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의 바람

Kay 2021. 6. 29. 04:01

 

1392년에 당시 57세이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군사반란을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설립하였다. 그로부터 231년이 지난 1623년 임진왜란으로 왕권강화와 군사력강화에 독단 행태를 보이는 광해군에 반발하는 양반(귀족)층의 강한 반발로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있어, 임금은 바뀌었고, 서인(西人)들이 정권을 잡으며 사회는 불안하였다.

 

그래서 당시 인조반정의 핵심이던 개성유수(開城留守) 이귀(李貴, 西人)는 장정 260명을 모아 화포술(火砲術)을 가르치는 등 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 1야전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특수부대(왕 호위부대 : 수도경비사령부 ?)설립하였고, 이 부대는 1624년 새로 설립된 총융청(摠戎廳)에 소속되었다가 1628 어영청(御營廳)이 설립되며 소속을 바꾸며 17세기 효종(孝宗) 재위시(1649~1659, 30세 즉위)에는 21,000 명까지 규모를 확대한 정예부대로 자리잡았다.

 

왕권(王權)과 군사력(軍事力)을 갖추지 못한 인조(仁祖), ()과 청()의 국제정세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하고 친명배금(親明排金)’의 태도를 유지하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이은 1636~1638(병자호란, 청의 침공)에 전쟁 중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하다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청()에 항복하여 1649년 그가 죽을 때까지 왕위를 유지하였다.

 

하여튼, 한때 강한 군기의 정예부대로 자리잡았던 어영청 소속 어영군(御營軍)은 점차 군기가 해이해지며 어영군은 군대도 아니다(어영비영 : 御營非營)’는 백성들의 비아냥을 받았으며, 이후 약간의 발음변화로 어영부영(御營不營)’으로 표현되며, ‘적극성 없이 아무렇게나 어물어물 시간만 보낸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흐지부지라는 표현도 휘지비지(諱之秘之)’의 발음변화이다.

https://forseason.tistory.com/6091

 

우리는 지금 생사(生死)가 걸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러므로, 더욱 어영부영(御營不營)’ 하여서는 안 된다.

 

문득,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 Miyamoto Musashi)’의 저서 오륜서(五輪書)가 생각난다.

-       휘두르는 칼에 상대가 우연히 닿아 쓰러져서는 안 된다.

-       상대를 베어야 한다. (전략적 대응에 의하여 목표를 의도적으로 달성하여야 한다.)

 

 
 
 

서북의 바람

Kay 2010. 9. 28. 13:40

 

어떤 젊은 여자는 별 직업 없이 부모의 용돈만으로 수십억 원 상당의 장신구들을 가졌으며, 수억 원에 상당하는 외국산 차를 운전한다고 스스로 말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 정도의 용돈을 줄 수 있는 부모에 대하여, 엄격한 세무조사와 증여세 등을 추징하여야 한다는 국민들의 주장도 많다.

 

흐지부지 (petering) 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용돈의 출처가 된 부모에 대한 국세청 등 관련기관의 적극적이고 공정한 처리가 되고, 그 결과가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어떤 실업자.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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