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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8. [해파랑길 6] 3코스 대변항→임랑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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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트레킹/부산 경북 강원 동해안 해파랑길

2017. 7. 8.


해파랑길 3코스 트레킹

 

일시: 2017년 7 8일 토요일 

장소: 해파랑길 부산구간 3코스

 코스: 대변항 → 월전해안 → 봉대산봉수대 → 기장군청  일광해변 → 칠암항  임랑해변

 거리: 20.5km

 시간: 5시간 56







05:00   오늘 오전은 해파랑길 3코스 대변항에서 임랑해변까지 20.5km를 걸어가야 한다. 샤워를 하고 가방을 챙긴 후 모텔 룸을 떠나 쌈지공원 앞에 세워둔 차에 들른 후 해파랑길 3코스 걷기에 나섰다. 낮에는 활기를  띠던 식당들이 지금은 적막강산이다. 대변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는데, 교문과 위와 학교 담장이 현수막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교명을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초등학교 나왔어요? 대변초등학교 나왔는데요. 대변? 동네 이름 때문에 학교 이름도 대변이다.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해파랑길이 대변항을 벗어나 산 쪽으로 향했다. 마지막 주택을 지나자 널찍한 길이 이어지는데 누군가가 풀을 말끔하게 깎아놓아 걷기에 아주 좋았다. 그러나 그 좋은 길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덕에 올라서자 널찍한 길은 왼쪽으로 올라가고 월전마을로 내려가는 산길은 좁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걷는데 만은 애를 먹었다. 게다가 풀잎에 맺힌 이슬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몸에 떨어져 옷이 흠뻑 젖고 말았다. 그것 참,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는데 이슬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 모텔 룸에서 바라본 대변항 [05:56]


▲ 모텔 룸에서 바라본 대변항 [05:56]


▲ 대변항 쌈지공원 앞에 주차되어 있는 내 차 [06:19]


▲ 해가 떠오르고 있는 대변항 [06:19]


▲ 대변항 쌈지공원: 해파랑길 3코스 시작지점 [06:22]


▲ 적막에 빠져 있는 대변항 식당가 [06:23]


▲ 교명 변경을 추진 중인 대변초등학교 [06:25]


▲ 해파랑길이 산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 [06:32]


▲ 누군가가 풀을 말끔하게 깎아놓은 널찍한 해파랑길 [06:42]


▲ 산에 가면 자주 만나는 표지기 [06:51]


07:02   월전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월정항 선착장에서는 어부 몇 명이 갓 잡아온 생선을 분류하고 있었다. 정월 대보름이면 풍어제를 여는 두모포 풍어제터를 지나니 드라마 '드림'의 세트장이었던 죽성성당이 나온다. 마치 지중해 해안에 있는 성당을 연상시키는 죽성 성당은 기장군이 드라마 촬영을 위해 3억원을 들여 지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산 윤선도가 유배되어 와 자주 찾았다는 황학대를 지나 두호항에 도착했다. 죽성초등학교 앞을 지나 차도를 따라 걸어가는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어디서 잘못 든 거지?


▲ 월전마을에 서 있는 이정표 [07:02]


▲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월전항 [07:04]


▲ 어부들이 갓 잡아온 생선을 분류하고 있다 [07:06]


두모포


두모포()는 조선 시대 기장현 구포()의 하나로 기장현의 대표적인 포구이었으며, 해상으로 출입하는 인적·물적 교통의 요충지이었다. 두모포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경상 좌수영 소재 부산진 관할 하에 있었으며, 수군만호()[종4품]가 전체를 관리하며 수비하였다.


고려 초부터 대마도의 왜구가 자주 침략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두모포에 토성을 쌓았다. 그러나 토성이 구조적인 한계로 자주 무너져 중종 때 둘레 약 379m[1,250척], 높이 약 3m[10척] 규모의 석성으로 대대적으로 개축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輿)』에 1510년(중종 5) 두모포영에 석성을 쌓은 기록이 보인다. 이어 『경상남도 여지집성()』 「기장현 읍지」에 의하면 1629년(인조 7) 동래로 진을 옮겼다고 하였다. 그 후 두모포에는 성터만 남아 있었고, 다시 진이 설치되지 않았다. 기장현의 동쪽 5리 지점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죽성리 죽성초등학교 서북 방향이다.


