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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 끝나지 않는 방랑~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경남 남해] 남해12경 중 제7경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와 노도, 노도 문학의 섬 (2019.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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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울산 경상

2021. 4. 11.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와 노도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 증인!

남해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무인이 이순신 장군이라면, 문인으로는 서포 김만중이 아닐까.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나룻배로 건너가면 닿을 수 있는 섬, 노도로 유배되어 온 문인 김만중은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 증인이다.

(출처: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자료)

남해 노도 (출처: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자료)

 

노도 문학의 섬 상징 조형물 (방문: 2019.3.30.)

 

지난 2년 전의 기록 이어짐...(방문: 2019.3.30.)

사적 제232호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에 이어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로 간다.

벽련항 연락처로 전화하니 오후 2:30배가 뜬다고 하니 다행이다.

오래 전부터 한 번 가 보고 싶었던 섬 노도이지만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자꾸만 미룬 터였다.

날이 그리 청명한 편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곳이니 고고~~~

아래로 배를 타게 될 벽련항이 바라보이고, 바다 건너 손에 잡힐 듯 노도가 보인다.
벽련항. 벽련(碧蓮)은 푸른 연꽃이라는 뜻. 마을이 연꽃모양이어서 연꽃마을이라고 불리다가 벽련마을로 바뀌어 불린단다.
벽련마을과 벽련항의 어선들. 벽련-푸른 연꽃-은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벽련항 노도호(12인승). 일기에 따라 배가 뜰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다행히 2:30 배가 뜬다고 한다.(전화로 미리 알아봄)

벽련항-노도 운행하는 배
배를 탄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 

 

노도항. 벽련항을 떠난지 10분도 안 되어 노도에 도착하게 된다. 

노도(櫓島)

 

삿갓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삿갓섬으로 불리었고,

배 젓는 노를 만드는 데 쓰이던 목재를 많이 생산해서 노도라 불리었다.

남해 상주면 벽련항에서 2km도 안 되는 듯,

배(노도호. 당시 하루 4번 운항. 지금은 하루 6회 운항인 걸로 안다.)로 10분 정도 거리.

주민들은 섬 북쪽의 선착장 주변 가까운 곳에 모여 살고 있다.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지은 서포 김만중(1637~1692)의 유배지이다.

김만중은 1689년(숙종 15년) 남해 노도로 유배 왔고,

1692년(숙종 18년) 4월 30일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김만중이 직접 팠다고 전해지는 우물, 시신을 잠시 묻었던 허묘, 초옥터가 남아 있고,

김만중문학관이 세워졌다.

김만중은 이곳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을 썼다.

서포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노도가 문학의 섬이라는 것을 알리는 조형물. 서포의 책, 김만중 조형물, 앵무새 부조를 만난다. 
선착장 앞 노도 문학의 섬 상징물 앞에서...
'서포만필'에서... 우리말로 씌어진 작품의 가치를 높이 인정한 김만중.

 

김만중(1637-1692)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 호는 서포.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 김집(金集)의 손자.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 당시 김상용을 따라 강화도에서 순절하여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년) 문과에 장원 급제.

1687년(숙종 13년) 소의 장씨(장희빈) 일가를 둘러싼 사건에 연루되어 선천에 유배.

선천 유배 시절에 '구운몽'을 썼다.

'구운몽'은 어머니 윤씨 부인의 시름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하며,

한국 고소설의 대표 작품이다.

1687년 왕자(후일 경종)의 탄생 후 1688년 11월에 유배에서 풀려남.

장희빈의 소생을 세자로 삼으려 하는 것에 반대한 서인은

기사사화를 당하고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당한다.

3개월 뒤인 1689년 2월 남해 노도에 유배되었고, 이곳에서 사망(1692년).

서포가 이곳으로 유배오던 해에는 어머니상을 당하여

대성통곡을 하다 마당으로 몸을 던져 혼절했다고 하며

서포의 효심이 잘 나타난 ‘사친시(思親詩)’는 이곳 남해 유배지에서 지었다고 한다.

또 이곳 노도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을 썼다.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삼은 사건에 대하여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썼다고 한다. 

'서포만필'에서 김만중은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우리나라의 참된 글이라고 표현하며

한시보다 우리말로 씌어진 작품의 가치를 높이 인정했다.

 

한글로 쓰여진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수필집이자 평론집인 ‘서포만필’을 쓴 서포 김만중은

한글을 향한 깊은 애정을 나타낸 학자이며,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분이다.

아래 사친시는 남해의 유배지에서 어머니 생신일에 지은 시라고 한다.

 

사친시(思親詩) - 서포 김만중

 

금조욕사사친어(今朝欲寫思親語) -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는 말 쓰려 하니

자미성시누기자(字未成時淚己滋) - 글자도 쓰기 전에 눈물 이미 넘쳐나네

기도유호환복척(幾度濡毫還復擲) - 몇 번이고 붓을 적셨다가 다시 던져 버렸으니

집중응결해남시(集中應缺海南詩) - 문집 가운데 해남시는 응당 빠지게 되네.

