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전북 문화재자료 제111호. 고홍건 신도비 & 효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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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6.

고홍건 신도비(高弘建 神道碑)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1984.04.01. 지정)

 



*소재지: 전북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811-1 (석불산길 156-6)

 

 


*신도비란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근처에 세우는 비를 말한다. 고홍건 신도비는 조선 현종 9년(1668)에 고홍건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고홍건(高弘建)은 조선시대 오위도총부도총관,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武臣).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입부(立夫). 영원군(瀛原君). 아버지는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이다.


1580년(선조 13)에 태어났으며 1603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13년(광해군 5) 한양의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으며, 조상의 큰 공으로 무관직 6품에 승진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간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어 영원군(瀛原君)에 책봉되었다. 이어 평안도 희천군수와 여산영장(礪山營將)을 거쳐 5위의 장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가(扈駕)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서쪽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 서흥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51년(효종 2)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비(碑)는 아래에 거북 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비 몸을 세운 뒤 머릿돌을 얹었다. 거북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살짝 쳐들게 하여 힘찬 기상을 표현하였고, 구름과 용을 새긴 머릿돌은 꼭대기에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 장식을 조각했다.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용두귀부龍頭龜趺: 용을 새긴 머리와 거북 모양의 받침돌.

 

 


- 부안군청 홈페이지 -

 

 

지정의 문화재 제111호. 고홍건 신도비.

 

 

고홍건 신도비에 대한 안내문.

 

 

제원군 고공사렴 신도비.

 

영성군(고희) 부친.

 

 

영성군 고공희 신도비.

 

 

영해군 고공두황 신도비.

 

영성군(고희) 손자.

 

 

제주고씨 세장산.

 

 

제주고씨의 신도비.

 

*좌로부터 4代의 제원군(고사렴), 영성군(고희), 영원군(고홍건), 영해군(고두황) 신도비.

 

 

효충사 입구에 서있는 보호수(반송)

 

 

보호수 안내석.

 

 

효충사 입구 홍살문.

 

 

효충사 위치도.

 

 

고희 영정 외 문중유물 안내문.

 

전북 부안군 하서면에 위치한 석불산 영상랜드 옆에는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의주까지 호위한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 1560~1615) 장군의 사당인 효충사(效忠祠, 1625년 건립)와 고희 외 문중유물(보물 제739호)을 보관하고 있는 유물관이 있다.

 

 

고희 외 문중유물 안내판.

 

 

보물 제739호. 고희 외 문중유물 표비석.

 

 

유물관 전경.

 

 

         유물관 안내문.

 

고희의 할아버지부터 12대 손까지 400년 동안의 유물들을 고희의 후손들이 이곳에 보관해 오고 있는데, 보관하고 있는 유물로는 고희의 영정 3폭, 공신책봉록, 교지 등 215점이다.

 

고희초상 외 문중유물은 1982년 11월 9일 보물 제731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공신책봉록은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쓴 것이라고 한다.

 


고희 초상 외 문중유물은 수량이 많고, 내용이 체계적으로 보존되어 있어, 문헌자료 연구와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고희(高曦)는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서 선조를 평양까지 호종한 功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오르고 십팔공신회맹록(十八功臣會盟錄)에 들었습니다.

 

곽산군수(郭山郡守), 풍천부사(豊川府使) 등을 지내고 호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지정된 유물은 총 20종 215점인데, 내용은 고희 영정 3폭, 선조대왕유교서(宣祖大王遺敎書) 1매, 고희 유품 29점, 교지(敎旨) 53매, 치제문(致祭文) 1매, 공신녹권 1책, 회맹록(會盟錄) 3책, 방목(榜目) 1책, 충훈부 완문(忠勳府完文) 1매, 하첩(下帖) 2매, 호적단자 42매 외에 분재(分財)에 관한 다수의 고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유물관 현판.

 

 

효충사 표충문.

 

 

영성군 고희장군 사적문.

 

 

제주고광전위토헌납기념비.

 

 

효충사 연혁과 내력 안내문.

 

 

四封君에 대한 추모비.

 

 

효충사 표충문.

 

 

효충사.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의주까지 호위한 영성군 고희 장군의 사당.

 

효충사(效忠祠)에는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 1560~1615)장군의 위패를 봉안했는데, 1625년 건립 후 1820년에 사당을 중수했다.


근대에 와서 영성군 고희(高曦) 以外 영성군의 아버지인 제원군(濟原君: 고사렴), 아들 영원군(瀛原君) 고홍건, 손자 영해군(瀛海君: 고두황) 등 4대의 위패도 봉안했다.

 

 

효충사 현판.

 

 

영성군영당.

 

효충사 옆에는 영성군영당(瀛城君影堂)이 자리잡고 있다.

영성군 고희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지방유림이 매년 3월 22일 향사(享祀)해 왔다고 한다.

 

 

영성군영당 현판.

 

 

 

 

*다녀온 날: 2021년 5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