▲ 정월 보름에 풍어제를 지내는 두모포 풍어제터 표지석 [07:12]


▲ 드라마 '드림'의 세트장으로 사용된 죽성성당 [07:15]


황학대


황학대(黃鶴臺)는 기장 오대(機張五臺) 중의 하나로, 기장과 인근 지역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시상을 떠올리던 곳으로 전한다. 1618년 고산 윤선도가 경원에서 이곳 죽성으로 이배되어 와 6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하면서 시, 서, 제문 등 29수를 남긴 곳으로 전해진다. 입구의 석벽에 이곳 출신 진사 방치주(方致周)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어 후손들이 제사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황학대는 죽성리 두호 마을의 해안 도로 쪽에 자리하고 있다. 죽성로[해안 도로]가 개설되고 해안 지역의 개발로 현재는 죽성 선착장 물양장 뒤편에 자리하게 되었다. 죽성로 개통과 물양장 축조로 바닷가 쪽 돌산은 분리되었으며, 작은 돌산 사이사이로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돌산 앞에는 기장 오대 중 하나인 황학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어 명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황학대 남쪽에 있는 마을 입구 쪽에는 동부산 활어 회 센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 해안가 쪽으로는 죽성항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봉대산(烽臺山)과 기장 죽성리 왜성이 있다.


▲ 기장 오대 중 하나인 황학대 [07:17]


▲ 황학대 옆에 있는 해녀상 [07:19]


두호항


두호항은 예부터 두모포(豆毛浦)로 불렸던 기장군 기장읍 해안가에 있던 포구로, 연해 방어를 위한 군사 요충지였다. 1972년 2월 23일 지방 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두호항의 남쪽에는 두호 마을이 있으며, 항만은 마을의 북쪽 만입부에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오래된 토성과 두모포 진성 터가 있어 주말에는 부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항만 입구 쪽 방파제에는 직경 2.5m, 높이 12.5m 돌출형 3각 구조의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해안 도로가 정비되고, 방파제에 독특한 형상의 등대가 설치되면서 새로운 어촌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 두호마을 두호항 [07:20]


▲ 원죽1리 마을회관 [07:28]


07:34   월전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4거리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니 해파랑길은 두호항에서 기장 죽성리왜성 왼쪽으로 가야 했는데 그만 오른쪽을 돌아온 것이었다. 제길을 찾기 위해 4거리에서 월전마을 쪽으로 10분 가까이 걸어가자 오른쪽으로 봉대산 숲길 안내판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해파랑길을 찾은 것이다. 지금까지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여러 번 길을 잘못 들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대로 표지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꼭 필요한 곳에는 표지가 없는 것일까?


봉대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비는 오지 않는데 습도가 높아 그런지 무척 덥다. 22분 정도 걸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 왼쪽에 안내판이 서 있어 가보았더니 기장 남산봉수대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왜 봉대산 봉수대가 아니고 남산봉수대지? 그런데 어디가 봉수대야? 알고 보니, 안내판 옆에 있는 둥그스름한 언덕 전체가 봉수대터고 그 안에 봉수대가 있었던 것 같다. 봉수대터에서 사방을 조망한 후 출발,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안부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 월전마을 가는 길이 갈라지는 4거리에 도착 [07:34]


▲ 다시 찾은 해파랑길: 봉대산 숲길 안내판 [07:43]


▲ 봉대산으로 올라가는 길 [07:51]


▲ 100m 고지 쪽으로 진행 [07:57]


기장 남산봉수대(機張南山烽燧臺)


1995년 12월 15일 부산광역시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봉대산의 가장 높은 곳에 돌로 둥글고 높게 단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뾰족한 산봉우리처럼 만들어져 멀리서 봐도 모습이 수려하다. 985년(성종 4)에 설치하여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면적은 28,185㎡이고, 중앙의 봉돈은 지름 2.4m, 둘레 9m의 돌로 쌓여 있다.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40㎝의 화로가 있었다. 경상도 지역의 봉수망 중 간봉 제8호인데, 왜적의 침입을 제일 먼저 알리는 곳으로, 남으로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장산의 남쪽 산봉우리에 있는 간비오 봉화대에, 북으로는 장안읍 임랑리 뒷산에 있는 임랑 봉화대 및 이길 봉수대로 연락하였다.


