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7. 29. 09:52

 

한때 이런 질문들이 유행하였다.

-       첨단제품이란 무엇인가?

-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가? 살아남는 기업이 강한 기업인가?

 

요즈음 한국의 한국인을 상대로 TV 에서 선전되는 많은 상품들이 외국산이다. 야외용 깔판(매트레스, mattress)이 중국산이고, 목에 거는 선풍기가 중국산이고, 허리 등에 차는 짐싸게(pack)가 중국산이고 등등.

 

나는 외국산 상품을 구입하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려 하지는 않는다. 각 상품의 가치는 소비자의 편의 등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며, 같은 가격(가치)을 지불할 때 보다 큰 가치를 되돌려 받기를 추구하는 것이 소비자의 일반적 습성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외국에 머무를 때, ‘추수감사절 할인판매성탄절 할인판매에서 가격 등에서 그럴듯한 상품을 골라 제조원을 보면, 80년대 초에는 대한민국(made in Korea)’였으나, 10년후에는 중국(made in China)’가 되었다.

 

단지,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외국의 업체들이 겨냥하는 소비자의 편의에 우리의 업체들이 너무 소원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의 약 20 % 만이 취업을 하고, 85 % 의 대다수는 자신의 연고지인 서울 등 대도시에서 본인이 하고 싶을 때만 일하려 한다는 것도 아쉽다. 우리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창의력을 가질 수는 없는 것 일까?

 

 

우리, 이제, 북돋고 강한,
어떤 운명도 헤쳐 나아갈 마음으로
끊임없이 이루고 추구하며
일하고 기다리기를 배우자.

 

Let us, then, be up and strong

With a heart for any fate;

Still achieving, still pursuing

Learn to labour and to wait.

 

 
 
 

서북의 바람

Kay 2021. 7. 26. 07:01

 

서울 성곽의 사대문 안에서 3代가 연이어 산 사람을 서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한 기준으로 볼 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에 올라와 초동-망원동-연희동-(인천)-미아동-상계동을 전전한 나는 서울사람이 아니고, 상계동으로 이주한지 30여년이 되었으나 상계동 사람도 아닌 것 같다. 그냥, 그 지역에 사는 사람?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인(知人)이 내게 물었다.

-       이사하셨다는데, 새로운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이렇게 답하였다.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번지 입니다.

그러자 그 지인이 말하였다.

-       서울특별시에 무슨 상계동이 있어요? 경기도 의정부시 상계동 이겠지요.

https://namu.wiki/w/%EC%9D%98%EC%A0%95%EB%B6%80%EC%8B%9C

내가 서울시의 변두리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핀잔의 소리였다고 생각한다.

 

1912 528일 공포된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서 경기도 양주군 둔야면 의정부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니, 의정부시 상계동이란 역사적으로는 근거가 될 수 없다.

-       경기도 양주목 노원면        :   조선 初 ~

-       한성부 양주군 노원면        :   1895(고종 32) ~ (칙령)

-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   1896 ~ (칙령, 지방제도 개정)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상계리 :   1914 ~ (경기도령)

-       서울특별시 성북구    상계동 :   1963 ~ (법률 제1172)

-       서울특별시 도봉구    상계동 :   1973 ~ (대통령령, 도봉구 신설)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   1988 ~ (대통령령, 노원구 신설)

 

그러므로 내가 상계동으로 이사한 것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의 초기였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상계동은 그간 많이 변하였다.

 

예전에 군마(軍馬)들을 기르던 목장들이 있었고, 그 목장들의 입구를 알리는 牧門(목문) (문목)이 대하게 된다는 의미로 면목동(面牧洞)이라 불렸다는 곳에서, 방목된 ()’들이 놀았다던 강(中浪川)가의 (들판)’이라는 의미로 지금의 노원구청 근처의 지역을 마들이라 불렸다 한다. (혹자는, 1970년도 중반까지 그곳에 삼( : 직물의 생산에 소요 등, hemp, 대마, 大麻)밭이 많아 마들로 불렸다고도 한다.)

 

하여튼, 강가의 들판들은 1970년도 중반까지 점차 개간되어 농경지가 되었고, 1980년대 아파트단지로 개발되며 현재 노원구의 중심이 되었다. 농경 위주의 지역일 당시만 하더라도 근처에 국민학교가 거의 없어, 학교에 가기 위하여는 농로(農路)를 따라 먼 길을 걸어야만 했다고 한다. (2021년 현재는 16개의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있다고 한다.)

 

상계동은 1980년대 이후 인구가 증가하며 발전하였고 (최대 25만 명), 내 집 근처의 개천도 복개되었으나, 2000년을 넘어서며 마을 노후화와 함께 토박이들의 신도시로의 이탈 등 인구는 점차 감소하는 변화 추세를 보인다고 한다. (2021년 현재 약 20.6만 명, 특정지역 출신이 다수)

상계동의 변화.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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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의 바람

Kay 2021. 7. 24. 20:12

 

딴따라(tantara)’, 크게 나팔이나 피리 등이 내는 소리의 의성어(擬聲語)로 분류되며, 때로 그러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표현하기도 하고, 역시 그 소리에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사람을 표현하기도 한다. 다른 요즈음의 표현으로, ‘연예인 (a performer)’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슷한 표현으로 날라리가 사용되기도 한다.

 

딴따라는, ‘풍각(風角)쟁이걸립(乞粒)’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풍각(風角)쟁이걸립(乞粒)’은 돈이나 곡식을 구걸을 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나,풍각(風角)쟁이는 연예에 보다 중점을 두어 거리 음악가(Street musician)라 할 수 있고, 걸립(乞粒)’은 구걸을 중심으로 하는 차이를 가진다. 또, 조선시대 대륙에서 무대공연이 들어오면서 대규모 관중을 상대로 공연을 하게 되면서 큰 규모라는 뜻에서 ‘광대(廣大)’라는 말도 생겼다.

 

딴따라라는 표현이 비속한 듯 한 것은, ‘사농공상(士農工商)’ 기준의 사회에서 전통으로 꿋꿋한 지조(志操)의 선비정신을 포기하고, 인기와 풍류(風流)에 휩싸이는 후손들에 대해 거부하는 선조들의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 아니었을까?

 

하여튼, ‘딴따라의 어원(語源)과 관련한 말은 줄이지만, 요즈음 몇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몇 유흥사(연예 기뢱사)딴따라 연습생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애씀은,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선행수업을 받은 그 자녀들이 목표를 이루었을 때 어떻게 될까? 걸립(乞粒)’보다는 풍각(風角)쟁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광대(廣大)’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끌려가는계층이 되기 보다는 이끄는계층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꿈 _ 선행학습.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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