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STAGE/관객의 시선

    아리스테_artiste 2014. 12. 23. 18:53

    [REVIEW+STAGE]에서는 지난 공연의 리뷰와 연습현장 방문기를 소개합니다.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흔들리는 아이덴티티의 교차로


    이상민 그룹 : Seoul-New York Junction


    2014년 5월 30일(금) 8pm, LIG아트홀ㆍ강남

     

     

     

    공연은 이상민의 변칙적인 베이스 드럼 3연타와 잘게 쪼개진 스네어 플레이로 시작된다. 이윽고 하이햇과 심벌이 등장하면서 보다 풍성해진 드럼 사운드를 슬며시 헤치며 모듈레이션된 기타가 들어오며, 이내 베이스와 함께 하나의 특정한 리듬을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피아노와 신디사이저까지 가세되며 그루브가 팽팽하게 조여질 무렵, 물론 다른 플레이어도 모두 훌륭하지만, 제 55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R&B 음반 부분을 수상한 로버트 글라스퍼 익스페리먼트Robert Glasper Experiment의 멤버로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오늘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 케이시 벤자민Casey Benjamin이 무대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색소폰을 불기 시작한다. 첫 번째 곡, 공연의 시작이다.





    상민은 드럼 연주자이며, 1999년 데뷔한 한국의 6인조 밴드 긱스GIGS의 드러머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이전부터 가요계 거물들의 세션을 맡거나, 한국 훵크 씬에서 이름을 날리던 한상원과 함께 밴드를 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긱스에서 활동하던 정재일과 함께 이상민은 거의 데뷔한 직후부터 이른바 ‘천재’라는 수식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이상민과 정재일은 아직 갓 데뷔한 신예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연주는 이미 수준급이었으며, 함께 긱스의 멤버로 활동한 이적은 다소 기괴한 스타일의 팝 음악을 연주하던 듀오 패닉을 통해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라있었고 다른 멤버인 한상원과 정원영, 강호정 모두 소위 ‘유학파 1세대’로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상민과 정재일은 1982년생 동갑내기, 긱스를 처음 시작할 당시엔 17살 밖에 되지 않은데다 지금은 한국음악계에서 나름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첫 번째 기수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어찌 보면 천재라 불리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로 조건과 상황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2001년 발매된 [들국화 헌정앨범 (A Tribute to 들국화)]에 참여한 것을 끝으로 긱스가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두 신예 뮤지션들의 초반 커리어도 자연스레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이후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상민의 경우, 2002년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퍼포먼스를 전공하고 여러 음악가들의 세션을 맡게 되며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으며 2010년에는 자신의 곡으로 구성된 첫 앨범 [Evolution]을 발매하며 프로듀서이자 작곡자로서도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한편 뉴욕의 재즈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 특히 유서 깊은 재즈클럽인 블루 노트 같은 곳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게 된 것 역시 이슈가 되어, 한국의 음악가들은 물론 ‘지망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를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는 듯, 공연에 앞서 그를 2014년의 협력 아티스트로 선정하고 이번 공연을 주최하기도 한 LIG 문화재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상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재즈라는 음악 자체가 추구하는 게 영적인 솔soul, 사람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 역할이잖아요. 어쨌든 (뉴욕의 재즈씬에서─편집자) 그런 걸 경험하다 보니까 ‘진짜 음악이 이렇게 파워풀한 존재구나.’ 하는 걸 계속 느끼는 거죠. 여기 사람들을 통해서 제가 본 에너지를 저도 주고 싶어요.” 이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자면, 이상민은, 뉴욕의 재즈씬을 통해,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진짜 음악의 힘을 경험했고, 그렇게 경험한 에너지를 한국에도 전해주고 싶다, 는 정도로 다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미리 공지된 90분을 조금 넘겨 진행된 공연 내내, 약간의 멘트를 제외하곤, 쉼 없이 음악이 흐른다. 