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2. 1. 26. 07:58

 

1950625일 새벽에 남침을 한 북한군은 1950629일 서울을 함락시키고 계속 남침을 하여 한국이 부산의 근처(경상남도) 만을 유지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이에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은 그들 북한군의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연합군이 인천에 상륙하도록 작전을 펼치었고 (1950915일부터 18), 이에 연합군과 국군은 북한군을 좇으며 그 해 내에 전쟁을 마감 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북으로 전진하였다.

 

그러한 와중에 19501025일 창설된 9사단(사단 : 서울, 28연대 : 대전, 29연대 : 공주, 30연대 : 청주)은 보급선이 차단되어 북으로 패주하는 북한군의 패잔병을 토벌하며 좇는 것을 주 임무로 활동하면서 태백산맥을 따라 강원도 인제군까지 이동하였는데, 창설된 9사단의 초기 표식은 원()안에 어떤 형상을 가진 것 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 형상이 어떤 보석(루비)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 형상이 육군의 전투부대(연대)를 의미하는 (세 개의) 이라고 말한다. 글쎄? 보석(寶石)과 군()은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9사단은 인제(麟蹄)지구 전투현리(縣里) 전투로 승패를 겪으며 결국 1952106일에서 1015일 철원군 395고지(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되었고, 그곳에서 중공군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전하였다. 19521014일 백마고지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상승백마(常勝白馬 : 항상 이기는 백마)라는 표현으로 그 전투에 참여한 9사단을 치하하였고, 그로 인하여 그 부대는 백마부대라는 애칭(愛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전투가 치열해지면, 부상자도 늘고, 상이군인(傷痍軍人)도 늘어난다. 내가 어렸을 적 많은 상이군인들이 있었다. 야간열차를 탔을 때, 그들의 무용담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고, 내 국민학교 졸업반 담임선생님도 상이군인 이었다.

백마고지.pptx
4.90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