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10. 16. 06:45

 

일본의 한국진출로, 한국에 대한 영향력 확장을 목표로 1894년부터 1895년 청ᆞ일전쟁이 있었고, 1904년부터 1905년까지 노ᆞ일전쟁이 있었다. 1895년에는 일본세력에 반대하던 민비가 일본세력에 의해 시해되었다. (을미사변) 이후, 1896년 고종은 러시아영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하였다. 1897년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이후,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한국정부의 외교권박탈), 1910년에는 한일합병(한국정부의 국권상실)이 이루어졌다.

 

하여튼 복잡한 여건에 이용익의 사재출연 등으로 학교(보성전문학교, 고려대학교 전신)는 창립되었으나, 을사보호조약(한국정부의 외교권박탈) 등으로 일본의 세력이 강화되면서 이용익은 러시아로 피신하였고, 학교는 재정의 어려움으로 종로(전동, 관훈동, 운현동 등) 교사를 전전하다, 1934년에 인촌 김성수에 의해 현재의 안암동 교사로 옮겨졌다.

 

-       이용익은 1854년 출생 1907년 사망 (향년 53 @ 러시아)

        : 전쟁(청일전쟁/노일전쟁)이후 일본세력의 확장으로 러시아로 피신

-       방정환은 1899년 출생 1918년 보성전문학교 법과 입학 / 중퇴 / 일본 유학

-                                    1931년 사망 (향년 32)

-       윤동주는 1917년 출생 1945년 사망 (향년 28)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41년 졸업

 

봄이면, 철쭉이 피고, 55일 어린이날 모교는 개교기념일 행사를 가진다. 어린이 날이라고 하면 방정환이 생각난다. 그는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다니다, 191931절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일경에 체포되었고, 이후 일본(동경대학)으로 피신하여 유학하여 아동문학과 아동심리를 수학하였다고 한다.

 

하여튼, 세월은 많이 흘렀다. 흐르는 세월만큼 많은 모습도 변하였다. 우리가 보는 현재의 교정(校庭), 보이지 않는 오래 전 교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보성전문학교.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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