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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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의 시복과 시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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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르나르도 똘로메이/창설자 성인의 생애

2013. 2. 23.


 

 

시복 시성이 되기까지의 과정

 

 

[1462년]

비오 2세 교황이 몬떼 올리베또를 방문하였을 때 베르나르도의 유해 공경을 허가

 

[1544년]

카를로 5세가 시에나를 침공 시 스페인 군사들에 의해 시에나 시와 시에나에 위치한 연합회 소속 성베네딕도 수도원도 함께 약탈되었다.

올리베따노 수도승들이 성인의 유해를 보호하기 위해서 몬떼 올리베또로 옮겨 갔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해진 바가 없음.

 

[1632년 9월 20일]

도미니꼬 푸에로니 총아빠스가 시에나의 대주교에게 시복을 청원함과 동시에 시성 추진 결정

 

[1644년 11월 26일]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지금의 복자품에 해당하는 culto immemorabile를 인준.

유해가 있고 없고는 시복의 기본사항이 아니므로 기적이 한 가지만 있으면 가능했음. 그때 이미 여러 가지의 기적이 발생.

시복 교령: Constare causam praedictam esse in casu excepto indecretis Sac.Romanae et Universalis Inquisitionis

 

그 후 1765년의 네아뽈리와 토스카나 왕국의 분쟁 등으로 시성 조사가 무기한 연기되었고 나폴레옹 1세의 박해, 이태리 정부의 수도원 재산 몰수 등으로 시성을 향한 걸음은 길고도 고되고 힘들었다.

 

[1946년 9월 15-16일]

요셉 리골린의 치유 기적 사건 발생

 

당시 18세이던 요셉 리골린 소년은 이태리 북부 해안 도시인 제노바에 위치한 올리베따노 까몰리 수도원 부설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는데 그해 9월 9일부터 11일 사이에 골반쪽에 발생한 복막염과 폐의 농양에서 전이된 쇼크로 인해 극심한 고통과 고열로 어찌해볼수 없는 죽음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당시 선생으로 재직 중이던 마우로수사가 요셉 리골린을 위하여 베르나르도께 전구를 청하자고 학생들에게 제의를 하여 학생들이 요셉 리골린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9월 15일 밤과 16일 새벽사이에 요셉의 극심한 고통과 고열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지고 건강을 되찾는 기적이 발생하였다.

요셉 리골린은 그 후 몬떼 올리베또 수도회에 입회하여 쁠라치도란 수도명을 받고 1949년 8월 15일 서원을 하고 1957년 7월 2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현재 이태리 북부 브레사에 위치한 로뎅고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올해 서원 60주년을 맞는다.

교회는 이 사건을 오랫동안 신학적, 의학적, 과학적 관점에서 조사하였다.

 

[1993년]

총참사회 시성 추진 재개 결정

 

[1998년 10월 8일]

연합회 총회는 실베스트로 수도회 소속인 레기날드 그레고리오 신부를 10년 계약으로 시성청원관으로 임명

이후 교구조사위원회와 연합회 조사위원회에서 수많은 조사를 하였음

 

[2008년 7월 3일]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복자 베르나르도의 전구로 일어난 치유기적을 인준하는 교령 DECRETUM SUPER MIRACULO를 발표

 

[2009년 2월 21일]

추기경 회의에서 4월 26일 로마에서 시성식을 거행하기로 결정

 

[2009년 4월 26일]

교황 베네딕도 16세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베르나르도 똘로메이를 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