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 : VIEW/아티스트를 만나다

    아리스테_artiste 2012. 9. 6. 09:00

    백남준 탄생 80주년 :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

     인간과 기계 그리고 자연과의 소통을 꿈꾼 천재

     

     

     

     백남준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예술가이다. 흔히 우리나라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시작은 음악과 미술이었다. 외국에서 건축과 철학까지 공부하던 그는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게 된다. <4 33>동안 존 케이지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가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연주가 아니라 4 33초 동안의 소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연성 음악이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전위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징기스칸의 복권> <마르코 폴로>에서는 동서양의 위인들이 비디오를 통해서 로봇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기계가 고정적이고 견고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작품들은 인간과 자연을 닮아 어디론가 하염없이 달려가고 싶은 자유로운 유목민의 느낌을 준다. 징기스칸은 등 뒤에 여러 음악 도구들을 싣고 자전거를 타고 있고, 마르코 폴로의 자동차는 기름이 아니라 꽃과 풀을 이용해서 움직인다. 인간과 기계, 자연의 조화이자 진정한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카트린 이캄과 루이 플레리의 <원형의 파편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를 떠오르게 한다. 한 무용수의 인체 비례를 16개의 비디오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인체 비례의 정확함은 인간이 만든 기계를 닮아 있다.

      <촛불 하나>는 촛불을 기계를 통해서 벽에 영사하면 RGV 컬러의 세 형체가 만들어진다. 원본과는 다른 빛깔의 셋 중 어느 것이 원본인지는 알 수 없다.

     

     

     머리만 큰 로봇은 <데카르트>이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던 데카르트의 신체는 오직 머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보기만해도 정신 없는 갖은 회로를 통해서 그의 생각으로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로봇 K-456>은 인간을 가장 많이 닮아 있다. 실제 백남준은 퍼포먼스마다 이 로봇을 자주 데리고 다녔다. 스피커를 통해서 연설문을 들을 수도 있고, 움직이면 로봇 뒤로 콩이 떨어지게 설계해서 인간의 배설까지 흉내 내고 있다.한 퍼포먼스에서는 자동차사고로 이 로봇이 죽기도 했다. 로봇이 죽는다는 것은 관념의 전복이다. 기계는 인간과는 달리 죽지 않고 고장 나면 고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데 교통사고로 죽었다. 인간은 점점 기계를 닮아가고 있다. 더 완벽하고 정확하고 무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가 아무리 정교해지고 인공지능을 탑재해도 인간이 될 수 없듯이 인간은 절대로 로봇이 될 수 없다. 기계와 인간은 모두 자연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양의 위인인 <선덕여왕> <율곡>도 로봇으로 표현했다. <히포크라테스 로봇>은 한 손에는 목발을 짚고 있고, 심장에는 부처가 있다. 히포크라테스이지만 심장에는 부처가 있다는 것, 그리고 환자를 고치는 역할인 그가 칼이나 수술 도구가 아닌 목발을 짚고 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실제 백남준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다. 벽의 낙서 하나까지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여러 도구와 그림, 장식품, 메모들, 예사롭지 않은 모습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작품 뿐만이 아니라 그 작품이 태어난 배경까지 사랑 받을 수 있는 백남준은 행복한 예술가이다. 그가 어딘가에서 아직도 작품을 구상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파일 룸>은 미국 국립검열반대연합이 주관하고 관리하는 작품으로 검열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서 자신의 검열 정보도 검색해 볼 수 있다.

      댄 그래험의 <과거 미래 균열된 의식>은 비디오 녹화 퍼포먼스로서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상대방의 행동을 예언하고,다른 사람은 상대방의 과거 행동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미래를 예언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둘의 말은 어느새 닮아가고 어느 것이 과거이고 어느 것이 미래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TV 정원>은 정원이라는 크고 컴컴한 공간을 나무와 텔레비전이 장식하고 있다. 나무와 텔레비전의 조화가 기괴한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생각보다 잘 어우러졌다. 기계와 자연은 다르다는 인식이 강한 터라 숲 속에서도 휴대폰을 끄지 않았던 광고 속 한 스님이 생각났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시간에 따른 달의 변화를 여러 대의 텔레비전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사실 달의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의 진공관을 조작해서 화면에 달과 같은 모양을 만든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은 백남준이 1992년도에 쓴 글의 제목이다. 과거를 되뇌면서 느끼게 되는 노스탤지어는 타인에게 받는 것보다 때로는 더 강한 피드백을 자신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백남준은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이었다. 음악과 미술, 철학과 건축을 결합해서 이를 예술적 퍼포먼스로 승화시켰다. 미래에는 미디어가 중요한 매체가 될 것이라는 앞선 시각으로 당시에는 기계로만 치부했던 비디오를 자신의 예술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가 작품 속에서 표현했던 인간과 기계, 자연의 소통과 조화는 아직 미해결과제로 남아있지만 이 전시회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피드백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시간 참 빨리 갑니다...벌써 한주가 다 갔네요..
    글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