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s 2012. 2. 24. 09:24

 

- 변산바람꽃(지리산)-

페이스북 친구가 찍은 사진입니다.

지리산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지리산이라면 누구보다 자부하였던 저는 저런 꽃을 도통 본 적이 없으니...

같은 눈을 지녔다고 다 같은 눈이 아닌게죠.

볼 줄 알고 보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저런 꽃들을, 작지만 경탄스러운 아름다움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산을 체력단련장으로 알았던 사내가 있었습니다.

자칭 산을 사랑한다고 청춘을 많은 시간을 산에 던졌던 사람이었습니다.

혼자라면 워킹을, 둘이라면 바위를 찾으며 자기계발, 돈 따위는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제몸에 무리가 가는 줄도 모르고 능선을 줄달음쳤던 그런 멍청한 녀석이었습니다.

확보물 하나없이 25m의 슬랩, 그것도 마지막엔 오버행이 가로막았는데도 기어올라붙었던 안타까운 청춘이었습니다.

무심하게 산을 다니며 이것 저것 겨를 없이 등산과 하산, 등반과 하강만 반복했습니다.

 

산에 피는 꽃들도, 계절을 달리하며 피고지는 꽃과 나무에 관심도 없고,

산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과 문화유적, 역사에도 무지한 멍청이었습니다.

 

어느날 홀로 지리산(대원사 - 화엄사)을 종주하고 저녁무렵 화엄사에 도착하였을 때

산안개 구름이 나지막히 깔린  산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예불소리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산기슭 폐사지에 놓인 석등과 석탑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봄(산은 겨울입니다.) 눈 속에서 경이롭게 피어나는 노란색꽃(복수초)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간난한 살림살이, 비단 높은 산 뿐만 아니라 작은 언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도...

순수한 산이란 것은 결국 관념 속의 세계였고, 산을 오르는 행위는 어떤 산 선배의 말마따나 혁명적 자유주의에 속하는 유형이었습니다.

자유를 추구하되 혁명적이어야 바위에 새로운 루트를 뚫고, 전위적인 등반을 할 수가 있다는 뜻이겠죠.

 

이제 나이가 들어 젊은 날의 호기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얻고서야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 때의 산들은 그래도 멋졌다고, 내가 사고하고 인식할 수 있는 한계였지만 그 또한 내 청춘의 한 때였습니다.

이미 배도 불쑥 나오고 발목도 성치않은 몸을 지닌 꼰대이지만 내 방식으로 다시 산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산책을 하듯 동네 뒷산이라도 사랑하고, 기회가 있다면 작고 평범한 바위에도 올라 등반의 즐거움도 누리고...

 

화려하지 않은 야생화처럼 그렇게 나이가 들고, 다시금 산을 사랑하게 되는...

그저 산이 날 멀리하지 않을 체력이라도 주어진다면 그것으로 족할 일입니다.

산이 주는 남모를 힘이 내게도 느껴집니다.
심신을 두루 챙기며 단련시키는..^^
산이란 늘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주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산을 잊어버리지만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으며,
언제 오던, 잊어버리던, 돌아온 탕자거나 말거나 넉넉한 제 품을 내어줍니다. ^^
블루님의 산사랑은 참 깊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들 다른데...그만큼 산이란 자연은 풍요롭고 넉넉한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가장 큰 바램은 산을 통해서 그 넉넉함을 느낄수 있도록 잘 걷는 것인데..아직도 요원합니다.
말없이 며칠을 산속을 거닐며 산과 대화할 날들이 언젠가 오겠지요.

블루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산과의 만남이 행복으로 이어지길 빌겠습니다.
물처럼님의 산사랑도 언겐하신 것으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산이 되신지도...^^
말없이 걷기에 좋은 코스는 지리산 대원사, 칠선계곡으로 잇는 코스였는데(평일엔 사람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칠선이 막혀있으니 칠선골 옆에 있는 국골도 좋을 듯 합니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기 전문이었습니다.
오로지 산 때문에...
그러다 정신차려 보니 30대 초반이 훌쩍 넘었더군요.
이젠 과거의 산을 추억삼아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ㅠㅠ
세월이 지나도 항상거기에 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