 일대에 거주하다가, 그 지파가 성남시 율동공원 일장산 넘어 광주 직리(직동)에 세거 하게 되었으니 그 후손이 고박정희 대통령을 보필하여 한국산업화를 이룬 남덕우 전국무총리 이십니다.

 

풍수사 ‘자연인’은 ‘남경문 묘의 감정결과는 대길지이다. 두 분과 대화 해보니 편안 하시단다. 강한 생기가 10시 방향에서 흘러 나와 묘를 감싼 채 흐르는 대 명당 터다’ 라고 2009년 4월 29일 평하셨습니다. 

 

모란역 부근에 결혼식장을 갖추고 우뚝 선 현대식 빌딩 ‘의남문화회관’(의령남씨 문화회관)의 오늘도 500 여년전 이곳에 터를 잡으신 할아버지의 음덕이 현대까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