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오라는 잠은 안 오고 미치도록 머리 어지러운 그 무엇이 한쪽으로 흘러갔지 아득히 먼 곳에서 멀고 먼 데서 온 이것 잘라내지 못하는 밤 숨은 턱 막혀버렸지 여자는 말했지 저것은 말이죠 푸른 호스를 하나 연결해 주세요 아주 좁은 통로로 무엇이 되어 다가오죠 가까이 오는 순간 잘 들여다봐, 반짝이는 빛으로 둘러싸인 그 무엇은 푸른 애인이었지 몸이 닫는 순간 알약보다 작아져서 곧 사라지는 편안한 애인이었다.
14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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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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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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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오는 슬픔 반쯤 쓰러진 나무에 기대어 틈새에 끼어 있는 슬픔을 멀리 보내는 버릇이 있지 기다리지 않고 다가서는 새날들과 마주하며 무모한 도전이 푸른 잎새처럼 겹겹 모여져도 배경화면으로 뜬 파업은 현실이 되는가, 추위에 둘러싸인 일상은 온몸을 통과하지 그 저녁 묻어버린 울음이 생살에 박히는 아우성이었지 아직은 살고 싶다는 숨소리였지 나무 밑에 단단한 돌로 성을 쌓고 등을 기댄 당신 한 계절 반쯤 피는 나무를 따라 반쯤만 흔들리고 꺾인 목은 핏빛으로 떨쳐버리는 생존에 방법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
06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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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20년 12월
27
27 2020년 12월
27
밥 대 식구가 한집에 살 때는 가마솥을 박박 긁어야 하는 주걱이 필요했죠 주걱이 사라지자 남아도는 쌀들 탈출한 가난으로 보기엔 좀 당황스럽지요 뜸이 들지 않아 모래알같이 씹히는 밥 낙동강 강변에 내버릴까요? 서식지를 잃은 철새가 훨훨 안식처를 찾을 때 허기를 내려놓으려면 칠백 리가 남았다는 뜻이겠죠 배불리 먹지 못해 크다가 멈춘 갈대는 방해자가 바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만 있다면 쓰러지는 일에는 골몰하지 않겠죠 대물림하는 가난 원망하는 목소리로 목이 메지요 다정한 호칭의 밥 밥은 먹었니? 아버지 지게로 지고 가서 너를 빌미로 대가족이 둘러 않아 우아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지친 눈 번쩍 뜨겠어.
25 2020년 12월
25
소리가 모여드는 숲 간밤에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협동이 잘 되는 개들은 한 마리가 짖어대면 온 동네가 시끄럽다 숲으로 도망친 검은 물체는 출구를 찾을 수 없었고 산비둘기 뻐꾸기 딱새 소리 뒤에 숨을 수밖에 숲을 지키는 고로쇠나무 눈은 멀었고 다가오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갈대의 소리 입시에 낙방한 학생의 기타 소리 정년을 코앞에 둔 가장의 색소폰 소리 취직이 안 되는 실직자의 한숨과 독백도 들어 있었는데 절박한 소리를 듣다 보며 눈으로 보는 일도 가능한 것일까? 펑 뚫린 눈에서 하얀 진액이 눈물처럼 흐른다 언젠가 눈을 찾게 되면 미친 듯이 밀려 나갈 바람 소리 숲은 텅 빈체로 요란한 소리만 울창하다.
18 2020년 12월
18
16 2020년 12월
16
입만 살아서 입만 살아서 물받이 통에 올챙이 몇 마리 동동 떠다닌다. 썩은 물 속으로 기름기 다 빠진 입 어제보다 길어진 꼬리로 수면 위에 떠다니는 것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이지 우물 안의 쓸쓸함 따위 버리려는 것이지 나뭇잎 한 장 던져 준다. 마음속 격랑을 따라 멀리 떠나라는 것이지 가까운 곳도 볼 수 없고 귀는 먹었지만 입은 살아서 동동 떠다니지 필사적인 입놀림은 미국도 갔다 오고 태평양 바다를 헤엄쳐 다니지 그에 입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있지 잠시 다물지 못하고 나불거리는 입 말들이 살아서 흘러 내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