모든 연주자의 기량이 뛰어나지만 특히 이상민은 명성의 블루 노트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로서의 ‘클래스’를 입증하듯 발군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것은 아마 다른 연주자들도 오늘 공연의 호스트가 이상민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그를 위한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상민의 플레이에서 특기할 점은, “장르로 결정되는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그의 태도를 반영하듯, 기본적으론 재즈 드러밍을 베이스로 하지만 훵크나 소울은 물론, 록이나 프로그레시브, 심지어는 최근의 일렉트로닉 트렌드에 영향을 받은 듯한 플레이까지 고루 녹여내는 모습이다. 물론 이를 자연스레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상민이─특히 기술적인 측면에서─아주 뛰어난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케이시 벤자민을 포함한 멤버들도 이른바 한국식의 ‘정통 재즈’를 크게 벗어난 플레이를 선보이며, 소위 ‘본토’의 ‘최전선’에 있는 음악가라는 소개에 걸맞는 퍼포먼스는 보여준다. (개인적으론 피아노와 신디사이저를 오가며 연주하던, 보다 유럽풍 프리재즈 식의 플레이를 보여주던 에스페란자 스팔딩Esperanza Spalding의 멤버 레오 지노베즈Leo Genovese의 연주가 인상 깊었다.) 최상급의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은, 대부분 그렇듯, 관객들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보고 있다는 감정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그건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공연이 끝난 후, 아마 그곳에 있던 모두는 최소한 한 가지의 동일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잘한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그 뿐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초반의 두 곡 정도를 플레이할 때까지는 좋은 감흥을 받았으나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 한 시간 가량의 연주에선,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지루함을 느꼈다. 의외성을 부여해 음악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활용된 아이디어─이를테면 조성이나 리듬을 무너뜨린다던가, 예상치 못하게 치고 들어온다거나, 악기들의 볼륨을 모두 최대한으로 이끌어내 거대한 사운드로 압도한다던가하는 등─의 절대적인 수량이 부족한 듯하진 않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초반에 이미 선보여졌고, 이후로는 앞선 아이디어들에 약간의 변주를 주어 재활용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관람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극을 받는 횟수는 줄어들었으며, 이는 ‘진짜 잘한다’ 이상의 감상을 가지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더욱 아쉬운 것은─아마 이것이 더욱 핵심적일 텐데─<이상민 그룹 : Seoul-New York Junction>이 공연의 타이틀임에도, 실제로 서울 혹은 아시안의 (음악적인) 아이덴티티와 뉴욕 ‘본토’의 아이덴티티가 교차(junction)한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다는 점이다. 어쭙잖은 국악과 무언가의 알 수 없는 크로스오버를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악수를 두지 않더라도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략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상민이 “장르로 결정되는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거나 “이상민스러움”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무색하게, 이상민의 플레이는 잘한다는 것 이상의 어떤 ‘아이덴티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첨언하자면, 이는 이상민이 LIG 문화재단과 진행한 또 다른 작업인 <뮤지션 이상민 드럼 솔로 프로젝트 [BEAT]>에서도 그대로 노출된 문제이다. 그 작업은 이상민의 이름값에 비하면 퀄리티가 미묘해, 아직 ‘미완’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는 호칭으로 불렸으며, 서울재즈아카데미의 첫 번째 기수로서 입지전적인 커리어를 쌓았으며, 송영주 등과 함께 역사적인 블루 노트에서 연주하기도 하는 등 이른바 ‘본토 (내지는 세계) 진출’로 인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드러머로서 이상민의 위치는 각별하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틀로 고정시켜 이상민의 작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관객들이나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에게는 물론, 본인에게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것이다. 늘 그렇지만, 필요한 것은 신화 대신 성실하게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켜 좋은 아이덴티티를 획득해내는 아티스트일 것이다. 조금 더 흥미로운 그의 다음 작업을 기대해본다.

     

     





    단편선 Musician 

     

    단편선은 솔로 프로젝트 '회기동 단편선'과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로서, 싸이키델릭한 포크 뮤지션으로 주로 소개되고 알려져있다. 
    1986년 서울 출생.

     




    위 글은 단편선 님의 글로, LIG아트홀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참고 바랍니다. 




    포스팅 잘봤어요~ 스크랩하고 갈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