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임현철 2007. 6. 25. 17:19

뭐니 뭐니 해도, ‘땅’이 최고
아픈 아이와 흙을 밟으며 나눈 통교(通交)의 시간

 

<보물섬>의 보물이 묻힌 곳 같은 느낌의 나무가 풍경 속에 서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땅이 최고’입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흙을 밟고 사는 게 제일입니다. 삼라만상, 천지만물이 가진 고유한 ‘기(氣)’와 소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남 여수시 소호동에서 용주리로 가는 고개를 넘다 보면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이 보입니다. 이 풍광은 여수에서 흔히 보는 쫘~악 펼쳐진 바다가 아닌, 숨은 있는 바다 경치입니다. 엿보는 은밀한 맛의 정취랄까요. 이 풍경 안에 흙이 있습니다. ‘황토’.

 

절 사로잡은 흙 색깔입니다. 흙 색깔 예쁘지 않으세요?

 

지난 23일(토), 아이의 온몸이 불덩이였습니다. 병원에서는 골 때리게 아프고, 열이 심하게 날거라는, 전염성이 강하다는 설명과 함께 뇌수막염이라 하더군요. 옷을 벗기고 물수건을 이마에 대는 등 좀 복잡했습니다.

 

이걸 보고 피식 피식 웃었는데 아내는 “아이가 아픈데 웃는다”고 타박입니다. “자기 배 아파 나은 사람과 아닌 사람은 느낌이 다르다”는 겁니다. 속으로 ‘크면서 아픈 게 당연한데, 아프면서 크는 건데…’ 했습니다.

 

하여, 일요일에도 병원에 갔습니다. 월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 그러나 ‘흙을 밟으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수에서 흔히 보는 확 트인 바다가 아닌, 엿보는 듯한 은밀한 풍경입니다.

 
이 생각을 한 이유는 여기저기 다니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진한 황토색의 고향 같은 황토밭. 성경에서 말하는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면 아마 저런 황토로 빚었을 것이란 느낌의 황토색이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면 ‘꼭 만져보고 밟아봐야겠군…’ 했으나, 막상 지나치기 일쑤였던 황토밭.

 

그러다 지난 17일, 처음으로 그 황토를 밟았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니 아담한 동산에 고사된 소나무와 잘 자라는 소나무, 줄기만 있는 나무가 서 있습니다. 마치 <보물섬>에 묘사된 보물이 묻힌 곳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황토를 만져보니 부드럽게 작은 알갱이로 부숴집니다. 어줍잖게 기(氣)를 모았더니 이마에 쉽게 기가 모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지인은 황토밭 주위를 유심히 살피더니 혈(穴) 자리라 합니다. 그곳에 서니 기를 모을 새도 없이 그냥 기가 흘렀습니다. 한 마디로 통(通).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아이를 데려 간 곳입니다.

 

여전히 황토밭은 예쁜 색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고추며, 개망초, 메꽃, 도라지꽃들과 만났습니다. 비가 내린 뒤라 여기저기 밭에는 아낙들이 잡초를 뽑고, 깨와 고구마 순을 심고 있습니다. 옥수수도 따고 있습니다. 아이와 그곳에 다다랐습니다. 이형심(75) 할머니께서 밭일을 하고 계십니다.

 

“할머니, 뭐하세요?”
“깨 심어. 이거 심어 나도 묵꼬, 아그들도 주고 헐라고. 여그 와서 이 감자 싸가꼬 가, �邨� 무거. 우리 아그들은 잘 안 무거”
“이따 할머니가 주신 감자 싸 가자.”

 

원기를 회복한 아이가 집에 가기 위해 감자를 들었습니다.


자연의 빛깔처럼, 자연의 색처럼 예쁜 게 없습니다. 인공적으로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녹색도 연한 색부터 진한 색까지 같은 색깔이 하나도 없습니다. 황토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함께 고구마 밭이랑 사이로 흙을 밟았습니다. 흙이 묵묵히 우릴 받아들입니다. 흐트러진 몸의 기운을 따스하게 안아주고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통기(通氣)를 시도합니다. 흐트러졌던 제 몸의 기운도 화(和)해집니다. 한동안 서 있다 보니 따스한 기운이 몸을 감싸며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아이가 감자를 주어 담아 발걸음을 옮깁니다. 따고 난 옥수수를 베어낸 자리에 고구마를 심고 있습니다. 옥수수가 옆에 놓여 있습니다. 싱싱한 옥수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옥수수 좀 파세요. 우리 집 식구들이 모조리 옥수수 귀신들인데….”
“아랏써. 이거 마니 준 거여. 마씻을 꺼여. 마씻께 �邨� 무거.”

 

옥수수를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아이가 들지 못할 정도로 주십니다. 낑낑대는 녀석 대신 들고 오는데 많은 옥수수로 인해 입이 귀에 걸린 아이,

 

“아빠, 옥수수 사 먹을 땐 하나에 2천원씩 하잖아요. 근데 이렇게 많은 걸 정말 싸게 샀네요?”
“하하~. (경험해야 안다고) 싼 건 줄은 알겠어?”


“녜. 이거 열 개도 넘어요. 우리 세어 볼까요?”
“야, 열 개가 아니라 스무 개도 넘겠다.”

 

옥수수와 언덕.

 

아이를 안고 차에 태웁니다. 중저음의 “음~ 메에에에~” 소리가 들립니다. ‘소 울음소리’가 티벳 산에서 울려 퍼지는 뿔 나팔 소리 같습니다. 영혼을 울리는 중저음 소리…. 새삼스레 ‘아! 저게 소 울음소리구나’ 싶습니다.

 

녀석은 감자며, 옥수수 자랑이 심합니다. 그리고 옥수수를 삶았습니다. 이게 아이와 교감한 ‘소통’의 전부입니다. 아비로서 줄 수 있는 건 ‘기의 소통’ 뿐이었습니다. 녀석도 커 가면서 흙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알겠지요.

 

그리고 아이는 기운을 회복하였습니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단지, 전염성이 있다는 말에 혹시나 여겨 학교에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역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흙이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져 온 옥수수를 삶았습니다.

 

생명에게 '흙'만한 게 없는 듯 합니다.

 

 

오마이뉴스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