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록음악

2012. 6. 4. 15:00

들고양이들]은 1971년에 미8군을 통해 데뷔하여 월남 등 동남아 순회공연에 나섰고, 1974년 홍콩에 정착하여 R-TV 방송과 라이프 프로덕션 전속으로 활동하며 현지에서 5장의 독집을 내는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활동을 벌였다. 1979년 2월에 내한하여 오리엔트 프로덕션과 계약을 마치고 ‘마음 약해서’, ‘오동동 타령’, ‘강변에서’ 등의 레퍼토리로 귀국 1집을 발표해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에 이어 30만장 이상의 판매 기록을 수립했다. 같은 해 발표된 두 번째 앨범 <들고양이들 Vol.2> 역시 ‘정든 부두’, ‘어화둥둥 내 사랑’으로 인기의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1980년 문화체육관에서 귀국 첫 단독공연을 가지며 확실한 인기의 세몰이에 나섰고, 같은 해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했던 ‘탈’이 수록된 세 번째 앨범 <들고양이들 Vol.3>을 발표한 후 세컨드 보컬을 맡았던 김명희가 결혼으로 탈퇴하고, 키보드에 김정택이 가입한다. 1981년 계약이 만료된 프론트우먼 임종임이 솔로 독립을 위해 탈퇴한 후 들고양이들은  밴드 존속 최고의 위기를 맞게 된다. 결국 이들은 7인조로 밴드를 재정비하고 4집 <'81 The Wild Cats>를 발표하는데, ‘생각이 나면’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또 한 번의 분열을 겪게 된다.

 

4집 후 멤버들과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 결국 팀의 리더였던 심재영이 들고양이들을 떠나, 1982년 <심재영과 젊은 연인들>이라는 그룹을 독자적으로 결성하고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히트곡을 발표한다. 들고양이들의 남은 멤버들도 1982년 <첫사랑 꽃순이>를 발표하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초창기 멤버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오리지널 멤버였던 기타의 임현준이 리더가 되어 여섯 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된 <들고양이들 새 노래 모음>을 1984년에 발표하고 결국 해체를 맞이한다.

 

한편 결혼으로 들고양이들을 떠났던 보컬 김명희는 1985년에 ‘애모’를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표했지만 주목을 끌지 못하고 사라졌고, 솔로 활동을 하기 위해 팀을 떠났던 임종임도 1981년 <여객선>, <가야해> 등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지만 들고양이들 시절의 인기만큼은 얻지 못했다.


디스코그래피 :
1979년
1979년 <들고양이들 Vol.2>
1980년 <들고양이들 Vol.3>
1981년 <'81 The Wild Cats>
1981년 <'81 The Wild Cats 메들리 40>
1982년 <첫사랑 꽃순이>
1984년 <들고양이들 새 노래 모음>

 


<앨범리뷰>

 

 

앨범 이름 : The Wild Cats
발표 년도 : 1979년
레이블 : 신세계 레코드

당시 국내에 그렇게 많지 않았던 무그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절묘한 인트로에 이어지는 펑키한 리듬 섹션, 그리고 보코더를 사용한 진보적인 플레이 등을 기억하는 사람을 그렇게 많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짜라자짜짜’라는 인상적인 추임새 덕분에 타이틀 트랙 ‘마음 약해서’는 순식간에 남녀노소를 불문한 국민가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소위 ‘휴게소표 카세트’들의 코러스 파트를 모두 바꾸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 들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센스 있는 밴드 사운드를 추구하는 [들고양이들]이었지만, 출발 당시 밴드에 대한 포커스는 물론 프론트우먼 임종임에 맞춰져 있었다. 밴드의 이름을 떠오르게 만든 과감한 쇼트커트 헤어스타일과 감각적인 무대 매너는 특유의 트로트풍 창법과 함께 밴드의 인기 견인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마음 약해서’ 이외에도 ‘오동동 타령’, ‘십오야’, 외국 디스코밴드 [보니 엠(Boney M)]의 ‘Rivers of Babylon’을 개사한 ‘강변에서’, [오리엔트 기획]과 송창식, 들고양이들의 커넥션 관계를 알려주는 ‘나비소녀’를 연이어 히트시켰고, 이러한 히트의 행진은 같은 해 발매된 두 번째 앨범의 ‘정든 부두’, ‘어화둥둥 내 사랑’으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