 

섬 산자락의 집들, 좁은 농토...
금세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비를 만난다.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비. 붉은 동백꽃이 반기네...
옆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노도지구 안내와 김만중 유허지 안내도 보이고...
한려해상국립공원 노도지구 안내도
마을쉼터... 방문 당시에 17분이 거주하신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더 옆으로 노도대합실(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식당도 없는 작은 섬...
한적함이 묻어나는 노도항
골목길을 따라 서포의 발자취를 찾아간다.
완두콩꽃인가~~~
봄빛이 스며드는 노도... 산허리에 옹기종기 놓인 집들이 정겨워...
작은 밭에서는 마늘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자라고 있네... 산벚꽃도 봄을 알리고...
무더위쉼터
노도의 빈집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과 벽에 덧댄 함석판이 70년대를 연상케 하네...
집들 너머 왼쪽 끝으로 보이는 곳이 작가창작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남해(두모마을쪽)를 바라보며 걷는다.
산도화가 나그네를 반기네...
허묘(오른쪽)와 초옥(왼쪽) 갈림길.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때만 해도 이정표가 비스듬히 쓰러져 있어 안쓰러운 모습.
먼저 허묘쪽으로... 허묘로 가는 길은 계속 이어지는 계단길...
다시 남해섬(두모마을쪽)을 바라보며...
한참 헉헉거리며 계단을 올라 허묘에... (개성으로 운구되기 전 잠시 묻혔던 곳. 서포의 ‘초장지')
김만중 무덤자리. 서포 선생이 돌아가신 후 숙종 18년(1692년) 4월부터 9월까지 묻혔던 곳.
허묘터...... 허허로운 마음~
김만중 허묘터(초장지)
허묘까지 이런 계단길을 올라갔었지...
허묘에서 내려와 초옥터와 우물지 가는 길을 다시 만나고...
다시 남해섬을 바라보며...
임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바위군. 이 바위에서 김만중이 사색하고 낚시를 했다고 전한다.
전에 있던 초옥터에 김만중문학관 신축 중~ (2019.3.30. 당시) 
문학관 아래는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 이 숲길 아래로 내려가면 바닷가. 김만중 낚시터로 불리는 곳. 공사 중이어서 못 내려감.

 

서포 김만중 문학관

김만중의 일대기와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전시실, 영상관,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방문 당시에 옛 초옥 자리에 문학관을 짓고 있었다.

이 자리는 유배지 느낌이 나는 옛 모습으로 복원하고

문학관은 마을 초입 등 다른 곳에 지었으면 어땠을까~~~

생뚱맞게 문학관이 들어선 느낌이 들어서 사실 좀 실망했다.

유배지 느낌이 전혀 안 나서......

현재 문학관은 완공되었지만 코로나19로 문을 열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방문 당시 건축 중이던 김만중 문학관. 이 자리에 있던 옛 초옥을 생각하고 갔었는데, 아쉬움...
현재 완공된 서포문학관 (출처: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김만중이 직접 팠다고 전하는 우물터. 서포는 이 샘물을 마시면서 솔잎 피죽과 해초를 채취해 먹으며 근근이 연명한 것으로 전해져서 울컥해진다. 
김만중문학관과 동백나무 군락
완성된 문학관을 못 보고, 초옥도 못 보고 왔으니 언젠가는 한 번 더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초옥 오르는 길에 세워져 있던 안내글

서포 김만중이 남해로 유배올 때의 심경을 대신 표현한 시가 있어 소개해 본다.

 

남해 가는 길 (유배시첩 중~) / 고두현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宣川)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 쉬는 것들 모아

화전(花田)을 만들고, 밤이면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九雲夢)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작품)

 

문학관 위 사진 앞쪽이 서포초옥터. 옛 초옥이 보고 싶었는데, 새로 복원한 초옥은 어째 너무 깎은 듯이 반듯하고 초옥 느낌이 덜 나네...
야외전시장(구운몽원, 사씨남정기원, 그리움의 언덕 정자) 오르는 길...

야외전시장

소설의 주요 장면을 모티브로 동상을 세워 이야기를 엮은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이 있다. 

그리움의 언덕 전망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이 아련하다.

구운몽원의 양소유 상과 정자
구운몽원의 팔선녀상 중 하나
구운몽원의 팔선녀상 중 하나
구운몽원의 정자와 생태연못. 조성 중이어서 일하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구운몽원, 생태연못, 위로 사씨남정기원
위로는 사씨남정기원, 더 위로 그리움의 언덕 정자쪽으로 잠시 오른다. 야외전시장 조성하는 중...
가을날의 사씨남정기원(출처: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서포의 흔적을 따라 왔다가 돌아내려가는 길~~~  왠지 아쉬움을 안고서...
다시 선착장으로... 방문 당시에 한창 정비 중이었다. 아마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우리가 타고 왔던 배 노도호. 이제 다시 타고 나가리라...
떠나갈 배를 기다리며 노도항 방파제에서 잠시 마을을 바라봄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에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남는 건 사진이라며~~~
노도를 기억한다.
노도항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벽련항. 배에서 내리신 분들. 관광객은 우리 포함 5명뿐... 다른 분들은 야외전시장 조성하는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
마지막으로 벽련항에서 한번 더 노도를 바라보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게 된다. 노도여, 안녕! 다시 찾을 날 있으리라... 

참 오래 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노도~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 내내 미루다가

2년 전에야 가게 되었었네.

벽련항 연락처로 전화하여 배가 뜨는 걸 확인하고 갔었는데,

날씨는 그리 청명하지 않았고,

처음 생각하고 갔던 옛 초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포문학관이 들어서고 있었지...

옛 초옥이 있던 자리, 유배지 느낌이 나던 때를 생각하고 갔었는데,

그 흔적이 사라져서 아쉬움...

서포문학관은 다른 곳을 물색해서 지었으면 어땠을까~~~

노도를 방문하는 이들이 먼저 서포문학관에 들러

서포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고 유배 당시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한 후

유배지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도록......

유배지에 생뚱맞게 문학관이 들어선 것 같아서 사실 좀 실망했다.

유배지 느낌이 전혀 안 나서......

내가 너무 늦게 간 거구나!

세월이 흐르면 새 초옥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갈까~~~

어쨌든 문학관도 들어섰고,

야외전시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테니

한 번은 더 가 보고 싶어진다.

기다려라~ 노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