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10. 5. 08:07

 

몇 년 전에 아파트 관리실과 배송대리 업체가 택배(宅配)와 관련하여 심각한 대립을 하였으며, 이를 택배전쟁이라 하기도 하고, ‘아파트 관리실의 갑질이라고도 하였다. 게재된 어느 아파트의 통제협조공문 사진에 20184월 이라는 일자(日字)가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그 사건은 3년여의 세월 전인 2018년으로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여튼, 그 아파트 단지와 관련하여 게재된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다산이라는 표현을 보았고, 그 신도시가 어디에 있으며 지금은 어떠한 상황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알려진 신도시는 서울에서 다산 정약용 유적지(팔당호 근처)’로 접근하는 남양주시 진접읍의 고속도로 JC 근처에 있어 그렇게 이름하였으며, 3년의 세월 동안 가격은 약 1.8배 상승하였다고 한다. 1년에 약 60 % 상승한 것이다.

 

관련하여 몇 지도들을 보다가 광해군 묘라는 표식을 보았고, 내가 그 근처에 좀 익숙한 탓에 지도의 표식과 실제를 비교하여 추정할 수 있었다. (slide #2 의 오른쪽 지도는 한군데만 틀린 것 같다. 석화촌(石花村)과 사릉(思陵,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 씨(1440~1521)의 능)의 위치가 참고가 되었다.)

 

광해군(1575~1641, 재위 : 1608~1623)이라는 표현에 연산군(1476~1506, 재위 : 1494~1506)이 생각났고, ‘폐비 윤씨(1455~1482)가 생각났다. 연산군은 투기로 폐비가 되어 사약(賜藥)을 먹고 죽은 윤씨(서삼릉 안장)의 소생이고, 광해군은 선조를 따라 임진왜란을 이끌었다.

 

여기서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가 저술하였다는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 불쌍한 사람들)의 시대적 배경이며,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가 작곡하였다는 교향곡 영웅시대적 배경이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1769~1821프랑스 제1공화국 군인이자 1804부터 1814 1815황제)’의 활동시기인 프랑스대혁명1789 경 임을 언급한다면 너무 뜬금없는 일 일까?

 

나는 가끔 프랑스대혁명을 짧은 바지(지배 하는 계층)와 긴 바지(지배 받는 계층)의 다툼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복장은 각 계층의 신분/문화와 전통을 표현한다. 지배 받는 계층의 가치는 노동력이었으나, 사업혁명 이후(18세기)에 인력 이외의 노동력이 가용해지며, 지배하는 계층과 지배 받는 계층의 차이가 더욱 심해지며 계층간의 갈등과 다툼이 심하여지며 프랑스대혁명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여튼 지배하는 계층의 (짧은 바지의) ()과 귀족(貴族)은 한계를 가진 지배력을 나누어 가진다. , 왕권이 강화(强化)되면 귀족계층의 지배력은 약화(弱化)된다. A + B = 일정. 그러한 상황이 예상되면, 지배력을 가졌던 귀족계층은 무리를 지어 왕권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지배력을 회복/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쫓겨난 조선의 왕들이 연산군(燕山君, 강화도에서 사망하였으나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소재)과 광해군(光海君, 제주에서 사망하였으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송릉리 소재)이다.

 

이렇게 신하들에 의해 추출된 왕은 군()으로 강등되어, 왕이 아니라 다른 왕자들과 같은 지위의 예()로 대우되어 그 묘소(墓所)의 입구에 홍살문을 설치하지 않으며, 규모도 적고, 석물(石物)도 제한된다. 광해군의 묘에는 재실(齋室)마저도 없다. 재실(齋室)이 없다는 것은 때에 따라 그를 기념하여 제사조차에도 소홀하다는 의미라 생각된다.

 

나는, 그 묘소들을 바라보며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다산신도시.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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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의 바람

Kay 2021. 6. 29. 04:01

 

1392년에 당시 57세이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군사반란을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설립하였다. 그로부터 231년이 지난 1623년 임진왜란으로 왕권강화와 군사력강화에 독단 행태를 보이는 광해군에 반발하는 양반(귀족)층의 강한 반발로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있어, 임금은 바뀌었고, 서인(西人)들이 정권을 잡으며 사회는 불안하였다.

 

그래서 당시 인조반정의 핵심이던 개성유수(開城留守) 이귀(李貴, 西人)는 장정 260명을 모아 화포술(火砲術)을 가르치는 등 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 1야전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특수부대(왕 호위부대 : 수도경비사령부 ?)설립하였고, 이 부대는 1624년 새로 설립된 총융청(摠戎廳)에 소속되었다가 1628 어영청(御營廳)이 설립되며 소속을 바꾸며 17세기 효종(孝宗) 재위시(1649~1659, 30세 즉위)에는 21,000 명까지 규모를 확대한 정예부대로 자리잡았다.

 

왕권(王權)과 군사력(軍事力)을 갖추지 못한 인조(仁祖), ()과 청()의 국제정세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하고 친명배금(親明排金)’의 태도를 유지하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이은 1636~1638(병자호란, 청의 침공)에 전쟁 중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하다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청()에 항복하여 1649년 그가 죽을 때까지 왕위를 유지하였다.

 

하여튼, 한때 강한 군기의 정예부대로 자리잡았던 어영청 소속 어영군(御營軍)은 점차 군기가 해이해지며 어영군은 군대도 아니다(어영비영 : 御營非營)’는 백성들의 비아냥을 받았으며, 이후 약간의 발음변화로 어영부영(御營不營)’으로 표현되며, ‘적극성 없이 아무렇게나 어물어물 시간만 보낸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흐지부지라는 표현도 휘지비지(諱之秘之)’의 발음변화이다.

https://forseason.tistory.com/6091

 

우리는 지금 생사(生死)가 걸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러므로, 더욱 어영부영(御營不營)’ 하여서는 안 된다.

 

문득,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 Miyamoto Musashi)’의 저서 오륜서(五輪書)가 생각난다.

-       휘두르는 칼에 상대가 우연히 닿아 쓰러져서는 안 된다.

-       상대를 베어야 한다. (전략적 대응에 의하여 목표를 의도적으로 달성하여야 한다.)

 

 
 
 

서북의 바람

Kay 2020. 10. 11. 20:15

 

조선 왕조(1392~1910) 518년의 기간 중 신하에 의해 왕이 축출된 경우가 두 번 있었다. 10대 연산군(燕山君)15대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 : 1608~1623)이다. 그들은 왕이었으나, 보필하여야 할 신하들에 의해 자리에서 쫓겨나고, 유배되고, 왕자로 강등되었다. (왕권의 강화로 관료(양반계급)들의 권한이 위축됨에 대한 불만과 갈등의 탓이 아닌가 싶다.)

 

결국, 후임 인조(仁祖, 생ᆞ몰 : 1595~1649재위 : 16231649) 1636삼전도(三田渡: 삼밭나루)에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로 淸에 항복하였다.

 

2020년 추석에도 성묘를 위하여 누나의 산소에 갔다. 그곳에 가는 산길 한편에 임진왜란 때 세자로서 戰時를 제법 잘 이끌던 광해군 묘가 있다. (내가 알기로, 그때 왕(선조)과 세자는, 이원화된 정부의 역할별로 각자대표체제 같이 운영되었던 것 같다.) 다른 왕릉에 비해 초라하리만큼 규모가 작지만, 그러나 나는 그것에 눈길을 둔다.

 

전에는 그 비탈에서 따뜻한 햇볕과 잔잔한 바람을 느끼며 이런저런 상념(想念)에 빠지기도 하였다.

광해군의 묘.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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