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STAGE/CULTURE INSIGHT

    아리스테_artiste 2014. 10. 19. 17:03

    LIG블로그의 새 코너 - [Culutre Insight]에서는, 칼럼니스트이자 커먼센터의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함영준이 

    문화예술계의 이슈를 들여다보고 풀어내는 글을 소개합니다.

     


    2014년 9월,

    전시

    대전

     

    함영준 _ 커먼센터 큐레이터






































     

     

     

     

     

     



      

     

     

     

     

     

     

     

     

     

     

     

     

     

     

     

     

     

     

     

     

     

     

     

     

     

     

     

     

     

     

     

     

     

     



     

     

     

     

     

     

     

     

     

     

     

     

     

     

     

     

     

     

     


     

     

     

     

     

     

     

     

     

     

     

     

     

     

     

     

     

     

     

     

     

     

     

     

     


     

     

     

     

     

     

     

     

     

     

     

     

     

     

     

     

     

     


    패션계에서는 9월과 10월이 일 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10월에는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모두 참여하는 패션위크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9월에는 10월에 앞서 이듬해 패션의 경향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 소위 말해 '셉템버 이슈'가 발매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금액이 오고 가는 이 시기를 준비하기 위해 세계의 패션계는 일년 동안 꾸준히 준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죠. '셉템버 이슈'는 어느 달 보다도 잡지가 두껍고 그만큼 광고도 많이 붙는 진검 승부의 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까요? 세계의 유수의 갤러리와 미술관은 매년 3월과 9월에 중요한 전시를 집중적으로 개최합니다. 이 시기에 갤러리와 미술관이 몰려 있는 '아트 디스트릭트'에 들리면 각 갤러리는 소속 작가 중 가장 유명하며 잘 팔리는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미술관은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프로젝트를 대중에게 공개하게 되죠. 연일 오프닝 파티로 들썩이고, 수많은 미술품이 거래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시기의 개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는 아마도 오랜 기간 준비하더라도 막상 닥쳐서 전시를 만들어야 하는 업무의 고단함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의 콜렉터 문화가 사교와 유흥의 자리와 쉽게 연계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2014년의 9월 한국의 미술계는 오랜만에 미술계에 활기가 넘치더군요. 또 그 활기의 이면에도 여러가지 이야깃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20149, 한국 미술계에 있었던 네 가지 이벤트를 간단히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광주비엔날레

    에이에이 브론슨의 수치심의 집(AA Bronson’s House of Shame), AA Bronson, 2014

     

    1. 2014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라 

    95일 오픈 - 119일까지                                                                                                            홈페이지 

     

    올해 9월 전시대전의 포문을 열었던 가장 큰 행사는 2014광주비엔날레입니다. 제시카 모건이라는 영국의 큐레이터가 감독을 맡아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은 물론 광주 곳곳에서 다양한 미술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제목은 말 그대로 '터전'''태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자뭇 스스로를 현대인이라고 여기기도 하는 '우리'에게 ''태울 '터전'은 무엇인지, 그리고 '터전'''을 지피는 행위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할 의도로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전시장에서는 계속해서 불의 이미지가 도사린 작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 앞서 꽤 의미심장한 논란이 있었는데요. 광주를 중심으로 꾸준히 민중미술 계열의 직설적인 풍자화를 그려 온 홍성담 화백<세월오월>이라는 작품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했다가 논란이 되자 닭으로 수정했고, 결국에는 전시 유보 결정을 받은 일입니다. 이 그림은 본 전시가 아니라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될 예정이었는데, 여튼 이 일의 여파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까지 사임하게 되었죠. 이 촌극은 '표현의 자유''예술'에 대한 지역 정부의 인식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약 30년 전에 소명을 다했다고 여겼던 민중미술의 특징적 미학 - 쉽고 강하게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미적 실험의 태도를 보류하는 - 이 여전히 (슬프게도) 유효한 전략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아무튼 이번 전시에서 제가 눈여겨 본 작업은 단연코 AA 브론슨의 팔각정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큐레이터와 작가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프린티드 매터라는 대안 서점을 운영해 온 인물인데요. 사직공원 내의 팔각정을 정념이 가득한 데카당스의 전당으로 꾸며놓았더군요. 전시장의 대부분이 마치 아트페어처럼 규격에 맞춰 보기 좋게, 그러나 지루하리만치 일목요연하게 기획된 것과 비교해보면,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들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 최원준, 2014 / Archive installation: Commissioned by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4

     

    2.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

     9월 2일 오픈 - 11월 23일까지                                                                                                        홈페​이지   

     