▲ 기장 남산봉수대 안내판 [08:05]


▲ 어디가 봉수대인지 잘 모르겠네 [08:07]


▲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곳 [08:10]


▲ 안부로 내려가는 길이 무척 미끄럽다 [08:19]


08:25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서 우신 네오빌 쪽으로 내려간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마감하고 우신 네오빌 아파트 옆을 지나 왼쪽 차도를 따라 걸어갔는데 이런, 또 길을 잘못 들었네. 갈림길에도 표지가 없으면 어떡하란 말인가. 어쨌든 기장군청 관내를 지나 죽성교를 건넌 후 차도 오른쪽으로 나 있는 보도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기장체육관과 기장경찰서를 지나 일광해수욕장 입구에 도착, 마침 아침식사 된다는 식당이 있어 들어가 내장국밥으로 조금 늦은 아침을 먹었다.

 

▲ 안부에 서 있는 이정표: 우신 네오빌 쪽으로 진행 [08:25]


▲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죽곡지 저수지 [08:28]


▲ 우신 네오빌 아파트 오른쪽으로 진행 [08:30]


▲ 신천마을 쪽으로 진행 [08:41]


▲ 기장군청 관내를 통과 [08:50]


▲ 죽성교 건너 차도 오른쪽을 따라 진행 [08:57]


▲ 도로 오른쪽 기장체육관 [09:06]


▲ 차도 오른쪽을 따라 계속 진행 [09:13]


▲ 잠시 후 일광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진다 [09:24]


09:48   맛있게 아침을 먹고 출발, 바로 옆에 있는 일광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오늘이 토요일이고 폭염인 데도 불구하고 해수욕장은 무척 한산했다. 아마 장마철 때문인 것 같다. 이천항을 지난 해파랑길이 잠시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다시 해변으로 내려왔다. 왼쪽 언덕에 누군가가 작은 쉼터 같은 것을 꾸며놓았는데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어? 화장실도 있네. 그런데 사용이 가능한지 모르겠네. 해변을 따라 해파랑길이 계속 이어졌다.


▲ 내장국밥을 아침으로 먹은 '황금돼지국밥' 식당 [09:48]


▲ 무척 한산한 일광해수욕장 [09:54]


▲ 일광해수욕장 표지석 [09:55]


오영수 문학비


난계(蘭溪) 오영수(吳永壽)는 1909년 2월 11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에서 태어났다. 1937년 도쿄 국민예술원을 졸업하였다. 1943년 부산 동래 기장으로 와, 일광면의 서기를 하면서 이곳에서 김동리(金東里)를 만나 문학적 영향을 받고 기장을 소설 「갯마을」의 배경으로 삼게 된다. 1945년 경남여자고등학교에 부임하였다. 1949년 「남이와 엿장수」가 『신천지』에 실리고, 1950년 『서울 신문』 신춘문예에 「머루」가 입선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951년 부산중학교로 전임하였다가, 1954년 상경하였다. 1977년 웅촌으로 낙향하여 1979년 5월 15일 여생을 마쳤다. 작품집으로 『머루』·『갯마을』·『명암』·『메아리』·『수련』·『황혼』·『잃어버린 도원』 등 다수가 있다. 1959년 아세아 자유 문학상 수상, 1977년 제22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화 훈장을 수상하였다.


