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8. 19. 16:01

 

나는 그리 떡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떡을 직접 만들어보지도 않았다. 나에게 떡이란 한 의례절차였다. 즐겨 먹지는 않아도 내 생일에는 떡이 있어야 했고, 나는 그러길 원했다. 나의 그러한 바램에, 어머니께서 내게 만들어주신 그 떡은 대체로 시루떡 이었다.

 

바닥에 몇 구멍이 있어 뜨거운 증기가 통과하도록 된 떡시루의 바닥에 떡시루받침을 깔아 떡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새지 않도록 하고, 그 위에 쌀가루와 붉은 팥을 층층이 쌓은 후, 물이 끓는 솥 위에 거치하고, 솥에서 발생한 뜨거운 증기가 새지 않고 떡시루로 이동하여 솥과 떡시루의 경계를 시룻번으로 막아 떡시루 안의 재료들이 익도록 한다.

 

시룻떡이나 동지팥죽을 만들 때, 궁궐의 문 등에 붉은 색을 사용하는 것은 사악(邪惡)한 기운을 막기 위하여 붉은 색이 유용하다는 주술(呪術)적 의미로부터 기원하였고, 그래서 붉은 빛을 띄는 팥 (또는 그러한 붉은 색)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떠한 주술에도 부정적이다.)

 

-       () :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 및 궁궐 사람들이 사용하는 건물

-       () : 건물을 에워싼 궁장과 출입문 좌우에 설치하였던 망루(望樓) : 부속건물

 

1392년 조선이 건국되어 1394년말부터 약 1년에 걸려 경복궁이 법궁으로 건설되어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50) 문종(1450년 즉위) 단종(재위 1452~1455) 등이 기거하다, 세조(재위 1455~1468)가 주 거처를 창덕궁(1405년 건설)으로 옮겨 창덕궁이 법궁이 되면서, 경복군은 왕이 살지 않는 왕궁으로 존재하였었다.

-       법궁(法宮) : 왕이 주로 머물면서 정사를 돌보던 핵심 궁궐

-       이궁(離宮) : 필요에 따라 옮겨 갈 수 있는 여벌의 궁궐

 

그러던 중 1543, 1553,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1863년 고종(1852~1919, 재위1864~1907)이 즉위하면서 명에 의하여 경복궁을 재건하여 1865년부터 재건공사가 시작되어 1867년 완공되어 1868년 고종이 옮겨오며 법궁이 되기도 하였으나 1876년 발생한 대규모 화재(교태전 등 소실)고종은 다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런저런 생각에 궁궐의 몇 사진들을 보다가 내가 특이하게 느낀 것은, 1828년 순조(조선23대왕 1790~1834, 재위 : 1800~1834) 시절에 당시 세자(효명세자, 당시 대리청정, 후에 아들이 왕(헌종)이 왕이 되면서 익종으로 추존, 1809~1830)의 제안으로 창건되었다는 창덕궁 연경당(昌德宮演慶堂)’의 모습이었다. 공포도 단청도 없는 민간방식의 건물이기도 했으나, 각 건축물의 현판글씨가 붉은 색이라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진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고종은 1896아관파천(俄館播遷, 露館播遷)’시 경복궁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니, 1876년 발생하였던 화재 피해의 복구 이후에 다시 경복궁으로 복귀하였던 것 같다. 고종은, 1년간의 러시아공사관 생활 후 경운궁(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떡시루.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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