    광주나 부산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비엔날레가 립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속해 온 미디어 비엔날레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전까지 미디어시티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말 2000년대 초 미디어 아트의 부흥에 맞춰 운영되었다면, 올해에는 박찬경이라는 걸출한 작가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해서 '미디어' 즉 매체 중심적인 전시에서 탈피해서 조금 더 다른 지형을 바라볼 수 있게끔 기획되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박찬경 작가는 최근에 연출했던 '만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좁게는 한국, 넓게는 아시아의 정신세계의 근간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번 미디어 비엔날레의 제목인 '귀신, 간첩, 할머니'는 그러한 주제를 구체화하는 세 가지 키워드인데요. 제국주의가 할퀴고 지나간 지형에 떠도는 어떤 종교적인 것으로부터 '귀신', 전쟁부터 최근의 방사능 유출에 이르는 정치적인 특색으로부터 '간첩',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생을 지속해 왔고 켜켜이 쌓인 어떤 염원의 총체로서 '할머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생각만큼 만만치 않아서, 전시작 전부를 하루에 감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영상 작품 각각의 러닝타임도 그렇지만, 각각의 작품이 풍기는 나른한 에너지가 중첩되면서 조금 '기가 빨리기'도 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것은 전시를 관람하며 할 수 있는 좋은 경험 중 하나입니다.

     

     

     

     

     

    3. 문화역서울 284 <최정화-총천연색(總天然色)>전


     9월 4일 오픈 - 10월 19일까지                                                                                                    홈페이지 

     

    문화역서울에서는 최정화의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최정화는 1990년대 한국의 현대미술은 물론 디자인, 공예, 인테리어, 공공미술 등 시각문화를 상징하는 이름 중 하나인데요. 격렬하고 무자비한 수집욕을 통해 채집된 수많은 '쓸데없는' 물건들이 저마다의 색과 형태를 얻으며 나열된 괴이한 장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유의 괴상한 광기가 전시장의 대기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전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는데요. 그것은 비단 최정화 작가의 특징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울역이라는 공간이 전시라는 형식에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공간이 원래 지향하고 있었던 미적인 경험의 방향이 있다면, 최정화의 수집품은 비교적 그 방향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장면, 그러니까, '버나큘러'라는 형용사로 수식되는 일상 속 사물의 미학적 의미와 다시는 새로 지을 수 없는 오래된 건물 특유의 꼬릿한 장식이 만나는 장면은 더 이상 새로운 편이 아닙니다. 새롭다기 보다는 새롭고 특이하다는 것으로 이미 유명해져 버린 관광지를 관람하는 느낌이랄까요

     

     

    최정화라는 브랜드가 선도했던 한국의 시각문화가 이제는 서울을 비롯한 한국 도시의 모든 미감에 어렴풋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간판들, '맛집', 혹은 예술과 시민의 만남을 주선하는 지자체의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결국 최정화의 '생생활활'을 진지하게 참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4. 아트선재센터 김성환 <늘 거울 생활>


     8월 30일 오픈 - 11월 30일까지                                                                                                       홈페이지 

     

    아트선재센터는 한국이라는 척박한 땅에 현대미술의 뿌리를 내린,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입니다. 1998년 개관하여 열리는 전시마다 한국의 미술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곤 했지요. 하지만 근래에는 예전의 위상만큼 활발하게 미적 태도의 선봉을 자임한 적은 없습니다. 이는 미술문화 전체가 조금은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현재 사회의 상황이 미술문화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존재가 희미해지던 아트선재센터에서 오랜만에 기분 좋게 즐길만한 대형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영상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늘 거울 생활>이 열린 것이지요. 전시는 아트선재센터 전시장 특유의 곡면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선 굵고 이상한 카펫/각목 설치 사이로, 그가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만들어 온 영상 작품 중 3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김성환 작가의 작품에는 현대미술의 변방으로 일컬어지는 동양인 성 소수자가 겪을 만한 개인전인 정념으로부터 출발하면서, 그가 영향을 받았을 각종 영상 텍스트의 형식이 엉켜있습니다. 20세기 중반의 뉴욕 언더그라운드 영화 특유의 싸구려 캠프 미학과 일본 장르 영화 특유의 끈적한 에로티시즘까지, 그의 영상은 협업자로 늘 참여해 온 데이빗 디그레고리오의 음악과 함께 감정적으로 친절하리만치 과잉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2014년에 관람하는 것은 마치 퀘퀘한 시네마테크에서 전설 속의 명작을 확인하는 것 같은 묘한 노스텔지어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흥은 영상 문법 자체에 대한 탐구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최근의 영상 작업 대부분이 얻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 밖에 유수의 갤러리에서도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10월 중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걷기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산책 삼아 천천히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술에 대한 시각의 확장이 일상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