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여헌학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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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1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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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광선생의 현대학자의 평(評)

 

여헌 장현광선생은 1554년 정월 22일 경상도 인선방(仁善坊구미시 인의동)에서 증 이조참판 휘 열 부군과 정부인 경산이씨 사이에 6남매중 독자로 태어났다. 이날 정침에는 보랏빛 서기가 서리고 옥산에는 이무렵 영지가 났다. 세인이 기이하게 생각 하였다 18세에 이미 우주요괄첩을 지어 학문의 나아갈 바를 정하여17세기에 최고의 성리학자가 되었다. 독학으로 선현들의 학문을 탐구 하였으나 누구의 학맥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이에 현대학자의 평을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는 “여헌 우주론의 역사적 위치와 성격”이란 논문에서 여헌 장현광 선생(1537~1637)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역학도설(1609)과 우주설(1631)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합적이고 합리적인. 그리고 중국 송대 성리학자들의 논의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세련되고 독창적인 우주론논의를 펼친 것으로 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여헌의 우주론 또는 자연지식이 조선시대 성리학사 또는 과학사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다. 이에 조선시대 우주론 또는 자연지식의 역사적 흐름을 개괄하고 그 흐름 속에서 여헌 우주론의 위치를 살펴보고. 그 의의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유가(儒家) 사대부들이 펼쳤던 우주론의 역사적 전개과정은 거시적으로 보아서 중국 송대 성리학적 우주론의 수용과 소화. 그리고 극복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리학적 이론이 주돈이((周敦頤1017~1073). 소옹(邵雍1011~1077). 장재(張載1020~1077).에 의해 제시되고 주희(朱熹)1130~1200)에 의해서 계승 . 종합된 우주론을 말한다 (중략) 또한 여헌은 거시적으로 소옹의 상수역학적 자연이해의 틀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다른 유학자들과 달리 거기에 매몰 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자유로운 사색을 펼쳤다. 천지 바깥의 대 원기에서 살펴 볼 수 있었던 우주의 무한함. 그리고 또 다른 우주의 가능성 등과 같은 문제에 관한 철학적인 사색에서 그러한 여헌의 비판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송대 성리학자들은 현 우주와 다른 세계가 공간적으로 존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현재 인간이 살고 있는 현 우주가 과연 소옹의 원회운세 설에 따라 소멸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하늘에는 바깥이 없다고”고 말하는 장재. “혹자가 현 천지의 바깥에 또 다른 천지만물이 있고 현천지 만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모르 겠다”고 말하는 소옹. 현재 우주가 과연 소멸하는가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면서 결국엔 인간사회가 극도로 타락하면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답변하는 주희 등에서 그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헌은 현재의 천지 이전에 수많은 천지가 생겼다가 소멸했을 뿐 아니라 현재의 천지가 소멸한 후에도 또 다른 천지가 생성과 소멸이 무한히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천지바깥의 대 원기 너머 무한히 펼쳐진 우주공간 저편에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천지의 일이 있다. 따라서 여헌은 존재한다고 명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는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그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그른데 “우주설”이 서술되던 1631년경이면 중국을 통해 시헌력과 지구설 그리고 세계지도 등으로 상징되는 서양과학 지식이 유입되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여헌의 우주론 논의 에서는 그러한 서양과학을 접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헌의 우주론을 서양과학이 유입되기 이전의 즉 서양과학이 알려준 새로운 확대된 자연지식의 영향을 받지 않은 마지막의 전통 우주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헌의 우주론을 서양과학을 수용하지 못한 구 시대의 전통적 우주론이라고 가치절하 하는 것은 비역사적 이해이다. 여헌의 우주론은 주희 조차도 성공적이지 못했던 송대 성리학적 자연이해의 세 가지 전통 모두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단계를 넘어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정합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우주론을 펼쳤던 것이다. 더구나 여헌의 우주론은 성리학적 자연이해의 틀에 결코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진취적인 사색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북송대 중국에서 시작된 성리학적 우주론은 이상과 같이 17세기 초 조선 유학자 여헌에 이르러서 정합적이고 자기 완결적인 우주론으로 확립되었다. 18세기 이후 조선에 유입된 서양과학의 자연지식을 조선 유학자들은 매몰되어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홍대용이나 최한기 등 일부 유학자들은 서양과학의 자연지식을 기론적으로 재해석했고 김석명이나 서명응등 많은 유학자은 상수학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러한 조선 학자들의 흥미롭고 독창적인 우주론 사색은 여헌의 성숙한 우주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다.

    자료제공   인동장씨 남산파 종중

출처 : changjh3692
글쓴이 : 목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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