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강준만

아퀴 2012. 9. 10. 18:31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의 전투지 일대를 국립묘지로 지정하는 봉헌식에 참석한 링컨이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했다. 동부 출신의 유명한 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2시간에 걸쳐 화려하지만 지루한 연설을 하는 바람에 청중은 이미 4시간 동안이나 서 있었다. 그걸 미리 예상했던 것일까? 링컨은 10개의 문장으로 된 2문짜리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너무 짧아 사진기자들이 연설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찍지도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연설을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링컨도 의기소침하게 그걸 인정했다. <시카고 타임스>는 "외국의 지성인들에게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라고 소개할 사람의 어리석고 밋밋하고 싱거운 연설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미국인들의 뺨이 수치로 물들었다"고 썼다. 링컨에게 우호적인 신문들도 그의 연설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게티즈버그 연설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연설 중의 하나로 평가받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연설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87년 전 우리는 선조들의 자유의 신념으로 이 대륙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규모 내전을 치르며 이 나라가 그만큼의 신념을 갖고 헌신한 다른 나라가 얼마나 오래 견뎌낼 수 있는지 시험하는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터의 일부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이들의 마지막 휴식장소로 만들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곳을 신성화할 수 없습니다. 죽기를 무릅쓰고 여기서 싸웠던 용사들이 이미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하거나 뺄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을 신성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을 그리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도 고귀하게 이루려다 못다 한 일에 전념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살아 있는 우리들입니다. 여기서 우리 앞에 남겨진 위대한 돠제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 과제란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을 통해 그들이 마지막 힘을 다한 명분에 더 크게 헌신하고, 그들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의하고, 하나님의 가호 아래 이 나라가 새로운 자유를 잉태하게 하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링컨은 이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말했지만, 그가 최초로 한 말은 아니다. 그 이전에 두 번 이상 사용된 말이다. 유니테니언 목사이자 노예제도 폐지주의자인 시어도어 파커는 "정부는 점점 더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정부가 되고 있다."고 했고, 정치인 대니얼 웹스터는 "국민의 정부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해 만들어지고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표현의 원조가 누구이건, 무엇이 옳고 그르건 당시 이게 적확한 표현이었는가 하는 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훗날 메릴랜드 볼티모어 출신인 H. L. 멩켄은 이 연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 연설은 논리가 아니라 시이며, 판단이 아니라 미학이다. 연설의 내용을 생각해보라. 그것을 일상적인 언어로 바꿔보라. 내용은 무척 간단하다. 게티즈버그에서 전사한 북군 병사들은 자결이라는 대의를 위해, 즉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보면 북군 병사들은 자결의 반대를 위해 싸웠고, 자국민들의 자치권을 위해 싸운 것은 오히려 남군이었다. 남군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나라의 절반에 의해 예속당했기에 전장에 나왔다. 거의 20년 동안 그들은 정치적 의미에서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보다 나을 바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