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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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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한국 공동체/강론방

2013. 2. 23.

 

222 베드로 사도좌 축일 강론

 

베드로라는 인물을 읽는 눈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겠지만 "허약함"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그를 읽어본다는 것은 아주 성서적인 각도에서, 그리고 베드로 이전까지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후세사의 흐름속에서 베드로라는 인물을 이해 해 보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의 허약함은 도무지 숨겨져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는 특별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지금 교황님처럼 굉장히 머리가 좋은 분이셨다든지, 선임 교황님처럼 아주 특별한, 눈에띄는 카리스마를 타고난 분이셨다든지, 비오신부님처럼 아주 특별한 성덕으로 마치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영성생활을 하신것처럼 그런 분도 아니셨고, 끈기가 있는 분이신가 하면 그것도 아니셨고, 용기가 출중했는가 하면 그렇게 보였지만 사실은 그런 것도 아니셨습니다...그런 것 우리가 확인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다음 단락에서 "반석"이라는 말을 들었던 베드로는, 즉시 똑같은 예수님에 의해서 "사탄" 되어버리고 맙니다. 또한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더 이상 멀리 없을 정도로 멀리, 아주멀리 가본적 도 있는 사람입니다. 세번을 배신하는 바로 밤의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어떤 각도에서 보던지 "준비된 교황이었다" 이렇게 이야기 없습니다. 바로 이런 분이 우리 교회의 첫번 째 교황, 첫번 째 수장이셨다는 사실이 대단히 의미심장 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베드로는 세번에 걸쳐서 사랑을 고백을 하게되는데요.. "네 사랑하느냐" 하고 세번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베드로가 그만 슬퍼져버렸다고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그것도 세번이나 그런 질문을 받으셨으니까,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베드로는 즉시 자기가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던, 어두컴컴한 밤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 얼마나 죄인인지, 네 얼마나 자격이 없는 놈인지 알아들어라" 하면서 베드로의 비참을, 베드로의 죄를 기억시켜 주고자 하신 질문이었을까요?

 주님께서 정말로 베드로에게 기억시켜 주고자 하신것은, 뼈에 새겨주고싶어 하신것은, 베드로의 비참함과 죄가 아니라, 베드로가 어떤 사랑으로 사랑받았고, 어떤 자격으로 용서받았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자기 뼈에까지 새겨져 버렸을때, 베드로는 자기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자기자신의 노력이나  수행이나 심지어는 회개를 통해서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받은 사랑때문에만, 사랑의 너무나 힘세고  믿을 없을만큼 조건없는 자비와 용서. 바로 그것만으로 베드로는 자리에 있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양떼를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는 베드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의 모든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특별히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우리 각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각자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자기 힘으로 준비해 놓은것, 어떤 "바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의 바탕, 그의 사도직의 바탕은 말하자면 비어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연입니다. 그러나 바로거기 하느님의 자비가 마치 태초의  혼돈의 시련위를  빙빙 돌면서 닭이 알을 품듯 품어주신 하느님의 영처럼  하느님의 자비가 그를 품어서 텅빈 심연은 그만 자비가 되어벼렸습니다.

"자비의 심연" 그것이 베드로의 바탕이고 그것이 사실은 우리 각자의 바탕입니다. 베드로 그는 자기의 바탕이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있다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는것만 말하거나 실천하는것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할때, 베드로는 아는것만, 그리고 실천하는것만 말한것이 아니라 , 앞으로 알게될것, 앞으로 살것에 대해서도 말한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영께서 베드로 안에서 몸소 대답해주신것이었습니다. 너는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은  사실 똑같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용서받은 만큼만, 사랑받은 만큼만 드릴 있게되어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