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3. 8. 11:42

 

요즈음 Myanmar 관한 소식들이 자주 들린다. 이전의 수도였으며, Myanmar 최대의 도시(인구 : 530 ) Yangon(Rangoon) 에서 과격한 시위가 있었으며, Dagon대학 개의 대학이 있는 Yangon 북부 외곽 North Okkalapa 에서 진압軍警과 시위대의 충돌로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시위대가 손에 팻말의 ‘We need R2P - Save Myanmar’ 보면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알아보다가, R2P Responsibility to Protect(보호책임)’ 을 의미하며, 그것은 국제사회는 Myanmar 를 구할 책임을 이행하여야 한다는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Yangon 은 계획된 해안도시 이다. 그래서 기차역, Swedagon Pagoda, Sula Pagoda등 도시의 중심부는 해안 가까이에 있다. 진압軍警은 도심을 폐쇄하였고, 시위대는 외곽에서 도심(都心)으로 과격하게 진출을 시도하며 진압軍警과 충돌한 같다.

 

그러는 가운데, India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시위의 진압을 담당한 Myanmar의 몇 경찰관들은 명령을 거부/반발하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나라 India Mizoram 州 한 마을로 갔다고 한다.

 

그러한 소식(진압군경의 과격한 진압)을 전하며, 그 매체는 과거 1980년의 과거 한국의 某 도시에서의 시위가 연상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197110월의 위수령이 생각되었다. 관련한 사진을 보다가, 시위대의  교련전면철폐라는 현수막, 당시의 고려대 대운동장과 중앙도서관(, 대학원)의 모습을 보았다. 그 당시 위수령(衛戍令)이 발동하고, 수도경비사령부 군인들이 교내에 진입하였을 때, 나는 국어(작문)수업을 듣고 있었으며, 철망을 넘어 도망쳐 안암동 某 中ᆞ高等學校 근처 도로에서 센 고개 숙여진 학생들을 싣고 가는 트럭의 수는 50대가 넘었다. (후에 듣기에 학생들은 남산 보안사로 이송되었으며, 그곳에서 분류되어 조치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그 당시의 주요 논점이 한일협정’, ‘개헌’, ‘유신그리고 교련이었던 것 같다. , 논점에 대하여 두 상반된 의견의 측들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 심하게 대립하였다. 그래서 결국 시위진압으로 서로 대항한 것이다.

 

서로 화쟁(和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화쟁은 다름에 대한 존중이다. 그것은 분쟁(分爭)도 아니고 타협(妥協)도 아니다. 서로 이해되는 것에는 동의(합의)하고, 서로 반대되는 것에는 맞서는(계속 토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논점들은 통합되기 보다는 세분화되어야 한다.

 

Myanmar는 전체 인구(54백만 명)의 대부분(89 %)불교도 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불교의 한 사상(思想)인 화쟁(和諍)보다는 독선(獨善)과 분쟁(分爭)에 치우치는 것 같다. 북방불교와 남방불교의 차이인가?

미안마의 현황 _ 210307.pptx
4.4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