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5. 14. 20:57

 

요즘 간간이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사는 미얀마(Myanmar, Burma, 인구 약 55백만 명)에 관한 소식이 전해진다. 미얀마는 남북으로 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태국과 전하고 있으며, 미얀마와 태국의 사이에 살윈(Salween)이 있다. 그 살윈강의 주변 산지(山地, Shan 高原) 골짜기 등에 여러 소수 민족들이 군데군데 살고 있다. 그들을 Myanmar 소수민족이라 부른다.

 

Myanmar , Tibet 지역의 사람들이 남하(南下)하여 정착하면서, 산골에서 부족국가를 형성하며 살아가다가, 나름의 왕국(王國)을 만들어 살아가다가, 13세기 몽고의 징기스칸(Genghis Khan , 成吉思汗, 1162 ?~1227)’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고, 15세기에는 중국의 明나라(1368~1644)를 공격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사연 끝에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인도의 한 州가 되기도 하였다. 다수 민족인 Burma 족이 중심이 되며 결국 1937Myanmar 는 印度로부터 독립을, 19481Myanmar 는 英國으로부터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수민족들은 꾸준히 분리 독립을 요구한다. 영국은 소수민족들에 이후 분리 독립을 약속하였으나, 그것은 Myanmar 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무산되었으며,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軍部는 상당한 영향력(국회의원의 25 % 지분)으로 소수민족들의 그러한 분리독립 요구를 억제한다.

 

Myanmar 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 인구 약 150만 명 정도(양곤 인구 : 350만 명)만들레이(Mandalay)’가 거론되는 것은, 그 근처(바고(Bago)지역)가 옛 왕국(Innwa Kingdom)의 수도(고대도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얀마 _ 210512.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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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의 바람

Kay 2021. 4. 28. 06:38

 

나는 가끔 내려 놓으라’ 고 말한다그 말을 하면서 나는 때로오래 전 (1800년전, 삼국시대) 중국의 속담이라는 어떤 글 구를 인용하기도 한다.

忍一時風平浪靜 (인일시풍평랑정)     한 순간을 참으면 바람과 파도가 잠잠하고

退一步海闊天空 (퇴일보해활천공)     한 발자국 물러서면   바다와 하늘이 넓다

 

내가 중국의 역사에 대해 익숙하지 않으나,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The empire, long divided, must united; long united, must divided.’ 역사는 그렇게 뭉치고 흩어지면서 진행된다.

 

()나라가 쇠퇴하면서 나뉘어진 위(), (), ()이 서로 싸웠고 (삼국시대), 삼국간 전쟁의 결과로 생긴 통일국가()가 빠르게 쇠퇴하면서, 분열하여 주변의 이민족들에 의해 ‘516(516) 시대남ᆞ북조(南北朝)시대를 겪었고, 다시 통합되어 ()ᆞ당()의 시대를 유지하였고, 당의 멸망 후 다시 분열하여 ‘510국의 시대를 거쳤다가, 다시 통합되어 () 시대가 되었다. 이후 원(), (), ()에 대하여는 언급을 회피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풍도(馮道)’악비(岳飛)’라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처세술(處世術)이다. 풍도(馮道)’는 혼란의 ‘510국의 시대를 살던 유학자(儒學者) 문인(文人, 宰相)이었고, ‘악비(岳飛, 1103~1141)’는 비교적 안정된 () 시대의 무인(武人, 將軍)이었으므로 서로의 처세(處世) 다르리라 생각한다.

 

풍도(馮道, 881~954, ‘장락선생이라 불리기도 함)’를 소개하는 (란즈커(역사연구가/심리학자, 중국)의 글 : 참모(參謀)의 진심(眞心)) 글에도, ’忍一時風平浪靜 (인일시풍평랑정)  한 순간을 참으면 바람과 파도가 잠잠하고 退一步海闊天空 (퇴일보해활천공한 발자국 물러서면 바다와 하늘이 넓다는 표현이 있으니 마음에 새길 일이다.

역사의 교훈.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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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의 바람

Kay 2021. 4. 23. 09:26

 

영국의 Philip Mountbatten (1921년생, 영국여왕 Elizabeth Alexandra Mary (1926년 생)의 夫君)이라는 사람이 100세 생일을 앞둔 202149, 심장수술 후 COVID-19 를 피하여 London 중심에 있는 Buckingham Palace 떠나 지내던 London 외곽의 Windsor 宮에서 사망하여, ‘성조지 성당에서 2021417일 장례식을 거행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17세의 왕립 해군사관학교의 생도시절에 여동생과 해군사관학교를 공식 방문한 Elizabeth Alexandra Mary(13) 경호하며 처음 대하고, 26세인 1947 11월에 결혼하였다.

 

Philip Greece 왕위계승 서열 2위의 왕자였으나 Greece Turkey 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발발한 군사 쿠데타(coup dÉtat) 세력에 의해 Greece 에서 추방되어 France 에서 거주하다 영국에서 부자 친척의 집에 살면서 해군이 되려 영국의 왕립 해군사관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결국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위로 제대하였다.

 

영국의 Elizabeth- 여왕은, 19세인 2 세계대전 말기(1945) 영국 여성 국방부 수송대(WATS)에서 소위로 자원 근무하기도 하였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1940. 5 ~1945. 7 기간 중 총리를 하며 2차 대전을 이끌던 윈스턴 처칠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의 첫 임기 末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부친 조지 6(George-VI, 1895~1952, 재위 1936~1952)’의 사망에 이어 왕이 되었다.

 

조지 6는 형인 에드워드 8(Edward Albert Christian George Andrew Patrick David Windsor)1936년 미국출신 Wallis Warfield Simpson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자 후임 왕이 것으로 유명하다. ‘George-VI, 1895~1952, 재위 1936~1952’ 원래 왕위계승 서열의 우선에 있지 않았으므로, Elizabeth- 여왕도 원래 왕위계승 서열에서 우선되지 않았다.

 

Philip Mountbatten 은 왕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Elizabeth Alexandra Mary 1946년경 해외여행 중 아버지인 George- 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그와 결혼하여 1947년 그의 배우자(남편)가 되었고,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였던가? ^^*  Elizabeth Alexandra Mary 는 그 (1952) 26세의 나이로 영국의 (Elizabeth-)이 되었다.

 

관련하여 사진들을 보다가 영국 왕실의 문장(紋章), ‘Hony Soit Qui Maly Pense’, ‘Dieu Et Mon Droit’ 같은 역사적 대립국 France 어에 기원한 문장(文章)들이 적혀 있음에 나는 좀 의아함을 느꼈다. 어떤 사람은, ‘Dieu Et Mon Droit’()과 나의 권리(權利)’라 설명하였으나, 그것이 영어로 God and my right라니 그것을 () 나의 (役割)’라고 하면 어떨까?

 

하여튼 각 국가사회들은 (백년전쟁과 장미전쟁, Battle of Plassey 등 많은 역사적 사건으로 알 수 있듯이) 이렇게 대립하고 경쟁하며 역사를 만들어 간다. 100년을 살았던Philip Mountbatten 의 死亡은 역사의 한 면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변화경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변화경쟁을 주도(主導)하고 승리(勝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질을 제고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사망 _ 210417.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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