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등 좋은글

    문장대 2021. 12. 31. 12:11

    조선 시대 2효녀 문랑과 효랑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현사 근방의 이효각 감천면 도평2리 263-1에 위치

     

    금오지맥을 답사하기 위하여 김천과 성주를 가다 보면 감천초등지나 도평2리 263-1의 위치에 청현사가 있고 근방에 이효각의 비석이 있다. 이곳은 숨막히고 처절한 사연이 전개되는 역사의 현장이다. 요새 같으면 나라가 떠들썩 할만한 큰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난 사실이다.

     

    - 사건 개요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녀 문랑·효랑 자매의 이효각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문랑·효랑 자매는 죽산 사람 박수하의 딸로 1709년(숙종 35)에 현풍 권력가인 청하 현감 박경여에게 선산을 빼앗겼다. 부호이자 권세가인 박경여가 박씨 선산에 자기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 하였다. 이장을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박경여는 박수하 조부모의 묘를 파내고 묘를 이장한 뒤 비석까지 세웠다. 자매의 아버지인 박수하는 갖은 수단을 써서 묘지를 찾으려 하다가 오히려 관위에 구금되어 갖은 고문 끝에 하옥된 지 7일 만에 태장(笞杖)을 맞아 운명하였다. 자매는 억울함을 관가에 고했으나 성주목사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에 묘를 파헤치고 박경여에게 통보하니, 박경여는 사병을 거느리고 집을 포위하여 언니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 때 언니의 나이 19세로 1712년(숙종 38)이었다. 아버지와 언니를 잃은 효랑은 16세의 어린 나이로 원한을 풀어주고 선조에게 욕됨을 바로잡으려고 상경하여 백방으로 억울함을 호소하여 어사가 출두하게 된다. 어사가 검시할 때 언니의 시신이 썩지 않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전국 유생들과 성균관까지 들고 일어나게 된다.

     

    1724(경종 4) 문랑에게 정려가 내려지고 효랑에게는 복호 80결(結)을 내렸다. 그 후 효랑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리면 고품리 남평 문씨 문동도의 아들 문우징(文宇徴)에게 출가하나 불행하게 25세로 요절하였다. 효랑의 정려도 시가 쪽 유생들의 상소로 내려졌으며 영조는 죽은 언니에게는 문(文), 동생에게는 효(孝)라는 시명과 함께 정려명을 하사하였다. “문헌공의 자손 매 맞아 죽은 넋이 남은 원한을 어느 곳에 가 호소하랴 아내는 정숙하고 딸은 효도하여 종은 충절을 다하니 만고에 강상을 밝힘에 제일가는 가문이로다.” 1934년 효녀 문랑과 효랑의 활동과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 작품[역사 소설]로 만든 『출천대효효낭전(出天大孝孝娘專)』이 출간되었는데, 당시 박경여의 문중 사람들이 이 소설을 나오는 대로 구입하여 소각하였다고 한다. 두 자매의 정려비는 처음에 도암리에 세워졌으나 효랑의 비는 1916년 시가인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로 옮겨졌다. 두 자매가 태어난 도평리에 있는 경상북도 유도회와 종친에서 1978년 불천지위 사당인 박씨 선조 문헌공의 사당 청현사로 문랑의 정비를 옮기고 비각을 세웠다. 문랑·효랑비는 두 자매의 효를 기리기 위해 문헌공의 사당인 청현사로 옮기면서 1979년 다시 세워졌다.

     

     

    문랑비는 높이 50㎝, 가로 30㎝, 두께 10㎝의 화강암에 ‘만고효녀죽산박씨증시문랑지비(萬古孝女竹山朴氏贈諡文娘之碑)’라고 새겨져 있다. 전면에 새겨진 글자가 전부이기 때문에 언제 세운 것인지 알 수 없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는 시멘트로 되어 있다. 좌측에는 문랑의 비가, 우측에는 문랑·효랑의 비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좌측의 것이 원래의 것으로 후대에 만든 비대석 위에 놓여 있으며, 우측의 것은 새로이 세운 것으로 비대석을 받치고 상부에 이수를 두었다. 사면 모두 홍살창을 설치하고 정면 홍살의 중앙부는 출입할 수 있게 착탈식으로 되어 있다. 현재 비각 소유자는 죽산 박씨 연흥군파 문중으로 되어 있으며 관리가

    잘 되어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 한 집안에서 있었던 사실에 근거한 『출천대효효낭전』이라는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전국적으로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근대 유산으로서 희귀본이라는 생각이 들며, 이 비는 삼강오륜을 소중히 하는 당시 사회의 풍조를 잘 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문랑·효랑의 이야기가 이용범의 『사람됨의 도리 효』[바움, 2004]에 소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청현사를 소개합니다. 

    -청현사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박원형의 불천위() 사당.

     

    개설

    청현사(淸顯祠)는 문과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고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해진 죽산 박씨(竹山朴氏) 박원형(朴元亨)[1411~1469]과 그의 부인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후손 대대로 끊임없이 제사를 지내라는 나라의 특명이 내린 불천위의 사당이다.

    위치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 평산마을 못 미치는 왼편 도로 가에 문랑·효랑 이효각(文郞孝郞二孝閣)이 서 있으며, 이곳에서 50m 떨어진 곳에 청현사가 자리하고 있다.

    변천

    박원형이 성주 땅에 돌아와 1469년(예종 1)에 죽으니 나라에서 그 해 부조지묘(不祧之墓)의 특명으로 성주 벽진면 해평리에 청현사를 세웠다가, 1925년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형태

    우람한 외삼문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 돌층계를 지나 재실이 있다. 삼문에는 ‘숭덕문(崇德門)’이라는 현판이, 사당에는 ‘청현사(淸顯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 안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중수기(重修記)가 보관되어 있다.

    현황

    2010년 현재 청현사는 죽산 박씨 문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부지 규모는 1,652.9㎡[500평가량] 정도이다. 청현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박원형의 10세손인 박수하(朴壽河)의 두 딸의 정려각인 문랑·효랑 이효각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 『내고장 우리향토』(김천시, 1983)
    • 박씨문화원(http://parkssi-munhwa.co.kr/)

      [네이버 지식백과] 청현사 [淸顯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TV에 방송되기도 하고 이용범 님께서 사람됨의 도리 효(바움, 2004)로 소개된 책도 있다고 합니다. 

        파주시 광탄면의 파평윤씨와 청송심씨의 산송사건은 영조때부터 대립되다가 2009년 5월에 종결된 시실도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전국각지에서 수 많은 산송사건이 있었다. 문랑, 효랑의 두 효녀 이야기도 산송사건에 연유한 것이다.