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八技

blues 2008. 3. 23. 06:25

 

역사재현(reenactment)은 우리에게는 낯선 단어이지만 서구에서는 매우 보편화된 단어 가운데 하나이다. 재현, 재연 등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주로 특정 시기의 역사적 상황을 되살리거나 재연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예를 들며, 로마의 검투사, 2차세계대전의 유명한 전투, 남북전쟁의 한 장면 등 그 대상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상황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이 포함된다.

 

보통은 아마추어적인 취미에서 시작된 활동이지만 심취하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서는 기존의 역사 전문가보다 더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내가 만난 네덜란드의 저명한 역사 전문가인 Jan Piet Puype씨는 자기가 알고 있는 역사재현꾼 가운데 로마투구에 대해서 자기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봤다고 감탄을 하기도 했다. 전문 역사가의 입장에서는 사료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다보니 실제적인 효용성이라는 부분과 상황성이라는 부분이 잘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역사재현꾼들의 재현 활동을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활동이 일반인들에게 역사를 환기시켜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자신은 긍정적으로 본다는 말도 함께 했다.

 

이러한 역사재현 활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간 전통무예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져 온 많은 무예들도 크게 보면 역사 재현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그 동안의 작업들이 역사적인 인식이 매우 빈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역사적인 연계 고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 무예 분야와 관련해서는 수원에 자리를 트고 있는 무예24기보존회가 이러한 역사 재현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4기보존회의 활동을 보면 이들이 하는 것이 무예 재현이라기 보다는 공연이라는 인상이 짙다. 무예가 가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연극이나 무용처럼 보여주기 위한 소위 말해 쇼(show)적인 요소가 중심이 된다는 말이다. 일반인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무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종종 이런 류의 활동을 실제 무예와 혼동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유럽에서도 무예 재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중세 기사들의 무예를 재연하고자 하는데, 이들에게는 사범(master)이라는 호칭이 없다. 모두 학생(student)일 뿐이다. 선생이 없이 책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복원이기 때문에 본인들 스스로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떠한 비판에도 귀를 열어두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만이 현재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메우고 원래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통로라는 겸손한 인식이 바탕에 있다.

 

24기보존회로 돌아가서 이들 단체는 임동규 선생의 24반무예협회에서 갈라나온 단체이다. 그런데 임동규 선생은 여러 매체에 의해 알려졌듯이 감옥에 있을 때 무예도보통지를 보고 24반 무예를 만들었다고 했다. 소위 전형적으로 위에서 말한 재연(reenactment)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임동규 선생 밑에서 배운 김영호 씨가 24기보존회를 맡고 있고 그외도 몇몇 사람들이 관여를 하고 있다.

 

임동규 선생과는 몇 차례 만난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임동규 선생이 매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삶에 대한 의지와 세상을 바꿔보려는 비전을 평생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않다는 생각에 그 분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당신의 뜻을 펼치기에는 난관이었지만. 이러한 판단과 별개로 무예에 대해서 말한다면 사실 임선생은 상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90년이라고 기억되는데 신촌에서 만나 감자탕에 술한잔을 하면서 되뇌이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은 무예도보통지를 나름대로 복원한 것이고 대한십팔기협회의 김광석 선생은 전승하신 것이라고" 그해 전국대학생십팔기 발표회에 임선생의 제자들이 함께 했었다.

 

어쨌든 24기보존회는 임동규 선생으로부터 분리해나와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하는데 이게 좀 묘하다. 무예에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24기보존회의 스타일을 십팔기와 대조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거의가 십팔기에서 하고 있는 형태를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곳곳에 장치를 둬서 다소라도 다르게 보이려는 시도를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 흐름을 흉내낸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24반은 그런대로 자존심이 있어서 임선생 특유의 색채를 지니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24기에 와서는 아무런 개념이 없는 것 같다. 몇몇 인터뷰 자료에서는 십팔기를 참고하고 연구한다고 하고, 관련 글들 역시 참고한다고 했는데,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보고 따라하고 있다고. 24기보존회의 김영호씨도 전화통화를 한 차례 한적이 있다. 사실 내가 전화 걸 일은 없고 와서 받았는데, 통합 운운 하기에 와서 제대로 배워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십팔기 따라서 하는 것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말씀하시냐는 말로 충고를 드린 적이 있다. 가관인 것은 김영호씨가 밑에 사람들에게 쌍검과 월도 등을 무예도보통지에서 풀어오라고 시켰는데 십팔기 하는 비디오를 보고 만들어왔더라고 하는 것이었다. 단체의 수장이 밑에 사람들이 보고 따라하는 것이지 자신의 책임이 없다는 투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완전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월도의 무슨 자세는 십팔기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자기는 이렇게 한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았었다.

 

재연(reenactment)은 역사에 좀더 다가가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빌미로 있는 사실을 속이고 기존에 전승되어 오는 무예를 그럴싸하게 포장을 입혀 자신들의 상술에 이용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럽에 있는 재연가들을 만나면서 비록 그들이 제대로 된 전승을 하지 못해 재연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태도, 학생으로 자신을 낮추고 배우고자 하는 태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진솔함을 느꼈다. 

 

우리 무예계도 나름대로 자정의 노력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비단 나만이 느끼는 낭만적인 생각일까.    

             --무예 무술 무도 그리고 무덕(武德)  네이버 블로그--

위의 글을 읽어보니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하네요. 무예라는 것이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심신을 수양하는 것이란 본연의 것.... 보기 좋다는 것이 결국 무예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의미... 재연과 무예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좋은 내용 스크랩 해 갑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본문은 8년 전 저에게 무예를 가르쳤던 전 영산대 교수 최복규 사범님의 글로서 본문 아래에
글의 출처를 명시했습니다. 저는 저를 가르쳤던 옛 스승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제가 삭제를 하더라도 본문은 그 자리에 고스란이 있을 것이고, 무예를 배웠던 스승의 글을
삭제하는 것은 결국 스승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무덕이 아닐 것입니다.
뉘신지는 모르나 아주 오래 전에 포스팅한 것이고, 누가 구태여 검색하지 않고선 볼 수가 없는 글이며
포스팅한지 오래되었고,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아서 삭제와 무방하게 대중적으로 읽혀지기엔 그 한계가 뚜렷합니다.
양지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