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노란잠수함 2013. 9. 20. 02:08

 

1910년 한일병탄조약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조선의 모든 국가시설이 일제의 지배에 놓이게 됐다.

군인과 승병이 지키던 군사도시 북한산성의 대부분 시설들(병영, 승병사찰, 군기고 등)은 그 이전에 이미 파괴됐지만

행궁은 그 상징성 때문인지 건물은 존재하고 있었다.

주인이 사라지고 기능을 상실한 행궁에 대한 기록이 1912년 순종실록에 나온다.

 

‘북한 산성(北漢山城) 사고(史庫) 건물을 10년간 영국(英國) 교회(敎會)에 차여(借與)하는 것을

허가(許可)하였다.  총독부(總督府)에서 전청(轉請)하였기 때문이다’

<순종실록 순부 3권, 5년(1912 임자 / 일 명치(明治) 45년) 1월 8일(양력)>

 

북한산성 행궁을 영국교회에 빌려주기로 했다는 내용인데,

자세한 이유가 당시 신한일보(7월 22일자)에 기사화되어 있다.

 

‘경치가 아름다운 북한산을 찾는 외국인을 위해 영국성공회가 외사국의 허가를 얻어

행궁을 수리하여 외국인의 피서지로 삼기로 하였다’ 라는 요지의 기사다.

 

유사시 몽진한 임금이 거처하며 항전의 중심이었어야 할 행궁이 나라를 잃음으로서

그 기능을 상실하고 외국인들의 피서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