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임현철 2007. 6. 22. 09:23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
여수 용문사에서 되돌아 본 삶, 그리고 소

 

전남 여수시 화양면 용문사.

 
인생은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한 순례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삶은 마음의 평화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훌쩍 떠나는 사람이 들뜸과 설레임으로 가득 차는 것이겠지요.

 

‘연애하듯 인생을 살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같은 날의 반복에서 벗어나 날마다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이 ‘연애’의 범주에는 부모, 아내, 남편, 친구, 아이들, 삶, 인생, 고뇌, 행복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

 

울창한 나무와 봉긋봉긋 솟은 힘줄같은 봉우리에서 생명의 힘을 얻습니다.

 

거미줄에 담긴 삶과 스님이 벗어놓은 신발 속의 인생이 가슴 져미게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크게 포함되어야 할 ‘자신’은 정작 빠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과 연애하듯 인생을 살아라’ 쉬운 말인 동시에 어려운 말입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터부시하며 살아 온, 그리고 살아갈 날에 대한 경고겠지요.

 

지난 17일(토) 오후,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가까운 산에 가자는 권유였습니다. 기꺼이 따라 나섰습니다. 이렇게 전남 여수시 화양면 용문사 뒤에 자리한 비봉산에 올랐습니다.

 

용문사 경내에도 바람이 머물다 갑니다.

 

지인은 뭘 그리 생각할까요, 혹 도통한 건 아닐까?


숲이 무성합니다. 온갖 생명이 함께 어울린 ‘더불어 숲’입니다. 수목이 우거져 울창합니다. 보리딸기, 청미래 넝쿨, 찔레, 인동초, 소나무, 편백, 도라지, 소사, 뱀, 나비, 하루살이, 거미, 벌 등 바람에 움직이는, 자연의 의치에 따라 흐르는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신영복님의 “처음처럼”이 생각납니다.

 

절벽에 핀 용가시 꽃이 여인에게 꽃을 꺽어 바쳤다는 '헌화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장 먼 여행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

 

- ‘신영복’ 『처음처럼』에서 -

 

돌탑이 마치 운주사 천불천탑 중 '동냥치탑'처럼 느껴집니다.

 

숲 속의 용문사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 합니다.


산에서 내려와 용문사에 들렀습니다.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입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경내를 둘러보는데 생전 처음 본 보살께서 말을 걸어옵니다.

 

“저녁 공양 하시겠어요? 우린 금방 먹었는데….”

 

밑도 끝도 없는 공양 제의에 잠시 망설였습니다. 산행 길에 함께 올랐던 지인과 저녁을 먹던지 아니면 가족들과 먹던지 간에 어차피 먹어야 할 공양이었습니다.

 

“일행이 한 사람 더 있는데. 여쭤 볼 게요.”

 

'더불어 살아야 멋스럽다'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생각이 납니다. 봄이 되면 꼭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사진이 있었습니다. ‘쟁기질 하는 소’ 사진이었습니다. 논갈이가 끝나 ‘올해에도 쟁기질 하는 소 사진 찍기 틀렸군’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밭에서 쟁기질 하는 소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꼭 횡재한 느낌이었습니다. ‘옳다 거니, 잘 됐다’ 여기고 살짝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렸습니다. 아뿔싸! 찍으려고 하니 소와 농부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농부에게 다가가 “사진 한 장 찍을 게요” 요청하고 폼을 잡는데 소가 고개를 돌려 원망어린 눈으로 저를 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원망하는 소의 눈빛이라니...

 

‘힘들어 쉬려 했더니 옆에서 훼방꾼이 나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쉬는 소를 다시 혹사시킨 주범이 된 꼴입니다. 농부가 일어나 다시 고삐를 쥐고 ‘이랴, 이랴!’ 걸음을 재촉하자 그때서야 소는 뒤뚱뒤뚱 느린 걸음을 천천히 떼었습니다.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다 말고 밭이랑 중간쯤에서 농부가 뒤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소는 여전히 저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걸어왔습니다. 그것도 밭이랑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이랑을 가로 질러, 저를 똑바로 쳐다보며, 억울함을 호소하듯, 지친 발걸음에 힘을 주고 걸어왔습니다. 마치 소 싸움에서 돌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바지런한 이가 독을 매일 반들반들 닦았나 봅니다.

 

밭 이랑을 가로 질러 눈 똑바로 뜨고 돌진하는 소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썰렁했습니다. 소의 그 눈빛이라니…. 사진이 어찌 찍혔나 모르지만 사진 한 장 찍자고 못할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진 찍기를 멈추고 소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미안하다. 나만 생각했구나! 미안해.”
“…”

 

그제 서야 소가 원망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참 영물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이 ‘소 울음소리’를 들으려고 애 쓰는가 봅니다. 원효대사를 득도의 길로 이끌었던 ‘해골바가지’ 일화가 생각나게 합니다.

 

어찌보면 삶은 장자의 '호접지몽'일 수 있겠으나 저마다의 의미가 다르겠지요.

 

나 한 몸 좋자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는 산행이었습니다. 저를 산으로 이끌어, 스님이 벗어놓은 신발과 벌레에게서 아름다운 공(空)의 세계를 엿보게 한, 공양을 먹게 만들었던 인연 속의 지인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소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맞은 사람은 두발 뻗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두발 뻗고 못 잔다’는 말처럼. 그래서 신영복님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을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으로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그러나 여기에도 멋이 있을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