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STAGE/관객의 시선

    아리스테_artiste 2012. 10. 23. 16:23

    [영화음악∞음악영화]

    영화 밖으로 뛰어 나온 음악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책이라면 단 5분을 채 가만히 보지 못하는 사람도 게임은 아마 5시간도 짧게 느껴질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음악이다. 게임의 화면은 단순한 쇼트의 연결일 뿐이지만 이 가상세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반복되는 리듬의 음악이다. 그래서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소리 없이 게임을 하도록 하면 대게 채 1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게임 못지않게 영화에서도 음악은 중요하다.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기능적인 면은 차치하고 영화를 떠올리면 영상과 함께 흐르는 음악이 떠오르고, 문득 거리를 걷다가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음악이 단순히 영화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서 만든 음악이지만 그 음악의 관점에서는 영화를 소재로 한 음악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 명의 영화감독과 세 명의 음악감독이 만나서 그들의 연주와 상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바로 <영화음악∞음악영화>이다.

     

    <말로는 힘들어> 영화 이광국 + 음악 연리목

     

     

     

     뭔가 목을 간질이는 것 같은데 긁지 않아도 시원하다면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소녀는 소년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폐차를 겁도 없이 끌고 와서 요상한 밀짚 모자를 쓰고 자신의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소녀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소년은 거절한다.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냐며 되묻는다. 사랑은 평범한 사람을 초인으로 만든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슈퍼맨이 아니라 자신이 될 수 있는 최대치의 모습이다. 그래서 소녀는 누군가 버리고 간 기타를 주워 든다. 자신이 나뭇잎이 된 것 같다고 말하던 소녀가 열심히 연습해서 소년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준다면 이야기는 너무 진부할 것이다. 그래서 소녀는 꿈을 꾼다.

     

     꿈은 상상의 세계다. 모든 게 가능한 깨끗한 세계, 상상의 세계에 가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상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될지 가정을 해서 그에 따른 여러 계획을 세우기는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깨끗한 상상을 해본 지는 너무 오래되었다. 그 상상의 세계에서 소년과 소녀는 정반대의 관계에 처한다. 소년을 한 귀에 홀린 음악이 바로 소녀의 연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막연하다며 핀잔을 준다. 꿈에서 깨어난 소녀를 멀리서 지켜보던 소년은 기회를 준다며 한번 사귀어 보자고 한다.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물으니 말로는 힘들다고 한다. 내가 나뭇잎이 된 것 같고, 무언가 목을 간질이는 것 같은데 긁지 않아도 시원한 그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고양이를 돌려줘> 영화 정재은 + 음악 최태현

     

     

     

     신혼부부인 정우와 경미는 부모님의 반대로 아끼던 고양이 쿠마를 대학동창인 혜선에게 입양을 보낸다. 하지만 아내는 고양이 생각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견디다 못해 혜선에게 다시 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영화 <데미지>에서 모든 조건이 완벽한 남자를 파멸로 이끈 여자의 뒷모습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그 여자는 남자의 오브제 쁘띠 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결코 채울 수 없는 본질적인 욕망을 지니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탐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싶었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 고양이가 바로 경미와 혜선의 오브제 쁘띠 아다.

     

     고양이를 잘 키우던 정우와 경미는 아이를 갖기 위해서 혜선에게 입양 보내지만 결핍을 느낀 즉시 다시 강렬히 욕망한다. 혜선은 고양이 없이도 잘 살았었지만 쿠마를 입양한 후로는 애원하는 친구를 모른 척 할 만큼 또 강렬하게 욕망한다. 전작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고양이를 통한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고양이를 돌려줘>에서는 관계가 빠진 인물들의 욕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다. 그 누구의 말도 맞다. 다만 저마다 자신의 욕망만을 생각할 뿐이다. 관계가 빠진 인간들의 욕망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결국 정우는 혜선의 쿠마를 훔쳐온다. 우리는 알고 있다. 착한 신랑 정우는 결코 아내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 영화 김수현 + 음악 차효선

     

     

     

     지하철을 타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한번쯤은 보게 되는 것 같다. 암묵적인 사회의 규칙을 무시한 채 자기 안의 틀에 갇혀서 끊임없이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쉼 없이 숨 하나도 남지 않도록 토해내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초코파이와 몽쉘의 차이점을 아는가? 초코파이는 하나만 먹어도 되지만 몽쉘은 많이 먹어야 한다. 너무 부드러우면 금방 먹고 많이 먹게 되기 때문이다. 말을 [職業]으로 하는 성우가 결국 말이 업[應報]이 되었다. 성우 김상현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다. 흔히 여성 성우하면 떠올리는 음색의 전형성에서 완전히 탈피해서 그녀는 거만하고 권위적이고 중성적인 매력을 풍겼다. 본질적으로 기존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지닌 그녀에게 제작자들은 끊임없이 여성성을 요구한다. 그녀만이 지닌 엄격함 속의 온유함이 아니라 전형적인 여성성, 즉 살짝 미소 띤 웃는 얼굴로 밝고 따뜻한 무조건적인 친절함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용에서 느껴지는 진실된 감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헬륨 가스를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그녀를 통해서 계속 무언가를 만들려고 할수록 그녀는 밀어내고 몰아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우 김상현과 미친 여자, 그리고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의 셴테와 슈이타를 연기하는 김상현, 감독 박희순과 미팅을 하는 김상현이 서로 엉켜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연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이 알고 있는 멋진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 두고 섬뜩한 맨 얼굴을 보여준 김상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정한 용기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도록 지켜내는 것이다.

     

     

     

     

     

     

    위 글은 LIG 아트홀 컬처리포터 '최창순' 님의 글입니다. LIG 아트홀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