오영수 문학비(吳永壽文學碑)는 기장문인협회[회장 이해웅]와 기장문화원[원장 강훈]이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현장성을 살려 2008년 11월 28일 조성하였다. 낮은 기단 위에 직육면체 화강석 비신(碑身)이 있고 글씨가 새겨져 있다. 위쪽에는 세 명이 손을 잡고 있는 듯한 사람 형상의 조각이 있다. 높이 150㎝, 너비 120㎝, 두께 232.5㎝이다. 오영수 문학비는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일광 해수욕장 부근 근린공원인 별님 공원에 세워져 있어 시민들이 찾아보기 쉽다. 기장문인협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 일광해수욕장에 있는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 [09:58]


▲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이천항 [10:05]


▲ 이천항에 서 있는 이정표: 신평소공원 쪽으로 진행 [10:05]


▲ 해파랑길이 잠시 언덕으로 올라갔다가 [10:06]


▲ 다시 해변으로 내려왔다 [10:10]


▲ 바닷가 왼쪽 언덕에 누구가가 꾸며놓은 쉼터 [10:11]


▲ 사용이 가능한지 알 수 없는 화장실도 보이고 [10:12]


10:23   이동항 입구에 도착했다. 이동항으로 내려가보니 시골항구 치고는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해파랑길은 해변을 떠나 차도 옆으로 올라갔다. 차도를 따라 나 있기는 하지만 안전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안전하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길은 다시 차도를 떠나 동백항 쪽으로 내려갔다. 바닷가에 널려 있는 저건 뭐지? 한천의 원료인 우뭇가사리였다. 그렇구나, 지금이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철이구나. 한적한 동백항에는 등대 두 개가 외롭게 서 있었다.


▲ 이동항 입구에 서 있는 이정표: 신평소공원 쪽으로 진행 [10:23]


▲ 등대가 보이는 이동항 풍경 [10:28]


▲ 작은 어선이 정박해 있는 이동항 [10:31]


▲ 차도 오른쪽을 따라 나 있는 해파랑길 [10:41]


▲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데크 길 [10:47]


▲ 온정마을 앞에 서 있는 이정표: 동백항 쪽으로 진행 [10:58]


▲ 동백항 가는 길 바다 풍경 [11:08]


▲ 지금은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철 [11:14]


동백항


동백항은 지방 어항으로 지정 관리되며, 시설 관리자는 기장군수이다. 어항 구역은 방파제 기점에서 전방 300m 반경 원내 수역이다. 동백항의 남북쪽 입구에 설치된 방파제 끝에는 백색과 홍색의 등대가 있다. 동백항 안쪽으로 동백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해안 쪽에는 마을 주민들의 미역·다시마 육상 종묘 배양장과 넙치 육상 양식장이 있다. 다시마·미역·말똥성게 등이 주 소득원이다. 어촌 마을인 동백 마을에서 인근 청광 마을을 잇는 농로가 자전거 코스로 각광을 맞으며, 한적한 어촌 풍경과 동해 바다, 수산 자원이 연계되어 이 지역을 찾는 시민이 늘어나고 있다.


▲ 등대 두 개가 외롭게 서 있는 동백항 [11:15]


11:17   길 오른쪽에 동백리 해역 바다숲 가꾸기 안내판이 서 있다. 그렇다. 바닷속에 있는 것을 무조건 건져내기만 할 게 아니라 숲을 가꾸듯이 바닷속도 가꾸어야 한다. 신평소공원을 거쳐 칠암항으로 내려갔다. 칠암항에는 아름다운 등대가 세 개나 서 있다. 야구도시인 부산을 상징하는 하얀색 야구 등대, 빨간색의 갈매기 등대, 이곳의 특산물인 붕장어를 상징하는 노란색의 붕장어 등대가 바로 그것인데, 이곳에 있는 항구에는 특정한 모양을 한 등대들이 꽤 많았다.


▲ 부산시 기장군 동백리 해역 바다숲 가꾸기 안내 조형물 [11:17]


▲ 신평소공원 앞 바다 풍경 [11:27]


▲ 신평소공원 안내도 [11:29]


▲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칠암등대 [11:35]


칠암항


칠암항은 지방 어항으로 지정 관리되며, 기장군수가 관리자이다. 동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으며, 항만의 북쪽과 남쪽에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다. 방파제 이외도 물양장, 선착장, 호안, 파제벽, 선양장 등의 어업 기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항만의 서쪽에 마을이 있고, 마을 뒤편에 산지가 나타난다. 마을은 해안을 따라 길게 발달해 있으며, 마을 내에 동부산농협 칠암지점이 있다. 항만을 따라 조성된 해안 도로를 따라 횟집이 늘어나, 부산 시민이 즐겨 찾는 회촌이 형성되었다. 특히 인근 어항에서 잡힌 칠암 붕장어가 유명하다.


