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3. 13. 23:08

 

서울시청 근처에 한 궁궐이 있으니 흔히 덕수궁(德壽宮)이라 부른다. 그 궁()의 본래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 이었다. 그 궁의 역사는 임진왜란(1592~1598)과 선조(1552~1608, 즉위 1568~1608)에 기원하며, 그 궁의 정문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 이었으나 1906년 순종(純宗, 1874~1926)이 가례(嘉禮)를 올리며 대한문(大漢門)’으로 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1907년 강제 퇴위하여 순종에게 양위하고 1919121일 죽기까지 약 12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장례식은 191933)

 

19193월 초에 독립을 선언하려던 계획은, 191933일 고종황제의 장례식, 191932일이 일요일로 기독교인들의 참여불가 등의 이유로 191931일로 변경되었고, 탑골 공원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정오에 행사를 가지리라는 당초의 계획과 달리 오후 2시가 되도록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자, 독립선언서의 낭독 등을 자체적으로 실시하였다 전해지기도 한다.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人類平等의大義를克明하며此로써子孫萬代에誥하야民族自存의正權을永有케하노라. ~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알려진 사항 또는 알고 있는 사항이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매체가 게재한 고종 황제의 장례행렬 사진이 사실이 아닐 수 있고, 탑골공원에서 있었던 3 1 독립 만세운동은 기념식 노래처럼 정오에 발발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야만 한다. ‘0’ 에 접근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0’ 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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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그 덕수궁(德壽宮) 정문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 일까? 대한문(大漢門) 일까?

1919년 삼일절.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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