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4. 23. 09:26

 

영국의 Philip Mountbatten (1921년생, 영국여왕 Elizabeth Alexandra Mary (1926년 생)의 夫君)이라는 사람이 100세 생일을 앞둔 202149, 심장수술 후 COVID-19 를 피하여 London 중심에 있는 Buckingham Palace 떠나 지내던 London 외곽의 Windsor 宮에서 사망하여, ‘성조지 성당에서 2021417일 장례식을 거행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17세의 왕립 해군사관학교의 생도시절에 여동생과 해군사관학교를 공식 방문한 Elizabeth Alexandra Mary(13) 경호하며 처음 대하고, 26세인 1947 11월에 결혼하였다.

 

Philip Greece 왕위계승 서열 2위의 왕자였으나 Greece Turkey 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발발한 군사 쿠데타(coup dÉtat) 세력에 의해 Greece 에서 추방되어 France 에서 거주하다 영국에서 부자 친척의 집에 살면서 해군이 되려 영국의 왕립 해군사관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결국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위로 제대하였다.

 

영국의 Elizabeth- 여왕은, 19세인 2 세계대전 말기(1945) 영국 여성 국방부 수송대(WATS)에서 소위로 자원 근무하기도 하였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1940. 5 ~1945. 7 기간 중 총리를 하며 2차 대전을 이끌던 윈스턴 처칠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의 첫 임기 末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부친 조지 6(George-VI, 1895~1952, 재위 1936~1952)’의 사망에 이어 왕이 되었다.

 

조지 6는 형인 에드워드 8(Edward Albert Christian George Andrew Patrick David Windsor)1936년 미국출신 Wallis Warfield Simpson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자 후임 왕이 것으로 유명하다. ‘George-VI, 1895~1952, 재위 1936~1952’ 원래 왕위계승 서열의 우선에 있지 않았으므로, Elizabeth- 여왕도 원래 왕위계승 서열에서 우선되지 않았다.

 

Philip Mountbatten 은 왕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Elizabeth Alexandra Mary 1946년경 해외여행 중 아버지인 George- 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그와 결혼하여 1947년 그의 배우자(남편)가 되었고,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였던가? ^^*  Elizabeth Alexandra Mary 는 그 (1952) 26세의 나이로 영국의 (Elizabeth-)이 되었다.

 

관련하여 사진들을 보다가 영국 왕실의 문장(紋章), ‘Hony Soit Qui Maly Pense’, ‘Dieu Et Mon Droit’ 같은 역사적 대립국 France 어에 기원한 문장(文章)들이 적혀 있음에 나는 좀 의아함을 느꼈다. 어떤 사람은, ‘Dieu Et Mon Droit’()과 나의 권리(權利)’라 설명하였으나, 그것이 영어로 God and my right라니 그것을 () 나의 (役割)’라고 하면 어떨까?

 

하여튼 각 국가사회들은 (백년전쟁과 장미전쟁, Battle of Plassey 등 많은 역사적 사건으로 알 수 있듯이) 이렇게 대립하고 경쟁하며 역사를 만들어 간다. 100년을 살았던Philip Mountbatten 의 死亡은 역사의 한 면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변화경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변화경쟁을 주도(主導)하고 승리(勝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질을 제고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사망 _ 210417.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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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의 바람

Kay 2020. 8. 4. 16:23

 

나는, France 의 황제(즉위 : 1804)였던 Napoleone Bonaparte Italia 의 왕(즉위 : 1805)이었는지 몰랐다. 하여튼, 그는 그의 여동생 (1790 ~1825) Italia 의 세력가문(Borghese)에 시집을 보냈다니, 그 당시에도 정략결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France 의 황제가 되었음 과 그의 여동생 Paolina Borghese 의 조각상이 1808년 만들어졌음 등으로 유추할 때, 그가 France 의 실권자일 당시 여동생을 결혼시켰으며, 그가 Italia 의 왕이 되는데 여동생이 시집인 Borghese家 의 상당한 후원을 받았으리라 추정된다.

 

그녀는 1780년에 때어나 1825년에 죽었다고 하니, 그녀의 대리석 조각상이 만들어 진 것은 스물여덟살 정도의 농 무른 때가 아니었을까?

 

하여튼, 1808(그녀 나이 28세 추정) 그녀의 조각상을 만들고, 이후 France 에 가서 Napoleone Bonaparte Italia 에서 가져간 예술품들 일부를 반환 받아 귀국(1816)한 공로로 某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는 Antonio Canova 는 당시 Italia 의 뛰어난 대리석 조각가였던 것 같다.

 

뛰어난 그도 Paolina Borghese 의 조각상을 만들 때. 석고로 한번 (원형을) 만들고, 이후 그것을 바탕으로 대리석 조각을 하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일들을 얼마나 (즉흥적으로) 엉성하게 처리하는가 반성하게 된다.

 

나는 글을 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충대충, 듬성듬성 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대비하여야만 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은 것이 우리의 삶 아닌가? (그러나, 과거에 묻혀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파손된 조각상.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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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의 바람

Kay 2020. 4. 29. 18:45

 

때로 지금이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더 큰 힘겨움을 견디어 오기도 하였으니 지금의

힘겨움도 견디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에 도전하여야 만 한다.

 

어느 때 보다 더 큰 사랑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희망에 도전하여야만 한다. 이웃과 주변에 대한

사랑으로

 



COVID 19 in the UK and the France _ 200429.pp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