▲ 칠암항에 서 있는 이정표 [11:38]


칠암항의 명물 등대 3총사: 왼쪽부터 붕장어 등대, 갈매기 등대, 그리고 야구 등대 [11:39]


▲ 갈매기가 바위 위에 앉아 쉬고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은 문동항 등대 [11:48]


▲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11:57]


▲ 임랑해변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임랑삼거리 [12:07]


12:08   임랑해변에 도착했다. 기장땅 끝머리의 임랑해변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에서 각 한 자씩 따서 임랑(옛 지명은 임을랑(林乙浪))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고운 모래밭이 1㎞ 이상 넓게 깔려 있고 푸른 노송과 탁 트인 바다는 수채화 같은 정경을 보여준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공휴일인데도 임랑해수욕장은 아직 한산한 편이었다. 해파랑길 3코스 끝지점에 도착하는 것으로 오늘 오전 일정은 끝이 났는데...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캔 사서 마시며 등산화를 벗어보니, 이런 양발에 각각 한 군데씩 물집이 잡혀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던 발인데 해파랑길에서 물집이 잡히다니, 그래서 아까부터 발바닥이 따끔거렸구나. 어떻게 하지? 그래, 오늘은 그만 걷고 다음을 기약하자. 우리나라에 있는 길이니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으니까. 차도 옆에 있는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시내버스를 이용해 차를 세워둔 대변항에 도착, 이렇게 해서 장마철 폭염 속에 이루어진 해파랑길 3코스 걷기는 무사히 끝이 났다.  


임랑해수욕장


예부터 월내해수욕장과 함께 임을랑포라 한다. 이곳 주민들의 아름다운 송림()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의 두자를 따서 임랑이라 하였다고 한다. 차성가에서도 ‘도화수() 뛰는 궐어(; 쏘가리) 임랑천에 천렵()하고, 동산() 위에 달이 떴으니 월호()에 선유()한다’라고 하여 이곳의 자연경관을 예찬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의 경관을 월호추월()의 승경()이라 하여 차성 팔경의 하나로 여긴다.


이곳의 해안에는 백설 같은 백사장이 넓게 깔려 있다. 백사장 주변에는 노송이 즐비하여 병풍처럼 푸른 숲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옛사람들도 이곳 임랑천의 맑은 물에서 고기잡이하면서 놀다가 밤이 되어 송림 위에 달이 떠오르면 사랑하는 님과 함께 조각배를 타고 달구경을 하면서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오늘에 와서는 이곳을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단장하였다. 해수욕장은 여름에 지역의 주민과 외지인들에게 즐거운 휴식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인근의 자연산 횟집들이 즐비하고 있어 언제든지 방문하여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맛의 멋을 즐길 수 있다.


인근에는 기장의 4대 고찰의 하나인 장안사와 묘관음사가 있어 자녀의 교육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부산에서 동해남부선(월내역 하차)을 이용하여 기차여행의 멋을 즐길 수 있고 승용차로도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휴식하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 임랑해수욕장 입구에 서 있는 이정표 [12:08]


▲ 임랑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 [12:10]


▲ 해파랑길 3코스 끝지점에 서 있는 안내판 [12:18]


▲ 임랑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본 해수욕장 풍경 [13:05]


▲ 임랑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뒤로 보이는 것은 물고기 등대 [13:05]


▲ 임랑포구 풍경 [13:06]


▲ 도로 옆 콩나물 해장국 집에서 점심을 먹고 [13:08]


▲ 대변항을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탄 곳 [13:38]


▲ 차를 세워둔 대변항 쌈지공원 앞에 도착 [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