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섬

임현철 2007. 7. 12. 09:53

“너도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래?”
[알쿵달콩 섬 이야기 25] 여수시 돌산도 ④ - 무슬목 유원지의 추억

 

전남 여수시 돌산도 무슬목의 아침.(사진 조찬현)

 

무슬목의 물놀이.


학창시절의 맛이라면 단연 ‘땡땡이’일 것입니다. 지금이야 왜 땡땡이를 칠까 여기지만 당시엔 일탈을 즐기는 소영웅 심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제겐 합법적인 땡땡이 수단이 있었습니다. 섬에서 나룻배로 중ㆍ고등학교를 다녔던 관계로 태풍이 불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고, 수업 중이더라도 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또 저녁 야간자율학습 때에도 나룻배 시간에 맞춰 먼저 학교를 탈출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정문을 나오면서 느끼는 짜릿한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훗날 벗들은 이런 면에서 섬에 사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고 실토하였습니다. 일탈의 맛은 이럴 것일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애늙은이거나 공부밖에 모르는 샌님일 것입니다.

 

편안한 휴식처인 무슬목의 조각과 어울린 형제섬.

 

송림 속의 연인들. 이곳에서 밀어를 속삭이면 헤어지지 않는다 합니다.


- 무슬목, 이순신 장군의 전략적 요충지

 

전남 여수시 굴전 무슬목 유원지에는 또래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보다 먼저 해를 맞이하는 바다 위의 섬. 떼구르르 구르며 속삭이는 몽돌. 조각공원과 어우러진 소나무. 여기에 해양수산과학관까지 더해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관광지입니다.

 

무슬목은 가막만과 광양만 중간에 폭 100여m의 좁은 육로로 연결된 곳으로 밤에는 배가 다니는 수로처럼 보입니다. 이런 지리 여건을 충분히 활용,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선 60여척과 왜군 300여명을 섬멸하였습니다. 무슬목은 ‘무슬년의 해전’이란 의미가 스며있습니다.

 

무슬목은 이렇게 좁은, 그래서 지명 그대로 딱 '목'입니다.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무슬목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놈에게 지리적 ‘텃새(?)’를 마음껏 펼쳤듯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에는 어디나 ‘텃새’가 있습니다.

 

제게도 무슬목의 텃새와 관계된 추억이 있습니다. 저는 돌산대교를 놓기 전인 중ㆍ고교 시절, 배 타고 여수를 오가는 길목인 나루터 부근에서 살았습니다.

 

나루 길목이라 진두 혹은 나루꼬지로 불렸던 우리 마을의 텃새에 돌산도의 어느 마을도 당당히 맞서질 못했습니다. 그랬다간 언제 어느 때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당시 난다 긴다 한 어깨들도 조심스레 조용히 다녀야 했습니다.

 

무슬목 해변.

 

무슬목 우측의 해양수산과학관도 아이들에게 '바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선시대 명문가의 세도처럼 보무도 당당히 나룻터 텃새를 부리던 중 3 때 여름, 친구들과 무슬목으로 야영을 갔었습니다. 몽돌밭 위에 텐트를 세우고 놀다보니 좀 시끄러웠나 봅니다. 그때 무슬목에 사는 또래들의 견제가 심했습니다.

 

- 싸운 후 ‘화해’는 섬사람들의 정취

 

남의 동네라 놀기를 멈추고 몽돌밭에 누워 불편한 잠을 청하고 있는데 잡자기 텐트가 와~자작 무너졌습니다. 기습이었습니다. 야간 게릴라전을 펼치다니…. 무슬목 아이들이 우리에게 당한 설움을 풀겠다고 해코지를 해온 것입니다. 일어나 보니 다들 꼼짝없이 잡혀 얻어터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은 후 잡으러 가고 도망가고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텐트 등 짐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그 틈에 짐 챙길 생각이 났겠습니까. 난리통은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지요.

 

섬, 바다, 파도, 몽돌, 그리고 삶...

 

이순신 장군의 무슬목 해전을 연상하는 조각품도 서 있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먼저 도망간 친구는 무슬목에서 돌산대교까지 20여㎞를 담박질로 뛰어왔다고 합니다. 사연인즉, 뛰다 뒤돌아보면 뒤에서 쎄가 나게 잡으러 와서 멈추지도 못하고 달렸다나요. 자기도 그렇게 오랫동안 잘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고 합니다.

 

그 뒤, 우리는 몽돌밭에서 텐트를 치지 않습니다. 아픈, 그리고 우습고 재미있는 어릴 적의 추억 때문이지요. 몽돌밭은 잡히는 대로 전부 흉기 그 자체니깐요. 이렇게 직접적이고 많은 흉기가 어디 있겠어요.

 

궁금한 게 있다구요? 나루 뱃머리의 텃새 부리지 않았냐구요? 물론 얼굴 봐 둔 녀석들은 하나 둘씩 작살났죠. 나루 뱃머리에서 잡아다 족치면 안불 사람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화해했죠. 섬에선 끝 마무리로 ‘화해’가 없으면 공존을 못합니다. 다른 섬들도 섬끼리 많이 싸웠다 합니다. 그리고 화해. 이게 섬사람들의 정취인 것 같습니다.

 

인근 대미산에서 본 무슬목과 바다 풍경.

 

무슬목의 해돋이.


- 몽돌과 마음속의 대화를 나누다

 

각설하고, 무슬목에 서니 형제섬이 반깁니다. 몽돌에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포말. 연배가 있는 연인의 속삭임. 이제 보니 어릴 적 몽돌은 지금보다 덜 반질반질했던 것도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 덕에 이제는 그 몽돌들과 마음속의 이야기를 속삭일 수 있습니다.

 

“너, 왜 그때 흉기로 변했어?”
“야, 철없을 때 그런 추억 하나 없으면 뭔 재미? 추억 만들어 준 것 고맙다고 해”

 

“아~ 따~, 대개 생각해주네. 고맙다야~, 고마워. 그래 그동안 잘 있었어?”
“덕분에…. 지금은 사진작가들이 날마다 와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줘. 작품으로 말야. 너도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래? 추억을 담아서 말야.”

 

“야, 나도 그러고 싶은데 사진 찍는 실력이 딸려 그러지 못해. 그냥 그대로인 너로 있어. 난 그게 좋아. 영혼의 휴식과 안식이 필요할 때 그냥 가만히 안아주기만 해.”
“알았어. 인간들의 포근한 휴식처로 있을게. 그럼 됐지?”
“아이~구~. 이것도 인연이라고 고맙다~, 고마워.”

 

툭 트인 바다보다 이렇게 뭔가 하나 걸쳐 있는 풍경은 아기자기함을 더해줍니다.

 

포근한 휴식처로 남아준다니 무척 흐뭇합니다. 이게 자연이겠지요. 자연의 일부인 난 과연 다른 이들에게 편안한 휴식처일까? 무슬목의 몽돌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반성의 시간을 갖습니다. 자연과의 대화, 이게 여행이겠지요….

 

그런데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지금, 당시로 되돌아가 보면 아름다운 추억인데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만일 알았다면 속 터질 이야기입니다. 샌님같이 학교 다녀 뭐해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가 이런다면 마음 편할 부모 없겠지요. 그래서 제각각 나름의 인생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몽돌에 부서지는 파도는 살면서 쌓이는 내공 같습니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무슬목. 작가들은 왜 이곳을 찾을까?(사진 조찬현)

 

오마이뉴스와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ㅎㅎ 정답고 아름다운 아련한 기억에 더욱 그리우셨겠습니다~ 즐겁게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